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회루 樓柱(기둥)의 1605년 벼락기록 발견 한국의 사라진 건축

단신격인 정보 하나.

보통 경회루가 파괴된 시점을 1592년 임진왜란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록으로 보통 유득공(柳得恭,1748~1807년)이 1770년 쓴 [춘성유기(春城遊記)]에 나오는 9미터(세 길)짜리 48개 돌기둥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런데 이 두 기록의 사이, 즉 임란 7년후인 1605년, 한번 더 자연재해로 그나마 남아 있던 경회루가 다시 파괴된 아직 국역되지 않은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다음은 이정형 (李廷馨, 1549∼1607년(선조 40년))의 [동각잡기(東閣雜記)]에 나오는 기록.

乙巳六月二十七日。을사년(1605년) 6월 27일 
雷震慶會樓柱。경회루기둥에 벼락이 쳐서
至於裹柱之鐵。기둥이 검게 변하고
亦披裂。또 찢어지고 쪼개졌다.

즉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1605년 다시 경회루 기둥에 벼락이 쳐서 기둥이 검게 타고 쪼개졌다라는 기록입니다. 따라서, 위에 나오는 유득공의 9미터급 기둥이야기는 이로부터도 172년 후의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 회화가 한 점 전하지요.

바로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년)이 남긴 이 경회루터그림입니다.
여기서는 기둥의 숫자는 10여기만 그렸지만 이보다 더 후대인 유득공의 1770년 기록에 48기가 남아있다 했으니 이 그림은 대충 묘사한 것이 될 것입니다. 즉, 이 정선 선생의 그림에 남아있는 저 기둥들은 임란때 경복궁이 전소될때 한번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오늘 필자가 발견한 1605년의 벼락도 맞은 형태가 될 것입니다.

작은 발견이지만, 경회루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으로 사료되어 나눕니다.






덧글

  • 남중생 2018/05/21 17:06 #

    헛, 기둥만 남아있었군요...
  • 역사관심 2018/05/22 06:56 #

    네 임란때 아마도 전소되었을 것 같습니다...
  • 응가 2018/05/21 18:18 #

    경회루도 그렇고 서총대도 그렇고 용과 꽃을 조각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는 이 돌기둥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 역사관심 2018/05/22 06:56 #

    저도 이 부분이 항상 궁금한데, 혹시라도 앞으로 번역되지 않은 고전에서 실마리가 나와준다면 좋겠습니다...
  • 천하귀남 2018/05/22 10:08 #

    임진왜란때 위쪽 나무구조가 불에 타면서 아래 돌기둥도 열기에 파손되거나 약해졌을겁니다. 여기에 상당기간 방치 되면 겨울에 물이 스며든 상태에서 얼어 터질테니 돌이라도 온전하지는 않겠지요.
    이러니 나중에 중건할때 쓸수 없는 기둥도 있을테고 새로 갖출 기둥과의 구색문제도 있으니 전부 치우지 않았을까 합니다.

    얼마전 여주의 신륵사를 다녀오는데 이 절의 석물이 고려말/조선초가 많았습니다. 헌데 여기저기 갈라지고 마멸된 부분이 많더군요. 화강암이라 해도 수백년 시간은 쉽게 못넘기더군요.
  • 역사관심 2018/05/23 07:41 #

    천하귀남님> 그렇군요. 저는 석재라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 천하귀남 2018/05/23 09:50 #

    보관... 이라 하기는 뭐한데 경회루 기둥정도의 대형 석재면 파손됬다 해도 경복궁 중건시 다른 건물의 자재로 재 사용 됬을 겁니다. 경복궁의 기초나 판석들 뒤집어보면 무늬 새겨진 돌은 남았을 듯 합니다. ^^;
  • 역사관심 2018/05/23 11:43 #

    아 또 그런 경우가!.... 한번 조사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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