쿠쉬나메와 양직공도의 신라인 모습 역사

아직 훨씬 많은 연구가 필요한 번역본 [쿠쉬나메]를 읽던 도중 삽화를 보다가 스치는 느낌이 있어 찾아보았습니다. 

이 삽화는 6세기에 쓰여진 것을 12세기에 다시 필사한 것으로 알려진 쿠쉬나메(کوش نامه, Kush Nama)에 직접 나오는 삽화입니다. 바로 바실라(신라로 추정하는)의 왕에게 주인공이 바실라의 공주와 결혼을 요청하는 장면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저서는 페르시아의 서사시로 501년~504년,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로 책의 절반에 가까운 바실라와 우리 역사의 신라의 관계성이 2010년이후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쿠쉬나메라는 저서명에서 ‘쿠쉬’는 구전상의 영웅(실존인물이 아닌)입니다. 그는 7세기말 아랍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 말기의 중국 왕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메’는 ‘서(書)’, 즉 ‘쿠쉬나메’는 ‘쿠쉬의 서(書)’입니다.

쿠쉬나메는 총 1만129 쿠플레(대구·對句)가 넘는 방대한 양인데, 그 가운데 신라(바실라)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구절은 1만219절 중에서 2011~5925절 사이를 구성합니다. 실제 역사기록에선 사산조 페르시아가 637년 카디시야 전투에서 아랍군에게 패배한 뒤 모술, 니하반도, 하마드한, 라이, 이스파한 등 주요도시들을 잇달아 잃으면서 멸망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고 추정합니다. 당시 사산조 페르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아즈데기르드의 왕자 피루즈가 끝까지 저항했으며, 중국으로 망명한 뒤에는 이란인 잔존세력과 힘을 합치는데 쿠쉬나메의 역사적인 배경이 바로 이 무렵, 마지막 왕자 피루즈가 중국으로 망명한 뒤 사망한 시점으로 잡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501~4년에 원래 쓰여진 쿠쉬나메에 1100년대에 그 후의 역사를 덧붙여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보이는군요. 637년의 일이 배경으로 쓰인 셈이니까요.

아무튼 저 삽화는 1100년대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600년대 바실라의 사람들이 페르시아인의 시각으로 그려져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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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직공도(梁職貢圖) 

이 삽화를 보고 언뜻 떠오른 그림이 바로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양직공도]로 중국 북경(北京)의 중국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양나라(梁, 502~ 557년)를 찾은 백제(百濟), 신라, 고구려, 왜(倭) 등 외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리고, 그 나라의 풍습 등을 소개한 화첩으로, 현재 남아 있는 그림은 6세기에 제작된 원본을 1077년 북송 시대에 모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쿠쉬나메의 연대를 비교해볼까요?

"501년~504년,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로..."

쿠쉬나메의 연대역시 6세기에 제작된 원본을 12세기초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즉 두 그림의 시기가 같지요. 그렇다면 여기 나오는 '신라인'의 모습 역시 동시대의 신라인을 묘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번 비교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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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머리

재미있는 점은 머리모양과 수염입니다. 즉, 두 그림에 나오는 타국인물들(페르시아, 백제, 고구려)은 모두 수염과 상투를 튼 것에 반해, 바실라인과 신라인은 그냥 풀어헤친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공교롭게 모두 수염이 전혀 없지요.

현재 우리 학계에서는 양직공도의 신라사신의 경우 결혼전의 미혼청년이기 때문에 저런 형태를 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추정하지요- "이는 신라가 중국복식을 받아들이는 진덕여왕 2년 이전의 사신이거나 관례를 치루지 않은 총각이기에 어깨 뒤로 머리를 늘어뜨린 스타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신라는 김춘추가 당나라로 가서 647년 중국복식을 얻어 돌아왔고 이듬해 중국식 복제로 바꾸게 된다."

그런데 쿠쉬나메의 삽화 역시 공주들로 추정되는 주변인물들의 경우 그럴 수 있지만, 사실 왕 역시 저런 머리모습과 수염이 없는 것은 주목할 만 합니다.
이렇게 기혼전에 늘어뜨린 머리를 전통용어로 '채머리'라고 합니다. 얹은머리나 쪽머리가 기혼녀의 머리모양인데 비해, 채머리는 주로 미혼녀들의 머리모양입니다. 

이런 형식은 고구려 무용총 무용도 여인상에서 나오는데, 머리를 저렇게 흘러내리게 하거나 끈으로 묶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북사]의 백제여인묘사부분에는 "여인이 머리를 땋아서 뒤로 수하시켰다"라고 나오며, 12세기 [고려도경]에서는 미혼여성은 붉은 머리끈으로 묶되 머리를 저렇게 치렁하게 늘어뜨리는 형식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미혼남자 역시 저런 머리인데 끈 색만 검은 끈(繩 노끈 노)을 씁니다.

선화봉사고려도경 부인(婦人)
여자(女子)
서민(庶民)들의 딸은 시집가기 전에는 붉은 깁[紅羅]으로 머리를 묶고 그 나머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남자도 같으나 붉은 깁을 검은 노[黑繩]로 대신할 뿐이다.

머리모양에 대한 글은 이 글이 재미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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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쿠쉬나메를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소개하기 전에 고려시대의 귀족스포츠이자 대성행한 '격구'가 언제 우리에게 들어왔는지는 문헌기록에서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추정되고 있지요.

"마상격구는 원래 파사(波斯) 즉 페르시아지방에서 유래된 것으로 현대의 폴로(Polo)경기도 이 곳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서장 및 인도 제국으로 전파되고, 중국 당나라에 전래 되어 격구(擊毬)로 불리면서 고구려,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측되며, 발해와 후삼국시대에 걸쳐, 고려시대,조선시대에 성행하였다." (위키중)

설명처럼 과연 당나라에서 삼국으로 들어온 것인지, 직접 페르시아에서 바로 들어온 것인지는 더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각설하고. 쿠쉬나메를 읽다가 멈춘 부분은 다음입니다.

"아침이 되자 아비틴은 격구(폴로)경기를 준비할 것을 군대에 명했다. 시종들이 일어나자 아비틴은 들판으로 가서 먼지가 일지 않도록 물을 뿌릴 것을 명했다."
-쿠쉬나메 중

그런데 이 부분, 예전에 어디서 본 것 같습니다.

고려사절요 기축 16년(1229)
○ 여름 4월에 최우가 이웃집 백여 구(區)를 점탈하여 구장(毬場)을 지으니 동서로 수백 보가 바라다 보이고, 평탄하기가 바둑판과 같았다. 매양 격구(擊毬)를 할 때면 먼지가 일므로 반드시 동네 사람을 시켜서 물을 길어다 뿌리게 하였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일단 기록해 둘만한 비교텍스트 같아 소개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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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와 남북국(발해, 통일신라)사이의 교류는 확실히 지금보다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물건만 보아도 도대체가 이상한 느낌이지요.
칠곡 송림사 사리기(漆谷 松林寺 舍利器)
전각형 사리기를 분리한 모습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325호인 [칠곡 송림사 사리기(漆谷 松林寺 舍利器)]입니다. 1959년 4월 전탑의 해체 수리 때 세 곳에서 발견된 것으로  1층 탑신에서는 목불(木佛)이, 2층 탑신에서는 녹색 유리잔(높이 7㎝, 입지름 8.7㎝)과 그 안에 녹색 유리사리병(높이 6.3㎝, 입지름 3.1㎝)이 놓여 있는 금동 전각형 사리기(金銅殿閣形舍利器, 높이 14.2㎝)가 발견됩니다.

박물관측 설명에 따르면 이 녹색 유리병은 신라시대 유물로 추정됩니다. 같은 탑에서 나온 이런 장식구도 심상찮지요.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 중 금은제 수형 장식구
이 화려한 장신구 역시 아직 그 용도가 불분명합니다. 다음은 당시 고대 페르시아 지역이던 아프가니스탄의 Tillya Tepe 틸라테페에서 나온 1세기 금관입니다. 어딘가 낯이 익는 듯도 하지요. 
1세기추정 틸라테베지역 금관

아무튼 쿠쉬나메를 시작으로 신라와 페르시아의 관계는 이제부터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아직은 가설을 세우기에도 벅찬 미비한 수준의 시작단계일 뿐입니다. 다만, 이런 저런 자료를 많이 모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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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찾아보니 이 금관에 대한 관심이 이미 최근에 있었군요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페르시아와의 연관성보다는 그저 우연한 흥미거리로 이야기하고 있었군요.



덧글

  • Nocchi 2017/12/06 09:55 #

    저 수형 장신구는 정말 아랍 연관 특산물(?) 인 가 보군요
    최근에 장가행 이라는 당나라 배경 만화 보는데 거기서도 주인공의 아랍 혈통 밝히는 소품으로 쓰인 모양이 저모양이었습니다
    재미있게 잘 보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7/12/07 03:51 #

    장가행이라는 작품이 있군요. 당태종자체가 위구르혈통이었으니, 꽤 흥미로울 것 같네요. 얼마전 소개한 "몽골제국과 세계화의 탄생"에서는 당조자체를 북방계열로 설명하는 이론이 나오더군요. 꽤 흥미롭습니다.
  • 남중생 2017/12/06 20:39 #

    쿠쉬 세력이 신라인들과 연합해서 중국과 맞서싸운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나당전쟁에 참전한 페르시아 군대??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됩니다. 물론 허구의 이야기겠지만요ㅎㅎ
  • 역사관심 2017/12/07 03:51 #

    언젠가 만화로 나오면 흥미로울 소재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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