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뜬구름잡기는 그만- 의미있는 조경사 논문 (2017) 역사

2017년말 발표된 임한솔 서울대 연구원의 [한국조경사 서술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란 논문입니다.

이 논문은 필자가 계속해서 주장해 온 '한국학' 각 분야의 어찌보면 최종목적인 '한국적'이라는 명제 성립과정의 형이상학적으로 치우쳐온 현상과 시대적으로 조선후기에 집중된 경향과 연관이 있는 논고인지라 소개하고자 합니다. 특히 꽤 관심이 있는 '조경학 역사'(조경사)쪽의 연구라 흥미로웠습니다. 간략하게 관련된 부분을 소개해 보지요 (파란색글은 임박사의 것이고 나머지는 필자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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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조경사 서술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임한솔, 2017.11)

A Critical Review on the Research Trend of Korean Landscape Architectural History 

4. 한국 조경사 서술 경향에 대한 비판적 검토

4-1. 고착화된 전제・해석의 탈피 필요

앞으로 조경사 서술을 비롯하여 조경사/전통조경 관련 논고가 우선적으로 벗어나야 할 부분은 이전의 조경사서술에서 전제한 배경 사항이나 해석의 관점을 무분별하게 따르는 경향이다. 초기부터 현재까지 발간된 조경사서술 단행본의 상당수는 서두에 사상적 배경을 정리하는 내용의 총설 부분을 담고 있다. 유교/도가/신선/풍수/음양오행/자연숭배 등의 사상적 배경을 전제한 후 시대별/유형별 각론을 전개해 나간 것이다. 

문화적 실체에 대한 연구는 '귀납법'이 맞다 (관련글)는 글에서 살펴보았던 바로 그 맥락입니다. 항상 총설이 꼭 연역적 접근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아래 계속되는 내용을 보면 분명 같은 맥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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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서술 구도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는 점도 짚어야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러한 ‘총설’을 이루는 사전적 논의가 키워드나 중심 내용의 큰 변화 없이 이어져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사상적 배경에 대한 무분별한 답습은 어떠한 현상이나 대상의 의미를 해석해나가는 과정에 개입하여 추상적이고 차별성 없는 결론을 이끌게 마련이다. 

항상 나오는 '조선정원은 인공미대신 자연미, 풍수를 따져 만든 것' 이런 식의 서술입니다. 이는 건축분야에서도 완전히 마찬가지.

가령 방지원도(方池圓島)는 조선시대 조경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양식적 특징으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천원지방(天圓地方)이 실제 수공간을 조성하는데 적용되었거나, 그것이 주역 등의 유교적 원리를 대변한다는 실증적 규명은 진행된 바가 없다. 다만 윤국병의 초기 조경사 서술에서 그러한 해석이 발견될 뿐이다. 

또한 못 가운데에 섬이 있을 경우 도가적 반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도가’라는 해석 하에 각각의 사례들이 갖는 구체적의미를 흐리게 할 위험이 농후하다. 물과 섬의 관계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도가로써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학술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조경사 연구가 지닌 풍부한 연구 소재에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이상으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착화된 전제나 해석의 관습을 과감하게 버릴 필요가 있다.
필자가 얼마전 쓴 [과연 한국적건축은 공간인가? 한국학의 문제점과 맞닿는 비판론]과 같은 맥락의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꼭 유명 건축가의 말과 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최근 우리의 건축담론을 보면 “건축은 공간이다!”이라는 믿음이 아주 강하게 깔려있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한때 널리 회자되던 “한옥의 처마곡선에 한국적 건축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등의 형태론적인 ‘믿음’은 아예 구시대적인 유물로 취급 받고 있다. 중략. 

사실 이런 식의 '공간'위주의 건축담론이 강한 경향은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학전반에 깔려 있는 '형이상학적 담론 강세'와도 맞닿아 있는 지류에 가깝다고 생각하기에 본문에 언급된 유럽의 공간론과는 (이론가들이 알건 모르건) 꽤 그 시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결국 이런 담론이 대담하게 말해 '뜬구름잡는' 담론들을 양산해 낸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건축가가 '한국적'인 색감을 담았다고 이야기하고 형이상학적인 (공간, 정신, 개념, 등) 개념을 (어떤 경우는 조선의 정원의 정신이라든가 무기교라든가 자연감이라든가 하는 식으로까지) 충실히 담았다고 이야기해도, 설명을 듣고나서야, 혹은 설명을 듣고도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뭔지 잘 모르겠는' 건축가 자신만의 '한국적' 건축이 자주 등장하는 것이라 사료된다."

"‘도가’라는 해석 하에 각각의 사례들이 갖는 구체적의미를 흐리게 할 위험이 농후하다. 물과 섬의 관계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도가로써 유사한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학술적인 태도라고 볼 수 없다."--> 이를 '공간'으로 바꾸어 전통건축계의 시각에 반영하면 필자와 같은 비판이 됩니다 (관련글- [알쓸신잡과 공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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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시대별ㆍ유형별 각론의 통합 필요

본 연구가 검토한 한국 조경사 단행본의 목차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 중 하나는 고려, 조선 등의 왕조사별 시대구분을 전기, 후기와 같이 세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은 역사학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전통문화의 측면에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2014년 발굴된 고려시대 실상사 정원유적지

시대 변천에 따른 양식이나 문화의 ‘변화 과정’에 대한 역동적 해석이 충분하지 않은 점과 각 유형 사이의 영향 관계에 대한 고려가 아쉽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제기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성은 [조선조정원의 원형에 관한 연구(1989)]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다. 

필자는 2014년 사진위주로 정리한 이 글을 쓴 바가 있습니다. [정리: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의 연못들]. 이런 연구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지만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글인데 이 논문을 보니 과연 없었군요.

이런 식의 문제점은 한국학 각계에서 발견되는데, 이 결과 항상 이야기하는 가시적인 인식레벨이 너무 낮은 큰 문제가 생겨납니다. 다음은 위의 연못관련 글에서 쓴 부분입니다.
"이에 비해, 일반적으로 (논문이 아니니 이런 애매한 말을 씀을 이해해주시길)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는 한국형 정원의 모습과 특히 '연못'의 시대별 모습이 그다지 잘 매치되어 떠오르지 않습니다. 우선 이런 유적들이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지라 접근성문제로 여러 유적지에 많은 국민이 가볼수 없을 뿐더러, 앞선 예처럼 정리되어 소개된다거나, 혹은 칼렌더, 엽서등으로 활발히 이용되지 않으니 뇌리에 각인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다음으로 역시 필자 (그리고 여러 소장학파건축학자들)가 주장하는 고대-중세건축의 한중일 비교연구와 활발한 응용 역시 조경사 관점에서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궁원, 학교, 사찰, 관아 등의 정원을 서로 비교해 보고, 이상이 성립된다면 중국, 일본과의 비교도 가능할 것이고, 이상이 성립된다면 동북아시아 외 문화권과의 비교도 가능할 것으로 거시적 전망을 그렸던 것이다. 데이비드 와트킨(David Watkin)은 건축사학의 목적을 실제적・역사적・미적인 것으로 요약한 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실제적 과제는 무엇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지어졌는지 등의 기본 정보를 밝히는 것이고, 역사적 과제는 왜 지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이며, 미적 과제는 여러 대상 사이의 양식적 차이를 기술하는 것이다. 조경사의 목적 또한 와트킨이 제시한 세 가지를 빗대어 볼 때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중략.

뜬구름 잡는 그리고 시대를 구별하지 않는 특정시대적 담론인 '여백의 미', '풍수지리와 도가적 미학'같은 형이상학적 담론를 넘어선, 구체적인 개별자의 모습과 성과를 보여줄 때가 된 것입니다. 이런 연구는 2010년대가 되서야 조금씩 등장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다음은 '고대정원 비교연구'라는 2013년 연구자료중 중국 남한국의 정원연구부분의 사진입니다. 다만 아직은 그냥 각국의 유적지를 자세히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는 감이 있습니다. 이는 건축사도 비슷한 듯 합니다.

마지막 부분은 역시 고유섭선생으로 이어집니다. 우리의 조경사 담론의 단추도 끼우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인 학자에 의해 쓰인 논고는 대표적으로 고유섭(高裕燮, 1905∼1944)이 1930년대 초에 탈고하여 사후인 1964년 발간된 [조선건축미술사초고]에 수록되어 있다. 고유섭은 위 책의 제5장 조선조의 건축에서 궁전건축에 이어 정원건축에 관한 내용을 서술했다. 중국・일본・조선의 정원을 비교한 부분이 인상적인데, 먼저 중국 정원은 “가장 기발한 대풍경을 납취(拉取)하여 한 구역 지내(地內)에 자유롭게 요리”하며 “극단의 인공을 가하여 자연과 인공의 격렬한 대조를 초치(招致)”하였다고 표현했다.

일본 정원은 “인간이 자연 속에 푹 파묻히고 말려 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의 산수는 고웁다. 그러나 손질이 너무 간 고움이다”라고 하여 역시 인공적 측면을 강조였다. 반면 조선의 정원에서는 ‘방지(方池)’, ‘도서(島嶼)’, ‘고석(古石)’, ‘화훼’ 등의 구성요소를 언급하고 “중화인과 같이 자연을 요리하지 않는다. 일본인 모양으로 자연을 다듬지 않는다”라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태도를 강조하였다

식민지시기 인물들의 조선 정원에 대한 인식은 고유섭의 글에서처럼 동아시아 삼국의 비교라는 토대 위에서, 식민통치라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발생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관점은 연구 문헌이 충분치 않던 해방 이후의 조경사 연구자에게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본고에서 소개한 논고 외에 식민지시기에 발표된 조경사 관련 논고들을 발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의 인식을 복원하는 것도 추후의 중요 연구 과제이다.

우리에게 너무 친근한 개념인 한국적 미학담론의 '자연미, 소박미, 해학미'의 성립은 일제시대에 고유섭선생같은 우리의 초창기 한국미학의 선구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시로써는 일본, 중국과 '구별'되는 (새로이 탄생하던 민족국민국가의 시대에 걸맞는) 우리만의 특질을 개발하는 큰 공을 세웠지만, 시대적상황과 과제, 그리고 당시 극히 부족했던 고대-중세 한국유산을 고려하면, 이 담론은 21세기 현재에는 결국 우리의 중세-고대미학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하는 상당한 발목잡기가 되고 있음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한국학및 문화계 스스로의 팔자르기- 중요한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폐해]에서 쓴 바 있는데, 건축학에서도 이는 큰 걸림돌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글이지만 최근의 연구결과로 한중일 삼국의 건축이 서로 공통점보다 차이를 드러내며 자신의 색깔과 갈 길을 가기 시작한 본격적인 시기를 아무리 멀리 잡아도 12세기, 가깝게는 14세기 즉 여말선초로 잡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9세기, 12세기의 건축인 황룡사 9층목탑, 연복사 5층 전각/목탑을 재건한다면 삼국공통의 분모가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전혀 숨기거나 부끄러울 일자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광의로 보자면 '소중화주의'라는 주제에도 어떤 면에서 연관되지만 여기서는 다루지 않습니다). 중세까지 세계 각국 (동아시아 뿐 아니라 유럽등 전세계)은 '자국문화'에 대한 '정체성강화'에 대한 의식도 정의도 더 나아가 자긍심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서로 좋은 부분을 배우고 교류하고 대국이나 문화강국에서 받아들인 문물을 그대로 적용해도 아무런 문제도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건축으로만 좁혀보아도 이는 우리가 유럽 각국, 나아가 호주나 미국의 영미권 국가에서 보는 그리스-로마식 건축전통양식에 대한 인식에서 잘 보입니다. 그들은 이 건축양식들이 자신을 억압하는 기제로 보거나 창피한 문화식민지적 사고로 전혀 보지 않습니다. 그저 고대-중세의 문물교류나 영향력으로 볼 뿐, 자랑스러운 자국의 문화재건축물로 볼 뿐이지요."

이러한 맥락에서 조경사도 마찬가지임을 논문의 저자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동아시아 삼국의 비교 관점은 고유섭을 비롯한 식민지 시기의 논고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을 앞서 확인했다. 근 문화권과의 비교는 정체성의 확립에 있어 필수적이며, 해석의 여지를 확장시켜 보다 풍부한 논의를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한국 조경사에 있어 중국・일본과의 비교사적 관점이 얼마만큼 실효성 있게 전개되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대표적인 한국 조경사 단행본들이 ‘동양’이라는 용어를 표제에 넣고 중국과 일본의 조경사를 많은 지면을 통해 정리하였음은 기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책의 구성과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비교의 몫은 오롯이 독자들에게 있다고 판단된다. 서로 간에 어떠한 교류의 실제가 있었는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얼마만큼 영향 관계를 주고받았는지에 대한 분석이나 해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 삼국의 조경 문화에 대한 이해를 심도 있게 하기 보다는 서로간의 차이를 부각시켜 별개의 문화로 인식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한국 조경사 연구는 건축사, 미술사, 고전문학 등 인근의 문화사 분과에서 인지하는 연구의 가능성과, 설계를 비롯한 조경 실천 분야에서 요구하는 원동력으로서의 기능성을 충분히 만족시키지는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 연구는 고착화된 전제와 해석을 피하고, 시대별・유형별 각론을 통합하며, 교류사적 측면에서 동아시아 비교연구를 수행할 것을 방향으로 제시하였다. 본고의 논의가 실천력을 담보한 조경사 연구를 위한 하나의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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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시대 혹은 특정관념에 얽매인 연구는 이제 충분한 시점이라 사료됩니다

마무리

필자는 [한국학 & 생활사 (미시사 포함) 단상 (근원적 반론)]에서 2005년 당시 서울대 규장각 책임연구원 김호 박사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주영하 교수님의 주장에 본격적인 반론을 편 바 있습니다. 그 글의 마지막 부분으로 본 포스팅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결국은 다른 분야에서의 변주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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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인 무엇은 없다고 생각하자. 대신, 가, 나, 다... 만 있는 것이다. 가를 파악하고, 나를 파악하고, 다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실체적으로 구현하라.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적인 '무엇'을 찾을 생각을 버리고 충실하게 실체에 접근할 때, (역으로 or 결과적으로) 한국적인 무엇은 찾아질 것이다 (아니, 찾아지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풍부한 한국문화가 탄생할 것이다)."

생활과 문화라는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찾기는 선후가 바뀌어야 한다. 의미를 찾기 위해 문화를 들여다보지 말고, 문화의 각 개별자를 충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개별자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아니면 역사 속에서 혹은 당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사 의미가 없더라도, 한국문화는 그로 인해 조금이나마 풍부하고 다양해 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체들'은 훗날 우리 후손들에게는 (지금 우리에게 없던 의미가) 큰 의미가 될 지도 모른다. 

현재와 같은 한국학 관련 전문가들의 기본적인 담론이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기 힘들다.

'우리 문화재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after-effect에 가깝다. 그보다 '하나 하나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아니, 필자에겐 그쪽이 선후적으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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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오늘 소개한 논문을 만나 매우 기뻤습니다. 지난 건축학계의 [공간론비판]에 이어 조경사에서도 이제 한국학과 관련된 각 분야에서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중이라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제 시작일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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