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불고기에 간장과 마늘을 안쓴 것도 있다라...(燒肉 & 간장베이스-황교익 불고기 주장 비판 사료근거) 음식전통마

황교익씨의 여러 논란에 대해서는 그다지 할말의 필요성을 못느껴서 그냥 있습니다만 (이미 여러 제대로 된 반론이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하구요), 오늘은 산림경제의 고기관련 글을 소개하려다보니 피할 수가 없군요.

우선 황교익씨가 말한 불고기논란의 근원글인 2010년 서울타임즈기사의 마지막 결론부분입니다.


"그런데, 불고기는 한국어의 음식명 조어 구조에서 벗어난다. 불(火, 조리방법)+고기(肉, 재료)이다. 한국 음식명 중에 ‘불-’로 시작하는 단어가 불고기 외에는 불닭, 불닭발, 불오징어 정도이다. 그러나 이때의 ‘불-’이란 ‘붉은-’ 혹은 ‘매운-’으로 쓰이는, 뒤에 붙은 닭이나 오징어를 형용하는 접두어로, 불고기가 ‘붉은 혹은 매운 쇠고기 요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닌 한 같은 작명법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없다. 일본어 야키니쿠는 한자로 ‘燒肉’(소육)이라 쓴다. ‘燒(불)+肉(고기)’이다. 여기까지이다.

원기사를 보시면 알겠지만 '여기까지다'라고 마치 소육=야키니쿠라는 식의 단정형으로 인터뷰가 끝납니다 (지식인으로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태도...)문법적인 저 설명도 그후 여러 반례를 그대로 무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이 글의 촛점이 아니니 각설합니다.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부분은 마지막 '소육'이란 단어로 야키니쿠를 설명하는 부분만 짚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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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육 (燒肉)

이 부분에 대한 반론 역시 여러곳에서 이미 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육'이란 단어가 근대이후 황씨가 주장하는 30년대이전에도 이미 쓰이고 있었음은 이런 글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간단히 말해, 소육은 근대이전에 정확히 지금의 불고기를 뜻하는 대응단어도 아니지만, 야키니쿠와의 일대일대응단어도 아니란 것입니다. 이런 전근대어를 그대로 저런 식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설명하는 것부터 틀렸습니다. 이런 단어를 저 기사에선 이렇게 버젓히 마치 소육이라는 단어가 야키니쿠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식 불고기(위)는 일본식 불고기인 야키니쿠와 유사한 점이 많다. 야키니쿠는 한자로 ‘燒肉’(소육)이라 쓰는데 풀이하면 ‘燒(불)+肉(고기)’이다."

예전에 살펴본 것처럼 17세기중반이후 엄청난 고기소비를 하던 조선사회에서는 당연히 이 단어는 수없이 등장합니다. 하나만 들자면 정약용(丁若鏞, 1762년 8월 5일(음력 6월 16일) ~ 1836년)의 [여유당전서]에 나오는 예를 볼까요.

여유당전서 
담양에 당도하여 이 도호 인섭 장을 모시고 술을 마시며 [次潭陽陪李都護 寅燮 丈飮]

우거진 대나무 숲 가장 깊은 곳 / 竹樹最深處
눈 속에 관가집이 활짝 트였다 / 官齋雪裏開
꿩이 길든 교화를 이미 이루고 / 已成馴雉化
애오라지 큰 재주 시험하시네 / 聊試割牛才
기생에게 분부해 고기를 굽고 / 命妓前燒肉 
아이 불러 술잔도 권하는구나 / 呼兒對勸杯
타향의 벼슬살이 오래됐거니 / 異方遊宦久
찾아온 옛 친구가 응당 기쁘리 / 應喜故人來

命妓前燒肉 
이 문장은 저렇게도 해석가능하지만 '기생에게 소육(구운고기)를 자르게 하고' 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前이란 단어는 자르다나 가위의 뜻이 있습니다.

이처럼 '소육'은 절대로 황교익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아니, 거꾸로 이 단어가 일본문헌에서는 언제부터 나오는지 살펴보면 흥미롭겠군요. 아마 필자느낌으로는 조선의 문헌이 더 오래되고 자주 등장하리라 짐작합니다만.

예를 들어 일본문헌에서 (필자가 파악하는 한) 오래된 예라는 것이 1872년의 [서양요리통]에 나오는 '綿羊燒肉'(면양소육) 으로 표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소육'은 현재의 야키니쿠가 아닌, 서양식 양고기 바베큐를 뜻합니다.

다 떠나서 야키니쿠가 '불+고기'를 뜻하는 燒肉을 번안한 것이라면 이 단어표현을 더 오래 더 많이 쓰던 조선사회에서도 '불+고기'로 쓸 수 있는 여지는 왜 무시하는지 논리의 구조상 이해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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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베이스 부재?
황교익씨는 더 최근 국민일보와의 논란에 대한 입장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조선의 방식이 고스란히 일본으로만 갔을까? 꼭 그렇지도 않은 흔적이 우리 음식 안에 있다. 불고기 음식들을 보면 기본은 왜간장(진간장)이다. 조선간장이 없다. 거기다가 설탕도 많이 쓴다. 옛 문헌의 조리법을 보면 마늘도 안 들어가고 참기름이 없는 것도 있다. 일본의 오랜 냄비요리인 스키야키라는 게 있다. 스키야키에 소고기가 들어가는데 일본의 왜간장에 설탕을 더한 조리법이 우리 불고기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음식이라는 게 어느 한쪽의 일방으로 넘어가고 이식되는게 아니다. 넘어가면 사람들이 늘 먹던 방식에 변형이 일어나고 영향을 준다." 

발췌글의 후반부야 필자도 당연히 동의하고 주장해온 부분입니다만, 이 분은 확실한 근거없는 부분을 '사실'처럼 그냥 내뱉는 것이 가장 문제같습니다. 굵은 체를 보시지요. 설탕이야 근대에 와서 추가된 것이 당연할테고, 왜간장 역시 일제시대가 몇년인데 전통조선식 간장에서 당연히 맛에 따라 바꿔 쓸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이런 주장을 합니다. "옛 문헌의 조리법을 보면 조선간장도 마늘도 참기름도 없는 것도 있다". 우선, "없는 것도 있다"라고 하면서 어떻게 일본의 '소육'중에서는 특정요리 (스키야키)를 딱 가져다 쓰는지 일단 '논리의 오류'가 보입니다. 특히 황교익씨의 저런 방식의 표현은 마치 우리의 전근대 고기요리에는 조선간장과 마늘, 기름등을 쓰는 건 매우 한정적이고 희귀한 것처럼 느끼게 하기 쉽지요 (문맥상으로도 분명 그 희귀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문헌을 보면 간장과 기름, 그리고 '갖은 양념'까지 이미 우리는 전근대에도 '소육'에 자주 양념으로 씁니다. 황교익씨는 '없는 것도 있다'라고 말을 빼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어물쩡 퉁치기에는 너무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 문헌을 보시기 이전에 간단한 문화체육관광부 사이트의 불고기 소개부분을 보지요.

문화체육관광부 사이트의 불고기 소개중 (링크)
고려 때에 와서도 불교는 지속되었으나 유목민족인 몽골의 침입으로 고기 먹는 풍습이 되살아나게 되자 옛 한국의 음식문화인 이 맥적도 자연스럽게 되살아나지 않았나 합니다. 즉 몽골과의 관계가 성립되자 당시의 수도였던 개성에서 설하멱(등심을 넓고 길게 저며 꼬치에 꿰어 파, 다진 생강, 후춧가루 따위를 넣은 기름장을 발라 숯불에 구운 음식)이란 이름으로 이것이 되살아나 오늘날의 너비아니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보면 고려후대에 이미 너비아니 (불고기의 한 형태)의 방식이 성립되었다고 나오지요. 그런데 홍만선(流巖 洪萬選,1643~1715년)의 [산림경제]를 보면 이 '추측'이 거의 사실임이 명확해 보입니다. 또한 17세기에도 이 방식이 여전히 통용되고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야키니쿠'의 대응어라는 '燒肉'이란 개념정의로 말입니다. 다음의 부분입니다.

산림경제 
어육(魚肉) 부(附) 자포(煮泡) 중:
燒肉。忌桑柴火。[神隱] 燒肉。用簽子。揷於炭火上。蘸油鹽醬細料物。酒醋調薄糊。不住手勤翻燒。至熟剝去麪皮。必用 灸肉。用芝麻花。爲末置肉上。[則油不流]

고기 구울 때는 대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올려 놓고 굽는데, 먼저 기름ㆍ소금ㆍ장ㆍ갖은양념ㆍ술ㆍ초에 재었다가 묽은 풀을 슬쩍 발라 손을 재게 놀려 구워낸 뒤 고기에 입힌 밀가루풀을 벗긴다. [거가필용]

원문을 잘 살펴봐야 하는데, 해석보다 더 자세한 설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이 더 적확한 해석이라 사료됩니다.

燒肉소육
蘸油鹽醬細料物 기름, 소금, 장(간장 또는 된장), 자잘한 생강/마늘 양념에 담구었다가
酒醋調薄糊 술과 초를 골고루 엷게 발라.

여기 나오는 醬은 간장 혹은 된장을 말하며 그 다음부분의 料物泥 (요물니)라는 말이 바로 마늘과 생강등으로 다져서 만든 양념을 말합니다. 오해하시면 안되는게 그냥 조금 '바르는 게' 아닙니다. 蘸 (물에 담글 잠), 간장, 기름, 양념에 푹 담구는 겁니다, 즉 재우는 거지요 (어떤 음식이 연상되시나요?). 얇게 바르는건 다음 문장에 나오는 '술과 식초'입니다.

즉 황씨의 말과 달리 고려대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소육'에도 마늘과 간장베이스를 쓰는 형태의 '불고기' (현재의 형태는 아니지만) 역시 광범위하게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 글의 원전이 바로 원나라 시대의 생활백과지식 체계를 개진한 [거가필용]이기 때문입니다. 즉, 고려후기 몽골로부터 마늘과 간장을 쓰는 너비아니구이를 들여왔고 17세기이후 엄청난 고기소비사회였던 조선에서도 이런 방식이 이 책에 실릴 만큼 인기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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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또 이런 주장도 할 수 있겠군요. 조선간장베이스 불고기는 몽골때 잠깐 유행했다가 거의 사라졌다가 멀리봐야 17세기 소고기소비가 많아진 이후, 아니면 조선말기이후에야 다시 부활한거다등등. 그래서 저런식의 인용문헌에나 나오는거다. 

네 또 아닙니다. 18세기는 커녕 이보다 훨씬 앞선 이응희(李應禧, 1579~1651년)의 [옥담사집(玉潭私集)]에는 이런 중요한 정보가 등장합니다.

옥담사집

간장[醬]
콩을 삶아서 가루로 만들고 / 煮豆爲甘末
소금을 넣어서 독에다 채우면 / 鹹藏滿甕中
유리 보석인 양 붉은 빛 띠고 / 爛色琉璃赤
빨간 호박인 양 맑은 빛 띤다 / 澄光琥珀紅
바닥을 파서 금알갱이 뒤지고 / 掘底探金粟
속을 뚫어서 옥봉함을 연다 / 穿心發玉封
국이나 회와 불고기 만들 때 / 烹羹與膾炙
어느 곳이건 간장이 필요하지 / 無處不宣功

이 부분은 16세기말-17세기초의 문인인 이응희선생의 [옥담사집]중 당대 조선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양념류를 다룬 챕터의 '간장'부분입니다.

다시 찬찬히 볼까요?

烹羹與膾炙
음식을 삶거나, 국을 만들거나, 회나, 고기를 구울때
無處不宣功
(간장은)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네,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언제? '고기를 구울때 (炙 적- 고기구이)'. 

황교익씨가 말한 것처럼 '조선의 불고기에 조선간장이 '안 들어간 것도 있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그나저나, 결론적으로는 본인의 주장하고자 하는 바와 전혀 다르게 문장은 맞았네요. 맥락은 전혀 다르게 이상하게 쓰셨지만).

다시말해 황교익씨는 이렇게 주장했지요. "불고기에는 조선간장이 없다. 옛 문헌의 조리법을 보면 마늘도 안 들어가고 참기름이 없는 것도 있다." 그럼 '공평하게' 판단해야지요.  서두에서 언급했듯 일본측은 '소육'이라는 표현의 그다지 옛문헌도 아닌 1872년의 [서양요리통]에 나오는 '綿羊燒肉'(면양소육)에서조차 간장이나 마늘베이스가 아닌 서양식 양고기 바베큐를 뜻하고 있습니다. 소육이란 표현에 어떤 구운고기에는 간장과 마늘등이 있고 없고는 양국모두 마찬가지죠. 오히려 위의 17세기 조선문헌이 더 강력하게 당시 우리 고기문화에 간장이나 여타양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황교익씨는 설탕+간장베이스로 현재의 우리 불고기와 가장 비슷한 일본의 스키야키를 갑자기 들이밉니다 (거기다 야키니쿠=소육...).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그 스키야키조차 설탕에 간장베이스가 된 시기가 19세기말 에도말기로 추정됩니다. 

황교육씨가 "오랜 일본음식으로 스키야기란 음식이 있다"라는 그 스키야키는 아무리 올려잡아도 기원이 1643년경인데 이때의 형태는 당시 우리의 소고기+ 간장+ 마늘기록등과는 달리 스키야키는 외려 간장베이스가 아닙니다 (설탕은 당연히 없습니다). 고기도 아닌 야채와 생선류를 味噌煮(미소니)라고 해서  '된장조림'을 상자에 넣는 20세기의 것과는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이러다가 오리고기등 가금류 육류 (여전히 소고기는 아님)를 넣기 시작한 것이 1830년대 이후. 최초로 '소고기'를 넣기 시작한 것이 1860년대이후 조선과 중국에서 소를 수입하기 시작한 이후, 최초로 소고기를 넣기 시작한 것이 1862년 (그것도 아주 일부지역)이나 되어야 등장합니다.

간단히 말해 간장베이스 소고기요리는 조선이 훨씬 자주 오래먹은 형태의 음식입니다. 즉, 모두 애시당초 형평성의 논리에 전혀 안맞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부분을 끼워넣기한 주장인 겁니다.

관련글로 일반인이 쓰신 글이긴 하지만, 이 역시 날카로운 비판입니다. 이 분은 근대의 조선양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훨씬 이전의 문헌들이구요) 황교익 말대로 불고기 양념이 스끼야끼 양념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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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어업 (프로그램측 오류)

하나 더. 멸치베이스의 국물내는 법은 분명 일제강점기 이후 영향을 받은 방식이 맞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영상에서 보이듯 '멸치어업'까지 당시 들어온 것이라고 슬쩍 끼워넣기를 하는데요. 엄밀히 말하면 황교익씨가 여기서 주장한 것은 '멸치육수'법만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수요미식회측에서 '멸치어업'까지 슬쩍 끼워 넣은 겁니다. 따라서 이건 프로그램측의 오류입니다. 이렇게 써 놓으면 누가 봐도 '멸치어업'자체를 대량으로 한 것자체가 일제강점기부터로 알게 됩니다.
서유구(徐有榘, 1764~ 1845년)의 [난호어묵지(蘭湖漁牧志)]를 보면 이 말이 틀렸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멸치가 조선 시대 후기부터 대량으로 어획되고 있었음은 문헌 자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난호어묵지
동해에서 산출되는 멸치는 방어 떼에 쫓겨 대량으로 몰려온다. 어부가 이를 큰 그물로 둘러싸면 온 그물이 온통 멸치이므로 방어를 골라 낸 후에 남은 멸치는 모래사장에 말려 판매하는데 전국에 넘쳐흐른다.

거의 같은 시대 문헌인 이규경(李圭景, 1788~1856년)에도 나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멸치는 한 그물로 만선(滿船)하는데 어민이 즉시 말리지 못하면 썩으므로 남은것은 거름으로 사용한다

넘쳐흐르고 만선일 정도로 멸치어업이 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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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황교익씨가 여러 대중음식의 근원을 찾아나가는 방식이 흥미롭기도 했고, 또 여러 부분에서는 도움이 되는 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보면 본인의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할때 '확신에 찬 발언'의 자제와 함께, 더 깊은 연구와 또 더 중요한 것으로 자신의 시각이 틀린 부분은 교정하는 용기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조선시대에는 '단 간장'으로 하는 요리가 없었을까요? 후속글입니다.

후속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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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8/11/30 09:4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2/02 01: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RPU 2018/11/30 10:00 #

    틀린부분을 교정할 용기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인터넷 아이돌(쑻)이 되지는 못했겠지요
  • 역사관심 2018/12/02 01:38 #

    촌철살인의 말씀. 자존감과 (허위의) 자존심의 반비례법칙의 한 예를 다시 한번 보고 있는 느낌이네요.
  • 몬토 2018/12/04 06:55 #

    에초에 블로그때부터 다른사람들이 교정하려고 하면 밴시키던 사람인데요 뭘...ㅎ
  • 초록불 2018/11/30 10:47 #

    일본 계신 분이 일본의 야키니쿠라는 말이 한국에서 건너갔을 확률이 아주 높다는 글을 일본 근대문헌들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쓴 글을 봤습니다. 어디서 봤는지 잘 기억이 안 나서 링크는 못 달겠네요...^^
  • 역사관심 2018/12/02 01:38 #

    아! 그런 문헌이 있군요. 일본측 문헌을 이런 토픽은 정말 보고 싶은데 볼 길이 없어서 항상 손가락만 빨고 있습니다 ^^;
  • 초록불 2018/12/02 09:10 #

  • 역사관심 2018/12/02 16:28 #

    앗 감사합니다! 꽤 길고 정밀한 글 같습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 함부르거 2018/11/30 13:22 #

    그 인간은 말하는 것마다 헛소리라 이젠 꼴보기도 싫더군요. 하루 빨리 모든 매체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인간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페이스북과 유튜브라는 게 있지요... orz
  • 역사관심 2018/12/02 01:40 #

    아래 댓글로 찾아보니 수요미식회에서는 퇴출되었다더군요. 세상에 유튜브가 있어서 저런 주장도 함부로 하지만 또 일방향으로 받을수밖에 없던 예전과는 달리 거꾸로 이런 비판글도 왔다갔다하고 있어서 재미있는 세상이 된 느낌입니다 ^^;
  • 炎帝 2018/11/30 13:28 #

    듣기론 수요미식회에서 나가리 되었다더군요. 지화자~
    1인방송 하거나 말거나~

    그리고 전에도 얘기한거지만 생고기 구운 것은 방자나 먹는 구이라 할 정도로
    당시에는 양념이 대세였던건 확실해 보입니다.
  • 역사관심 2018/12/02 01:41 #

    말씀듣고 찾아보니 다른 두명과 함께 바뀐다던데, 개인적인 느낌은 황교익씨를 퇴출하는 것이 주포인트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생고기관련 정보는 제가 놓쳤는데 혹시 링크글을 주실수 있으실런지요. 읽어보고 싶습니다 ^^
  • 2018/11/30 12:07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2/02 01:4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홍차도둑 2018/11/30 12:25 #

    오래전에 논파된 분인지라.

    +
    이젠 발버둥입니다. 먼 앞뒤 안맞는 말로 점철을 너무 심하게 해 대서...
    그분의 장점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것들이 다 덮여졌네요.
  • 역사관심 2018/12/02 01:46 #

    저 역시 몇년전 이분의 책까지 두권샀었는데, 생각해보면 읽을 때는 흥미롭고 재미있었는데, 다 읽고나니 뭔가가 입안에 남더군요. 무엇이냐하면 '한식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네거티브 의견'. 저 역시 싫어하는 과도한 칭찬을 담은 책들과 달리 무언가 객관적으로 보려는 것 같아 처음에는 좋았는데, 다시 찾아보면 근거없는 '확정형'문장이 당시에도 많았고, 특히 거의 전부라도 해도 좋을만큼 '고급한식'에 대한 극심한 거부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리고 현대 한국대중음식에 대해서도 80프로정도가 부정적 의견.

    정말 신중하게 읽으면 좋은 정보도 있어서 장점인데, 그냥 일반적으로 무작위로 받아들일 사람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위험한 책들이라는 생각입니다.

  • 공손연2 2018/11/30 21:42 #

    다른것은 몰라도 멸치잡이에 바로 삶아서 말리는 방법을 쓴것을 일본에게 배운것은 맞고 어업방식을 그때 시작했다고 할수 있겠죠. 황교익이 문제가 많아도 멸치젓을 모를리가 없고 설마 조선시대에 멸치 안잡았다고 생각할리는 없잖습니까?
  • 역사관심 2018/12/02 01:49 #

    맞습니다. 본문에 썼다시피 멸치육수는 분명 일본에서 온것이고 일제강점기에는 그런 용도로 더 잡았겠죠. 다만 저 방송의 문맥과 저 문구는 분명 대중들에게 조선시대에 멸치는 그다지 쓰이지 않았고 어업도 시원찮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그램측에서 더 적확한 정보를 줘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에도 활발했던 멸치어업에 당시 들어온 멸치육수방식'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 이선생 2018/11/30 21:53 #

    쿄이쿠상의 논리의 HP가 0가 된 건 이미 옛날의 일이죠.
    자기 주장만 하고 남의 말은 안듣는 양반이라 발전이나 변화는 전혀 없겠지만요...
  • 역사관심 2018/12/02 06:18 #

    자존심을 자존감과 혼동하는 피곤한 사람들... 너무 많습니다.
  • 냥이 2018/11/30 23:45 #

    산림경제 내용 중에 밀가루 풀이 나오는데 중국에서 밀을 수입했으려나요?
  • 역사관심 2018/12/02 01:52 #

    사실 밀가루는 아시다시피 당시엔 귀해서 아마도 수입했지 않나 싶습니다. [음식디미방]에도 저런 식으로 '밀가루 풀'로 꿩요리나 대구요리를 마무리하는데 저게 아마도 (귀한 재료로 마무리한) '고급음식'의 마무리가 아니었나 싶군요.
  • 천하귀남 2018/12/03 09:44 #

    일단 쌀보다 밀이 수확이 적어 우리나라에서 여름밀은 논에 주력으로 짓는 경우가 없습니다. 여기에 이앙법 보급이후 겨울에 보리 여름에 벼로 2모작이 가능한데 밀은 수확기간이 보리보다 한달이 길어 쌀과의 2모작이 어렵습니다.
    다만 밀은 겨울에도 재배가 가능하고 물을 많이 요구하는 작물이 아니라 벼 재배가 어려운곳도 농사가 가능합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 북부에서는 재배가 흔했고 다른 지방도 약간은 재배하는 경향이 있었다 합니다. 한마디로 소량재배 밭작물 성격이 강하다 할까요?
  • 냥이 2018/12/03 12:53 #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밀을 심긴 심었다는 거군요
  • 炎帝 2018/12/03 13:39 #

    지금도 결혼식 같은 큰 행사를 치른다 할때 국수 먹는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그만큼 귀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 炎帝 2018/12/03 09:10 #

    얼마전엔 유투브 개인방송도 했다더군요.
    방자구이라는 언급은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1777
    여기 있긴 한데, 제가 봤던 구체적인 내용은 책에서 본거라서 링크는 따로 없습니다.;
    다만 옛 책에서도 신선한 고기는 양념없이 구워 소금간만 해도 맛있다는 구절이 있었다고는 나온다더군요.

    그럼에도 그런건 방자나 먹는거라 여겼던것 같습니다.
    하긴 양념에 쓰는 향신료도 당시엔 고가품이었으니...
  • 역사관심 2018/12/06 04:27 #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하인은 생고기를 먹는다라...참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 몬토 2018/12/04 06:59 #

    저도 전에 요즘 맛서인이라 불리시는 분의 글을 많이 있었습니다. 칼럼도 읽었지요. 하지만 결국 이사람에 대해서 정나미가 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다른것이 아님 한 칼럼에서 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활어회는 저급식문화이며, 선어회야말로 발전한 식문화라는 식의 칼럼을 본순간 이 사람에 대핸 모든 기대를 놓아버렸습니다. 사람의 입맛이라는것이 제각각인법이고 꼭 5가지의 맛뿐이 아닌 자극, 시각, 후각, 식감까지 포함하여 맛인데 그 전제를 부셔버리고 자신의 취향이 오직 진리라는듯한 오만방자한 행동을 보니 더이상 할말이 안나오더군요. 정말 이런사람이 전문가 행세를 하는구나 하면서 크게 실망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30 #

    결국 식문화야말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분야이고 또한 인문학이라는 분야는 물리학등과는 달리 아무리 자신의 학설에 확신이 있어도 언행을 조심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언제든 기록이 다시 나올수 있고, 주관적인 해석이 가능하고 하기에) 이분은 참 거침이 없는게... 거침이 없더라도 사료라도 차근차근 꼼꼼히 살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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