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일본인이 그린 신라 탈춤과 마술 (신서고악도) 역사전통마

신라시대에 그려진 그림이 현전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오래전 소개한 [대방광불화엄경](754-755년추정)의 일부밖에 없습니다 (벽화제외).

그런데 1100년대 (추정) 일본 헤이안 말기에 만들어진 [신서고악도(信西古樂圖)]에 나오는 무악도(舞樂圖)에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전합니다. 舞樂圖라는 것은 말 그대로 '춤 무', '노래 악'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것입니다.

신서고악도에는 전형적인 중세 일본 두루마리화첩으로 14가지 악기, 44가지의 무악(舞樂)과 산악(散樂)이 그려져 있습니다. 당대 중국, 신라, 그리고 일본의 문화풍습이 그려져 있는데, 정확한 제작연대와 작가는 불명입니다. 실은 화첩의 제목 역시 추정으로 부르는 것인데, 12세기 경인 헤이안 시대의 귀족이자 승려인 후지와라노 미치노리(藤原通憲)의 호인 '신서(信西)'가 두루마기에 적혀 있어서 [신서고악도]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치노리의 생몰년대인 1106~1160년이 '최소'연대이며 이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본 블로그에 가끔 오시는 분이라면 이 연대는 북송의 사신 서긍(徐兢, 1091~1153년)이 1123년에 그린 [선화봉사고려도경]과 같은 시대임을 알아차리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화첩은 2001년이 넘어서야 국내에 조금씩 알려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그림들을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서고악도-신라박(新羅狛)

신라박에서 '박狛'이라는 글자는 '이리 박, 짐승 박'이란 뜻으로 즉 '신라의 짐승'으로 직역되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시대의 북청사자와 달리 손발까지 모두 짐승머리가 있으며 '서 있는 형태'라는 점입니다.

신서고악도-신라악(新羅樂) 입호무(入壺舞)

신라악과 입호무라고 쓰여있는 그림으로 한 세트죠. 즉, 신라의 음악을 배경으로 '入壺'즉 항아리에 들어가는 춤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연기하는 것인지, 혹은 한 사람이 저런 묘기를 부리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군요. 아무튼 고대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마술, 묘기 형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음 그림에는 좀 더 북청사자과의 신라 짐승탈과 신라인들 세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신서고악도-신라인과 사자춤

마지막으로 작은 사자같은 녀석도 보입니다 (오른쪽 아래).
9세기, 통일신라의 명사였던 최치원(崔致遠, 857~908년)은 [삼국사기]의 '향악잡영시'에서 '산예'라는 부분에서 짐승탈을 쓰고 춤추는 공연을 묘사한 바가 있습니다.
 
일만리 머나먼 길 사방 사막(沙漠) 지나오느라(遠涉流沙萬里來)
털옷은 다 해지고 티끌만 뒤집어썼네(毛衣破盡着塵埃)
머리와 꼬리를 흔드는 모습, 인덕이 배어 있도다(搖頭掉尾馴仁德)
영특한 그 기개, 온갖 짐승 재주에 비할소냐(雄氣寧同百獸才)

이런 형태의 짐승탈을 쓰고 추는 춤과 묘기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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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고화질로 그림을 한번 더 소개하겠습니다.
소개하는 이유는 역시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는 바램때문이지요. 앞으로 전통무용으로도 쓰이고, 여러 매체에서도 쓰이길 바랍니다.



덧글

  • 解明 2018/04/18 10:21 #

    신라에도 통아저씨가 있었음이 밝혀진 겁니다.
  • 解明 2018/04/18 10:27 #

    아, 그리고 '狛'은 말씀하신 대로 짐승을 가리키지만, 일본 문헌에서는 고구려를 가리키기도 한답니다. '新羅狛'의 '狛'은 본디 뜻대로 풀이해야겠지만, '고려악(高麗樂)'을 소개하는 다른 문헌에 등장하는 '박견(狛犬)'의 '狛'은 고구려를 뜻하는 듯합니다.
  • 바람불어 2018/04/18 21:44 #

    그거군요.

    狛犬 = 고마이누=고(구)려의 개
  • 역사관심 2018/04/20 02:25 #

    네 맞습니다, 그래서 고려(고구려)악으로 소개하는 논문도 있더군요. 두가지 모두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는 쪽입니다. ㅎㅎ
  • 응가 2018/04/18 18:29 #

    복식을 보아하니 일본 아악중에서 신라악(시라기가쿠)를 묘사한것 처럼 보이는데 이는 신라에도 이와 유사한 것이 없었다고는 못하겠네요! 개인적으로 북청사자놀음과 비슷해 보이는데 서있는건 확실히 특이한것 같습니다. 형태는 요즘의 것보단 '평안감사 향연도'의 것과 더 유사해 보이네요.
  • 역사관심 2018/04/20 02:26 #

    저런 사자춤형태의 놀이는 정말 오래되었나 봅니다. 인도 혹은 이슬람권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있고...(당장 최치원의 저 시에서도).
  • 이선생 2018/04/18 22:38 #

    호오....손과 발에도 짐승의 머리의 형상이 있는 복장이라니 오늘날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에서는 본적이 없는 것 같군요.
    항아리에서 하는 묘기도 흥미로운 것이 저런 문화는 다 어디로 가버렸나 싶어서 좀 씁쓸합니다.
  • 역사관심 2018/04/20 02:29 #

    80년대 일본 슈퍼로봇계열에 저런 녀석들 간혹 있었죠. 고라이온같이...
    http://bit.ly/2vvOCoJ

    말씀대로 저런 오래된 문화도 되살리면 좋겠어요.
  • 남중생 2018/04/19 16:27 #

    최근에 이런 것도 들어봤습니다!
    https://twitter.com/dndudwp99/status/977893637643157505
  • 역사관심 2018/04/20 02:34 #

    와, 이런 것도 있군요. 전혀 모르던 자료인데 탁목(啄木)에 실제로 고악보가 남아있어 이걸로 연주한 거라면 실제 남북국시대의 통일신라에서 연주하던 음악과 비슷할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좀 더 알아봐야하겠네요 이 자료. 감사합니다.
  • 남중생 2018/06/10 17:13 #

    KBS 다큐에서 "입호무"를 재현한 장면이 있더군요.
    https://twitter.com/dhrskckf11/status/1005110071104159744
  • 역사관심 2018/06/11 11:53 #

    ㅋ ...그냥 해버렸군요! 이거 진짜 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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