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찾은 19세기말 2층 시전행랑사진 한국의 사라진 건축


한국의 사라진 대건축물 (17)- 2층상가와 1,300칸의 행랑- 운종가(雲從街)와 대시(大市)의 조선전기모습 포스팅에서 말씀드렸던 정부산하 기관인 문화컨텐츠닷컴의 '운종가'설명을 보면 항상 주목하게 되는 부분이 굵은 체 부분이었습니다.

=======
"[문화컨텐츠닷컴]에 나오는 조선시대 거대한 시장거리인 "운종가"편을 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운종가(雲從街)의 위치는 대략 혜정교(광화문 우체국 동쪽)부터 철물교(종로 3가 입구)였으나, 태종 5년 (1396년) 규모를 확장하면서 지금의 안국동으로부터 광교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이들 건물은 2층 목조기와집이었고 상층은 창고, 하층은 점포로 사용되었다. 또한 개별 시전은 여러 행랑이 연이어 있는 건물에서 영업을 했는데 이를 방(房)이라 하였다.

분명 2층목조기와집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적어도 실록을 모두 뒤져보아도 이에 해당하는 문헌기록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유구연구로 밝혀진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정보에는 citation정보를 좀 적어주면 좋겠군요). 추후 발견되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 운종가의 건물중 많은 건물이 2층목조 기와집이었고 상층이 창고, 하층은 점포로 사용되었다는 저 구절은 필자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문헌자료를 뒤져보아도 14세기 태종대의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혹 아시는 분이 계시면 댓글로 알려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시기는 구한말이지만 이 2층상가건축으로 보이는 '사진'을 드디어 한장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아직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아마도 저 문화컨텐츠닷컴의 운종가 설명은 어쩌면 이 사진과 관련논고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현재까진 듭니다.

이 논문은 1995년 발표된 허영록선생의 [조선시대 도시계획의 기본요소로서 시전에 대한 연구] (서울학연구 6, 1995. 12)으로 관련부분은 다음입니다.

"1884년 프랑스인 모리스 꾸랑은 "광통교 근처에 중요한 상인조합의 본거지인 대 여섯 채의 2층집..."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이것으로 보아 서울에는 2층 구조의 도가가 여러 곳 있었던 것 같다. 2층은 사무실뿐만 아니라 ​창고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당시 시전 건물구조에 대해서는 기록에 의하면 당시 대로에 접한 시전은 거의 모두 기와집으로서 약간의 굴곡이 있는 지붕선이고, 문짝은 두꺼운 나무판으로 만들고, 내부에서 빗장을 치고 외면에는 동그란 철제로 장식을 만들었다. 또한 판매하는 곳에는 상판을 깔고, 천장은 중천도 하지 않았었다. 가게의 뒤편은 가족의 거주실로서 크기의 차이는 있었어도 모두 온돌방이고, 중앙에는 중정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ㄱ’자형, ‘ㄷ’자형, ‘ㅁ’자형으로 방, 창고, 복도, 부엌 등을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 기거하는 곳은 반드시 바닥에 온돌을 마련한다. 

외부 벽은 두꺼운 벽돌(구운 것)을 쌓고 그 위에 작은 창을 냈다. 문은 한 쪽이나 두 쪽으로 닫고 열게 했었다. 그리고 마당에 위치한 곳은 마로에서 일척 정도 높여(문지방) 출입구를 만들었다. 일반적으로 방은 좁고, 천정 또한 얕으며 창구도 작으므로 아늑하지만 채광이 충분하지 못하여 음침하다고 하였다. 보통 점포는 전후 두 부분으로 구분하여 시가 쪽은 상점을 배치하고 뒤 부분에는 가족의 주거 공간이었다. 또한 각 상점은 특종의 공장을 같은 건물 내에 설치했었다. 

이는 각 도가에 각 전 취급 상품을 제조하는 공장이 부설되어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고 그 양상이 꼭 일치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한다. 또 입전의 구조는 1방부터 7방으로 구분되어 각 방의 면적은 열 칸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을 다시 10등분하여 영업에 종사했었다. 이것으로 추정하면 입전의 도원수는 70명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시전의 종류에 따라 5방, 혹은 6방이라고 기록된 것도 있으나, 그 방수는 거의 비슷했고 또 시전에는 뒤편에 도가를 설치하여 시전 업무에 관한 회의 및 여러 가지 사무를 보던 곳으로 사용했고 그 크기는 65평 정도 됐던 것으로 추측되고 다를 시전 도가의 면적도 대체로 비슷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부분을 직접 보여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서 사진이 보입니다.

가마꾼 뒤의 기와집오른편의 2층건축이 보이시지요. 이 1907년 추정사진을 보면 이 곳은 종로고 7량구조의 2층목조건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고동환의 2007년 논고인 (조선후기 왕실과 시전상인)을 보면 아래는 가게, 위층은 창고로 쓰였음을 유추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확대하면 화질이 흐리지만 확실히 층이 구분되어 있음이 보이는데 앞서 소개한 허영록선생의 논고에서 "일반적으로 방은 좁고, 천정 또한 얕으며 창구도 작으므로 아늑하지만 채광이 충분하지 못하여 음침하다고 하였다."라고 된 설명과도 일치합니다. 즉, 일층의 경우 꽤 어두운 풍경을 연출했을 법합니다.

그럼 이 건물은 당시 일부에서 유행하던 일본식 상점을 본따 2층으로 지은 것일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본 논고에서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 이 부분을 다룬 원전이 '모리스 꾸랑'이 보고 적은 [한국서지]라는 책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 한국서지라는 저서는 1894~1896년 프랑스의 서지학자 꾸랑이 고려시대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에서 구한말의 한성순보(漢城旬報)에 이르는 3,821종의 도서를 총 9부로 나누어 정리한 책으로 자신이 공부한 내용외에 보고 들은 것을 종합해서 적은 것입니다.

즉, 이 "광통교 근처에 중요한 상인조합의 본거지인 대 여섯 채의 2층집..."이란 표현은 그가 1894년을 전후로 본 것으로 일본건축의 영향을 본격적을 받기 시작한 1910~20년대보다 훨씬 이전의 건축물들인 것입니다.
1907년 찍힌 시전행랑 2층건물

이 포스팅 이후 더 확실한 사진을 입수 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를 주신 "책 한 줄 영화 한 줄"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의 사진으로 훨씬 고화질입니다.
확대해 보지요.
논문에 실린 어두운 사진과 달리 명확히 복층구조로 위아래 모두 벽체와 창문이 있는 건축물임이 드러납니다. 아래쪽에는 보이지 않던 성인남성이 보여서 높이를 짐작케 합니다.

그다지 비슷하지도 않아보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너무 시차가 큰 건축인지라 관련성을 찾기 힘들지 모르지만, 그냥 필자의 '감'으로 이 건물과 언뜻 비슷해보이는 건축이 하나 있어 소개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다음은 예전에 몇차례 소개한 강세황(姜世晃, 1713~1791년)의 [송도기행첩 (1757년)]에 등장하는 개경(개성)의 남대문 거리에 나오는 필자가 추정한 2층건축입니다. 앞과 옆에 붙은 차양형식의 지붕이 같은 건물의 1층인지 아니면 부속건축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주변 1층건물과 비교하면 확실히 2층높이지요.
1757년 개성 남대문을 그린 송도기행첩 중 확대


이 그림을 보면 모리스 꾸랑이 표현한 1894년과 약 150년전의 차이가 있고 서울과 개성의 지리적 차이도 있지만, 아래 그림에서 보시다시피 역시 대로를 중심으로 '상가'건축들로 보이는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대로변에 있는 2층건축이 필자의 뇌리에는 언뜻 오버랩되었습니다. 같은 시전건축이 아닐까 하는 느낌인데 아직은 대담한 가설일뿐 확실한 것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 모리스 꾸랑의 한국서지에서 관련부분을 제대로 들여도 보고 싶군요.





핑백

  • 까마구둥지 : 조선말 2층상점건물들 (추가발견) 2018-09-17 06:56:04 #

    ... 논고에서 발견한 이 사진을 바탕으로 조선말기의 2층상가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 풀렸었지요.[ 드디어 찾은 19세기말 2층 시전행랑사진] 바로 다음의 사진입니다. 포목점 2층(1907년) 이 사진은 ... more

덧글

  • 책 한 줄 영화 한 줄 2018/08/26 14:52 #

    '<그림 2> 1907년의 서울 시전사진'의 보다 선명한 도판을 본 적이 있는데, 글로 서술된 것과 꼭 닮은 2층 건물이었습니다.

    그 외로도, 1904년에 찍힌 사진과 연도미상의 다른 사진 두 장에도 각기 다른 2층 한옥 사진이 찍혀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한옥에 대해 관심이 많으면서도 2층 상가 한옥은 서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하고 넘어갔었는데, 까마구 둥지님 블로그 글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08/27 04:50 #

    아, 그 도판을 보고 싶네요. 정말 궁금합니다. 좋은 댓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18/08/28 00:0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8/28 03:1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응가 2019/05/10 02:35 #

    1910년도에 개성 남대문통을 찍은 사진입니다. (http://www.museum.go.kr/dryplate/viewer.do?relicnum=037590)
  • 역사관심 2019/05/11 00:27 #

    응가님> 처음 보는 사진입니다. 왼쪽에 한글간판뒤에 2층비슷한 상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귀한 사진 감사합니다!
  • 응가 2019/05/11 14:32 #

    왼쪽도 그렇지만 오른쪽 건물들은 전부 2층상가건물로 보여집니다.
  • 역사관심 2019/05/11 23:53 #

    맞는 것 같습니다. 사진이 조금만 더 클로즈업되었다면 일본식가옥인지 조선식인지 판단이 될텐데 아쉽네요.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9 대표이글루_음악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4 대표이글루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