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즈 초대 에이스 이상윤에 대해 스포츠전통마

아마도 역대 20승 선발투수중 가장 잊혀진 에이스가 이 선수일 것입니다. 흔히 타이거즈 역대 투수진의 '2인자'하면 선동렬시대에 가린 최강의 2인자 이강철을 떠올리는 이가 많겠지만, 그 못지 않은 선수가 바로 '이상윤'입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20승투수는 총 19차례 있었고, 선수숫자는 15명입니다.

1982년 박철순 (OB 베어스) 24승 4패
1983년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30승 16패
1983년 이상윤 (해태 타이거즈) 20승 10패
1984년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27승 13패
1985년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25승 5패
1985년 김일융 (삼성 라이온즈) 25승 6패
1985년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20승 9패
1986년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24승 6패
1987년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23승 6패
1989년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21승 3패
1990년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22승 6패
1995년 이상훈 (LG 트윈스) 20승 5패
1997년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20승 2패
1999년 정민태 (현대 유니콘즈) 20승 7패
2007년 리오스 (두산 베어스) 22승 5패
2014년 앤디 벤헤켄(넥센 히어로즈) 20승 6패
2016년 니퍼트 (두산 베어스) 22승 3패
2017년 헥터 노에시 (KIA 타이거즈) 20승 5패
2017년 양현종 (KIA 타이거즈) 20승 6패

보시다시피 리스트의 두번째 즉, 박철순의 원년기록 다음해인 83년 20승을 이룬 두명중 하나가 그입니다.

이상윤은 1983년 해태 타이거즈의 첫 우승을 마운드에서 에이스로 이끈 프로야구 초창기 스타입니다. 80년대 그의 인기는 대단했고, 특히 얼굴까지(당시기준) 잘 생겨서 타이거즈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던 대스타였지요. 아래와 같이 책받침스타대열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1983 시즌 이상윤

그럼 왜 80년대 여타 에이스들에 비해 그 이름이 희석되어 있느냐. 크게 세 가지를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같은 1983년에 절대불멸의 다승기록인 30승 장명부가 함께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이상윤은 저 명단선수중 유일하게 20승을 달성하고도 다승왕을 차지 못한 2위선수였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혹사/분업개념이 희박하던 80년대에는 경기수가 부족했음에도 무려 10명의 선수가 20승을 달성했기 때문에 그 이름이 타이틀을 따내지 못하면서 해가 지나며 희박해 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에 비해 90년부터 2017년까지 27년간 9명밖에 없습니다). 또한 최초의 20승 타이틀역시 원년의 박철순이 가지고 있지요.

마지막 이유는 같은 팀, 조금 뒤에 선동렬이라는 인물이 입단하기 때문입니다. 1985시즌 데뷔해서 맛보기를 보여준 후, 이듬해인 86시즌부터 선동렬은 그야말로 국보급투수가 됩니다. 때문에 기존 에이스였던 이상윤의 존재는 잊혀지게 되지요. 특히, 1983년 20승을 달성하고 타이거즈의 초대우승을 이루어낸 후, 1984시즌에도 두 시즌 연속 200이닝 이상에 10승을 달성하면서 계속 타이거즈의 에이스역할을 하지만, 선동렬 입단해인 1985시즌에는 겨우 2경기밖에 못뛰고 부상으로 한 시즌을 날립니다. 86시즌에 다시 10승을 달성하지만 그 시즌은 완전히 선동렬의 해였지요. 역시 가려집니다.

그가 다시 부활, 진정한 마지막 불꽃을 태운해는 88시즌. 이미 2대 에이스가 된 폭격기와 함께 원투펀치로 타이거즈의 3연패를 이끈 그 해입니다. 80년대의 많은 에이스들이 그러했듯 이상윤 역시 짧은 커리어를 부상과 부활로 점철하며 마무리합니다. 즉, 80년대스타로 82~89년까지 뛰고 은퇴, 타이거즈의 코치를 맡습니다. 

통산 8시즌중 10승이상을 절반인 4번 달성했으며 통산방어율은 3.13이지만, 10승을 거둔 4시즌은 모두 2점대의 훌륭한 성적을 찍습니다. 특히 그 기간 이뤄진 해태 타이거즈의 5번 우승중 그가 우승에 큰 공을 세운 해는 1983년과 1988년입니다.   그 두 해 기사를 조금 살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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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타이거즈 강속구 선발에이스의 계보는 그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상윤- 선동렬- 조계현- 이대진- 윤석민- 양현종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83년 기사를 볼까요. 

82년을 팔꿈치 부상으로 망친 이상윤은 전반기부터 불같은 승수를 쌓아갑니다. 기사에 보듯 181센티의 당당한 체구에 150킬로이상의 강속구를 던진다고 되어있지요 (다만, 80년대 측정기는 확실치 않겠죠. 하지만 추측컨대 145킬로이상은 던진 듯 합니다). 아무튼 당대 "살인적인 강속구로 프로야구계를 휩쓸고 있는 새아침의 태양"이라고 할만큼 위력을 발휘합니다.
기사초반에 한양대 출신인 그가 대학시절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선수인 것처럼 써있지만 사실 그건 한양대재학시절의 그고, 그 이전인 광주일고 시절에는 역시 에이스였습니다. 국내 최고의 야구명문 고교 중 하나인 광주일고 에이스 계보를 잇는 선수였는데, 그 다음 계보가 이상윤의 바로 2년 후배가 국보급투수 선동렬과 문희수였습니다. 

그 선동렬이 고등학교 시절 존경하던 선배가 바로 이상윤이었지요 (프로에서는 최동원이었지만). 오죽하면 광주일고 졸업 후에 이상윤이 있는 한양대로 진학하기를 간절히 원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려대 최남수 감독에게 설득을 당한 아버지의 권유로 갑자기 진로를 바꿔 고려대 유니폼을 입게 된 것). 그만큼 따르던 선배가 이상윤이었습니다.

대학시절 헤메던 그를 다시 프로 에이스로 키운 것은 특이하게도 당시 복싱 세계챔프출신인 김기수인데 그는 후일 그의 장인이 됩니다.
위의 기사는 그해 6월 21일에 작성된 것입니다. 기사에 보면 최동원, 장명부처럼 1억원의 계약금을 받은 선수도 아니지만 그들을 능가한다고 되어 있지요. 실제 당시 페이스는 그해 30승을 달성한 장명부와 맞먹는 것으로 전기리그에 이미 14승을 거두지요 (당시에는 전기리그 후기리그 우승팀을 따로 뽑아서 둘이 붙습니다). 그리고 해태타이거즈는 전기리그 우승을 달성합니다. 그리고나서 후기리그에는 이미 우승을 달성한 후인지라, 페이스 조절에 들어가면서 6승을 추가, 20승을 달성합니다.

영상은 1983년 올스타전에서의 이상윤- 구위를 볼 수 있습니다.


그 해의 이상윤은 탈삼진 (그때까지) 한경기 신기록까지 세웁니다.
그리고 83년 MBC청룡(LG 트윈스 전신)을 꺾고 우승하는데 타격의 김봉연과 함께 가장 큰 공을 세웁니다. 1차전 선발승, 그리고 3차전, 5차전 세이브를 거두면서 첫 우승을 안겨줍니다.
1985년 해태타이거즈 팬북

하지만 그는 20승투수에 한국시리즈의 영웅임에도 당시 살인적인 불멸의 기록을 남긴 30승의 장명부에게 밀려 골든글러브및 각종 수상에 실패합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이상윤 베스트 10도 못되고 개인상도 못타 올해 최고의 애석상'이라는 제목이 보이지요. 


더군다나 한국시리즈에서의 활약 역시 타자인 초대홈런왕 김봉연에게 밀려 MVP투표 2위, 그리고 다음해 무려 4승이라는 (역시 크보 불멸의) 기록을 남긴 고 최동원의 활약에 83시즌 그의 활약은 점차 잊혀진 감이 큽니다.

영광의 우승후, 다음 시즌인 1984년의 개막전을 에이스로서 롯데의 최동원과 맞붙은 그는 한국프로야구에서 8차례밖에 없는 개막전 완봉을 일구어냅니다. 이때 이상윤은 롯데 선발 최동원과 피 말리는 완투대결을 벌이며 1:0 완봉승을 거둡니다 (선동렬의 대결이전에 이미 타이거즈 에이스는 한차례 명승부를 철완과 펼친 것입니다). 또한 한국프로야구에 너클볼을 처음으로 시도한 투수도 이상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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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87 (10승-0승-10승-2승) 징검다리 시즌 활약을 펼친 그는 88시즌을 앞두고 절치부심, 2연패중이던 해태 타이거즈의 3연패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리고 이 해가 고작 29세던 그가 마지막으로 불꽃을 태운 해가 됩니다 (80년대 많은 에이스들의 숙명).

1988시즌

88시즌 해태 타이거즈 팬북을 들여다 보지요.
표지 다음에 나오는 에이스는 이제 당연히 선동렬의 몫.
하지만, 타이거즈의 초대 에이스에 대한 구단과 팬들의 기대는 여전했습니다. 선동렬과 바로 짝으로 내세운 원투펀치는 여전히 이상윤이었지요.
1988 타이거즈 팬북 중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선동렬-이상윤의 원투펀치는 해태를 시즌초반부터 이끌며 승승장구합니다. 다음은 88년 5월 9일자 신문.

삼성과의 더블헤더에서 에이스 이상윤과 선동렬을 계투시켰다는 기사가 보이듯, 이 해 이 두선수는 서로 경쟁하듯 승수를 따냈고 또한 중요한 고비경기의 경우 두 선수가 한경기에 연투한 승리도 6차례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이상윤은 이 해 선동렬, 그리고 롯데자이언츠의 에이스 윤학길과 함께 다승경쟁을 벌입니다. 아래 기사를 보면 10승달성시 다승 2위를 마크하고 있지요.

다음 경기에서도 승리, 11승 3패로 11승 4패의 선동렬과 나란히 무적의 듀오임을 과시합니다.

88년 후기리그 개막 기사를 보면 전기우승 (참고로 당시 타이거즈는 전,후기 모두 우승합니다)의 두 주역으로 단연 선, 이 듀오가 나오지요. 당시 해태 투수진을 거의 두 선수가 이끌고 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88년에도 이상윤은 다승 2위에 머물고 맙니다. 자이언츠의 고독한 황태자 윤학길(18승)에 2승차로 선동렬, 한희민과 함께 16승으로 2위에 그칩니다.
이미 부상기미가 보이던 이상윤은 198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힘을 소진, 가을까치 김정수, 그리고 고교특급 문희수등 후배와 선동렬에게 활약을 맡깁니다. 그리고 그는 타이틀없는 초대 타이거즈의 에이스로서 마치 80년대를 상징하듯 1989년 시즌 고작 1경기를 뛰고 은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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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홀더'와 2위라는 차이는 고작 1-2승, 혹은 평균자책점 0.01차이로 갈리기 일쑤이며 또한 당대 팬들은 그런 차이를 거의 무시하고 두 선수를 모두 훌륭하게 여기곤 합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2위는 점차 잊혀지고 퇴색됩니다.

수많은 그런 선수들이 있겠지만, 아마도 타이거즈팬들에게조차 초대 에이스 이상윤은 그런 선수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기에 타이거즈 팬들이라도 더 많이들 알면 합니다. 기아 타이거즈의 에이스계보는 바로 '원자탄'으로 시작해- '무등산폭격기'- '팔색조 싸움닭'- '에이스오브에이스'- '석민어린이'- 그리고 '대투수'로 이어진다는 것을요.

이상윤 (82~89시즌)
통산 65승 46패 14세이브. 평균자책점 3.13, WHIP 1.28



덧글

  • 漁夫 2017/12/24 12:18 #

    야... 정말 오랜만에 듣는 이름입니다.
  • 역사관심 2017/12/24 13:09 #

    만화주인공같던 추억의 에이스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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