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고기요리에는 단맛의 간장(왜간장)을 안썼을까? (甘醬) 음식전통마

그제 소개한 [조선의 불고기에 간장과 마늘은 없었다고?]글에 추가해서 쓰려다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후속글로 따로 쓰게 되었습니다. 읽지 못하신 분들은 윗 글을 먼저 읽고 본글을 읽어주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황교익씨는 최근 자신의 불고기논란에 다음과 같은 국민일보와의 입장인터뷰를 합니다.

"조선의 방식이 고스란히 일본으로만 갔을까? 꼭 그렇지도 않은 흔적이 우리 음식 안에 있다. 불고기 음식들을 보면 기본은 왜간장(진간장)이다. 조선간장이 없다. 거기다가 설탕도 많이 쓴다. 옛 문헌의 조리법을 보면 마늘도 안 들어가고 참기름이 없는 것도 있다. 일본의 오랜 냄비요리인 스키야키라는 게 있다. 스키야키에 소고기가 들어가는데 일본의 왜간장에 설탕을 더한 조리법이 우리 불고기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음식이라는 게 어느 한쪽의 일방으로 넘어가고 이식되는게 아니다. 넘어가면 사람들이 늘 먹던 방식에 변형이 일어나고 영향을 준다."

이 중 조선시대의 '소육(燒肉 불고기)'요리에는 간장이 들어간 것이 굉장히 흔한 일이었음을 이미 전글에서 논파한바 있습니다 (마늘및 갖은 양념도 포함)- 즉 소고기+간장과 마늘베이스의 요리는 조선이 일본보다 훨씬 유구한 역사를 가집니다. 

오늘은 좀 더 파고 들어가보겠습니다. 즉, '간장'중에서도 황교익씨가 주장한 '왜간장'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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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왜간장맛 종류간장, 甘醬?

황교익씨는 '불고기를 보면 기본은 왜간장이다. 조선간장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보통 짠맛이 강해 국간장으로도 불리는 '조선간장'이 아닌 좀 더 양념에 어울리는 '왜간장 맛'이 현재의 불고기에 많이 쓰이므로 일본의 스키야키의 영향이 고스란히 전해진 것이 우리가 현재 즐기는 불고기라는 문맥일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맛'일 겁니다. 왜간장이 좀 더 은근한 맛이므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간장(진간장)보다 불고기에 어울리는 맛은 분명하니까요. 그럼 우리에게는 지금 우리가 쓰는 짠 '국간장'형태의 간장만 있었을까요?

[한국민족대백과]의 '간장' 부분을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조선간장은 메주를 띄워 우려낸 조미료로, 이것의 부산물이 본래 의미의 조선된장이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오랜 기간동안 발효시킨 간장. 어지간하면 콩만을 주원료로 하기 때문에 대체로 구수함이 진하고 짠맛이 강해서 국물을 내는 데 자주 이용된다. 이것을 해마다 달이면서 몇 년간이나 저장시키면 빛깔과 맛이 진한 간장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을 진장(陳醬)이라 한다. 또 퍼낸 간장에 해마다 새로운 메주를 넣어 약주 만들 때의 덧술하듯이 숙성시켜 나가면 덧장이라 하여 매우 진하고 맛 좋은 간장을 얻을 수가 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아는 전통 조선간장(국간장)에 대한 정의입니다. 그런데 다음부분에 이런 흥미로운 설명이 등장하지요.

그런데 요즘의 이른바 왜간장이라는 것은 콩에다 밀을 섞어서 만든 간장메주를 소금물에 넣어 숙성시킨 것이다. 1660년의 『구황보유방 救荒補遺方』에 의하면 콩 한 말을 무르게 삶아내고 밀 5되를 볶아 가루 내어 콩과 잘 섞어 온돌에 펴서 띄운다. 황의(黃衣)가 전체적으로 피면 볕에 내어 말린다. 이와 같이 하여 얻은 메주는 소금 6되를 푼 따뜻한 물에 넣고 양지바른 곳에 두어 자주 휘저어 주면서 숙성시킨다. 이것은 왜간장과 비슷하다.

1650년 조선의 [구황보유방]의 간장제조법이 나오는데 그 방법에 '콩에 볶은 밀을 섞어만든 메주'가 나옵니다. 원래의 조선간장은 '밀'등의 곡물부산물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전통왜간장의 제조법이 바로 콩에다가 볶은 밀과 기름을 섞은 메주를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하면 밀이나 보리등이 들어가면 왜간장 특유의 '단맛'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우선 주목해 주세요. 

이 뿐이 아니라 '된장' 역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통방식외에 현재의 '왜된장'(단맛이 강한 미소류)으로 불리우는 방식을 이미 1650년의 [구황보유방]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볼까요?

왜된장은 콩 삶은 것에 쌀메주·소금을 섞어서 숙성시킨 것이다. 『구황보유방』에서는 콩 1말을 충분히 삶고 누룩 3되, 소금 4되를 섞어서 찧고 항아리에 넣어 단단히 봉하여 양지바른 곳에 두면 맛이 좋다고 한다. 이것 역시 왜된장과 비슷하다.

이러한 방식은 곡물을 발효시킨다는 점에서 분명 보통의 조선간장이나 조선된장과는 다릅니다. [한국문화대백과]측에서는 이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와 같은 간장이나 된장 만들기는 일본의 독자적인 개발이 아니고, 원대(元代) 초엽의 가정백과전서인 『거가필용 居家必用』에도 나와 있고, 조선시대 중엽에도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 [거가필용]이 나오네요? 어디서 봤더라... 네 여기였지요.

산림경제 
어육(魚肉) 부(附) 자포(煮泡) 중:
凡燒肉。忌桑柴火。[神隱] 燒肉。用簽子。揷於炭火上。蘸油鹽醬細料物。酒醋調薄糊。不住手勤翻燒。至熟剝去麪皮。必用 灸肉。用芝麻花。爲末置肉上。[則油不流]

고기 구울 때는 대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올려 놓고 굽는데, 먼저 기름ㆍ소금ㆍ장ㆍ갖은양념ㆍ술ㆍ초에 재었다가 묽은 풀을 슬쩍 발라 손을 재게 놀려 구워낸 뒤 고기에 입힌 밀가루풀을 벗긴다. [거가필용]

燒肉。소육
蘸油鹽醬細料物 기름, 소금, 장(간장), 자잘한 생강/마늘 양념에 담구었다가
酒醋調薄糊 술과 초를 골고루 엷게 발라.

황교익씨가 주장한 '야키니쿠'의 일대일 대응어인 '소육'을 조선의 더 오래된 17세기 문헌인 [산림경제]에서 그 이름 그대로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는 부분인데, 이 방법의 원전이 바로 원대의 1200년대말의 문헌인 [居家必用(거가필용)]임이 나옵니다. 즉, '소육 (우리말로 그대로 번역하면 불고기)'를 만드는 이 13세기말의 문헌의 다른 챕터에 '간장담그는 법'이 나오는데 그 방법이 바로 '왜간장'과 비슷한 맛을 내는 단간장 만드는 법이라는 것이지요.
위의 기록은 '제조법'을 쓴 것이지만, 실제로 조선인이 이런 말을 한 구절도 찾았습니다. 다음은 이의현(李宜顯, 1669 ~ 1745년)의 [경자연행잡지]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경자연행잡지 중:
醬皆用大豆。和小麥爲之。見其燻造。如我國所造。而一塊大如斗。醬味淡而微酸。
간장은 모두 콩과 밀을 섞어서 만드는데, 만드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것과 같다. 한 덩어리의 크기가 말[斗]만하다. 간장 맛은 싱겁고 약간 시다. 

원문을 다시 볼까요.
醬皆用大豆。和小麥爲之。간장은 대게 대두(콩종류)로 만드는데, 밀(小麥)을 조금 섞어서 만든다. 

이 기록은 이의현이 1720년 청나라에 사행을 갔다가 쓴 것으로 즉 당시 청나라의 간장만드는 법을 보고 '우리 조선의 것과 비슷하다'라고 하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小麥이 나오죠. 소맥이 바로 우리가 요즘 말하는 '밀'입니다.

결국 '밀을 섞어 약한 장을 만드는 방식'은 우리 생각보다 조선시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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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말하는 왜간장의 특징은 단맛이며 즉, '단 간장'입니다. 한문으로 말하자면 甘醬 (단 간장)이라는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헌에는 이 단어가 고유어처럼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현대한국에서 감장을 설명할 때는 "묵힌 진감장(陳甘醬, 즉 묵은 조선간장)을 말하고"라는 식으로라는 간단한 설명이 붙습니다. 그럼 과연 이 '감장'이 그저 오래된 조선간장일까요? 

우선 '조선간장'을 오래 묵히면 깊은 맛과 더불어 원래상태보다는 단 맛이 상대적으로 더해지긴합니다. 하지만, '묵은 감장'이라는 뜻의 '陳甘醬'이라는 단어를 고전문헌DB에서 찾아보면 문헌기록에 딱 한차례 등장합니다. [산림경제]에서 [고사촬요]와 [구황촬요] (둘다 1554년, 조선문헌)에 나온 것을 인용한 부분이지요. 그런데 이 유일한 기록이 또 재미있습니다.

산림경제
청장(淸醬)을 만드는 방법은, 소금 7홉을 바싹 볶고, 밀가루 (眞末) 8홉을 소금과 섞어서 볶는다. 진말의 빛깔이 누렇게 되기를 기다려서 진감장(陳甘醬) 4홉과 물 6주발[鉢]을 섞어 4주발이 되도록 달이면 맛이 좋게 된다. 《고사촬요》 《구황촬요》

청장(淸醬)이란 장의 뜻을 살펴보면 어떤 넷정보에서는 '간장'의 다른 말 혹은 '맑은 간장'이라는 정보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설명을 보면 전혀 그런 뜻이 아닙니다. 현재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방법으로  '밀가루'를 소금과 볶아서 넣고, '진감장'을 물과 섞어 추가합니다. 즉, 왜간장을 만드는 방식과 유사한 '밀가루 넣기'가 또다시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진감장'을 더 넣습니다. 즉 단맛추가입니다. 이 진감장이 과연 오래된 조선간장(국간장)일까요 아니면 오래된 단 간장일까요? 

참고로 이 청장은 고기요리류에 많이 넣어 먹은 것을 알 수있는 예가 있습니다. 1773년의 기록입니다.

영조 49년 계사(1773) 9월 6일(임술)
도제조 김양택이 아뢰기를, “삼가 듣건대 전에도 진지를 싫어하는 증세가 있었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찌 병환이 심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상께서 오도형에게 물으시기를,
“닭곰은 잘 마시던가?”
하니, 오도형이 아뢰기를,
“닭곰은 청장(淸醬)으로 간을 맞춘 것이라 잘 드셨습니다.”

鷄膏則和淸醬善爲進御矣

[일성록]에 나오는 김양택과 영조의 대화부분으로 닭곰탕을 청장으로 간을 맞춥니다.

진감장(陳甘醬)이라는 단어가 만약 그저 '묵힌 간장'이라는 뜻이라면 이 표현은 더 자주 등장했을 겁니다. 그런데 딱 한번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甘醬'이라는 독립어로만 많이 나오지요. 즉 '감장'은 그냥 '단 간장'일 가능성이 논리적으로 훨씬 맞아보입니다. '陳甘醬'이라는 건 '묵힌 단 간장'이라는 간단한 설명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판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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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요리와 감장 (甘醬, 단 간장)

황교익씨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조상들은 짠 조선간장베이스로 육류요리를 했고, 따라서 현대의 불고기는 달달하므로 이에 맞지 않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주목할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을 정조실록 기록을 봐주세요.

정조 10년 병오(1786) 6월 1일(계유)
왕세자의 홍진에 삼과 부자의 약을 쓴 의관을 탄핵하는 어석령의 상소
전 장령 어석령(魚錫齡)이 상소하기를,
“아! 약원을 설치한 것은 미관상으로 한 것이 아니며, 의관(醫官)을 가려 뽑은 것은 그들의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홍진의 유행은 천 사람이 똑같은 증세입니다. 비록 어리석은 아녀자라도 감히 감장(甘醬)이나 우육(牛肉)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삼(蔘)이나 부자이겠습니까? 

그런데 굵은체 부분, 해석이 엄밀히 많이 잘못되었습니다. 원문을 볼까요?
雖婦孺之愚者, 不敢近甘醬、牛肉, 則況蔘附乎?
(비록 며느리나 아내가 어리석은 자일지라도, 감장(甘醬, 단간장)도 감히 가까이 못하는데, 소고기는 하물며 삼에 맞먹는 것입니다만?)

이게 더 정확한 해석일 겁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왜 감장과 소고기를 함께 붙여서 비유하고 있을까요? 필자의 추정으로는 '단 간장과 소고기로' 만드는 요리가 있었고 열병에는 단 간장도 감히 가까히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소고기를 어떻게...라는 비유가 타당합니다. 만약 제 추측대로 감장의 뜻에 '단 간장'(즉 구황보유방과 거가필요에 나오는 왜간장과 흡사하게 만드는 단간장)이라면 단맛이 나는 간장이 소고기요리에 쓰였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 기록을 더 정확히 뒷받침해주는 문헌기록이 있으니 [일성록]입니다. 즉, 같은 기록을 실록과 일성록이 따로 표현한 것인데 더 직접적으로 단어를 붙여놓았지요.

일성록
정조 10년 병오(1786) 6월 1일(계유)

홍역이 돌아 모든 사람들이 같은 증세를 보이면 비록 부녀자나 어린아이같이 어리석은 이라도 감히 단 간장[甘醬]과 쇠고기를 가까이하지 않는데

[일성록]의 1786년기록입니다. 원문을 볼까요?

雖婦孺之愚者。不敢近甘醬牛肉 

단간장과 소고기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단간장에 잰 소고기'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아 보입니다.
또, 한가지 더 흥미로운 기록을 볼까요? 1682년 대마도주가 우리 사신에게 바친 목록입니다. 

부상일록(扶桑日錄) 
1682년 6월 12일(을축)
맑음. 동풍이 불었다. 지지견포에 머물렀다. 중략. 평성련성부(成扶)의 유(流) 이 물고기와 채소 조금을 보냈는데 채소만 받았다. 평성부가 ‘강룡사(江龍寺)’, ‘상운산(祥雲山)’ 두 액자(額字)를 써 주기를 청하였는데, 두세 번 간청한 뒤에 써서 주었다. 이날 비로소 하정물목(下程物目)을 바치니, 곧 대마도주가 전례에 의하여 바친 것이었다.

하정물목(下程物目) 5일분. 백미 1석 11두 9승, 술 1석 10두 4승, 감장(甘醬) 7두 4승, 간장 8승, 소금 4두 3승, 기름 4승, 초[燭] 15정(丁), 닭 10수(首), 방어(魴魚) 16미(尾), 마른 고등어 2미(尾), 생전복 67개(介), 돼지발 35개, 표고버섯 4승, 감자[薯] 4승, 건어(乾魚) 1백 99미(尾) 반(半), 미역 8속(束) 반, 장과(醬果), 양이미(兩耳米), 개자(介子), 묵초(黙草), 대근(大根), 파, 생선, 마늘, 미나리, 두부, 고사리, 산초(山椒), 초(醋).

조선 중기의 문신 남용익(南龍翼,1628~1692년))이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기록한 [부상록]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1682년, 대마도주가 조선통신사였던 남용익선생에게 사신에게 바치는 물품목록을 바치는데 여기 '감장'과 간장이 따로 등장합니다.
 
飯米酒甘醬艮醬鹽油燭雞魴魚乾古豆魚生鰒
감장(甘醬)ㆍ간장(艮醬)

이 목록을 남용익선생은 그대로 기록에 실습니다. 아무런 추가설명없이 말이지요. 참고로 조선시대에는 '왜간장'이라는 말조차 없었습니다. 아마도 저들이 바친 저 간장과 감장은 간장은 현재우리가 말하는 왜간장류, 그리고 감장은 특히 더 단 왜간장(첨가물이 있었을 수도 있고)이었을 것입니다. 동시대 활발한 문화교류가 있는 장류양념문화에서 앞서 살펴보았듯 이미 '볶은 밀'로 단맛을 내는 방식까지 모두 서로 알고 있는 상황에서 '감장甘醬'의 뜻은 과연 얼마나 서로 많이 달랐을까요. 

감장이 [구황보유방]과 [거가필용]에 실린 밀가루를 볶아 섞어 만든 왜간장과 비슷한 류인지, 현재의 정론인 조선간장을 오래 묵혀 약간 단맛이 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편견인 '조선시대에는 짠 국간장 형태의 조선간장'만이 존재했고 황교익씨의 말처럼 '불고기류에도 그런 짠 간장이 쓰였을 것' (혹은 아예 쓰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식이 아닌, '단 간장'이 조선시대에 확실히 존재했고 이런 '단 간장'류가 고기요리에 많이 쓰였던 것은 명확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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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요리와 간장 (추가기록)

다음은 고기요리외에 생선이나 국요리에 간장이 빠지지 않는다는 저 [옥담사집]의 기록을 보충해주는 몇가지 기록입니다.

우선 정약용(丁若鏞, 1762~ 1836년)의 [목민심서]중.

목민심서

玆所謂主人無醬。客子厭羹也
이것은 이른바, ‘주인집에 간장이 없으니 손님이 국을 싫어한다.’라는 격이니, 

네, 간장없는 국은 손님도 안 먹습니다. 이런 기록은 비슷한 시기 위에서 소개한 이의현이 북경에 가서 보고 쓴 기록인 [경자연행잡지]에도 등장합니다.

경자연행잡지
또 이른바 분탕(粉湯)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물국수로서 간장 물에 계란을 넣은 것으로 역시 열과탕과 같은 종류인데, 조금 담백해서 기름기가 그다지 많지 않다.
又有所謂粉湯者。卽我國水麵。而和以醬水。入雞卵 (바로 우리나라의 물국수이다. 간장물에 계란을 넣은 것이다).

我國 (그나저나 다른 이야기지만 '내 나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런 기록을 볼때 역시 중앙집권의 전통이 유구한 동아시아사회에 (일본제외) 유럽식의 '19세기식 민족국민국가 형성'의 사례를 접목시키는 것은 완전히 틀린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채제공(1720∼1799년)의 [번암집]에는 굽는 생선요리를 간장으로 양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번암집
웅어는 자잘해서 횟감으로 맞지 않아 / 葦魚瑣小不足膾
간장으로 양념하여 화롯불에 올려놓고 / 調以膏醬爐火撥
뒤집어서 맛을 보니 녹는 듯이 부드러워 / 騰箸一嚼軟欲解

마지막으로 이덕무(李德懋, 1741년 7월 23일(음력 6월 11일) ~ 1793년)의 [청장관장서]에는 고깃국에 간장을 푸는 법을 말합니다.

청장관전서
기름기 있는 고기국등은 숟가락으로 떠 먹어야지 김치나 간장, 그리고 밥을 만 물에 휘저어서 기름이 엉겨 뜨게 해서는 안 된다. 불결한 노린내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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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담사집의 '醬'

사족으로 중요한 문헌의 기록이니만큼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전 글에서 소개한 [옥담사집]의 간장만드는 법입니다. 고전번역원측에서는 간장으로 표기했지만 원문은 '장醬'이라고 되어 있지요. 이런 경우 간장도 된장도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중요하므로 명확히 해야합니다. 결론적으로 번역원측의 해석이 맞는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입니다. 왜인지 설명해드리지요.

옥담사집

간장[醬]
콩을 삶아서 가루로 만들고 / 煮豆爲甘末
소금을 넣어서 독에다 채우면 / 鹹藏滿甕中...
국이나 회와 불고기 만들 때 / 烹羹與膾炙
어느 곳이건 간장이 필요하지 / 無處不宣功

그런데 이 부분은 더 엄밀히 해석하자면 

煮豆爲甘末 콩을 삶아서 맛있는 가루 (혹은 단 가루)로 만들고
鹹藏滿甕中 소금물을 독가득 채우면

이 맞습니다. 그리고 (따라서 위의 해석처럼) 이것은 확실히 된장이 아니라 간장만드는 법입니다. 전통된장이라면 메주를 따로 빼서 다시 소금을 넣는 2차방식이 필요하지요. 

또한 '소금'을 뜻하는 염(鹽, 塩, 盐, 盐, 䀋) 대신  짤 함(鹹)을 쓴 것도 잘 봐야합니다. 즉 메주콩을 쌂아서 빻아서 메주를 만든 후, 소금물을 넣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이라는 글자는 보통 '짠 맛'을 뜻하지만 많은 경우 '짠물(소금물)'이라는 뜻도 됩니다. 반면 소금을 쓸때는 '염'이나 '노'라는 글자를 따로 씁니다.

일례로 1790년 [일성록]을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정조 14년 경술(1790년) 6월 25일(갑술)

신이 남한산성에서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장항아리를 보니, 가장 오래된 것은 한 번 담그고 난 다음에 대부분 소금을 더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항아리 하나에 비축해 놓았던 것이 채 한 병도 되지 않으며, 맛 또한 오래되어 거의 짠맛이라고는 없으니, 뜻하지 않은 사태를 대비하여 비축한 뜻이 전혀 없습니다. 또 선혜청 낭청의 말을 들으니, 흉년을 대비하여 비축해 놓은 만리창(萬里倉)의 장항아리도 대부분 축이 나고, 가장 오래된 것은 짠맛이 없어 남한산성과 다름이 없다고 합니다. 신의 생각에는 남한산성과 만리창을 막론하고 남아 있는 장항아리 중 쓸 수 없는 것은 판매해서 다시 장을 담그는 비용에 보태게 하고 앞으로는 연수(年數)를 한정하여 수량을 정해 놓고 판매해서 수량만큼 도로 장을 담그도록 한다면, 뜻하지 않은 사태에 대비하고 흉년에 구제하는 자본으로 삼기에 합당할 듯합니다.” 하여, 그대로 따랐다.

一瓮所儲 或味又陳久 殆無意 不滿一甁
항아리 하나에 비축해 놓았던 것이 채 한 병도 되지 않으며, 맛 또한 오래되어 거의 짠맛이라고는 없으니,

즉, 물이 차 있는 장항아리의 짠맛을 말할 때 '함(醎)'을 씁니다. 
다른 예로 조선중기의 무인인 이민구(李敏求, 1589~1670년)의 [동주집]에 나오는 구절을 볼까요.

동주집
관동록(關東錄) 영랑호에서〔永郞湖〕중

방장산 사이를 한계로 삼아 / 限以方丈間
염수와 담수로 성질 나뉘네 / 鹹淡性分易

鹹淡性分易 소금(물)과 맑은(물)로 상질이 나뉜다.

'물 수'자가 없이 함담이란 글자만 쓰지요. 또 볼까요? 기정진(奇正鎭, 1798~1879년)의 [노사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노사집
병들어 누워 느낌이 있어서 2수 〔病臥有感 二首〕

뛰어서 책 상자를 내려오다 / 跳梁下書簏
깊은 잔 속에 잘못 떨어지니 / 誤落溲杯中
짠물이 그 가운데 가득하였네 / 鹹鹵滿其腹
나 느꼈을 땐 이미 구할 수 없었으니 / 余覺已無救

鹵滿其腹 '짠물'이라고 하지만 '물 수'자는 생략합니다. 문맥상 '잔속에 빠지는 것'이나 짠물(소금물)이 되는 것이지요.

즉 문맥상 [옥담사집]의 저 항아리에 채운 것은 소금이 아니라 '소금물'이 타당한 추론입니다. 그리고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만든 과정이 전혀없는 것을 보아 된장보다는 간장이라는 것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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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오늘은 그제 소개한 황교익 불고기논란에 한 단계 더 들어가는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즉, 이전글이 황교익씨의 주장과 달리 원래 조선시대의 요리중 소고기에 간장과 마늘베이스는 일본보다 훨씬 빈번하고 오랫동안 해 먹던 방식이라는 것이 촛점이라면, 오늘 글은 황교익씨가 집중적으로 강조하는 '짠 조선간장'이 아닌 '단 맛의 간장' (왜간장과 흡사한) 베이스 역시 이미 최소 조선중기에도 자주 먹던 간장의 종류였을 가능성을 설명드렸습니다.

이와 별개로 소개해드린 '감장'과 '왜간장방식'의 관련가능성에 대해서는 이 추론을 근거로 좀 더 자세한 관련연구가 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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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른밸 2018/12/03 10:07 #

    와 대단하십니다! 저도 조선간장에 대해서 많이 잘못 알고 있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31 #

    조선간장이라는 현대의 형태하나로 500년간의 조선간장을 뭉뚱그리기에는 너무 오랜 세월같습니다.
  • 동굴아저씨 2018/12/03 10:54 #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간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게 됬네요.
  • 역사관심 2018/12/06 04:31 #

    감사합니다. 저 역시 이번 시리즈글로 우리 간장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게 되네요.
  • 함부르거 2018/12/03 11:12 #

    우리 민족이 천년을 넘게 간장을 담가 먹어 왔는데 단 맛도 있고 짠 맛도 있고 가지가지였겠죠. 문헌에 안나오는 게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33 #

    백번 동의합니다. 문헌기록이란게 (언젠가 쓰려고하지만) 워낙 담은 기록보다 안담은 기록이라 할수 있을정도인지라 (예를 들어 그 유명한 황룡사목탑조차 생각보다 그다지 언급안되지요). 두 세번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등장하는 단어는 꽤 의미있게 바라봐야 한다 생각합니다.
  • Nocchi 2018/12/03 11:59 #

    잘 보았습니다
    황교익 씨는 뭔가 옛날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같은 느낌이 살짝 드네요
    자신이 한 두 개 아는 걸 가지고 좀 쉽게 확대 해 버린다고 할까..
    물론 그런 식 글쓰기의 대마왕 격인 제가 비난할 계지는 아닌 듯 싶기도 합니다 ^
  • 역사관심 2018/12/06 04:34 #

    이규태코너는 관심있게 본 글이 몇번없는 지라... 그분도 그런 행태를 했었나요. 그렇다면 실망;;
  • 남중생 2018/12/03 17:49 #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간장과 감장이 개별 품목으로 적힌 1682년 부상록 기록으로, 당시 조선에서 짠 "간장"과 단 "감장"을 구분했으며, 단순히 (짠) 조선 간장, (단) 왜간장의 구분이 아니었다는 걸 볼 수 있군요.

    고전DB에서 찾은 또다른 기록이 있는데, 1748년 통신사의 기록인 "봉사일본시문견록"의 기사입니다.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1403A_0020_030_0100_2003_010_XML)

    "소위 그들이 밥 짓는 것은 곧 거친 보리를 껍질만 벗긴 것이요, 먹는 것도 한 사발이 차지 않으며, 반찬으로는 감장(甘醬) 같은 것 몇 덩이뿐이었다."

    일본에서 "감장 같은 것"을 반찬으로 먹으면서 딱히 "왜간장"이라고 부르지 않고 "(조선의) 감장과 비슷한 무언가"라고 부르고 있는 것에 눈길이 가네요.

    대마도 근처 방포(芳浦)라는 곳에서 밥을 먹은 기록인데, 지금의 주소로는 (구글 지도에서 찾자면) Japan, Nagasaki Prefecture, Tsushima, 美津島町芦浦입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35 #

    사실 '감장과 간장'을 구분하는 기록은 조선문헌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궁금한 점은 이런 단어가 과연 저 일본쪽의 같은 단어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 요리문헌연구자들이 좀 파고들면 좋겠네요. 현재의 '감장'이나 '청장'의 정의는 너무 안 와닿는지라...(오래 묵은 간장이나 맑은 간장;;)
  • 응가 2018/12/03 18:07 #

    조선간장도 쓰지 않나요??? 조선간장도 종류가 많은데 참 그분은 볼때마다 불쾌감이 드네요
  • 역사관심 2018/12/06 04:37 #

    조선간장으로 당연히 양념을 썼겠지요. 저 분은 불고기(현대의)에 국한해서 이야기한 것이기에 그 주장자체는 제 글에서 이야기하는 조선시대의 양념과는 다르긴 합니다. 다만, 간장베이스 소고기요리라는 측면에서 훨씬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측 기록은 깡그리 무시하면서 가장 결과론적으로 비스무리한 일본요리를 가져다 대는 것이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 無碍子 2018/12/03 20:43 #

    할머니가 소유간장이라시던 왜간장은 양조간장이아닌 산분해간장으로 알고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41 #

    양조간장보다 산분해간장이 경제적인지라 그랬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가정집용은 없고 요리집용만 그것도 양조를 섞어서 혼합간장이라는 형태 (요즘 나오는 진간장도 이 분류)로 판매한다고 하더군요.
  • windxellos 2018/12/03 21:07 #

    '淸'이라는 글자에 애당초 '꿀'이라는 뜻도 있고 이게 확장돼서 'XX청'이 대개 졸이든 어쩌든 해서 (꿀처럼)달게 만든 물건을 가리킨다는 걸 생각해보면 언급하신 '淸醬'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18/12/10 03:01 #

    생각못한 부분인데 감사합니다. 분명 청 자에는 그런 뜻이 있지요. 뭔가 눅눅하고 들큰한 간장이 떠오르네요. 이런 넷상정보를 보면 청장이란게 과연 무엇일까 과연 한가지 개념일까일 정도로 다른 개념인지라...(저 구황촬요의 제조법과는 너무 다른).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B2%AD%EC%9E%A5(%E6%B7%B8%E9%86%AC)
  • Blackmailer 2018/12/04 09:59 #

    일본에는 쵸우센야키(朝鮮焼)라는 음식이 있어요. 지금 정확한 출전이 기억나진 않는데, 17세기였나 18세기의 조리법 책에도 등장하고, 지금도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요리로 간장(혹은 된장)에 재운 고기를 구워 먹는 음식입니다. 에도시대에는 육식금지령 때문에 생선을 그런 식으로 해서 먹다가, 메이지시대 이후로는 돼지고기나 소고기를 재료로 쓰게 되었지요. 사실 이름에서부터 '조선'이 들어가니 식문화사의 관점으로 보면 대단히 흥미로운 소재인데, 의외로 이 음식에 주목하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황교익은 보면 불고기란 주제를 두고 '한국과 일본이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려 하는데, 적어도 20세기 중반까진 고기구이에 있어선 일방통행이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 역사관심 2018/12/06 04:47 #

    댓글로 얻는 귀한 정보가 너무 많습니다. 꼭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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