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백제목간 발견 (1400년전 논어구절과 궁궐이름 적은 백제목간 나왔다) 역사뉴스비평

며칠전인 2018년 7월 12일, 한겨례신문에서 이런 기사가 떴더군요.

부여 쌍북리 백제 왕경지에서 고대의 논어구절이 적힌 목간과 '잠동궁'등의 알 수 없는 궁궐명이 적힌 목간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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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400년전 <논어>구절과 궁궐이름 적은 백제목간 나왔다

부여 쌍북리 56번지 왕경유적서 최근 출토
논어 학이편 1, 2장 구절 확인돼 
백제궁 명칭 적은 '잠동궁' 목간도 첫 확인

부여 쌍북리 백제 왕경유적에서 나온 <논어>목간. ‘학이편’ 1, 2장 구절들을 선명한 먹글씨로 적었다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로 운을 떼는 공자 어록 <논어>의 첫머리 ‘학이(學而)’편. 동양 고전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유명한 이 구절이 1400년전 백제인의 나무쪽 문서인 목간에서 확인됐다.

7세기 백제 사비시대의 시가지 왕경 유적이 사상 처음 드러났던 충남 부여 쌍북리 56번지 한옥마을조성터(<한겨레>5월16일치 26면 단독보도)에서 <논어>‘학이’편 1, 2장의 구절과 당대 궁궐 이름으로 추정되는 ‘잠동궁(岑凍宮)’을 적은 목간 등이 잇따라 발굴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이 유적을 발굴한 울산발전연구원의 한지아·김성식 부연구위원은 12일 열리는 한국목간학회 여름워크숍에서 이런 판독 내용을 담은 주요 출토 목간들의 발굴 성과를 보고한다. 

앞서 11일 <한겨레>가 단독입수한 연구원의 보고문을 보면,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은 모두 17점으로 백제 사비시대 최전성기의 지층에서 발굴됐다. 이 가운데 문자가 일부라도 판독된 것은 5점이다. <논어>의 유명한 ‘학이’편 구절 일부가 적힌 사면 목간을 필두로, 정사년 (丁巳年) 연도와 ‘岑凍宮(잠동궁)’이 적힌 목간, 농가로 추정되는 ‘田舍’란 단어가 들어간 목간 등이 확인된다.

발굴된 <논어>목간은 길이 28cm에, 너비가 각각 1.8cm, 2.5cm로 ‘학이편’ 1장 전체와 2장의 서두 일부분을 담고있다. 1면은 ‘공자 말씀하시기를,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란 뜻의 ‘자왈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子曰學而時習之 不亦說(乎))’, 2면은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란 뜻의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3면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니 군자가 아니겠는가’란 뜻의 ‘인부지이불온불역(人不知而不? 不亦(君))’이 말미 한두글자가 결락된 것을 빼고는 거의 온전하게 적혀있다. 

4면은 아래쪽 절반이 사라진 채 ‘유자가 말하기를, 사람됨이…’이란 뜻의 ‘자호유자왈기위인야(子乎 有子曰 其爲人也)’란 구절만 남았다. 특히 3면과 4면의 경우 구절 사이에 띄어쓰기가 되어있어 백제인이 <논어>를 번역해 훈을 새겨 읽었음을 보여준다. 고대 한반도의 독특한 한문 풀어읽기 방식인 ‘구결’의 가장 이른 흔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략. 이런 맥락을 감안할 때 이번에 확인된 <논어>목간은 백제인이 읽었다는 사실이 이론의 여지없이 확인되는 최초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쌍북리 56번지 왕경유적지

‘정사년’이란 연대와 ‘잠동궁’이란 궁궐명칭이 처음 확인된 쌍북리 출토 목간

‘정사년(丁巳年) 10월20일’이란 연대명이 확인되는 다른 목간의 경우 ‘잠동궁’이란 백제의 궁궐 이름이 처음 나타나 그 의미가 주목된다. ‘먹는 쌀 일곱석 여섯두’라는 뜻의 곡물 단위가 나오는 ‘飡米七石六斗*(찬미칠석육두*)’란 대목도 적혀 궁 등에 들어가는 곡물의 입출고 내역 등을 기록한 장부였을 것으로 연구원 쪽은 추정했다. 정사년은 사비시대에 해당하는 연대가 위덕왕 44년인 597년과 의자왕 17년인 657년이다. 연구원은 657년이 유력하지만, 목간 필체가 6세기 무령왕릉의 묘지석과 비슷해 597년일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마을 이장으로 추정되는 ‘里後(이후)’, 농가로 추정되는 ‘田舍(전사)’ 등 옛 문헌에 남아있지 않은 낯선 한자어가 들어간 목간도 보고돼 눈길을 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울산발전연구원 제공


쌍북리 유적지 왕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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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쌍북리 유적지는 기본적으로 사비도성내의 백제 유적지로 예전에 이웃이신 Warefare님께서 소개하신 바가 있습니다.

이 곳은 가마터가 발굴되는 등 기본적으로 '공방지'성격이 띤 것으로 그간 연구되어 왔는데 이번에 이런 생활사와 관련된 목간해석, 그리고 궁궐명이 적힌 목간이 발굴되면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유교의 경우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대에 이미 들어왔으므로 이 당시 이런 문구가 나온 것은 흥미로운 일일지언정 아주 새로운 정보는 아닙니다. 따라서 필자는 논어구절보다는 다음의 세가지 부분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1. 우선 기사에도 나오듯 '가장 오랜 구결의 기록'일 가능성입니다. 현재 한국역사상 가장 오래된 '구결'기록을 보면 11세기 고려대의 것입니다. 다음의 정보를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한문에 구결을 달아 읽는 관습이 생긴 것은 늦어도 통일신라시대인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의 학자 설총(薛聰)이 구경(九經)을 방언(方言)으로 읽어 후학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방언으로 읽었다는 것이 바로 구결을 달아 읽었다는 의미일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한문에 구결이 달려 있는 실물 자료 가운데 신라시대의 자료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으며, 가장 오래된 것이 고려시대인 11세기의 자료이다.

보시다시피 구결을 달아 한문을 읽는 방법은 그간 대략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대로 추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전대부터 있었을 것이란 막연한 추정뿐). 하지만, 만약 이 목간의 띄어쓰기가 정말 '구결'이라면 최소 구결의 역사는 500-600년 더 앞당겨진 6-7세기 백제 사비시대로 공인됩니다. 비단, 구결의 역사만 당겨지는 것이 아니라 '백제'라는 국가의 언어체계의 중국과의 차이점= 한반도민족의 언어문화 정체성확립시기와도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는 큰 발견이 될 것입니다.

2. 잠언궁 기록.

이번에 해석된 '잠언궁'이란 궁궐명칭의 한자는 이렇습니다.

岑凍宮은 '봉우리 잠', '동쪽 동', '궁궐 궁'.

이 궁궐은 현재 어떠한 문헌기록에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당시 사비궁의 별칭이거나 혹은 사비궁의 별궁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중입니다. 예를 들어 '봉우리 동쪽에 있던 궁궐'을 뜻하는 이 단어가 현재 발굴된 사비궁의 별궁인 화지산유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야트막한 동쪽 언덕에 자리한 화지산 사비궁 별궁지

3. 전사라는 단어

마지막으로 田舍라는 단어의 존재입니다. 이번 6-7세기 백제목간에서 나온 이 단어는 신문에서 소개했듯 한국의 어떤 문헌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입니다.
"田舍(전사)’ 등 옛 문헌에 남아있지 않은 낯선 한자어가 들어간 목간도 보고돼 눈길을 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田舍라는 단어는 일본에서는 아직도 '시골'이란 뜻으로 쓰고 있는 단어입니다. 또한 5-6세기 당대 이웃국가인 당나라의 기록을 보면 田舍라는 시제목이 있습니다. 당대 최고 문인이던 당나라 두보가 쓴 시 제목이 그것으로 중국측 설명을 보면 이렇습니다. "是唐代诗人杜甫创作的五言律诗" 즉, 당나라시대에 두보가 쓴 "외딴 마을"을 묘사한 목가적인 시 제목이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즉 이 전사라는 글자는 당대 '매우 외딴 시골' 혹은 '시골집'이라는 뜻일 가능성이 꽤 되어 보입니다. 우리가 모르던 고대어일지도 모르겠군요. 함께 발견된 里後(이후)라는 글자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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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더 많은 목간이 발굴되어 고대사의 한 부분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잠동궁'은 어딜까...



덧글

  • 바람불어 2018/07/19 12:48 #

    전사(田舍)가 지금 우리에겐 낯선 말이지만, 현대 일본에선 시골 고향의 뜻으로 쓰고있고 울나라나 중국도 과거엔 농촌, 시골이란 뜻으로 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 역사관심 2018/07/20 19:08 #

    맞습니다. 백제어 연구에 큰 도움이 될만한 발견같습니다.
  • 응가 2018/07/20 18:11 #

    백제가 핫하군요ㅎㅎ 최근에 백제 금동불입상 하나가 또 일본에서 환수된다고 하더군요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214&aid=0000843891) 그런데 국보지정이 어떤식으로 되는지 모르겠네요. 몇년전 반입된 고려시대 나전칠기경함도 어떻게 지정이 됬는지 모르겠네요.
    일본에서 그토록 화려한 문화를 남겼던 백제의 베일이 벗겨지는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8/07/20 19:12 #

    오...정말 멋진 불상이네요- 확실히 국보급으로 보이는데... 저 역시 국보지정시스템에 관해서는 문외한인지라... 우리 고대문화는 확실히 아직 연구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고 하는 표현을 너머, 아직 우리에게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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