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경복궁의 색깔- 바른 것은 모두가 붉은 칠이고 (其塗皆丹) 한국의 사라진 건축

[만월대와 황룡사는 '붉은 단청과 기둥' 중심으로]포스팅에서 2016년의 논문글소개한 있습니.

 

상록하(上綠下)을 한국 단청의 주요특징으로 보고, 고대건축까지 上綠下丹으로 인식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현재시각으로 과거를 보는 있다

 

상록하단이란 리가 흔히 보는 조선건축의 "녹색과 붉은 색"의 단청을 이야기합니다. 의 포스팅에서는 이은희의 연구를 바탕으로 고려후기인 13기까지도 한반도에는 '붉은 색'의색감을 가진 건축물이 다수 있었음을 유추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글의 연장선상에서 필자 발견한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살펴볼 부분을 더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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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에는 이런 흥미로운 사가 장합니다.

 

조선부(朝鮮賦)

 

궁실을 지은 도는 宮室之制

같네 與華亦同

바른 모두가 붉은 이고 其塗皆丹

덮은 것은 모두가 동기와네 其覆皆(: 글자가깨져나오네요)

 

조선부는 중국 나라의 (董越)이 조선 성종 19년인 1488년에조선에 사신으로 다가 국으로 돌아가 자신이 보고 대의 조선모습을 기록입니다.

 

위의 부분은 '한성'을 다룬 것으로 라서 등장하는 궁실은 조선전기의 경복궁등일 가능성이 지요. 이 기록을 보면 당시의 조선궁궐이 명나라의 것과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시작하는데, 그 다음구절에 흥미로운 부분이 나옵니다

 

其塗皆丹 그 칠한 것이 모두 붉다.

其覆皆은 것이 모두 동이다.

 

''라는 지시어와 '모두'라는 부사를 제외하면 이렇게 지요.

塗丹 붉게 칠하다.

 

현재 이 단어는 중국과 일본에서 이런 식을 현할 이는 표현입니다.

 

현재 우리사회의 이상한 대로의 해

 

, 중국측의 기록에서도 붉은 건축을 표현할 때 등장하는데 다음의 구절입니다.

 

若作室家 旣勤垣墉 其塗茨 若作梓材 旣勤樸 惟其塗丹

마치 을 지을 적에 부지런히 았으면, 이제 에다 을 바르고 띠풀로 지붕을 덮어야 하는 것과 같으며, 나무 재목을 다룰 적에 부지런히 다듬고 았으면, 이제는 단청을 칠해야 하는 것과 같다.

-서경 

 

이것은 서경의[재재(梓材)]에 실린 부분으로 주나라 무왕(周武王)강숙(康叔)이란 신하를 이르는 구절입니다. 기보면 "塗丹"이란단어가 나오지요.

 

惟其塗丹*

 

그런데 우리 고전번역원의 해석을 보면 이렇게 해았습니다.

이제는 단청을 칠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 부분을 역하면 이렇습니다. "마땅히 그것에 ( 깎은 나무기둥에) 붉은 색을 칠해야 한다". , '단청'이라는 단어는 번역가가 의역해 것입니다. 이 해석은 우리가 기에 어떤 색감으로 단청작업을 는지 알 수가 는 의역입니다어떤 분은 자연스레 상록하단이 오르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원문 어디에도 '단청'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다만 塗丹 붉게 칠하다라는 표현만이 있지요. 즉 동월 (1430~1502)이 전기경복궁등을 보며 표현한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더군다나 현재 우리의 인식에 떠오르는 지붕의 단청이 아니라 '기둥을 붉게' 칠할 때 이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럼 당시에는'단청'이란 단어대신 塗丹이라든가 丹으로 표현했을까요? 1488년의 조선부보다 100여년전인 이곡(李穀, 1298~ 1351) [가정집]시다.

 

양구(陽球)

 

황제가 하찮은 기예에 심을 둔 나머지/ 帝意方珍斗

송람을 그려서 운대에 비기려 하였다네 / 欲圖松覽擬雲臺

상서령이여 단청의 비루함을 문제 지 마오 / 尙書莫說丹靑

사람 경계용으로 세상에 전하면 니까 / 與人間戒後

 

이 시는 중국 후한 2세기인물인 양구(陽球, ? ~ 180)를 묘사한 시인데 이것이 중국측의 것인지 고려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단청의 비루함'이란 국역이 등장하지요. 그런데 원문을 보면 "尙書莫說丹靑"이라고 되어 있어 '丹靑'이라는 단어가 명확히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은희의 논문에 따르면 고려대에는 단청이란 단어는 '그림을 그린 것'으로 쓰일때가 많았음을 밝히고 있지만, 이 경우에도 '금벽'이란 분명한 단어로 조선시대의 단청을 대치하고 있습니다.

 

'단청'이라는 단어는 당대에도 ''이 아니라 '단청' (혹은 고려대에는 금벽)입니다. 종과 성종대 기록도 마찬가지.

 

태종 17 (1417

영락(永樂) 15년 함길도 도순문사가 두산에 들어온 중국인이 전해주는 목패를

 

백두산(白頭山)의 절[] 단청(丹靑)하는 일로 지난정월 19일 요동(遼東)을 떠나, 들의 땅인 소하강변(所何江邊)에 와서 목채(木寨)229) 를 만들고 (倉庫) 12()을 지었으며, 군량을 실어들이고 저 군마(軍馬) 5백을 산간(山間)에 보내었다.

 

白頭山寺丹靑

 

분명 '단청작업 (丹靑事)'이란 표현이 보이지요. 더 후대이자 [조선부]와 같은 시기인 성종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종 6 5 11 

1475년 명 성화(成化) 11년 채수가 중국으로 가는 행차와 사대부가 집을 사치하게 는 문제를 아뢰다


 (士風)이 예전과 같지 아서, 집을짓는 사람들이 다투어 장려(壯麗)함을 상하고 단청(丹靑)하게 합니다

士風不如古, 室者爭尙壯麗丹靑炳煥。

 

그런데 세종대의 다른 실록기록은 흥미롭습니다.

 

세종 20년무오(1438) 3 16(경자)

흥천사 사리각을 개조하고 장 군사로 지키게 하다

 

흥천사 사리각은 본래 5이었는데 이번에 ()를 개조하여 단청(丹靑)은 모두 예전대로 하였으나, 오직 아랫 층은 마를 보태고 벽을 조금 물려 게 하고 층계[]축대[]ㆍ난간[]ㆍ원장[]은 모두 제도보다 게 하였으며, 바깥 원장도 게 쌓아서 외인이 볼 수 없게 하였다. 상 근장 군사(近仗軍士) 두 사람을 시켜 각문 자물쇠를 지켜 외인의 입을 금하도록 하였다.

 

興天寺舍利閣, 本五層, 今改造, 其規制, 皆依舊。

 

이것은 필자가 예전에 '한국의 거대건축 시리즈'에서 다룬 조선전기 한양에 우뚝 선 거대건물인 5층전각 '사리각'을 더 좋게 개축하는 부분입니다. "이번에 규제(規制)를 개조하여 단청(丹靑)은 모두 예전대로 하였으나,"라는 구절이 보이시죠.

 

그럼 원문에 '단청'이 있어야겠지요. 그런데단청이 아니라 ''이라는 글자만 있습니다.

其規制

그 규제대로 붉게 칠하다

 

그런데 이 ''이란 글자는 "좋은 고기 확"자로 직역대로는 감이 안오지만 (단확)이란 단어는 보통 '단확기'라고 해서 조선후기의 국사 대웅전 단확기등 단청작업을 표현할때 쓰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 단어가 수백년에 걸친 시간동안 항상 '단청'을 대신한 단어라고는 단정하기 힘듭니다어떨 때는 문맥상 '붉게 칠하다'라는 이 될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 이 단확(丹臒) "고운 간 빛깔의 흙"이라는 뜻으로 원래는 쓰였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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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1488)전히 같은 시기인 1478년 성종조의 기록은 더 흥미진진합니다.

 

성종 9년무술(1478) 1 29()

 

()은 창원군의 집에 가보았거니와, 의심스러운 이 있던가?”

하므로, 대답하기를,

있었습니다() 과 벽 사이에 핏자국이 있는 것 같았으나, 그 집은 로 지은 것이 아니어서 단청(丹靑)이 어져서 조금 어진 곳은 핏빛 같았으니, 그것은 오래 나무 빛인 합니다. 벽 사이에 구멍이 있고 또 그은 곳이 있으므로 물으니, 개를 은 곳이라 하였으나, 개를 어찌 반드시 벽 사이에 아매고 잡겠습니까?”하니... 

 

上曰:"卿往見昌原君家矣, 有可疑處耶?" : "有之。 如桶端及壁間, 有血痕, 然彼家非新構丹靑剝落, 其微墨處似血色, 恐是經舊木色也。 其壁間有穴,, 之則云: ‘拘處’, 狗何必懸之壁間而殺之歟?"

 

창원군이란 자가 집에서 개를 잡은 것이 아닌가하는 성종의 심문중 나오는 구절인데, 그 저택에 가서 조사해보니, (, 의미불명) 끝부분과 벽 사이에  핏자국 비슷한 게 있는데, 조사해보니 집이 오래되어서 (가 아니라) 단청이 오래되어 (丹靑剝落, (剝落)은 오래되어 부식한 것을 말합니다), 조금 검게 변한 부분은 핏빛같았는데 (其微墨處似血色), 아마도 이것은 오래된 나무빛갈인듯하다 (恐是經舊木色也)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단청丹靑'이란 단어가 분명 보이지요창원군의 1478년 저택의 기둥의 '단청'이 오래되었는데 그게 마치 핏빛같은데 이것은 오래된 나무빛같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나무의 원색일수도 있지만, 당시 저택기둥을 붉게 칠했을 가능성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즉, 당대의 단청이 벗겨진 곳이 아래 나오는 수리중 조선단청밑에서 92년 발견된 고려시대 오래된 붉은 색이 칠해진 나무기둥이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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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

 

서두에서"상록하단(上綠下丹)을 한국 단청의 주요한 특징으로 보고, 고대건축까지 上綠下丹으로 인식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는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보는 데 있다."라는 문장으로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비단 건축학자뿐 아니라, 현대 한국사회를 살며 하나의 고정된 전통프레임을 인식구조로 삼고 있는 번역가에게도 해당되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붉은 칠(塗丹)이란 분명한 구절을 '단청을 하다' 관성적으로 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머리에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상록하던식 단청의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일 것입니다.

 

 

(그나저나, 워드에서 작업한 문서를 옮기면 왜 이렇게 뚝뚝 떨어져서 문단이 올라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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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8/03/24 13:32 #

    즉 우리가 생각하는 단청이 궁궐 어디에나 쓰인게 아닌 중요한 곳엔 붉은 색만 쓰였다는 말씀이신거 같은데... 신기하네요
  • 역사관심 2018/03/25 12:03 #

    조선전기만 해도 아마 꽤 많은 건축이 고려풍의 붉은 양식이었을 것 같습니다. 상록하단과 함께 이런 저런 양식이 공존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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