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이미 주등酒燈을 알고 있었군요 (동아일보 한 소설에 등장) 역사전통마

이미 네 차례에 걸쳐 조선시대의 술집마크인 '주등(술집등)'에 대해 문헌기록과 회화속의 모습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찮게 이 소설속에 등장하는 주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소설 먼동에 등장하는 酒燈 그림

1989년 1월 13일 동아일보에 실린 연재물 [먼동]이란 작품입니다. 이 글을 보면 주등을 내거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특이하게도 옛날 신문을 (아는 한) 모두 찾아봐도 이 소설이 유일한 '주등'을 기록한 문헌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꽤나 흥미로운 문맥이 등장합니다.

1989년 먼동 425화 중

빨간색 구절을 보면 "나귀들 묶인 주막 앞 뜰에는 벌써 긴 장대에 부연 주등(酒燈)이 내걸려 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이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이 부분 "벌써". 
무슨 뜻일까요? 

이는 당시 주막의 '등'이 해가 뉘엿뉘엿한 저녁무렵부터 걸렸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즉, "밤에 이곳이 술집이다"라는 마크로 불을 켜는 형식임을 유추해 볼수 있습니다. 이 경우 필자가 혼자 고민하던 주막의 또다른 상징이던 '푸른 깃발'과의 관계를 해결해줍니다.
독화로사도 중 (12세기? 시대미상)

즉 많은 술집(주막)에서 낮에는 푸른 기를, 밤에는 주등을 내거는 형식이 아니었을까하는 대담한 추정을 해봅니다. 이 기록의 정확한 문맥을 이해하려면(즉 소설내 주등의 명확한 용도를 알기위해서는) 본작을 쓴 작가가 어떻게 주등에 대해 파악하고 있었으며, 저녁무렵부터 내거는 풍습을 알고 있었는지를 물어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분외에 어떤 신문에서도 주등을 이용한 소설이나 기사를 쓴 분도 신문아카이빙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분은 10년전에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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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먼동]의 작가는 홍성원(洪盛原, 1937~2008년)씨로 찾아보니 생각보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그간 논문도 꽤 되더군요.
[홍성원의 『먼동』 연구 -주요 등장인물의 역사의식을 중심으로] (2007, 이승준)이란 논문의 일부를 보면:

"『먼동』은 1901년에서 1919년 사이 우리 민족의 삶을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제각각의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럼으로써 이 소설은 당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그릴 뿐 판단하지 않는다. 이로써 이 소설은, 인간은 누구나 자기 몫을 살며 그것은 그 자체로 긍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따라서 시대배경은 20세기초, 구한말입니다. 즉, 이 사진이 찍혔던 그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를 작가는 '객관적으로' 그리고 있다고 분석했지요. 즉, 당시 문물 역시 적극적으로 보고 들은대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37년 출생이시니 이 사진이 찍힌 구한말은 바로 한 세대 위, 즉 작가의 부모님세대셨겠지요. 어쩌면 바로 윗세대에게 이런 저런 주막의 모습을 들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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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한가지 사족으로 흥미로운 것은 이 분의 두 따님이 바로 유명한 드라마계 작가 '홍자매'란 점. 홍자매는 두 자매가 있는데 요즘 방영한 [화유기]와 [쾌도 홍길동]등으로 유명한 '홍정은, 미란'이 있고, [반올림], [베토벤 바이러스]등으로 유명한 '홍진아, 자람'이 있습니다.

이 중 후자가 바로 이 홍성원작가의 따님들입니다. 이분들께 아버지에 대해 여쭌다면 저 주등의 사용출처에 대해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테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리가.


그리고 이제는 '주등' 과감하게 전통술집에서 쓰면 좋겠네요. 위의 현대등대신 깃대를 쭉 빼고 밝은 LED를 주등형식으로 거는 것도 좋지 않을런지.


덧글

  • 냥이 2018/03/10 11:38 #

    '해 떨어진...벌써...'이라고 하는걸 보면 해 지기 시작할때부터 다는가 봅니다.

    LED가 형광등이나 전구보다 많이 밝은지라 제법 두꺼운 재질이나 반 투명재질에 써야할것 같습니다. 혹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조명용으로 쓰이는 조그만 전구가 적당할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18/03/11 00:53 #

    분명 그런 뜻 같습니다. 말씀대로 은은한 조명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 홍차도둑 2018/03/10 11:49 #

    고증에서 '그것을 아는 사람(또는 확고부동한 문헌)'을 만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를 통해 그 사람이 알던 때, 그리고 그 이전의 이전까지 단서가 닿으면 어느정도 거슬러 올라가는 단서가 되니까요.

    근자의 예로 역사관심님께서 글 쓰신 것 중 '한증막' 관련으로 제가 바로 제보드리지 않았으면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송현시장 한증막'을 바로 알지 못하셨을테니까요(언젠가 알으셨을지도 모르고...아님 영영 모르셨을 가능성도 없진 않죠)
  • 역사관심 2018/03/11 00:54 #

    옳으신 말씀입니다. 저런 단서를 발판으로 탐문을 하면 분명 좋은 정보가 나올텐데... 얼마전 읽은 [경성의 건축왕]도 말씀하신 제 경우처럼 구한말 조선식건축에 대한 귀중한 인터뷰가 많았습니다. 그분들이 사라지고 나면 영영 묻혀버릴 그런 정보들...
  • 레이오트 2018/03/10 11:51 #

    한국의 주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안되죠. 잘못하면 중화사상이니 왜색이니하며 공격당할 수 있거든요.
  • 역사관심 2018/03/11 00:57 #

    이 주제는 따로 한번 다뤄봐야하는 것으로 생각중입니다. 한국의 고대-중세를 재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르는 큰 주제지요. 문화라는 동물을 '선점'한다는 건 웃긴일이지만 이 주제에서는 이 시차의 아이러니가 주요인인지라... 이건 일단 철학적으로 풀어내서 대중들에게 그리고 국제적으로 (국제학회등) 차분히 알려야하는 과제같습니다.
  • 아빠늑대 2018/03/11 01:21 #

    이미 간판의 빛 때문에 주등이 얼마나 운치를 줄지 의문이기는 하네요 ^^

    아니면 간판 없는 비밀의 클럽을... ㅎㅎ
  • 역사관심 2018/03/11 01:22 #

    한 표. -_-;; (음 아니면 간판을 그냥 아주 은은한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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