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원소장 8세기 신라양탄자의 세밀함 정도 역사

작년 5월, 일본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는 약 45점의 신라시대 양탄자에 대한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진골이 수레에 깔던 바닥깔개 (양탄자 포함)에 대한 규정을 보면 당시 어떤 종류의 깔개가 유통되고 있었는지 파악 할 수 있습니다. 

진골의 수레에 대한 규정
거기(車騎) 신라(新羅)
진골(眞骨)

수레의 자재(車材)로 자단(紫檀)·침향(沉註)을 쓰지 못한다. 대모(玳瑁)를 부착하지 못하고 또한 감히 금·은·옥으로써 장식하지 못한다. 바닥깔개(褥子)는 능(綾)·견(絹) 이하를 사용하되 두 겹을 넘지 못한다. 좌석깔개(坐子)는 전(鈿)·금(錦)과 두 가지 색상의 능(綾) 이하를 사용하되, 테두리(縁)는 금(錦) 이하를 사용한다. 앞뒤 수레휘장(幰)은 작은 문양이 들어간 능(小文綾)·사(紗)·시(絁) 이하를 사용하되, 색상은 심청벽자자분(深靑碧紫紫粉)으로 한다. 낙망(絡網)은 사(糸)·마(麻)를 사용하되, 색상은 홍색(紅)·비색(緋)·취벽색(翠碧)을 쓴다. 장표(糚表)는 다만(且, 但) 견(絹)·포(布)를 쓰고, 색상은 홍색(紅)·비색(緋)·청표색(靑縹)을 쓴다. 소의 굴레(勒)와 가슴에 걸어 매는 끈(鞅)은 시(絁)·견(絹)·포(布)를 사용한다. 고리(環)는 금·은·유석(鍮石)을 금한다. 보요(步摇) 역시 금·은·유석을 금한다.

귀족층은 능(綾), 즉 비단과, 견(絹) 즉 명주를 주로 수레에 타서 쓰는 깔개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궁중수공업 관사에서 생산하였던 직물류가 굉장히 뛰어난 제품이 되는데 수출품으로 유명했습니다. 이는 중국과의 교역 물품 가운데 자주 보이는데, 7세기부터 비단류의 품목이 다양해지고 보다 섬세한 베가 생산됩니다. 

그 후 8세기 무렵에는 명주류와 모직물류가 새로이 발전하고, 五色氍毹 등 염색과 관련된 직물류의 이름이 많이 나타나고 있어서 염색기술상의 발전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9세기에 이르러서는 비단류에 문양을 내는 기술과 함께 가는 베류의 직조기술이 마직물이나 모직물의 직조에 응용되기도 했습니다 (원출처-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우리역사넷]에 나오는 신라시대 모직기술에 대한 정보).

1040년경 씌여진 신당서 (新唐書)의 신라전 (新羅傳)에서 “재상가(宰相家)에는 祿(녹)이 끊이지 않으며 奴僮(노동, 종/노비)이 3천 명이다. …”라고 전합니다. 즉, 하대신라의 귀족저택의 규모를 말해주는 기록으로 노비가 3,000명이면 이중 이상택의 하전이나 조남택 장인과 같은 이들이 충분히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들은 훗날 궁중수공업장에서 하급관리들이 수공업장을 경영하였던 것과 유사한 형태로 귀족층의 수공업 생산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 예를 들자면 [삼국사기], 869년의 다음의 구절입니다.

왕자 소찬 김윤을 당에 보내 물품을 진상하다 (869년 07월(음) )
9년(869) 가을 7월에 왕자 소판 김윤(金胤) 등을 당나라에 보내 은혜에 감사하였다. 아울러 말 2필과 좋은 금 1백 냥과 은 2백 냥, 우황 15냥, 인삼 1백 근, 큰 꽃무늬 어아금(魚牙錦) 10필, 작은 꽃무늬 어아금(魚牙錦) 10필, 조하금(朝霞錦) 20필, 40세짜리 올 고운 흰 모직포(毛織布) 40필, 30세짜리 모시옷감 40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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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이 곧다고 되어 있는데 어느정도를 말하는 걸까요?

이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실물이 있습니다. 위의 기록은 8세기이후 '모직류'의 수출기록인데, 이보다 약 110년 앞선 752년의 일본수출품이 바로 아래의 정창원 소장품입니다. 한번 볼까요.

일단 앞면은 예전에 소개했듯 이러합니다. 사슴그림이 일정하게 대칭으로 그려져 있지요.
신라 모전(毛氈) 앞면

그럼 뒷면을 한번 볼까요?

이것이 바로 위의 신라 양탄자(毛氈)의 뒷면입니다. 보시다시피 왼쪽에 자로 측정가능케 해두었는데  기본적으로 1밀리미터마다 촘촘히 베로 짠 것이 보이지요.  이는 요즘의 기계로 짠 양탄자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세밀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래사진은 기계로 짠 최첨단 고급 양탄자의 뒷면입니다. 이 양탄자는 Sisal Carpet Rug으로 사이잘은 아프리카등에서 채취되는 용설란과 식물로 우리로 치면 삼베같은 느낌의 식물입니다. 
기계로 짠 현대 사이잘 양탄자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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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의 저런 구절을 읽어도 실제로 한번 보는 느낌을 사진으로나마 체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 생각해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저런 무늬의 카펫을 자주 구현하면 좋겠군요.





덧글

  • 남중생 2018/09/24 17:51 #

    양탄자라니, 흥미롭네요.@@
  • 역사관심 2018/09/26 01:33 #

    양탄자는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깔아야 하고 발전될 수 밖에 없던 물건인데, 우리에겐 다 잊혀졌죠. 온돌의 위엄.
  • 진냥 2018/09/24 22:23 #

    헤이안 시대 [마쿠라노소시]에서는 예쁜 '고려 돗자리'가 있으면 수명이 늘어나는 것 같다는 서술이 있고, 루이스 프로이스의 [임진란의 기록]에도 조선의 돗자리는 무척 정교해서 일본인은 물론이거니와 포르투갈인까지도 감탄한다는 서술이 있는데, 이러한 평가의 원조가 신라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털로 짠 양탄자라니 더욱 굉장합니다!
  • 2018/09/26 01:3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진냥 2018/09/28 08:58 #

    [마쿠라노소시]는 어느 판본이나 있을 듯하지만 제가 읽은 것은 갑인공방 2004년판입니다!
    루이스 프로이스의 [임진란의 기록]은 살림 '그들이 본 우리'총서에 있습니다. 다행이도 이건 인용한 내용이 있어서....
    http://romancer.egloos.com/7277688
  • 역사관심 2018/09/28 10:09 #

    오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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