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차 구입 기록 & 조선초기 차가게 기록 (14, 15세기) 음식전통마

2012년에 출판된 [차생활문화대전]이란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고려시대에는 상류 계층뿐만 아니라 일반 평민들도 차문화를 향유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거리에 일반백성들도 차를 사거나 마실 수 있는 다점(茶店)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활발한 차문화를 통해 청자 다구가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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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지는 않지만 실제로 이런 '다점'(차가게)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문헌기록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예전에 필자가 쓴 '고려 차문화'관련 글 세 개가 있습니다 (마지막 글은 이 글보다 더 후에 쓴 것). 이중 두 번째 글의 '다점'부분을 조금 더 다듬어 소개하고 새문헌을 연결시켜 보겠습니다.


임춘(林椿, ?~?)은 12세기 고려 인종 때의 문인입니다. 생몰년도를 정확히 알수 없지만, 고려사 기록으로 무신정권시대의 인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 의종 24년(1170년) 정중부의 난을 피해 목숨을 건졌다). 그의 시를 보면 고려시대에 사찰외 '찻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李郞中惟誼茶店晝睡 二絶 

頹然臥榻便忘形 午枕風來睡自醒 
夢裏此身無處着 乾坤都是一長亭 
虛樓罷夢正高春 兩眼空 看遠峰 
誰識幽人閑氣味 一軒春睡敵千鍾 

낭중 이유의가 찻집에서 낮잠을 잔 두절구 

무너지듯 평상에 누우니 문득 형체를 잊고 
한낮의 베개에 바람 불어오니 잠이 절로 깨누나 
꿈속의 몸은 이를 데가 없었어라 

건곤은 도무지 한 채의 큰 여관인 것을 
빈 다락에 꿈을 깨니 정히 넉점인데 
두 눈은 부질없이 어두운 먼 봉우리를 바라본다네 

뉘라서 숨어사는 사람의 한가한 기미를 알리 
한 집의 봄잠이 천종에 맞먹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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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낭중(郎中), 즉 고려 초중기의 향직에 있던 '이유의'라는 사람이 다방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그린 시입니다. '다방'에서 낮잠을 잔 사실은 다름아닌 시 제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李郞中惟誼茶店晝睡.  "茶店(다점)", 즉 차를 파는 상점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양반이 낮잠을 깬 곳이 '빈 다락(루)'라는 것입니다- 즉 중층건축물입니다.

虛樓罷夢 (빈 다락(루)에서 꿈을 깨니)

참고로 다점에서 잠잔 이유의는 고려 명종 초에 참지정사(參知政事)와 중서시랑 문하평장사(中書侍郞 門下平章事)를 지낸 이광진(李光瑨)의 일곱 형제 중에서 둘째 아들입니다. 최근 논문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조정에서 만든 다방도 있었고, 여염(즉 민가)에서 만든 다방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기록은 아마도 민간의 다방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정에서 만든 다방기록은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002년의 목종대 기록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당시 술집과 찻집에 통용되던 화폐와 물물교환을 엿볼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합니다.

고려사절요
목종 선양대왕(穆宗宣讓大王)
임인 5년(1002년), 송 함평 5년ㆍ거란 통화 20년

○ 가을 7월에 교하기를, “요사이 시중 한언공(韓彦恭)의 상소를 보니, 그 소에 '지금 선조(先朝)를 이어 돈을 사용하고 추포(麤布)의 사용을 금지시켜 시속을 놀라게 하여, 나라의 이익은 되지 못하고 한갓 백성들의 원망만 일으키게 됩니다.' 하였다. 다점(茶店)ㆍ주점(酒店). 음식점 등 여러 상점에서 물건을 매매할 때는 그 전대로 돈을 사용하고, 그 외에 백성들이 사사로이 물건을 매매할 때는 그 지방의 편의에 따라 하도록 맡겨 두도록 한다." 하였다.

굵은 부분의 원문은 이러합니다. 
其茶酒諸店,交易依前使錢外,百姓等,私相交易,任用土宜。
其茶酒諸店 차와 술등 여러 상점에서

이런 기록들은 왕실이나 귀족층이 아닌 일반백성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문맥상 확실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자 여기서 서두의 저서 [차생활문화대전]에 나오는 구절을 다시 볼까요. 

"고려 후기에는 거리에 일반백성들도 차를 사거나 마실 수 있는 다점(茶店)이 생겨났다."

사실은 고려시대에는 후기가 아닌 초중기 (최소 11세기)무렵에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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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의 대학자인 이숭인(李崇仁, 1347~1392년)의 기록은 매우 흥미로운데, (아마도) 개경의 모습을 유추하게 합니다.

戱賦一師念珠 
어떤 스님의 염주를 희롱하며 읊다 

念念循環無盡期 짧은 순간의 순환 다함이 없고
茶房酒肆也相隨 
다방과 술집은 서로 이어졌네 
問師百八邇陀佛 스님은 백팔염주로 아미타불에게 예의를 갖추니 
那箇邇陀解道師 저 아미타불이 스님을 이해한다오

茶房 다방과 酒肆 주사 
주사라는 말도 주점과 같이 술집이라는 뜻입니다. '방자할 사'자로 '가게'라는 부수적 뜻이 있는데 뒤에 좀 더 소개하겠습니다. 아무튼 다방과 술가게가 연이어 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방'이라는 것은 보통 사료에서는 고려시대의 차를 다루는 관청으로 자주 등장하지만, 이 기록에서는 분명 술집과의 동급으로 즉 차를 마시거나 파는 상점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시 고려에서는 술집과 다방이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고려시대에는 선종계열 사찰에서만 차문화가 발달한 것이 아니라, 대로변에도 다방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고려뿐 아니라 사찰에서의 '찻실'은 그 유래가 훨씬 깊습니다. [삼국유사]를 보면 신라시대 경주 남산의 8세기 창림사(昌林寺)에 다연원(多淵院)이라는 다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왕이 자주 들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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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차가게' 기록

이제 오늘 더 살펴볼 문헌기록입니다. 이 기록들은 위의 10세기, 12세기보다 더 후대인 14세기~15세기초, 즉 고려말-조선초기 기록들로 고려대 불교문화에서 만개한 다도문화가 역시 불교가 살아있던 15세기 조선초기까지 살아있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윗글의 마지막부분에서 소개한 고려말 '이숭인'(李崇仁, 1347~1392년) 선생의 기록으로 [도은집(陶隱集)]의 기록입니다.

도은집 시(詩) 
여태허가 좨주에게 화답한 시에 차운하다〔次如太虛和祭酒韻〕

일찍이 육관으로 암자의 간판을 삼으신 분 / 曾將六觀作菴顔
오묘한 뜻 초연하니 되돌아오게 할 수 있나 / 妙義超然不可還

재 파하면 차를 사러 가끔 저자에 들어가고 / 齋罷買茶時入郭
읊조리다 붓을 놓고 누워서 산을 바라본다네 / 吟餘閣筆臥看山

가련해라 도성 먼지 속에서 분주하며 노곤한 이 몸 / 軟紅奔走憐吾倦
부러워라 허백의 경지에서 소요하며 한가한 그대 / 虛白逍遙羡子閑

언젠가 흥이 나면 양촌과 함께 찾아가서 / 欲與陽村乘興去
그대로 연사의 인연 좇아 삼간 빌리고 싶어라 / 直從蓮社借三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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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체를 보면 '차를 사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다시 해석을 좀 더 자세히 해 보지요.

齋罷買茶時入郭 재가 파하고 차를 살 때는 사러 (買茶時) 성외곽으로 들어가고

즉 재계(齋戒)가 끝나면 郭 (둘레 곽)- 주민을 지키는 바깥 울타리의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재계가 끝나고 차를 구입할 때는 성외곽으로 가고"로 해석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성의 성곽부분'에 당시 차를 파는 가게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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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15세기초인 1434년 세종실록의 기록을 살펴봅시다.

세종 16년 갑인(1434년) 
4월 11일(무오)
성균 생원 방운 등이 회암사의 대대적인 수리와 아울러 불교의 폐단에 대하여 상소하다

저 중들의 먹을 것은 풍년이나 흉년이나 마찬가지어서, 백성은 굶어 죽는 자가 있으되, 중이 굶어 죽은 것은 없사오니, 누에도 치지 않고 밭도 갈지 않는 자가 앉아서 따뜻하고 배부름을 누리게 되어, 억조(億兆)의 재산을 허비하되 털끝만큼도 재정에 이익됨이 없나이다. 거기에다 급기야는 교만하고 방자한 버릇이 생기어 어떤 자는 찻집[茶肆]이나 술집에 나와 놀면서 스스로 서로 잘난 척하고 뽑내며, 어떤 자는 약한 백성과 서로 이익을 다투어 재물 모으기를 꾀하고, 처자를 끼고 먹이어 청정(淸淨)한 곳을 더럽히고, 추악한 행동을 드러내오니, 어찌 그 집을 엿보는 자들이 자비(慈悲)의 베풀음을 듣고 기뻐서 따르지 않겠으며, 그 문을 지나는 자들이 죄주고 복준다는 말을 듣고 또한 모두 공경하고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글은 유생들이 한국역사의 마지막 대사찰로 소개된 회암사의 승려들이 흉년에 백성은 죽든말든 거리에 나와 찻집(다점)이나 술집에 가서 논다면서 비판하는 상소를 세종대왕님께 보고하는 장면입니다.

다점이 나오는 원문을 살펴보지요.

遞生驕恣 교만하고 방자함이 생겨나 
或游於茶酒之肆 어떤 자(혹자)는 차와 술의 가게에서 놀면서

茶酒之肆--> 즉, 차와 술의 가게

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숭인의 글에 나오는 "茶房 다방'이라든가 임춘의 '茶店 다점"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맥상 분명 '차를 파는 가게'임을 알 수 있는데요. 사(肆)자는 '방자하다, ‘늘어놓다’란 뜻이 있지만 명사로는 마굿간 혹은 가게, 또는 ‘줄’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원래 사(肆)란 글자는 시장에 나란히 들어서 있는 물건을 진열해 놓고 파는 점포를 말하며, 각 점포에는 깃발을 매달아 물건 파는 가게임을 표시했습니다.

다음은 운종가에 있던 조선시대 서화사를 재현한 것입니다. 서화사, 즉 서화를 파는 가게란 뜻이지요.
조선시대 書畵

따라서 이 세종대의 기록은 당시에 "茶酒之肆" 즉, 차와 술을 진열해놓은 가게, 또는 차를 늘어놓고 파는 가게와 술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가 거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승려들이 '가서 논다'는 뜻은 결국 길거리에 이런 가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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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예전에도 짚어보았지만, '다도문화'는 우리 현대한국사회에서는 조선중기이후 오랜동안 맥이 끊겼던 잊혀진 문화였습니다. 20세기이후 발전중인 한국다도문화는 고려시대의 그것과 연결시키려면 아직 많은 연관관계를 보여주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지라, 현재로서는 정통성을 잇는다기보다는 새로운 문화나 다름없습니다.

일각에서 고려도경등에 나오는 모습을 상세히 구현하려는 건전한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도가 마치 조선시대 내내 이어져온 우리문화라고 왜곡하는 혹은 은근슬쩍 넘어가는 모습도 있어 이건 지양해야 하는 것 맞겠지요. 

조선시대의 차가게 기록은 초기기록만이 있지만, 개인차원의 다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개인가정에서 즐기는 모습은 계속 나옵니다. 예를 들어 회화에서도 김두량 (金斗樑, 1696 ~1763년)의 그림을 보면 다도를 하는 모습이 등장하지요.
18세기초 김두량- 차가 있는 가을과 겨울의 전원풍경 중

요즘 늘어나는 우리 '전통찻집'은 역사적으로 잊고지낸 우리 선조들의 문화중 하나를 다시 '재건'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기록들입니다. 그리고 저러한 기록들을 되살려본다거나, 요즘의 찻집에서 소개하는 전통마켓팅은 적극 추천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활발하게 여러가지 차문화를 즐기는 그 자체입니다. 

수백년간 사라졌던 다도문화의 가장 큰 원인은 정치적인 색이 강했을 (유교의 교조화와 불교의 쇠락) 가능성이 크지만,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면 분명 우리의 입맛에 이 '차'라는 것이 잘 맞음을 알 수 있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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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M i d s e n 2018/03/16 11:36 #

    齋罷買茶時入郭
    이 문장 해석이 좀 부자연스러운데 이런 문장은 그냥 뒤에 조사만 붙여도 해석이 됩니다
    재파하면 매다시 입곽한다
    라고 해석하면 재가 파하고 차를 살 때는 (성)곽으로 들어간다. 바로 해석됩니다.
  • 역사관심 2018/03/16 12:42 #

    '때맞춰'로 쓰려하니 어색했는데 확실히 더 좋은 해석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Nocchi 2018/03/16 11:40 #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스님들이 차 한잔 하는 것 보다 뭘 해도 전부 뒤로 받고 비난 할 자세로 쪼잔하게 공격하는 유생들의 논조가 오늘날 일부 언론을 보는 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18/03/16 12:42 #

    황색...은 영원합니다 ^^;
  • 존다리안 2018/03/16 21:47 #

    현대의 다방(하긴 다방이 문화 중심지였다고도 하고...) 이후 늘어난 프랜차이즈 카페는 우리 전통의
    맥과도 닿아 있었군요.

    개인적으로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단점이라고 보는 게 너무 시끄럽고 패스트푸드 느낌이 난다는
    건데 요새 여러 비 프랜차이즈들이 보여주는 앤티크한 느낌도 좀 살렸으면 합니다. 확실히 카페,다방,찻집은 앤티크해야 맛이예요.
  • 역사관심 2018/03/17 00:44 #

    동감입니다. 사실 아쉬운게 말씀하신 비프렌차이즈 찻집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프렌차이즈는 왜 안나올까...는 생각.
  • 이글루스 알리미 2018/06/22 08:22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6월 22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8/06/22 08:34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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