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찍힌 보통문의 怪人(괴인 ?)- 평양 보통문 기담 설화 야담 지괴류

오랜만의 역사관심판 기담입니다.

평양성의 서북관문이자 수많은 전투를 겪어낸 대표적 성문중 하나인 보통문.

보통문에 대해서는 지금도 '신비로운' 기담들이 꽤 전합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평양성을 강점하였을 때 아무리 보통문의 문을 굳건히 닫아걸어도 우리 의병들이 접근하면 스스로 열리고 닫히고를 반복했다는 이야기가 전하지요 (폴터가이스트). 거꾸로 왜적들이 의병을 치기 위하여 이 문을 통하여 일단 성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에는 문이 열리지 않아 우리 의병들의 추격을 받고 문 앞에서 몰살하였다고...

뿐만 아니라, 왜적들이 패주하면서 평양시가에 불을 질러서 온 시가가 불길에 휩싸였으나 보통문만은 타지 않고 거연히 솟아 있었다... 그리하여 보통문은 신이 지키는 문이라고 하였다고 지금도 전합니다. 이 고사는 사실 조선인들뿐 아니라 명군들이 전했을 가능성도 있는데 1760년 [연행록총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전합니다.

연행록총서 
북원록 1760년(영조36, 경진) 

그런데 누각이 우뚝하고 굉활(宏豁)하여 쾌재정과는 우열을 따질 수 없었다. 향사당에 돌아오니 증산에 사는 족형이 찾아와서 또 이별해 주었으며, 필회(弼恢)가 뒤에 떨어져 있다가 돌아가는 길에 서울로 보내는 편지를 부쳤다. 날이 저문 뒤에 길을 떠나서 서문으로 나아가니 안에 있는 현판에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 하였고, 밖에 있는 현판에 ‘보통문(普通門)’이라 하였다. 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안에 있는 누각은 옛날부터 장중하고 화려하였다. 그런데 계사년에 있었던 전란에 미쳐서 모두가 다 불에 타 없어졌고, 홀로 이 문에 불화살이 모인 것이 고슴도치의 털과 같았는데 우뚝하게 홀로 남아 있었으니 중국 사람들이 칭찬하여 말하기를, ‘신성한 문이다.’라 하였다.

즉, 이 문만은 불화살이 고슴도치 털처럼 빽빽히 박혀도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
그런데 여기 흥미로운 부분이 등장합니다. 
날이 저문 뒤에 길을 떠나서 서문으로 나아가니 안에 있는 현판에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 하였고, 밖에 있는 현판에 ‘보통문(普通門)’이라 하였다

西門鎖鑰이라는 말은 '서쪽 문을 쇠사슬로 걸어잠그다'라는 뜻입니다. 이 '서문쇄약'이란 글귀는 어쩌면 조선조정이 임란을 겪은 후 일본에게 치를 떤 관용구로 쓰인 것인 가능성도 있는 것이 평양보통문외에도 부산 자성대 선문 돌기둥에 현재도 새겨져 있는 글귀이기도 합니다. 현재도 이 내부현판이 보통문 내부에 전한다는 정보는 구할 길이 없으니 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귀는 보통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번 기담편에서는 (필자맘대로) 이렇게도 해석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밖에 있는 현판에는 '보통문', 문안쪽에 있는 글귀는 '서문쇄약'. 즉,

"서쪽문(보통문)을 걸어잠그라 (안에 있는 것이 못나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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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보통문에서의 끔찍한 사고들

신문아카이브를 들여다보면 특이하게 1920년대에 보통문에서 유독 살인, 유기, 자살, 사고등이 거의 매해 끊이지 않습니다. 동아일보 하나만 들여다보아도 그런데, 다음은 그 중 몇가지 사건입니다.

우선 1923년 5월의 기사입니다. 5살배기 어린아이가 신의주발 급행열차가 보통문으로 들어왔을 때 치여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당시 신문은 꽤나 적나라해서 '차바퀴에 치어 머리와 몸뚱이가 서로 따로 떨어지고 붉은 피투성이었다고 끔찍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아이의 신분은 평양신양리에 사는 최관봉이라는 사람의 둘째아들.

1923년 5월 27일 동아일보, 5살 유아참사


1927년의 사건은 더 괴기스럽습니다. 27년의 추운 겨울 (1월 17일) 밤 10시에 이 보통문에서 정주방면 기차에 어떤 청년이 치입니다. 외성서리에 살던 이 사람은 '전종부'라는 20세의 청년인데 이 날 오른팔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다음날 '정신이상'으로 판명됩니다. 이것이 보통문에서 당한 사고때문인지, 원래 정신이 이상한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이 기사에서는 '정신에 이상이 생긴듯 하더라'라고 적고 있어 이날의 사고로 정신이상이 온것으로 묘사합니다.

1927년 1월 17일, 죽지는 않았으나 정신병이 들다

일제시대 평양시내를 누비던 전차

같은 해 여름, 이번에는 37세의 남자가 머리가 박살나서 골이 쏟아진 상태로 발견됩니다. 사인은 불명. 박정옥이라는 사람으로 발견 2주전에 점심을 먹으러 집에 간다고 한것이 마지막 모습. 

개인적으로 이상한 것은 평양의 보통문이면 당시에도 시내중심가로 머리가 박살난 사람이 선로에 놓여있는 것을 무려 11일동안 발견못했다는 점입니다 (사고일 8월 10일, 발견일 8월 21일). 어쩌면 행방불명된 날 사망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잡혀간 후 후에 죽임을 당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1927년 8월 23일, 보통문 전차길 의문의 시체
이 1927년에는 끔찍한 일이 많이도 발생합니다. 같은 해 겨울인 12월 4일, 이번에는 보통문안에서 고작 태어난지 2-3일밖에 안된 신생아의 시체가 발견됩니다. 신생아시체유기도 끔찍한데 더 심한 것은 등에서 다리까지 화상을 입은 것. 이에 평양서에서는 '어떤 범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수사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1927년 12월 4일, 괴이한 아이시체 발견
다음해인 1928년 가을. 이번에는 보통문앞에서 60세된 남자가 원인불명의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합니다. 대동문노동조합 문승문이란 사람으로 두다리가 부러진 끔찍한 모습으로 죽습니다.

1928년 10월 3일, 60세 노인의 자살
희안하게도 이러한 사건은 20년대이후 30년대부터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신문에서 사라지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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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문의 怪人

여기서 알아두셔야 할 정보 한 가지. 현재 포털에서 제공하는 동아일보 옛기사는 1920년부터입니다. 즉 1920년이전의 신문기사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10년대에도 이런 사건사고가 보통문근처에서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지요.

그런데 필자는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도보]에서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고적도보 11권에 나오는 대동문-보통문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통문내부'를 찍은 사진입니다. 찍힌 시점은 1910년. 왜 사진은 얼핏보기에는 아무런 이상한 점이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녀석이 보였습니다. 바로 붉은 원부분.
확대해볼까요?

목각인형인지 뭔지 모를 두눈이 뻥뚫린 이상한 형체가 보입니다. 뭔가 착각일지 모르지만, 마치 심령사진처럼 보이는 이 괴인(?)…. 유독 이 시기에 일어난 많은 사건사고는 혹시… 저 '서문쇄약(西門鎖鑰)’이라는 주술부적이 내부에서 떨어졌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30년대가 되면서 누군가 다시 걸어잠근 것일까요.

재미로 쓴 근대의 도시괴담이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세요. ㅎㅎ.

"서쪽문을 걸어잠그라 (안에 있는 것이 못나오도록)"...
"서쪽문을 걸어잠그라"...
"서쪽문을 걸어"...


덧글

  • 무명병사 2018/04/15 14:45 #

    아니 저건?!
  • 역사관심 2018/04/16 01:24 #

    ?! 무엇일까요
  • 응가 2018/04/16 19:45 #

    회벽이 떨어져서 생긴것 아닐까요?ㅎㅎ
    임진왜란때도 그렇고 6.25때 숱한 공습에도 살아남은걸 보면 보통문이 신문이기는 신문인가 봅니다
  • 역사관심 2018/04/17 12:26 #

    분명 그런 종류일텐데, 이 카테고리글에서는 제 마음대로 그런 현실적 가능성은 무조건 부정입니다 ㅋㅋ
  • 解明 2018/04/17 20:03 #

    얼핏 보면 모아이인상처럼 생겼네요. ^-^;
  • 역사관심 2018/04/17 22:45 #

    저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뭔가 괴이한 목각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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