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선생의 어머니, 현명한 분. 독서

이분 보통분이 아니십니다... 김구 선생님의 어머니, 즉 곽낙원 여사님에 대한 이야기중 사실 독립운동이니하는 거창한 면모말고 고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이 부분이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다음은 백범일지 중.


나는 안신학교로 갔다. 내 아내가 안신학교에 교원으로 있으면서 교실 한 칸을 얻어가지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내는 다른 부인들 틈에 섞여서 잠깐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보이지 아니하였다. 그녀는 내 친구들과 함께 내가 저녁을 먹게 하려고 음식을 차리러 간 것이었다. 퍽 수척한 것이 눈에 띄었다. 중략.


아내는 서울서 책 매는 공장에도 다녔고 어떤 서양부인선교사가 학비를 줄테니 공부를 하라는 것도 어머니와 화경이가 고생이 될까봐 서 아니했노라고, 내외간에 말다툼이 있을 때면 번번이 그 말을 내세웠다. 우리 내외간에 다툼이 생기면 어머니는 반드시 아내의 편이 되셔서 나를 책망하셨다. 경험에 의하면 고부간에 무슨 귓속말이 있으면 반드시 내게 불리하였다.  내가 아내의 말을 반대하거나 조금이라도 아내에게 불쾌한 빛을 보이면 으레 어머니의 호령이 내렸다. 


"네가 옥에 있는 동안에 그렇게 절을 지키고 고생한  아내를 박대해서는 안된다. 네 동지들의 아내들 중에 별별  일이 다 있었지마는 네 처만은 참 절행이 갸륵하다. 그래서는 못쓴다" 하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집안일에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해본 일이 없었고 내외 싸움에 한번도 이겨본 일이 없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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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초반에 나오는 '안신학교'에 부임하는 시기는 바로 1915년의 일로 고부갈등과 며느리핍박이 역사상 가장 심했을 20세기초에 벌써 이 얼마나 현명한 분인지..요즘 시어머니들께서도 알아두시면 좋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경우 대부분 부부사이는 더 좋아집니다); 



덧글

  • 명탐정 호성 2018/09/21 15:02 #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22권

    대중국 외교활동
    1940년대
    168. 한국혁명진영 내부의 분규와 난맥상에 관한 보고 및 건의
    발신일1943년 9월 24일1943년 09월 24일
    발신자李光濟
    수신자朱家驊

    런 까닭에 김구의 모친은 임종을 앞두고 “아들아 빨리 각성해라! 과거 나라를 망하게

    만든 원흉이었던 기호파가 지금은 혁명사업(옮긴이 주 : 독립운동을 의미)을 파괴하고 있다.

    앞으로도 기호파와 어울려 그들의 허수아비 노릇을 한다면 너는 더 이상 내 아들이 아니다.

    기호파와 관계를 끊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고 유언할

    정도였습니다.





    나의 생각

    죽을때까지 독립운동을 걱정하다 가셨군요.

  • 역사관심 2018/09/25 02:44 #

    유명한 부분이지요. 정말 대단하신 분입니다. 모전자전.
  • 무명병사 2018/09/21 18:11 #

    깨인 분이군요! 저 시대에 저러기 쉽지 않은데...
  • 역사관심 2018/09/25 02:45 #

    그러게나 말입니다. 무려 103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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