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의 또다른 2층건물- 내소사의 요사(寮舍) 한국의 사라진 건축

지난 여름에 내소사에 들렀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띄는 곳이 있더군요. 바로 사진속의 여기였습니다 (이 사진은 필자가 찍은 것은 아닙니다- 사진출처). 이 건물은 2층인데 너무 명확한 형태를 갖추고 건물색도 새하얀 색이라 최근에 만들어진 건축물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이라 (특히 전체적인 건물의 구조가 조선중기형식처럼 보이는지라) 사진을 여럿 찍었습니다. 무엇보다 경내에 이런 이질적인 건물이 있는 사찰은 거의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질감이 어디서 왔는지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요.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 (設禪堂과 寮舍)

변산에는 원래 4대 사찰이 있었습니다. 선계사(仙溪寺), 실상사(實相寺), 청림사(靑林寺), 내소사(來蘇寺)으로 이중 내소사만이 남아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현재도 최대사찰인 내소사는 633년인 백제 무왕 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에 의해 건립, 당시에는 소래사(蘇來寺)라 불리웠는데 이외에도 대소래사가 따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대소래사는 불에 타 없어지고 소소래사만 남아 지금의 내소사가 되었다 하는데, 그럼 대체 '대소래사'는 얼마나 컸던 건지.... 

고려 인종대의 문인 정지상(鄭知常, ? ~ 1135년)이나 이규보(李奎報, 1169∼ 1241년)의 문집에서도 여전히 '소래사'라고 하고 있어 내소사라는 명칭은 아마도 조선조이후 붙여진 이름같습니다. 참고로 1633년에 중수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건축물은 이 중 경내에 있는 설선당과 요사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건물입니다. 이 두 건물은 법당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문화재). 우선 설선당은 1640년 (인조대)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앞면 6칸, 옆면 3칸의 규모입니다. 오른쪽 1칸은 마루이고,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요사 역시 1640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앞면 6칸, 옆면 2칸의 건물입니다. 그런데 특이하게 이 건물이 바로 2층 맞배지붕집이지요. 현재는 1층은 스님들의 방과 식당, 부엌, 2층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식료품이나 물건을 보관할 수 있도록 각 칸의 벽면에 환기창이 있습니다. 두 건축물 (설선당, 요사)은 총 네 면이 연결되어 중앙 내부에 마당과 우물이 둔 回자형의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지요 (어찌보면 조선전기 꽤 자주 보이는 양식).
설선당과 요사 구조 (조선후기 대형요사 형성배경과 분류, 2009)

요사가 19세기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2009년 조선후기 요사건축을 분석한 논문인 [조선후기 대형요사 형성배경과 분류]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초기 대방이 포함된 설선당부분(안마당쪽 5칸)이 지어지도 후대에 중수되는 과정에서 요사라고 불리는 부분이 후면이 부가되어 하나가 되어 ‘ㅁ자형’요사가 된 것이다. 설선당부분에 요사부분이 부가된 것이지만 건물을 살펴보면 실제 건물은 19세기에 새롭게 지어진 건축이다."

승방이라 할수 있는 이 건축물은 보통 원형이 손상되지 않은 곳이 매우 드문데, 내소사 설선당과 요사는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예 중 하나이므로 17세기의 형식이 살아있을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예컨대 19세기에 중건하면서 당시 남아있던 17세기형식의 조선중기건축을 본따 만들었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우선 전경사진을 좀 볼까요.
내소사 설선당(왼쪽) & 요사 (오른쪽 2층)

요사의 경우 가보니 너무나 극명하게 2층건축물이라 요즘 지은 것이 아닐까 착각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느낌이니까요.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양식의 건물은 필자의 블로그에서 자주 다룬바 있는 조선전기-중기의 사택구조와 매우 닮았더군요. 사찰내에 있는 건물이라 당연히 종교와 관계있는 건물로 생각을 해서 이질적이었지만, 이 건물만 따로 떨어뜨려 놓으면 그냥 조선전기 저택으로 봐도 무방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이런 양식의 2층건축은 사실 이 건물추정연대인 1640년이전에도 그리고 17세기당대의 저택에서도 꽤 자주 보입니다. 예전에도 간접적으로 소개한 바 있는 다음의 조선 저택에서 잘 보이는 양식이기도 하지요 (중간 이중처마를 제외하고 바로 맞붙은 중층구조).

다음은 요사와 비슷한 연대에 지어진 안동의 충효당건물입니다. 이름이 '당'이 붙었지만 엄연히 사택이지요.
안동 충효당 중 행랑채

충효당의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년)가 지었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형태입니다. 행랑채는 류상조(1763∼1838년)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안쪽에서 보면 이런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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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의 요사를 바로 가까이에서 보면 이런 형태입니다.
안쪽의 중정모습으로 미음자를 하고 있습니다.
사찰 경내에 있다뿐이지 실상 예전에 소개했던 조선전기-중기의 형태가 남아있는 고택들과 매우 매우 흡사한 모습. 
이층으로 올라가는 구조 역시 안쪽에서 더 잘 보입니다. 아마도 사다리로 올라가거나, 뚫려있는 복도를 통해 문을 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재도 승려들이 기거하는 공간이기때문에 안쪽에 들어가 볼수는 없었습니다. 이런 사진으로 유추할 뿐.
이런 형태는 역시 경내건축인 (나중에 따로 다뤄볼) 선암사의 심검당내부와도 일맥상통합니다. 1825년에 지어진 2층 건물이지요.
선암사 요사 (심검당 내부)

참고로 약 200년전의 건물인 15세기초의 건물인 예천권씨 초간종택의 별당모습은 이러했지요.
15세기 초간종택 별당

이보다 좀 더 뒤의 건물로 추정되는 16세기의 남흥재사도 비슷한 모습.
16세기 남흥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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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중층구조 건물, 그것도 승당이나 궁궐건축이 아닌 일반 저택구조의 모습을 간직한 건축물로는 꽤 중요한 문화재라 판단합니다. 같은 중층구조의 건물이라도 시대별로 여러 유형이 나오는 듯 한데, 이런 형태 (특히 ㅁ자 구조로 벽체가 있는 혹은 없는 2층 복도로 주욱 연결된 구조의 건물)는 꽤나 현대식 한옥에서 응용할 만한 재미있는 건물구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설선당과 요사'는 이름 그대로 아마도 조선중기식 저택구조를 그대로 가져다가 내소사 경내에 승려들의 일반 여염집 (즉 숙소)로 쓴 것이 아닐까 대담하게 추정해 봅니다.


참고사진:
https://bit.ly/2LC8FEA
https://bit.ly/2Di4e2d
http://www.archidata.co.kr/NewWin/NewWin.asp?VT=mov&selID=1294&ddcodeid=209


덧글

  • Nocchi 2018/11/01 08:03 #

    조선시대 이층건물의 실사판 이군요
    사진으로 보니 뭔가 그림보다 확실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역사관심 2018/11/02 00:10 #

    네 직접보니 너무 명확한 건물이라 오히려 조금 이상하게 다가오더군요. 내부가 궁금했는데 출입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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