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말 2층상점건물들 (추가발견) 한국의 사라진 건축

항상 가지고 있던 궁금점 중 하나가 반 정도 풀리고 있는 요즘입니다. 


문화컨텐츠닷컴]에 나오는 조선시대 거대한 시장거리인 "운종가"편을 보면 이런 설명이 있습니다.

"운종가(雲從街)의 위치는 대략 혜정교(광화문 우체국 동쪽)부터 철물교(종로 3가 입구)였으나, 태종 5년 (1396년) 규모를 확장하면서 지금의 안국동으로부터 광교 일대까지 확대되었다. 이들 건물은 2층 목조기와집이었고 상층은 창고, 하층은 점포로 사용되었다. 또한 개별 시전은 여러 행랑이 연이어 있는 건물에서 영업을 했는데 이를 방(房)이라 하였다."

분명 2층목조기와집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적어도 실록을 모두 뒤져보아도 이에 해당하는 문헌기록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유구연구로 밝혀진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정보에는 citation정보를 좀 적어주면 좋겠군요). 추후 발견되면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실록의 기록부터 연대순으로 살펴보지요.

필자의 궁금증은 협의로는 '태종대인 14세기의 2층점포'기록에 대한 것이었지만, 20세기초까지도 활발하던 운종가를 비롯한 조선의 2층상가 전반에 관한 존재여부에 관한 광의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한 논고에서 발견한 이 사진을 바탕으로 조선말기의 2층상가에 대한 궁금증은 조금 풀렸었지요.[ 드디어 찾은 19세기말 2층 시전행랑사진] 

바로 다음의 사진입니다. 
포목점 2층(1907년)

이 사진은 1907년 찍힌 것으로 오른쪽 뒤로 2층 포목점건물이 보입니다. 위 포스팅에서 관련부분을 조금만 발췌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995년 발표된 허영록선생의 [조선시대 도시계획의 기본요소로서 시전에 대한 연구] (서울학연구 6, 1995. 12)으로 관련부분은 다음입니다.

"1884년 프랑스인 모리스 꾸랑은 "광통교 근처에 중요한 상인조합의 본거지인 대 여섯 채의 2층집..."이란 기록을 남겼는데 이것으로 보아 서울에는 2층 구조의 도가가 여러 곳 있었던 것 같다. 2층은 사무실뿐만 아니라 ​창고로도 사용되었을 것이다. 

당시 시전 건물구조에 대해서는 기록에 의하면 당시 대로에 접한 시전은 거의 모두 기와집으로서 약간의 굴곡이 있는 지붕선이고, 문짝은 두꺼운 나무판으로 만들고, 내부에서 빗장을 치고 외면에는 동그란 철제로 장식을 만들었다. 또한 판매하는 곳에는 상판을 깔고, 천장은 중천도 하지 않았었다. 가게의 뒤편은 가족의 거주실로서 크기의 차이는 있었어도 모두 온돌방이고, 중앙에는 중정을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ㄱ’자형, ‘ㄷ’자형, ‘ㅁ’자형으로 방, 창고, 복도, 부엌 등을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일반적으로 가족이 기거하는 곳은 반드시 바닥에 온돌을 마련한다. 

허영록 선생의 설명을 보면 19세기말인 1883년 프랑스인인 꾸랑이 이미 6채의 상인조합 건물을 이야기했고 (광통교 근처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운종가), 기록으로 모두 기와집이며 문짝은 두꺼운 나무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예전부터 눈여겨 보던 몇장의 사진중 일부가 바로 조선시대 말기의 '2층 상가건물'이 아닌가하는 추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의 건축물들입니다.
========

또다른 조선말 2층상가건물들

첫 사진은 1904년에 찍힌 '한양의 시장' 모습입니다. 사진 앞쪽으로 시장에 모여든 인파가 보이지요. 이 사진은 고맙게도 Rerefence정보가 함께 있는데 영문을 보면 "장날, 서울, 한국. 한국의 시골인파가 물건을 사며 하루를 통째로 보낸다"라고 설명되어 있어 이 곳이 장날이며 또한 상가건물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 장터 2층건물 (1904년)

보통 장터라 함은 상가들이 상주하는 곳에서 꼭 열리는 것이 아닌 공터에 가건물이 들어섰다가 철거되거나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식으로 조선후기에는 운영됩니다만, 이런 상가들이 있던 곳에서 열리던 장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이 사진에는 명백한 2층건물이 등장하는데 1907년의 2층 포목점과 매우 흡사한 구조로 보이지요.
1층의 보첨처럼 보이는 부분의 밑을 보면 성인남자가 한명 서있어서 그 높이를 대강 짐작케 합니다. 특히 이 사진은 '서울, 장날'이라고 되어 있어 정확히 어느 곳이었는지, 즉 저 2층건물이 실제로 운종가등의 기록에 나오는 2층상가인지 매우 흥미롭습니다.

모리스 꾸랑은 당시 2층시전의 구조에 대해 "당시 대로에 접한 시전은 거의 모두 기와집으로서 약간의 굴곡이 있는 지붕선이고, 문짝은 두꺼운 나무판으로 만들고, 내부에서 빗장을 치고..."라는 설명을 남겼습니다. 이 기록에 부합되는 듯한 사진도 발견했는데 다음의 것입니다.
주물상 (1903년)

이 사진은 1903년 찍힌 주물상점으로 성인남성이 아래 앉아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이 남자가 서있을 경우의 높이를 따져보아도 이 건물은 (중간에 보첨이나 중첨지붕구조는 없지만), 2층으로 추정되는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꺼운 나무판'으로 2층을 대어 놓았지요.
=====

마지막으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평양시장통]이라고 이름붙은 구한말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보통 거대한 2층기와집으로 주목받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현재 장문의 글을 따로 작성하는 중이라, 추후 소개하겠습니다), 필자는 가운데 있는 건물에 시선이 갔습니다. 많이 허름해진 외양의 이 건물은 분명 2층으로 중간부분이 보첨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가판대에 두고 파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시장통에 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장소는 평양이지만 위에서 소개한 광통교부근의 2층상가건축들과 일맥상통하는 구조를 가진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평양시 시장통 2층상가 추정건물 (구한말)
========

이상으로 네 장의 이층상가건물로 추정가능한 건축물들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2층구조의 상가는 흔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많은 단층 혹은 가건물사이에 드문드문 있던 구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 거의 철저히 잊혀진, 어디서도 실물을 볼 수 없는 건축이기도 합니다.

관련연구가 더 활발히 이루어져 그 정확한 구조와 용도를 알게 되면, 앞으로 전통장이나 민속촌등에서도 도입해 볼만한 흥미로운 건축물이 아닌가 합니다.


덧글

  • 迪倫 2018/09/17 11:29 #

    흥미있는 사진들입니다.

    혹시 도움이 되실지 해서 알려드립니다. 18세기말인 1794년경에 대마도통사 오다이쿠고로(小田幾五郞)이 조선의 이모저모에 대해 백과사전적으로 정리한 책 상서기문(象胥紀聞)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京中에 있는 商人들 집은 모두 이층이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상인들의 거래형태 등등으로 건물에 대한 내용은 단 한 구절이긴 합니다. 어쩌면 적어도 18세기 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건물 형태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서기문은 대구대학의 구리다 에이지 선생이 한글로 번역한 책이 시중에 나와있습니다만, 원문을 담고있지는 않습니다. 해당 책의 29페이지에 저 구절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책은 "상서기문", 대구대학교인문사회과학총서 16, 2005입니다. 참고하시면 합니다.
  • 迪倫 2018/09/17 11:33 #

    참고로 오다이쿠고로는 아메노모리 호슈가 설립한 대마도의 조선어 교육기관을 나와 홰관에서 오래 거주한 당시 최고의 조선통이었습니다. 이 상서기문은 동래의 왜역관들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책입니다. 일부는 동래왜역관들이 고의로(?) 오류를 알려준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부분 18세기말 조선 사정에 대단히 자세한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일본이 조선을 어떤 의도로 정탐하였고, 이에 동래역관들이 '반민족적'으로 가담했다는 정도의 가치로만 파악하고 국사학계의 활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09/18 07:02 #

    적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말 (!) 흥미로운 정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정말 흥미로운 구절이네요). 어디서 구해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정보는 따로 저장해두었습니다. 시리즈글 흥미롭게 읽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09/18 07:40 #

    두번째 댓글을 읽으며 다시 한번 작은 실망감을 감출수 없습니다...
  • Fedaykin 2018/09/17 13:38 #

    2층에서 난방은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네요. 보통 상가건물이면 1층이 가게고 2층이 주인이 생활하는 공간일텐데...온돌은 당연히 아닐테고. 흐음...
  • 역사관심 2018/09/18 07:03 #

    보통 저런 집들은 상점의 보관창고용이 많았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습기도 없고 보관용으로 좋았겠지요. 1층은 상점, 그리고 그 후방에 온돌살림집.
  • Fedaykin 2018/09/18 10:52 #

    거주공간이 아니었군요! 감사합니다
  • 천하귀남 2018/09/17 17:07 #

    2층에서 난방을 할 방법이 없으니 2층 활용이 제한되고 창고 용도로나 사용하게 된것 아닌가 합니다.
    화로등을 사용하면 2층 사용이 불가능 한건 아니겠지만 그러면 화재를 피하기 어려우니 2층건물이 점점 사라진 원인일듯 합니다.
  • 역사관심 2018/09/18 07:04 #

    네, 그래서 소빙기와 맞물려서 확실하게 전면온돌이 전국으로 활성화되고 조선후기의 단층화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학계의 일설입니다.
  • 초효 2018/09/17 19:54 #

    제대로 된 2층이라기 보다 다락방 정도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8/09/18 07:06 #

    네, 세번째와 네번째의 경우 다락정도로 보입니다만, 첫 두 사진은 확실히 1-2층이 같은 높이의 중층식으로 보입니다. 말씀대로 생활공간으로 활용했다기 보다는 보관용이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다만, 두번째 건축의 경우 좀 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해보이네요).
  • 소심한 늑대개 2018/09/23 01:03 #

    주물상 사진 옆에 건축군은 근대식 별돌에 일본식기와가 보이는 거 같은데 1903년이 정말 맞나요? 이미 영향을 받은 건축물일지도..
  • 역사관심 2018/09/23 01:37 #

    일단 제가 찾았던 정보에는 1903년 주물상이라고 써있더군요. 확실한 정보가 나오면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