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새 ~봉황편 (1986)에 나오는 752년 신라 양탄자 (추정) 역사전통마

일본아니메의 대부격인 데즈카 오사무하면 일반적으로 [철완 아톰]이나 [리본의 기사], [정글대제 레오]등이 떠오르지만, 사실 그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장편 작품군은 따로 대표작이 있습니다. 바로 [붓다] (1972~1983년)와 [불새] (1954~ 미완)입니다.

불새의 애니메이션은 사실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 얼마전 애니시리즈 중 2편인 1986년의 [봉황편]을 봤습니다. 그런데 이 봉황편이 상당히 흥미롭더군요.

일단 시대배경이 8세기말, 그 중에서도 740~750년대입니다. 이때가 바로 현재 세계최대목조건물로 현전하는 동대사 (東大寺, 도다이지사)가 세워진 시기지요.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시대는 사료부족으로 인해 한일양국간의 무역이라든가 전쟁사라든가에서 많은 토픽과 상상이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작품으로 돌아가자면 아주 간략하게 말씀드려 이 이야기는 봉황새를 조각하는 두 목조조각장인들의 생애와 고뇌, 타락, 구원등을 다룬 것인데, 후반부에 두 장인들이 봉황조각을 두고 승부를 벌이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조각들은 당시 새로 건립되고 있던 (장인중 한명이 동대사의 유명한 대불(대불상) 건립설계자로 들어가기도) 동대사의 주불전에 장식할 작품들이었지요 (기대도 안했지만 물론 대불조성에 실질적으로 관여한 백제출신 교기(行基) 스님등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교기스님상

위는 두 장인이 완성한 봉황을 가지고 승부하는 장면인데, 1986년 작품임에도 (물론 제작비가 최대규모로 들어가는 버블최전성기이긴 합니다) 내부장식 고증이 아주 훌륭함을 볼 수 있습니다.


주인공중 하나 (위 그림중 오른쪽 초록색 옷)가 설계자로 대불을 만듭니다.
아래 그림은 당시 수도였던 나라 (당시 헤이조쿄(平城京))를 묘사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도 언젠가 8세기당시 신라경주 (바둑판모양)을 이런 식으로 제대로 구현하는 작품이 나오면 합니다.
이 시기를 나라 시대(奈良時代)라고 하며 시기는 정확히 우리의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의 초기입니다 (710~ 794년). 동대사는 728년 쇼무천황이 처음 금종산사(金鐘山寺)를 세운 것을 시작으로 금광명사등을 통합하여 740년 '동대사'로 문을 엽니다. 그런데 이 때는 일본열도 전체에 정변, 천연두, 흉작, 반란등으로 온통 혼란스러울 시기였지요.

잠시 딴 이야기를 하자면 이 작품에서도 그런 배경설명이 나오는데 흥미로운 것은 '신라의 침공'이야기가 나온다는 점. 웃기게도 사실 제대로 된 침공계획은 이로부터 약 19년후인 759년, 거꾸로 일본에서 신라를 침공하는 계획을 짜게 되지요. 다만, 이 시기 일본은 확실히 신라가 쳐들어 올까봐 불안해하긴 했습니다. 그런 배경설명을 이 작품에서도 합니다만 묘하게 거슬리는 표현을 하는데, 바로 다음 장면입니다.
위의 두컷인데 영토(領土)라는 말은 정의대로 쓰자면 한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땅의 영역을 이르는 말이지요. 만화에서는 이를 알고 쓴것인지 아니면 그저 '땅'을 표현한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신라보고 신하운운하며 침공계획을 세운 일본의 태도가 있었기에 이 작품에서 저 부분은 꽤 거슬렸습니다.

이건 주제가 아니니 각설하고. 오늘의 주제인 '양탄자'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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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산 양탄자

동대사의 대불전에 있는 16미터의 대불은 역사적으로 751년 완공되어,  그 이듬해인 752년 불상의 완성을 기념하는 의식에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기록에 쓰여져 있습니다.
이 완공식을 작품에서도 꽤 잘 표현했지요.
752년 대불 완성축하 기념식

그런데, 바로 이 해..... 어디선가 본 일이 있습니다. 필자가 소개한 아래의 글이었지요. 


[윤 3월 신라왕자 김태렴이 이끄는 사절단이 현지 후쿠오카인 하카다항에 입항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7척의 배를 타고 온 사절단의 숫자는 700명으로 대규모 사신단이었습니다. 윤 3월, 즉 서기로는 6월의 일입니다. 따라서, 정확히 [매신라물해]가 작성된 752년 6월~7월과 일치합니다.]

네, 바로 이 동대사의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는 약 45점의 '신라 모전(毛氈)'중 일부가 저 매신라물해라는 영수증기록으로 바로 이 해에 수입되었음을 소개한 바 있지요. 

정창원 소재 신라 모전중 3점 

그런데 이 부분 직전,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서두에서 소개한 두 장인의 서바이벌 콘테스트의 평가단이 자리를 잡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마루에 깔아둔 양탄자가 등장하는데, 이 카펫이 매우 눈에 익는 형태지요. 바로 위의 신라모전 (특히 첫번째 보상화문화전)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혹은 아래 등장하는 모전과도 흡사하지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이 모전이 학계에 제대로 알려진 시점입니다. 일단 우리에게 이 모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9년 10월 23일, 일본 나라(奈良)현 나라국립박물관 신관에서 제61회 쇼소인(정창원, 正倉院) 특별전에 소개되면서부터입니다. 그리고 '신라모전'으로 연구가 시작된 것은 재일연구자인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가 1996년 "쇼소인 모전 중 2점에 제작 날짜와 장소, 만든 이의 관등이 적혀 있는 꼬리표가 신라의 이두로 적혀 있다"고 밝히면서부터이지요.

따라서, 1986년 발표된 이 [봉황편]에서는 아마 신라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려 넣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매우 공교롭게도 이 장면으로 소개되는 752년 당시, 신라의 김태겸이란 사람이 신라산 양탄자를 잔뜩 가지고 동대사에 방문, 결과적으로 린타로 감독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 장면은 매우 인상깊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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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런 시대극을 표현하는 방식은 항상 느끼지만 부럽군요. 특정시대의 느낌을 통시적으로 쓰는 게 아니라, 그 시대에 맞는 고증을 할 수 있는 한 철저히 해서 그 시대만의 느낌 (신화시대면 신화에 가까운 느낌)으로 보여주는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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