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거미줄같은 행랑을 잘 보여주는 그림 (1576년, 宣傳僚友重會關西圖) 한국의 사라진 건축

2009년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일본에 소재되어 있다가 미국으로 유출된 그림 한 점이 있습니다. 일단 그림을 보시지요 (모든 그림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은 들어보았을 이 유명한 김소월의 시에도 나오는 곳이 평안북도 영변에 있던 약산(藥山)입니다. 그림을 보시면 오른쪽에 강물이 흐르고 있지요. 현재 위성지도로도 약산은 강을 끼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 있던 곳이 바로 약산동대입니다. 현재는 매우 간단한 설명만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약산동대(藥山東臺)- 평안북도 영변군 약산의 최고봉인 제일봉의 서쪽에 있는 정자이다. 동대는 약산의 깎아세운 듯한 절벽 위에 서 있고, 서쪽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구룡강의 물줄기는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놓은 듯이 아름답다.

실은 '동대'란 아래 사진처럼 자연석이 '대'처럼 평평하게 있어서 붙은 이름입니다. 약산의 동대(東臺)는 조선시대 관서팔경으로 유명했지요. 현재는 건물은 현재 없고 이렇게 터만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을 구하기가 힘든데 아래는 영변 약산동대의 유일한 추정사진입니다.
영변 약산동대 (추정)

이곳근방에 있던 건물에 대한 설명, 다시 볼까요.

"평안북도 영변군 약산의 최고봉인 제일봉의 서쪽에 있는 정자이다." 

이 설명을 보면 마치 요즘 우리가 흔하게 보는 '정자'가 서 있었던 느낌이지요. 그런데 저 그림의 모습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

서두에 소개한 이 그림은 1576년, 바로 평안도 영변 약산 동대(藥山 東臺)의 경관을 표현한 [선전료우중회관서도(宣傳僚友重會關西圖)]이라는 작품입니다. 즉 위의 사진 근방의 임진왜란 직전 모습입니다. 
보시다시피 산정상부에 굉장히 많은 건축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이 미국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도 16세기말 약산동대의 건물을 그저 흔한 정자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광경만으로도 흥미롭지만, 한국의 전통건축사적으로도 이 그림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이전에 소개한 다른 글에서 홍대용이 지은 [담헌서]라는 책의 1765년 북경기행기인 [건정동필담(乾淨衕筆談)]편에 중국의 조선기략서인 [동국기략]의 내용을 부분 소개한 적이 있지요.

이 동국기략에 대한 정보는 필자가 접근할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로는 한계가 있어 대강 내용으로 유추해보았는데, 차천로를 비롯한 조선중기의 문신들의 이름으로 보아 16세기중반정도의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저 그림이 그려진 1576년과 동시대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예전에도 소개한 바와 같이 이 동국기략에 현재의 우리가 아는 '한옥' (즉, 안채, 별채, 사랑채등이 독립된 공간으로 나오는)과 전혀 다른 느낌의 한옥이 등장합니다. 바로 이 부분입니다.

동국기략 한옥모습
“ .....집의 제도는 경성 밖은 대개 초가(草家)가 열에 팔구이고, 침실은 모두 온돌이고 사방이 벽이니 모두 창호(牕戶)를 달아 중국의 ‘캉’ 제도와 같지 않고, 실외에는 목판으로 청사를 만든다. 무릇 집은 모두 구비가 꺾이어 구불구불하므로 비록 백여 칸이라도 거의 서로 연결된다."
-16세기중반

이 기록을 보면 "집이 침실은 모두 온돌이지만, 실외는 목판으로 만들고 집이 모두 구석마다 꺾이어 구불구불 이어져서 설사 백여칸의 대저택이라도 서로 다 연결된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예전에 행랑, 낭루, 낭청등 많은 문헌기록, 그리고 또한 일부 회화로 이 기록에 나오는 모습을 보여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 회화작품에 나오는 것만큼 확실한 매칭되는 모습은 처음입니다.

다시 확대한 부분도를 볼까요. 건물이란 건물군은 모두 행랑과 낭무등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더 화질이 좋은 버젼으로 봐야겠지만 가운데에는 중층건물도 있고 왼쪽건축군중 일부도 중층으로 보입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한옥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른쪽 상단부에 위치한 건물군도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품하단부에 위치한 건물부도 마찬가지.
굳이 찾아보자면 19세기 그려진 작자미상의 경기감영도내 관아모습과 그래도 유사점이 있는데 세부적인 행랑구조는 역시 다릅니다. 예를 들어 이쪽은 회랑도 일부 있지만 거의 담이 대부분이죠.
그나마 경기감영도의 이런 모습도 보존되어 현전하거나 재건한 조선후기의 관아조차 없습니다. 이런 모습뿐.
밀양관아
제주관아

=====

1576년의 이 작품은 역시 16세기중엽추정의 기록인 [동국기략]의 이 "(조선)집은 모두 구비가 꺾이어 구불구불하므로 비록 백여 칸이라도 거의 서로 연결된다."의 이 동시대 문헌기록을 그대로 뒷받침해주는 명확한 증거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헌 건축기록의 신뢰성을 올려주는 좋은 예가 될 것 같습니다.

덧글

  • 함부르거 2018/01/24 10:22 #

    연재하시는 조선 건축 관련된 이야기 즐겨 보고 있는 1인입니다. ^^

    조선 전기의 저런 건축물이 왜 후기로 가면 사라지는지 참 궁금해 지네요. 사람들의 취향이 바뀌어서인지, 경제력 때문인지, 기술 문제인지... 일단 온돌이 가장 큰 변화원인이라는 건 이해가 되는데 온돌과 관계 없는 지붕이나 행랑까지 바뀐다는 게 참 신기해요.
  • 역사관심 2018/01/27 03:59 #

    사실 90년대까지도 연구가 있긴했지만 정보부족 (특히 북한쪽과 해외자료부족)과 관심부족 (현전건축에 대한 연구역시 아직 부족했던 당시)으로 간헐적으로 나왔었죠. 요즘 들어 많은 연구가 진행중이라 새로운 이론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역시 임란전후의 급변하는 경제적 상황, 그리고 소빙기등 기후변화가 중요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낭무-행랑등의 연결하는 부속건축이 사라지는 이유에 대한 연구는 아직 본 적이 없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에요.
  • 남중생 2018/01/24 10:37 #

    잘 읽었습니다.
    16세기 중반이면 온돌이 아직 도입단계일텐데, “모두” 온돌이 깔려있다고 말하는게 다소 의아하기도 하네요...
    저도 동국기략에 대해 좀더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8/01/26 02:13 #

    문헌의 문맥상 아마도 전면온돌에 대한 이야기는 저택보다는 열에 여덟이라는 초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동국기략의 정확한 연대는 의외로 정보를 찾기가 힘들더군요;
  • 섹사 2018/01/24 12:36 #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8/01/26 02:13 #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 응가 2018/01/24 20:02 #

    영변에 명산이라 하면 묘향산과 약산이 있는데 묘향산에는 보현사라는 큰 절이있고 약산에는 천주사가 있는데 그 둘의 가람배치가 저리 행랑이 이리저리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제가 볼때에는 후대에 그린 영변성 그림에도 산봉우리를 여럿 둘러싼 모양으로 비슷하게 그려진걸 보면 산상이 아닌 영변성내와 그와 별개로 약산동대에서의 연회를 그린 그림같습니다. (http://www.museum.seoul.kr/exh2/wahyusansu/images/contents/img_03_36.gif)
    다만 당시 영변이 평북도의 큰 고을이란걸 감안하면 그때의 역관이나 관아라고도 볼수 있을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8/01/26 02:09 #

    글을 쓰기전 저도 영변성에 대한 생각은 해보았습니다만, 일단 주위에 성곽이라 할만한 구조가 없고, 현재까지의 초기연구를 보면 저 그림이 계회도의 성격이 강해 그대로 묘사했을 가능성도 크고, 어디를 찾아봐도 동대부근을 그린 것이라는 정보만 있어 일단 그 가능성을 쓰지는 않았었네요.

    만약 영변성내의 관아라든가 구조를 그린 그림이라 할지라도 조선후기에 그려진 형태의 기존의 우리가 보는 영변성내도와는 역시 건축구조가 완연히 다른지라 그 경우에도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
  • 응가 2018/01/27 11:33 #

    이 글과는 무관한데 역사관심님이 관심있어 할 주제가 있어 한번 말씀드릴게 있는데 한번 사찰 법당의 장식에 관해서 포스팅 해주실 수 있나요?
    조선고적도보나 조선총독부 유리건판 사진같은것을 보면 현재의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아서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닫집이나 용,봉황같은 목물뿐만 아니라 불단을 장식하는 채화, 그리고 천장에 달려있는 장식까지 현재와 다른경우가 많습니다.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https://i.pinimg.com/736x/fb/08/57/fb0857e68c661f94df4501648d50fc87--korean-empire.jpg)
    하동 쌍계사 대웅전 (http://m.photoviewer.naver.com/image?source=https%3A%2F%2Fmblogthumb-phinf.pstatic.net%2F20140615_207%2Fcorrectgame_14028227879689zx5I_JPEG%2F5581.jpg%3Ftype%3Dw800&nclicks=null#historyBack)
    구례 화엄사 대웅전 (http://m.photoviewer.naver.com/image?source=https%3A%2F%2Fmblogthumb-phinf.pstatic.net%2F20140617_43%2Fcorrectgame_1402992944602XkcJw_JPEG%2F5690.jpg%3Ftype%3Dw800&nclicks=null#historyBack)
    소실 되었지만 안변 석왕사 (http://mblogthumb2.phinf.naver.net/20140311_89/correctgame_1394509548101AAASa_JPEG/5382.jpg?type=w2) (http://www.ibulgyo.com/news/photo/201104/108515_44102.jpg)
    사진을 보시면 등과 불단위 업경대, 명패같은 것들이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법당 천장을 연등으로만 장식한것 과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 역사관심 2018/01/27 11:45 #

    사실 조선고적도보의 사찰건축중 용마루부분처리한 것이 너무 달라서, 이 주제로 한번 다뤄볼 생각이 있었는데, 그때 함께 한번 살펴보면 좋을 듯 합니다. 좋은 정보 정말 감사드립니다!
  • 더러운 이누이트 2018/12/04 00:58 #

    할아버님 고향이네요. 허...멋집니다.
  • 역사관심 2019/07/16 15:50 #

    이제사 글을 봤네요, 죄송;; 할아버님 고향이시라니 더 감회가 새로우실 듯 합니다. 아래 댓글말씀처럼 읍치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 더러운 이누이트 2018/12/04 01:07 #

    크게 확대하신 건축군은 객사를 중심으로 관아가 결합된 읍치의 모습 같습니다.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7/16 08:03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7월 16일 줌(http://zum.com) 메인의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컬처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2019/07/16 15:4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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