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은 아시안게임과는 비교불가의 대회 (부제- 60년의 무관). 스포츠전통마


월드컵>> 아시안컵 > 올림픽>> 아시안게임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하지만 아마도 축구를 아는 분들이라면 많이 공감할 우리에게 가장 알려진 4개 국제대회의 중요도입니다. 손흥민의 병역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요즘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대회가 바로 아시안'게임'입니다. 

그런데, 댓글들을 보면 아시안컵과 아시안게임조차 구분못하는 분들이 있지요 (아직도...Still...). 과연 아시안게임을 우승하면, 아니 더 나아가 올림픽남자축구를 제패하면 우리의 피파랭킹은 오를까요? 저런 댓글을 쓰는 분들은 당연한 거 아냐? 라고 하겠지요.

우선 아시아최강국중 하나라고 자부하는 아시아축구강국의 시민으로 상식적으로 알아야 할 표를 소개하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우리가 아는 피파(FIFA)주관 공식대회는 월드컵과 아시안컵, 그리고 대륙챔피언끼리 붙는 컨페더레이션스컵밖에 없습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피파주관도 아니며 따라서 국가간 공식랭킹인 피파랭킹에도 하등영향을 못주는 IOC(올림픽위원회)산하 23세 이하 연령별 대회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피파공식산하 토너먼트인 아시안컵을 우승하거나 컨페더레이션컵에서 승리하면 바로 피파랭킹에 직결됩니다. 당연하지요. 이론상 유로나 코파와 같은 위상의 대륙의 진정한 성인 대표의 챔피언국가를 뽑는 대회니까요. 

그럼 우리는 아시안 컵에서 어떤 성적을 그동안 얻었을까요? 요즘이야 이란에게 몇년 밀렸고 일본과 비슷하게 가니 그렇다쳐도 그럼 16회나 치뤄진 이 대회... 최강으로 자부하던 한국이니 한 5-6번은 우승했겠죠?

턱도 없는 소리. 

대한민국은 1회 (56)-2회 (60) 초창기에 우승하고 무려 59년간 (!) 우승이 없습니다. 네, 이 사실은 이미 예전글에서 상세히 다룬 바 있지요.

윗글에서 발췌하자면 이런 대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안 컵 우승은 솔직히 1-2회 우승이 있다지만, 이제 한분 남은 원로히어로 선생님을 보듯, 현 대한민국 구성원들의 인식에선 사리진 기억입니다. 까놓고 말하자면 54년 스위스 월드컵이후 거의 뇌리에서 사라진 잡힐 듯 잡지 못하던 월드컵 본선진출을 32년만에 이룬 86년 월드컵보다도 더 긴 세월이 흘렀지요. 2019년이면 새겨질 59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은 그 거의 두배가 다 되가는 엄청난 세월입니다. 즉, 이런 마당이면 우리에겐 인식적으로 '첫 우승'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80년대초까지 월드컵 본선 진출 1회의 기록은 없던 것으로 치던 우리의 분위기처럼 말이지요. 애써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시안컵우승은 티켓수 늘어난 월드컵본선진출보다 더 힘든 역사가 되버렸습니다. 그렇게 여기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심심찮게 달리는 댓글이 '우리는 그동안 아시안컵을 너무 무시해서 우승을 못했다'입니다. 이건 사실일까요? 

협회가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는 아래 본문에서 살피보고 최소 2018년 현재까지도 일부 팬들에게는 아마도 그런 듯 보입니다. 네이버 댓글에는 심심찮게 손흥민은 11월 A매치 평가전까지는 뛰고 아시안컵은 빼주자라든가 (거꾸로해야 정상), 나름 유명 축구게시판인 이 곳에서도 이번달 이런 글이 올라오고 있지요 (맨 아래 댓글보시길).

과연 아시안컵은 우리 해외파들 쉬게 해줘야하는, 아시안게임은 물론 11월 평가전조차도 못한 대회인걸까요? 사람들은 마치 이 대회가 무슨 80년대 메르데카컵정도로 알고 있는 듯 보입니다. 오늘은 아시안컵의 중요성과 더불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저 오만한 굵은체 문장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


아시안컵은 대륙의 진정한 챔피언컵이며 그 권위를 모두에게 인정받는 유일한 피파주관 대회

오늘은 아시안컵이라는 대회가 '얼마나 중요한 대회인지'와 더불어 상식처럼 돌아다니는 우리 스스로의 자위 혹은 면죄부처럼 쓰이는 '한국의 그동안의 아시안컵 무시'가 얼마나 사실인지를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참, 이를 살펴보는 이유는 앞으로 이런 소리할 시간에 이 대회가 얼마나 중요해졌고, 지금 위상이 어떠한지 제대로 대중도 언론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아시안컵의 역대 우승팀을 3분으로 다룬 영상입니다. 볼만한 영상이니 한번들 보시면 좋겠습니다. 정말 오랜 기간 우승 못했지요...

극적인 배경음과 함께 2011년 파이널까지 다룬 영상.


앞의 영상+ 2015년 결승까지 다룬 것 (배경음이 다름).


우선 이 대회가 왜 중요한지 (너무 당연한) 필자가 쓰고 싶은 말을 모두 적어주신 김현회씨의 2014년 기사입니다.


우리는 아시안컵을 지금까지 너무 무시했다. 일단 축구계에서도 이 대회를 하찮게 취급했었다. 1988년 카타르 아시안컵을 앞두고는 대통령배 축구대회가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아시안컵 예선에 대학과 실업 선수를 출전시키기도 했고 1992년 일본 아시안컵 예선 때에도 대학 선발팀을 출전시켰다가 본선 진출에 실패한 적도 있다. 이 대회에서 우리가 예선에서 탈락한 사이 일본은 역사적인 아시안컵 첫 번째 우승에 성공했었다. 

한국이 1980년대 당시 아시안컵 선수 구성에 워낙 무성의하자 AFC 측으로부터 “선수 선발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는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아시안컵보다 오히려 한·중·일이 모여 우승하면 정신 승리하는 다이너스티컵이 우리에게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심지어 우리는 1956년 제1회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를 분실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가 1990년대부터 이 우승 트로피의 행방을 쫓았지만 결국 이 역사적인 트로피는 엉뚱하게도 지난 2012년 태릉선수촌에서 발견됐다. 
분실후 2012년 발견당시 1회 아시안컵 우승 트로피

1회 우승팀 대한민국

이 정도로 우리는 아시안컵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가 워낙 이 대회를 무시하니 여기에 온 힘을 쏟아 집중할 수도 없었고 당연히 우승과도 거리가 멀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1960년 제2회 아시안컵에서 우승한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과연 이걸 경기에 나선 선수들 탓으로만 돌려야 할까. 우리 스스로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강이라면서 정작 아시아에서 열리는 가장 기본적인 대회에 대한 인식은 전혀 없었다.

이런 아시안컵 무시 풍토는 일부 팬들에게도 나타났다. 지난 2010년 12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앞두고 일부 네티즌은 “중요한 시기를 맞은 박지성이 아시안컵에 나섰다가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다”면서 ‘박지성 차출 반대 서명 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말 그대로 충격이다. 박지성의 아시안컵 차출 논란 자체가 일어나는 현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 이면에는 “우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박지성을 보고 싶은데 하찮은 그런 대회에 나가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쩔 것이냐”는 의미가 깔려 있었다. 박지성 스스로 2010 남아공월드컵이 끝난 뒤 “일단 나의 가장 중요한 꿈은 아시안컵 우승을 내 경력에 넣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지만 일부 팬들에게 아시안컵은 그저 부상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는 하찮은 대회 취급을 받았다. (주: 손흥민의 2019년은 오버랩되지 않길 바랍니다)


아시안컵, 왜 중요한 대회인가

하지만 아시안컵은 이런 하찮은 대회가 아니다. 우리가 월드컵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큰 대회가 바로 아시안컵이다. 금메달 획득으로 인한 병역 혜택이 무척이나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우리 정서상 아시안컵보다 아시안게임 축구가 더 주목받고 있지만 아시안게임 축구를 아시안컵에 비교하는 건 아시안컵 입장에서 땅을 칠 노릇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제재로 정체불명의 U-23 대표팀이 구성돼 치르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과는 차원이 다르다. 

뼛속까지 유럽인인데 신의 실수로 아시아에서 태어난 걸 원망하는 이들에게 아시안컵이 하찮은 대회처럼 보일지 몰라도 어쩌겠나. 우리가 월드컵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큰 대회가 바로 아시안컵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유럽 국가로 귀화하지 않는 이상 변하지 않는다. 물론 유럽으로 귀화해도 당신을 진정한 까딸루냐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건 함정이다.

더군다나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 각 대륙 우승팀이 모여 치르는 컨페더레이션스컵에 나갈 수 있다. 여기에 아시안컵에서 3위 안에 입상하면 다음 아시안컵 예선을 면제 받는다. 한국이 2011 아시안컵에서 3위를 차지해 이번 대회 예선을 면제 받고 그리스 등 유럽 원정을 떠난 동안 아시안컵 본선 자동 출전권을 따내지 못한 이란은 태국, 레바논, 쿠웨이트 등과 아시안컵 예선을 치렀다.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A매치 데이에 소중한 경험을 한 것도 아시안컵 3위 입상 덕분이었다. 이런 부가적인 혜택을 떠나 아시안컵은 그 자체로도 우리에게는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컨페더레이션스컵 참가 자격이 없어도 아시안컵은 FIFA가 주관하는 대륙별 최고·최대 규모의 축구 제전이다. 아시아 챔피언은 월드컵에 얼마나 많이 나갔느냐가 아니라 아시안컵 우승 여부로 갈린다.

아시아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아시안컵 우승이 필수다. 이건 단순한 이벤트성 대회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지금 아시안컵 우승을 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이 대회를 너무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관심이 없었으니 우승을 하지 못한 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우승의 기회를 잡기 위해 우리가 아시안컵을 다시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유로 대회를 개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월드컵 말고 개최할 수 있는 가장 큰 축구 대회는 바로 아시안컵이다. 이제 다시 우승컵을 찾아오기 위해서는 아시안컵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고 그 첫 단계로 아시안컵 유치에 도전할 필요가 있다. 남이 차려 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을 생각보다 우리 스스로 밥상을 차려야 한다. 

관중 동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관중 동원에 대해 걱정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오만과 바레인의 경기를 보러 올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이런 텅텅 빈 경기장을 아시아 전역에 보여주는 게 망신은 아닐지 걱정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역대 아시안컵 중 ‘관중 대박’을 친 대회는 2004년 중국 아시안컵과 2007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이 공동 개최한 아시안컵 정도다. 워낙 인구가 많아 뭘 해도 사람이 미어터지는 중국은 2004년 아시안컵 당시 평균 관중이 무려 31,877명에 이르렀다. 동남아시아 4개국이 공동 개최한 2007년 아시안컵 때는 이 네 나라가 각자 조마다 따로 편성돼 자국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4만 명에서 8만 7천여 명이 경기장을 채웠다. 하지만 4개국 아시안컵 때도 오만-이라크전에는 500명, 이란-우즈벡전에는 1,800명 만이 경기장을 찾는 등 관중 편차는 심했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 아시안컵 당시에도 경기당 1천여 명의 관중이 전부였다. 관중 동원 걱정은 그리 크게 할 필요가 없다. 한국에서 아시안컵이 개최될 경우 아마 인기 없는 경기는 2~3천여 명의 관중이 들어찰 것이다. 하지만 개최국인 한국 홈 경기에는 기본적으로 4만 명 이상 관중이 들어찰 것이고 인근 국가인 중국과 일본 경기 역시 수만 명의 원정 관중이 경기장을 찾을 게 분명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아시안컵 개최 자격이 있다. 월드컵이라고 뭐 다 관중이 꽉꽉 들어차나. 2006년 당시 나는 월드컵이 열린 독일 현지에 있었는데 한국-프랑스전 당일 경기장 앞에서 정가보다 훨씬 싼 암표를 파는 이들도 많이 봤다. 월드컵도 이렇게 관중이 다 들어차지 못하는 경기가 있는데 아시안컵이라고 무조건 경기장을 꽉 채워야 하는 건 아니다. 오만-이라크전에 500명이 찾는다고 해 우리의 열기를 폄하할 이도 없다.

더군다나 AFC는 2019년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을 16개국에서 24개국으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평균 관중은 다른 대회 때보다 줄거나 비슷할지 몰라도 대회 규모가 커지면 당연히 그에 따른 관광 수익 등은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 특히 본선 참가국이 늘면 아마도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많은 이득을 볼 것이고 그들은 한류에도 상당한 관심이 있다. 아시안컵과 한류 등을 연계해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다면 그 이득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국가대표 2군, 처음 들어보는 클럽팀 등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팀들을 초청해서 코리아컵도 개최해 나름대로 성공을 거뒀었는데 아시안컵이라고 못할 게 없다. 인프라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고 관중 동원도 그리 겁 먹을 필요가 없다. 한국 경기를 포함해 일본, 중국 등 몇몇 국가 경기의 흥행에만 성공하더라도 우리가 크게 손해 볼 건 없다. 그리고 2007년 U-17 월드컵은 뭐 우리가 돈이 돼서 개최했나. 이런 대회를 꾸준히 연다는 게 바로 그 나라 축구의 위상이기 때문에 하는 거다.

2023년 개최가 기회다

개최 시기에 대해 고민도 필요하다. AFC가 오는 6월 2019년 아시안컵 개최지를 선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일본과 미얀마, 인도, 우즈베키스탄 등과 함께 살짝 관심을 보이다가 발을 뺐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쿠웨이트, 태국 등이 입후보해 2019년 아시안컵 개최를 두고 경쟁 중이다. 이중에 최근 공동 개최로 아시안컵을 치른 태국이 가장 경쟁력에서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중동 국가에서 2019년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 중동과 동아시아, 그리고 기타 지역(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호주 등), 그리고 중동으로 이어지는 나름대로의 순환 원칙이 지켜지고 있어 2023년 대회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열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마도 한국과 일본, 중국 등의 싸움이 펼쳐질 텐데 이중 2회 대회 이후 가장 오래 대회를 개최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지역별 순환 원칙을 따지자면 2023년 대회는 충분히 우리의 몫이 될 수 있다.

만약 2023년 아시안컵 유치를 놓칠 경우 2027년(기타 지역)과 2031년(중동)에 이어 2035년 정도는 돼야 우리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나. 아마 우리가 그때까지 이 세상에 살아있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시안컵 개최 기회가 21년 뒤에나 온다는 건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2023년 아시안컵 유치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공론화하고 준비를 하는 게 어떨까. 이 시기를 놓칠 경우 우리는 또 기나긴 기다림이 필요하다. 2002년에 월드컵을 개최해 놓고 아무런 명분도 없이 2022년 월드컵 유치에 또 도전해 실패하는 것 보다는 아시안컵 개최가 훨씬 더 현실성이 있다. 또한 먼훗날 또 다시 월드컵 등 국제 이벤트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이런 아시안컵을 비롯한 대회를 자주 유치해 우리의 축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호주가 2015년 아시안컵을 개최한 것도 향후 월드컵 개최를 위한 전초작전이었다. 대륙별 최고 권위의 대회에 관심도 없는데 우리에게 누가 월드컵 개최라는 또 한 번의 영광을 줄까.

55년 무관? 55년 무관심이 더 큰 문제

지금껏 우리의 아시안컵 무시 풍토를 떠나 왜 우리가 아시안컵을 개최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아시안게임이나 동계올림픽 등 스스로는 엄청난 이득을 남긴다고 주장하지만 결국 적자 투성이인 대회도 척척 유치하면서 왜 아시안컵은 안 될까. 나는 아시안컵이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자기 업적 남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 등은 해당 도시의 이름을 건 행사이기 때문에 자치단체장의 업적을 남기기 참 좋은 대회다. 이런 대회 개최 한 번이면 정치적으로도 엄청난 이득을 안을 수 있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열리고 축구협회가 나서야 하는 아시안컵은 개인적으로 지자체장이나 정치인 누구의 업적으로도 미화하기가 쉽지 않다. 아시안게임도 2002년에 이어 올해 또 우리나라에서 열리는데 아시안컵이 55년 동안 열리지 못한다는 건 결국 정치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협회가 나섰으면 좋겠다. 우리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맹주’라면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 아시안컵을 개최하고는 지금까지 이 대회 유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제2회 아시안컵 개최를 위해 만들었던 효창운동장이 이제는 그 쓰임새를 다 한 지금까지도 우리는 다시 한 번 아시안컵을 개최할 마음이 없다. 우리는 이제 이 대회 우승이 절실한 입장이 됐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잔치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시아 축구 최정상이라는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구축하기 위해서도 아시안컵 개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인프라는 다 갖춰져 있고 우리 마음 먹기에 달렸다. 나는 55년 동안 한국이 아시안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보다 55년 동안 아시안컵을 한 번도 개최하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아시안컵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나라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도 참 이상한 일 아닌가.
=====

필자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이 기사에 전부 나옵니다. 아시안컵의 중요도도, 그간의 무관심도, 그리고 그로인해 한국축구가 세계나 아시아권에서 어떤 대접을 지금 받게 되었는지, 그리고 2023년 대회 개최의 중요성까지...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참고로 우리에게 마지막우승인 1960년 2회 우승트로피는 아직도 행방불명입니다.

아직도 못 찾고 있는 2회 우승트로피

당장 다음주에 열리는 2018 아시안게임은 솔직히 말씀드려 손흥민선수및 몇몇 병역미필 선수의 군문제를 빼면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승해도 대한민국 축구의 랭킹은 아무 영향도 없습니다. 우승해서 면제받으면 가장 좋겠습니다만, 앞으로는 솔직히 아시안게임대신 아시안컵으로 병역면제를 대체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마져 들 정도로 이 두 대회는 비교불가의 대회입니다.

현재 거의 비슷해졌지만 90년대중반이후 항상 우리보다 피파랭킹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앞선 가장 근본적 이유도 아마 이 아시안컵의 4번 우승때문일 겁니다. 거기다 아시아 최강팀이라는 타이틀 외에 컨페드레이션스컵 출전권까지 얻게 되고, 이 때문에 월드컵 직전에 월드컵 개최국에서 대륙 최강팀들과 공짜로 A 매치를 실전으로 치르게 되지요. 이 열매를 일본은 90년대 이후 4번이나 가져간 겁니다 (우리는 당연히 남의 떡).

반면 아시안게임 은 말 그대로 아시안게임 안에있는 축구종목 대회로 이 게임은 올림픽축구의 대륙별 대회로 보면 됩니다. 나이도 같은 23세 이하 (즉 성인A대표팀도 아님)고 Ioc가 주관하므로 아무리 이기고 우승해도 피파랭킹과는 관련도 없고, 따라서 대부분 아시아 축구 강호들은 어린선수들 경험쌓는 무대정도로 생각합니다 (당장 이번 대회 다른 강호들 보면 너무 쉽게 알수 있지요. 한국만 기형적으로 목매는 꼴입니다).

그럼 과연 그간 우리는 아시안컵을 어떻게 바라보았나... 언론을 통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

1960년대

언급했듯 1956년과 1960년대 제 1회, 2회 아시안컵을 제패한 한국이지만 당시에는 동남아축구의 위세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강했습니다. 64년의 기사를 보면 마치 요즘의 '일본'축구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하는 맥락으로 똑같이 동남아의 '기술'이 만만찮으니 우리도 외국인 코치를 선임해야 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에 우리가 무려 인도에게 패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제 3회 아시안컵 (1964년)
아래 보시면 "아주축구선수권대회에서의 인도와의 패배"라고 되어 있지요. 바로 이 경기가 이스라엘에서 열린 제 3회 아시안컵에서의 0:2 패배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대회에 바로 우리는 1961년부터 결성된 국가대표 B팀 즉 제 2군을 내보냅니다. 즉 1, 2회까지는 1군이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2군제도 자체가 없었슴). 결과는 당장 참패였죠.

과연 한국은 2연패국가로서 절치부심 4회 아시안컵을 준비했을까요?

제 4회 아시안컵 (1968년)

다음은 67년 6월자 경향신문. 음... 뜬금없이 제 1회 '아시아 챔피언팀 컵'이라든가 '아시컵'이란 대회가 나오지요. 모두 국내에서 개최한 의미불명의 국제대회로 현재는 위키에서도 찾을 길이 없는 대회들입니다.

당해 이미 5월에 이란에서 제 4회 아시안컵이 열렸는데, 우리는 참가조차 못하고 조별예선 탈락합니다. 그래도 아무런 반성기사도 없었고, 이런 의미 불명의 '아시아'가 들어가는 대회만 양산하고 거기서 승리하면 정신승리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아시아'가 들어가는 대회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아시안컵'이라는 대회 역시 비슷한 수준의 대회로 격하되는 느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메르데카컵이라든가 국내의 대통령배와 비슷한 대접 혹은 그보다도 못한 대접까지 받았던 것처럼).
70년대

제 5회 아시안컵 (1972년)

1971년기사를 보면 '아시안컵'과 메르데카 컵, 킹스컵같은 대회를 거의 동일시함이 보입니다. 실은 비교도 안되는 대회지요 (솔직히 지금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을 비교하는 수준과 비슷하다는 인상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국대 2진을 보냅니다... 같은 해 12월 기사를 보면 다음해 열리는 1972 제 5회 아시안컵에 '상비군'을 보낸다고 되어 있지요. 상비군이 바로 청룡, 백호등으로 분화되었던 국가대표 2진입니다.

1971. 12.14
그래도 5회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올라가서 이란에게 1:2로 지고 준우승합니다. 다음대회는 완전히 망하죠.


제 6회 아시안컵 (1976년)

네, 4회에 이어 본선에도 오르지 못하고 지역예선 탈락했습니다.
1975. 3. 25자 기사를 볼까요.
태국에게 지면서, 본선진출조차 못하게 된 겁니다.
기사에는 없지만 분명 또 다시 '상비군'이 나갔을 것 같습니다. 


80년대

제 7회 아시안컵 (1980년)

이런 수모를 당하고 오랜만에 1군인 '화랑'이 80년 대회에 참가합니다. 아래는 1980. 9. 09자 기사입니다. 파란 색부분을 보면 단신으로 처리될 만큼 (프로야구 기사와 너무 비교) 아시안컵은 아직도 푸대접중입니다. 
그리고 1진답게 대한민국은 결승에 다시 진출합니다. 그리고 상대는 이미 예선에서 3:0으로 대승했던 쿠웨이트. 당연히 오랜만에 3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줄 알았지요.
그러나 결승에서 외려 고스란히 0:3으로 대패. 쿠웨이트가 초대우승을 가져갑니다. 이때까지 우리는 우승 2, 준우승 2를 기록하게 되지요.

제 8회 아시안컵 (1984년)

1984년 대회에 한국은 월드컵 팀인 1진으로 다시 우승에 도전합니다. 당해 12월에 열렸는데 2달전인 10월의 지역예선을 보면 1진임을 알 수 있지요.

1984. 10.17
그러나 1군임에도 한국축구는 무려 '조별탈락'을 맛봅니다.

1984.12.11자 기사
단 1승도 못하고 탈락.
이처럼 80년대중반 이미 아시안컵은 우리의 최정예가 나가도 정신차리고 대비하지 않으면 절대 성적을 낼 수 없는 대회로 이 시기에 자리잡기 시작한 겁니다. 


제 9회 아시안컵 (1988년)

흔히 우리 네티즌들이 이야기하듯 80년대에도 우리는 2진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9회대회인 88년 대회에도 우리는 최정예 멤버를 출동시킵니다.

1988. 11. 24자 기사를 볼까요.
면면을 보시면 당시 최고 멤버를 구성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병득, 김봉수, 정용환, 박경훈, 조윤환, 조민국, 정해원, 황보관, 최강희, 노수진, 이태호, 김주성, 변병주, 황선홍... 월드컵 팀 그대로입니다.

이 최정예팀은 역시 결승까지 갑니다.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에게 승부차기에서 3:4로 지고 다시 준우승에 그치지요. 우승 2, 준우승 3. 너무 아쉬운 기회가 또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1988. 12. 19년 기사입니다.
이처럼 80년대는 우리가 최정예군단을 내보내고도 조별탈락이나 결승전 석패를 맛보던 시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축구협회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합니다. 


90년대

제 10회 아시안 컵 (1992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바와 달리 (즉, 80-90년대에는 신경을 안써서 못했다) 이미 만만치 않은 대회가 되었음을 이미 당시 언론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의 기사를 볼까요.

1992.5.15자 기사입니다.
이런 구성으로는 아시안컵 지역예선도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리고 그 결과는 또다시 참담합니다. 우려했던 대로 이 아마추어팀은 태국에게 집니다. 그리고 '최초로 지역예선 탈락' 즉 본선도 못가는 신세가 됩니다.

1992. 6.22자 기사.

그리고 그 다음대회인 1996년...


제 11회 아시안 컵 (1996년)

절치부심한 한국축구는 박종환 감독을 내세워 우승에 다시 도전합니다.
1996. 9. 18자 기사의 예측대로...
이 대회에서 한국은 8강전에서 숙적 이란에게 2:6이라는 참패를 당하면서 박종환 감독의 경질이라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당시 후반전 선수들이 거의 걸어다녔다고 파벌싸움아니냐는 루머까지 돌았지요). 


2000년대

제 12회 아시안컵 (2000년)
를 보기전에 한 해전인 1999. 4. 28자 기사를 한번 볼까요.

그 해는 일본축구가 처음으로 세계청소년대회 (우리가 82년 4강신화로 여기던 그 대회)를 우승한 해입니다. 이 당시 우리의 기사를 보면 우리 축구계의 문제를 조목조목 (마치 지금같습니다) 짚어주고 있지요.

기사중 1996년 아시안컵의 패퇴를 다시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고 설명... 기사 말미를 보면 2001년 13회 아시안컵은 우리도 우승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하고 (역시 올해말 나올 기사와 오버랩될 듯) 있습니다.
그리고 그 2000년 대회와 2004년의 12, 13회 대회는 99년의 이 기사가 예측이라도 한듯 일본이 연속으로 우승하면서 3번째 우승으로 우승수에서 우리에게 앞서버립니다. 

그리고 그 후의 우리의 기억에 비교적 생생한 최근대회의 성적은 이러합니다 (왼쪽부터 개최국, 1, 2, 3위). 우리는 만년 4강국이 되었습니다 (운없게도 이란과 5개 연속으로 8강에서 붙어 힘을 소진한 것도 있지요).
=======
마무리

서두에서 이야기한 주제는 두 가지. 1) 아시안컵의 중요성, 2) 그리고 우리는 과연 2군을 내보내서 우승못했나. 1번은 이미 서두에서 설명드렸습니다. 그럼 아직도 축구전문게시판에서조차 '80-90년대까지도 그동안 아시안컵을 너무 무시해서 우승을 못했다'라고 떠도는 정보는 과연 사실인가.

이는 사실과 오류가 섞여 있습니다. 

우선 위에서 살펴보았듯 우리가 2군을 내 보낸 대회는 추정치까지 포함해도 60년대와 70년대 한정입니다 (3~6회 (64, 68, 72, 76), 그리고 10회 (92년))입니다. 즉 1-2회 우승을 손쉽게 한후, 이 대회를 우습게 보고 60년대와 70년대를 허비한 감이 강합니다. 92년은 이미 언론에서 맹렬히 비판하듯 오류였구요. 

즉, 일부 네티즌이 말하는 '80년대 혹은 90년대까지도 우리가 제대로 참가하지 않아서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80년대부터는 최정예가 나가도 제대로 준비하고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우승할 수 없는 대회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 저 굵은 체의 인식은 '우리가 아직도 자만하고 꿈꾸고 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황이 이럼에도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이 권위있는 대회를 고작 몇개월 앞둔 지금도 '아시안컵에는 차출마라', '그래도 우승할 수 있다' 등의 일부 팬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지요. 보고 있자면 속이 탑니다. 92년 최초로 우승한 일본은 그동안 이 대회의 중요성을 인지, 집중해서 무려 4차례로 최다우승국이 됩니다. 그리고 해외사이트들을 가보면 따라서 해외팬들은 아시아 대륙챔프는 당연히 일본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전 국가대표주장이자 스타였던 박지성선수의 꿈은 대부분 이뤘다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꼭 이루고 싶지만 못이룬 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2011년 아시안컵 우승입니다 (네, 팬들이 나서서 차출하지 말자던 14회 대회). 2019년 대회는 박지성의 꿈중 하나였지만 그가 이루지 못한 3번째 우승을 손흥민이 들어올리는 장면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2023년 개최도). 

다시 말씀드리지만 아시안컵은 월드컵 다음으로 중요한 대륙의 진정한 A대표 챔프를 뽑는 최고 권위의 FIFA 대륙컵입니다.

2019년 아시안컵 홍보영상




핑백

덧글

  • 홍차도둑 2018/08/12 12:01 #

    더 설명한다면 1-2회때에는 중동의 강호들이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3회 이후부터 중동의 강호들이 아시안컵에 대거 참가합니다.
    인도 이야기도 같이 설명해야 하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영국 영향력에 있던 중동 지역들이 축구가 상당히 강했습니다. 인도도 그 끝발이 쪼끔 남아있던 때로 추측되는 시기죠.
    그런데 그 때 그 강자들이 참가 안했던 대회의 우승입니다. 진정 최강자라 보기가 어려운 우승 2회인 거죠.

    저도 오래전부터 주장하던게 '그놈의 아시안컵 우승 및 아시안게임 우승(2014년 빼고)은 엄청난 거품이 낀거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로 [한국은 아시아 최강이었었던] 이라는 명제를 성립시킬수 없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죠.
    한국의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을 빼놓고 3차례 아시안게임 우승도 다 따져보면 2회의 공동우승(당시 버마. 북한)이 있었는데 이때 결승전은 연장부나 재경기가 없던 때입니다. 일정 때문에 90분 경기 끝나면 그냥 거기서 끝. 이던 때였어요 2차례의 공동우승이 현재같은 룰로 치뤄졌다면 반드시 우승한다는 보장이 없던 때입니다. 1986 서울 아시안게임때에는 그야말로 치트키를 하나 빼놓고 왕창 써버린 대회였습니다. '아마추어만 출전할 수 있는 대회'에 FIFA규정의 미비라는 점을 파고들어서 프로 선수들을 모조리 출전시켰습니다. 대놓고 말하자면 U17대회에 U23선수들이 나가서 우승한 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이런 우승성과를 놓고 과연 '아시아 최강' 이라는 명제가 성립할까요? 반쪽대회나 다름없던 때에 아시안컵 우승과 '제대로 결승전 끝내지도 못했고'+'상대 아마추어선수들 나왔을 때 프로들을 대거 투입해서 우승'한 우승이 과연 제대로 된 우승이냐는 부분도 있죠.

    이미 1960년대 들어서면서 중동세에 많이 밀렸습니다. 그 당시(1960-1970년대) 진정 '아시아 최강' 이라 할만한팀은 이란이죠. 반박을 하려 해도 할 것이 없습니다.

    당시 프로화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아시아 최강을 가린다는 상징성이 있는 경기들이라면 아시안컵-월드컵 지역예선-올림픽 지역예선 요 3가지를 들어야 하는데 한국이 당시의 이 대회중 아시안컵을 등한시 했다고 '가정' 하더라도 올림픽 지역예선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1위 한 적이 없던 것만으로도 '한국이 아시아 최강' 이라는 것은 개구라라는 것이 쉽게 증명됩니다.

    당시 아시안컵-월드컵 지역예선-올림픽 지역예선은 FIFA까 '아시아는 프로팀이 없다'는 해석을 하던 때라서 참가팀들이 모두 최강의 A팀을 구성해서 나왔던 때입니다. 더구나 월드컵과 올림픽은 한국 입장에선 아주 중요한 대회였던 만큼 아시안컵만 굳이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1.2회 대회의 우승도 쉬운것은 아니지만 당시 아시안컵의 위상을 보더라면 1955년 이전까지의 아시아 권역 내의 '아시안컵-월드컵지역예선-올림픽지역예선'은 현재의 위상과 비교가 안되는 반쪽 이하로 평가할 수 밖에 없어요.

    단적으로 말하자면 지금도 '아시아 최강권 6-8팀 정도를 꼽아라' 라면 한국은 늘 들어갈 수 있겠지만 '최강자 한팀'으로 꼽을 땐 애매한 위치라는 겁니다. 특히 1996년 올림픽 지역예선을 마지막으로 월드컵과 올림픽 지역예선은 '한자리에 모두모여' 하지 않습니다. 월드컵, 올림픽 본선 티켓을 땄다 하더라도 '최강권' 이라 하기 어려워졌죠. 거기에 아시안게임도 한국의 1986년 '깽판짓' 이후 중동팀들은 U-23 선수들 위주로 출전시켜버려서 A매치 집계할 때 아시안게임이 A매치에서 '어떤 경기는 A매치, 어떤 경기는 others매치'로 분류해서 따로 집계해야 하는 상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시안게임을 2014년까지 우승 못한게 한국축구입니다.

    벌써 25년전부터 제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이나 '대한민국 축구는 아시아 최강' 운운하면 '한국은 아시아 최강이었던 적이 없는데?' 라고 하곤 하죠. 아시안컵 뿐만 아니라 월드컵-올림픽 지역예선도 같이 보면 더 확실해집니다.
  • 역사관심 2018/08/12 12:15 #

    홍차독둑님의 댓글을 기대했습니다 ㅎㅎ. 아시안게임도 실은 항상 어려웠죠... 이상황에 2011년 왕의 귀환이니 뭐니...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내년도.
  • 축구장의 거인들 2019/01/02 18:27 #

    좋은 글인데 이제야 보게되었네요. 아시안컵 예선과 본선으로 나눠 간략히 첨언합니다.

    1956년: 필리핀, 대만을 차례로 제치고(홈&어웨이) 본선진출 (예선 본선 모두 1진)
    1960년: 전대회 우승국 및 개최국 자동출전 (본선 1진)
    1964년: 전대회 우승국으로 예선 면제. 본선 2진 출전 (1964년 도쿄올림픽 예선과 중복)
    1968년: 일본2진 및 대만에게 패해 본선행 좌절 (1진 출전)
    1972년: 이스라엘 기권으로 예선 없이 본선 진출. 본선 1진
    1976년: 말레이시아, 태국에게 패해 본선 좌절 (1진 출전)
    1980년: 중국,마카오,필리핀에게 3연승으로 본선행 (예선 본선 모두 1진)
    1984년: 북예멘,파키스탄,인도와 2승 1무로 본선행 (예선 본선 모두 1진)
    1988년: 예선에 대학선발 출전. 바레인에 0-2패, 조2위로 본선행. 본선은 1진
    1992년: 예선에 실업선발 출전. 태국에 1-2패. 본선 좌절

    이후의 상황은 생략해도 되겠죠...글에서 언급하신 대로 아시안컵에 관심이 없었다 하면...오히려 일본 쪽일지도 모릅니다. 일본은 1956~1964년엔 아예 예선에도 안나왔고 1968년에 2진이 나와서 한국은 이겼지만 탈락했고요, 1972년, 1980년,1984년 불참, 1976년에는 중국,북한에 밀려 탈락, 1988년에는 대학선발이 예선에 나가서 본선 진출했지만 본선에도 대학선발이 출전(...) 에...그러니 일본은 1992년 이전까지 1진이 아시안컵 예/본선에 나선건 1976년 단 한번뿐이네요.

    아예 관심이 없어서 우승을 안했다는 명제가 성립하려면 일본처럼 불참을 했어야 나름의 명분(?)이라도 있을텐데 한국은 1회부터 예선/본선 막론 개근참가한 유일한 팀이라서요 :-)))
  • 역사관심 2019/01/04 08:41 #

    궁금했는데 귀한 정보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런 건 진짜 어디서도 얻기 힘든 정보인지라 ^^; (언론도 이런 걸 좀 짚어줘야 진짜 흥미로운 역사가 되는데 말이지요).

    관련질문이 더 있는데 혹시 정보가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1) 68년에는 중석팀이 참가한걸로 알고 있었는데 혹시 정보가 있으시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72년도에는 확실히 상비군 (2군)이라고 기사에 되어 있는데 1진이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2) 일본은 50-80년대 자주'불참'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과의 역대전적만해도 92년 프로출범이전까지는 그야말로 지금 중국수준으로 완전히 밀리고 있던 게 일본국대였는데 (1957년부터 1991년까지 32승 11무 7패), 혹시 축구자체가 당시 황금기를 구가하던 프로야구에 완전히 밀려서 사회적인 관심자체가 없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즉, 자신들의 전력이 안되는 걸 알고 지레 나오지 않은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80년대말까지도 확실히 수준차가 났던 것이 제가 직접 한일전 2경기를 당시 가서 봤거든요 (특히 86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잠실전에 가서 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스코어는 1:0이었지만 그냥 가지고 놀던 수준이더군요. 내용은 3:0급. 그냥 여유있게 패스를 돌리면서 일본선수들은 따라오기 바쁘고, 위기다운 위기도 없고, 기본기도 완전차이나던 기억). 실력은 되는데 관심이 없었다는게 아니라 나왔어도 그닥 성적이 안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사견입니다.
  • 축구장의 거인들 2019/01/06 01:16 #

    1. 1968년 아시안컵 지역예선 3조 경기는 1967년 7월말부터 8월초까지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전적은
    1967.07.29 대 인도네시아 1-1 무
    1967.08.01 대 일본 (2진) 1-2 패
    1967.08.05 대 필리핀 7-0 승
    1967.08.07 대 대만 0-1 패

    1승 1무 2패 조 3위로 탈락. 1위 대만 3승 1무 득실 +11, 2위 일본 3승 1무 득실 +4
    1위인 대만이 본선에 오릅니다. 이당시 한국팀의 대만전 라인업을 보면,

    GK 이세연
    FB 김호 김정석
    HB 홍인웅 서성오 강수길 (후반 김정남)
    FW 주민환 조윤옥 (후반 안원남) 이회택 허윤정 정병탁
    감독 장경환

    다른 경기들도 라인업은 대동소이했습니다. 이 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은 곧이어 8월 11일부터 벌어진 메르데카컵에도 출전합니다. 이때는 양지 선수들이 주축이었고 대한중석 (김정석 서성오 조윤옥), 제일모직 (홍인웅 안원남) 등의 선수들이 합류한 형태였습니다.


    2. 1972년

    제가 착각했습니다만 1972년 아시안컵 지역예선에서 한국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일본, 필리핀, 대만과 같은 조였습니다. 그런데 세팀이 모두 기권하면서 본선에 진출(...)하게 되는데요.

    1971년 12월 14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보면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시키기 위해 '상비군'을 발단시킨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당시까지는 대표팀이 대회때마다 구성되어 나가는 형태여서 상비군이라는 형태가 조금 낯설었기 때문에 굳이 '상비군'이라는 표현을 쓴듯 한데요. 1971년까지는 대표팀을 보통 '청룡'이라고 불렀지만 1972년에는 이 호칭을 쓰지 않고 상비군으로 칭하고 있습니다. 1973년부터는 그냥 국가대표라고 하고 1976년부터는 '화랑'으로 칭하고 있죠. 뭐 어쨌든 명칭은 차치하고 중요한 것은 그 대회에 출전한 한국팀의 면면이겠죠.

    이라크와의 1차전(조편성경기)에 출장한 라인업을 보면:

    GK 이세연
    FB 김호곤 김호 김경중 박영태
    HB 고재욱 황재만
    FW 차범근 박수덕 이회택 박이천

    알려진 대로 1972년 4월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 멤버였던 황재만과 차범근이 대표팀으로 승격해서 처음 출전한 것이 이 아시안컵이죠. 아시안컵 출전 직전인 1972년 4월 30일에 동대문에서 '자카르타 대회 출전팀(2진에 해당)'과 이 상비군이 평가전을 합니다. 이때 멤버가 거의 그대로 아시안컵 엔트리에 들어가게 되죠. 아시안컵 5경기 모두 저 라인업이 중심이 되어 출전합니다.


    3. 사실 일본이 아시안컵에 유독 불참했던 이유는 저도 매우 궁금하긴 한데요, 단순히 자신이 없었다거나, 아시안컵을 경시했다거나 하는 것으로 추측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 종합대회인 아시안 게임에 개근한 것을 그렇다 쳐도, 단일 축구대회인 메르데카 대회에도 한국 수준으로 자주 출전한 것이 일본 대표팀이었으니까요. 일본은 1986년까지 메르데카 대회에 출전한 기록이 있습니다. 제 추측으로는...아시안컵이 올림픽과 같은 해에 열려서가 아닐까 하는데요. 이것도 근거는 좀 약하긴 합니다.

    2진을 내보내고도 한국을 격파하고 대만과 동률까지 이뤘던 1968년 아시안컵의 경우가 대표적인데요. 앞서 보셨다시피 1967년 7월말부터 시작된 아시안컵 예선에 일본 2진이 출전할 당시, 올림픽 예선을 준비하던 1진은 브라질 원정가서 현지 클럽팀들과 연습경기를 합니다 -_-;; 1971년 여름에도 일본 대표팀은 그해 9월말에 있을 올림픽 예선에 대비해 유럽 원정을 가고요...

    일본이 과거부터 월드컵과 올림픽, 특히 올림픽에 집중해온 것은 명확히 드러나긴 합니다. 애초에, 일본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제치고 8강에 오른 전적이 있었거든요. 1956년에도 본선에 올랐고, 자국에서 개최한 1964년 대회에서도 8강에 갑니다. 잘 알려졌듯이 1968년엔 동메달을 따죠. 이후 23세 이하로 바뀐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서 28년만에 올림픽에 복귀하지만, 이미 올림픽이 사실상의 A매치로 운영되던 시절에 이미 4번이나 본선에 가서 3번 8강 이상의 성적을 내죠.

    1992년 아시안컵에서 개최국으로 우승하기 전까지, 일본은 1976년 지역예선을 제외하곤 단 한번도 1진을 내보낸 적이 없습니다. 1976년 지역예선은 중국, 북한, 홍콩 등 지역라이벌들과 대결이 예정되어 있어서 조금 신경을 쓴 느낌이 들긴 합니다....

    4. 조금 다른 부분이긴 합니다만, 1968년 이란의 등장 이후, 그리고 1970년대 초 아랍계열들이 단결하여 이스라엘을 AFC에서 축출한 것을 계기로 중동 국가들이 아시안컵에 크게 신경쓰기 시작한 것은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실제로 1968년 이란의 우승 이후, 1992년 일본이 우승하기까지 6대회를 중동팀들이 휩쓸거든요. 오일 머니의 영향력과 거리의 가까움을 감안해도 1980년대에 이미 잉글랜드, 소련 등 유럽국가의 대표팀들이 중동 지역에 가서 친선경기를 곧잘 했는데, 그 상대들이 그 당시의 아시안컵 우승국 출신인 쿠웨이트나 사우디였던것만 봐도 타대륙에서도 아시안컵 우승팀을 아시아의 강자로 인정했다는 반증이 되긴 하죠.


  • 역사관심 2019/01/07 03:55 #

    너무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축구장거인님의 정보로 수정할 부분은 더 추후 수정해봐야겠습니다. 다시 감사드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