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음악일 가능성이 높은 헤이안시대 고려악(高麗楽) 탁목(啄木)의 연주장면 (헤이안시대 고악보, 삼오요록) 역사전통마

오늘은 남중생님의 제보로 알게 된 '고려악'에 대해 조금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헤이안 시대 말기 고려악(高麗楽) [탁목(啄木)]의 고악보를 복원하여 연주하는 영상을 소개받았는데, 탁목은 고려악 중 신라계 음악에서 재편된 것으로 보이며, 한반도에선 비파가 아닌 거문고, 혹은 가야금, 신라금 등으로 연주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의견이 있다고 합니다. 이에 필자가 조금 더 파고들어본 결과를 소개합니다 (영상은 후반부에).

고려악(高麗楽)은 우선 일본어로는 '고마가쿠(こまがく)'라고 발음하는데 한반도에서 일본에 전해진 아악의 일종이며, 고려 피리 , 篳篥(필률)三鼓(삼고, 작은북)、鉦鼓 (정고, 징) 太鼓 (태고, 큰북)으로 편성됩니다. 이런 고려악에 대한 연구는 아직 국내에서 아주 일천한 편으로 2000년대 들어 소수의 일본유학파 학자들이 성과를 내고 있는 중으로 보입니다.
2015년 국립국악원에서 초빙한 일본 레이가쿠샤 연주단의 고마가쿠(高麗樂) 연주모습과 악기편성

고려악(고마가쿠, 高麗楽)에는 高麗壱越調 (고려일월조) 、高麗平調 (고려평조)、高麗双調 (고려쌍조)의 세가지가 사용되고, 이들의 조정기는 당악에 사용되는 톤보다 2 온음이 높다고 합니다. 고려악의 박자는 高麗四拍子 (고려사박자)揚拍子 (양박자), 唐拍子 (당 박자)의 세 종류가 있으며, 특이한 점은 고마 가쿠는 온을 사용하지 않고, 부점 리듬이 있는 점이라고 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한일고대음악연구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요즘 보여주시는 서울대 이지선박사에 따르면 고려악의 고대 악보는 三五要録 (삼오요록)과 仁智要録(인지요록)에 기록되어 있는데,   [삼오요록(三五要錄)]은 헤이안(平安)시대에 후지와라노 모로나가(藤原師長, 1138~1192년)가 편찬한 12권의 비파(琵琶)의 악보집입니다. 고토보(箏譜) [인지요록(仁智要錄)]과 함께 현악기 악보로서는 가장 중요한 사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고려악'은 최소 12세기 고려시대의 음악일 가능성이 높으며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라악의 계보에 속한다고 되어 있어 더 오래된 음악일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역시 이지선에 따르면 고려악은 중국계 음악인 당악에서 쓰이는 류테키(龍笛)보다 두 반음(장2도)이 높은데 이는 주선율을 담당하는 고려악이 류테키가 주선율을 담당하는 당악보다 장2도 높은 악조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9세기 중엽 악제개혁 당시의 기록으로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악학궤범]의 악조총의에 의하면 향악(속악, 궁이 협종)이 중국계음악인 아악(궁이 황종)보다 세 반음(단3도) 높다고 기록되어, 9세기중엽이후 현재까지 고려악이 당악보다 두 반음이 높다는 것에서 한국음악의 특징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지선박사에 따르면 고려악은 현재까지도 국내연구가 거의 미비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 분야의 연구가 활발해진다면 충분히 '고려시대'의 음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가 높아지고 연주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려악은 당악에 비해서 악보사료가 많이 전하지 않는다고 알려진다. 그러나 실제로 조사된 바에 의하면 1095년에 편찬된 『懷中譜』를 시작으로 60종이 넘는 고마부에보(高麗笛譜), 히치리키보(**譜), 비와보(琵琶譜), 고토보(箏譜)가 현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양국 모두 고려악에 관한 연구는 아주 미비하다. 따라서 시대가 경과함에 따라 많은 일본화과정을 거쳤을 것을 생각되는 현재의 고려악에서 한국음악과의 관련성을 찾기보다는 지금까지 조사된 풍부한 사료들을 분석 연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할 것이다. 고려악에 관한 고사료를 연구하여 음악적 특징이나 무용적 특징이 밝혀진다면 우리나라의 옛 음악과 무용문화의 모습을 추적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된다."

삼오요록은 일본사회에선 이미 이렇게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습니다.

삼오요록에서 고려악부분은 권제 11권 즉 후반부로 되어있어 대강 이런 악보를 소개해봅니다. 아주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지요.
삼오요록(三五要錄) 중 극후반부 악보

굳이 곡의 특성분석을 하지 않아도 삼오요록에 '당악' '고려악'등으로 분류체계가 잡혀 있어 당시 타국(당, 고려)등의 음악을 가져와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입니다. 따라서 이 고려악(고마가쿠)의 현재 연주스타일과 악기는 일본화했을지 모르지만 악보자체는 고려시대 음악이라 보는 것이 맞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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啄木(탁목) 연주

곡으로 돌아가서 '고려악'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이 '탁목'이라는 제목의 음악에서 啄木(탁목)이라는 단어는 조선전기 문인인 김시습(金時習, 1435~ 1493년)의 동제목시에서도 보이듯 조선시대에는 '딱따구리'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啄木 김시습
啄木啄木爾何窮 딱따구리야 딱따구리야 뭐가 그리 궁하여 
啄我庭樹聲丁東 뜰에서나 어디에서나 그렇게 뚝딱거려 대느냐
중략.

따라서 어쩌면 이 곡은 고려시대에 '딱따구리'를 묘사한 음악일지도 모르겠다는 대담한 상상을 해봅니다 (이건 가설도 무엇도 아닌 상상단계이며 이것이 고려시대 음악악보에 기본을 두었다 할지라도 연주기법등에서 그 후 수백년간 일본적 색채가 많이 가미된 것일지 모르지요).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는 탁목조(啄木調)의 가능성으로 이쪽이 더 합리적인데 이 탁목조는 '조선초기' 향악(鄕樂)에 쓰인 악조(樂調)의 하나로  음계는 황종(黃鍾), 태주(太簇). 중려(仲呂), 임종(林鍾), 남려(南呂)로 구성된 5음 음계이고, 그 선법은 황종을 중심음으로 삼은 평조, 곧 황종궁 평조(黃鍾宮平調)이며 속칭 궁조(宮調)라 이른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조선초의 악보에 탁목조라는 것이 있다면 고려시대의 이 '탁목'에서 이어졌을 가능성이 보입니다. 어쩌면 원래 고려시대에 딱따구리의 음색을 본따 만든 '탁목'을 조선초에 정형화해서 탁목조를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일단 한번 들어보시지요.

헤이안시대 고려악 탁목 연주


雅楽 琵琶秘曲〈啄木〉-平安末期の琵琶譜『三五要録』にもとづく再現
아악 비파 秘曲 <탁목>- 헤이안 말기의 비파 악보 「삼오 요록」에 의거 재현 

이런 재현은 항상 신비한 느낌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언젠가 다룰 주제로 몇년간 게으름을 피우는 주제중 하나로 '비파'가 있는데, 탁목연주에서 보이듯 현재 중국과 일본에서 더 활발한 비파는 실은 30년대이전까지는 조선에서 더 발전한 감이 있다고 합니다. 김홍도의 그림에도 자신이 안고 있는 회화가 보이듯 비파는 거문고, 가야금만큼이나 대중적인 우리의 악기였으면 위의 연주에서 나오는 4줄 당비파외에 5줄, 10줄짜리까지 발전하는 '향비파'를 보유한 선조들이었지요.

요즘 조금씩 비파의 매력이 다시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는데 더 활발하게 쓰이면 좋겠습니다. 이에 대해 포스팅을 한번 해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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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남중생 2018/04/22 10:59 #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타치바나 난케이는 옛날 한반도, 중국과 교류가 많았다고 여겨지는 사츠마, 오오스미 지역을 이야기하면서,
    “나이 어린 무사는 모두 비파를 가지고 논다. 그 두 주()는 이름 높은 용맹의 풍속이 있는데, 옷자락을 높이 휘날리며, 긴 검을 십자로 비껴 찬 거친 사내가, 밤이면 밤마다 돌아다니며 비파를 켜는 그 풍정, 헤아릴 만 하다. 그 가락이 올바르고 그 노래가 우아하여, 다른 지역의 비파와는 전혀 다르다.”라고 합니다. 두 자루의 칼을 빗겨찬 고려인들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치려 하네요^^

    아, 그리고 탁목은 딱따구리를 묘사한게 맞다고 봅니다. 나무 두드리는 소리, 딱따구리 날개짓 소리를 그대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죠.
  • 역사관심 2018/04/24 06:43 #

    오 또 저런 전승이 전해지고 있었군요. 저런 문헌은 좀 국역되어 연구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일본은 우리 고대사나 문화사를 연구함에 있어 필수적으로 가서 연구해야 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듭니다.

    http://inuitshut.egloos.com/1932852 이글도 잘 읽었습니다. =)

    그리고 연주연상에서 말미에 피크를 줄에 끼워서 소리내는 장면이 뭔가했는데 말씀듣고 보니 딱따구리를 묘사한듯!
  • 남중생 2018/04/25 02:04 #

    잘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응가 2018/04/22 19:34 #

    일본 아악은 조선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군요... 조선아악은 무겁고 부드럽다면 일본아악은 가볍고 은은한것 같습니다. 시작도 조선은 박소리가 챡!! 하면 터져나오는데 일본은 피리의 금속음이 살며시 다가오네요.
    한국도 일제시대까지 이왕직 아악부에서 비파와 공후같은 지금은 생소한 악기를 연주한 사진이 많이 있는데 어찌된건지 지금은 권번에서 쓰였던악기 말곤 찾아보기 힘드니 아쉽습니다.
  • 역사관심 2018/04/24 06:43 #

    일본쪽은 뭔가 더 여리한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비파는 요즘들어 젊은이들이 다시 시작하는 추세인데, 이럴때 중심을 잡아주고 전통향악기를 전수하는 인물들이 좀 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 우용곡 2018/05/27 15:05 #

    저 노래를 재현한 곳에서 또다른 고마가쿠인 호접악(胡蝶樂)과 신라릉왕(新羅陵王)이라는 노래도 연주했더군요.
    http://www.youtube.com/watch?time_continue=107&v=Vk9LOoO1_xc
    http://www.youtube.com/watch?v=GNn0fJALgUQ

    그리고 호접악 영상 설명 부분에 해설이 적힌 페이지가 있어서 가봤더니 이건 고마가쿠에 속하는 노래이긴 한데, 일본인이 작곡한 거라고 하네요. 참 신기했습니다.
    http://rcjtm.kcua.ac.jp/archives/takuwa20131109nagoya.html
  • 역사관심 2018/05/30 05:18 #

    우용곡님> 오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일단 갈무리해두고 한번 살펴보고 싶어지는 정보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9/09/04 14:31 #

    신라 음악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면 고려악이 고려시대 음악보다는 고구려 음악이나 고구려 음악이 발해를 통해 소개된 것에 가까울 가능성은 없을까요?
  • 역사관심 2019/09/05 08:10 #

    그럴 가능성도 충분하다 사료됩니다. 아직 이 분야의 연구가 정말 일천한지라, 고려시대로 잡는 것은 본문에도 썼지만 12세기로 '최소 이정도대'라는 설정일 뿐이지요. 앞으로 연구가 더 활발하면 좋겠는데...항상 답답한 동아시아 정치쪽이 발목을 잡네요;
  • M i d s e n 2020/04/10 18:55 #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삼국시대의 고려 즉 고구려입니다.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에서 건너간 음악을 합쳐서 고려악(고마가쿠)이라고 부릅니다.
  • 역사관심 2020/04/11 06:37 #

    윗 댓글에서 이미 비슷한 글을 주신 분이 계셔서 저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인데,혹시 연구라든가 근거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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