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마도 한국고대건축 재건프로젝트의 하나의 정점이자 시금석이 될 (아니, 되어야하는) '황룡사 프로젝트'는 예전에 이 시리즈글을 통해 몇번 강조한 바 있듯, 비단 건물의 형태뿐 아니라 내부장식등 역시 동시대 존재하던 많은 파편같은 정보를 끌어모아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목재의 종류(수종), 고대단청 (붉은 주칠위주), 그리고 중요한 내부구조인 사다리구조라든가, 내부 불전을 장식할 고식 용기둥, 그리고 바닥에 까는 전돌형식등에 대해 살펴본 바 있습니다. 오늘은 이보다는 작은 부분일지 모르겠지만, 9층의 각층을 장식하는 중요한 외부장식인 '난간'에 쓰일 수 있는 귀중한 정보를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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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사 백장암 석탑
예전에 살펴본 [한국의 사라진 대사찰 (11)- 베일에 가린 대목탑, 신라 실상사 實相寺]의 주인공 거대목탑이 존재한 실상사에는 아담한 석탑이 하나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그 주인공입니다.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
얼핏 보기엔 별 특징없는 이 삼층석탑은 조사결과 통일신라말기로 그 건립시기가 추정되는 유적입니다. 그런데 뭔가 새겨져 있네요. 가까이 가볼까요.


네, 흥미롭게도 마치 이 석탑자체가 진짜 탑인양, 각층에 사람이 새겨져 있고 층층마다 '난간'이 부조로 새겨져 있지요. 우선 이 조각들에 대한 연구결과내용입니다. [전라북도의 석탑] (2004, 국립문화재연구소) 부분을 발췌해 보지요.
상륜부 또한 노반, 복발, 보륜, 수연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주목할 만하다.지대석 위에 기단석은 호각형 2단의 탑신받침이 있고 그 위에는 난간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백장암삼층석탑의 장식적 특징은 유형별로 건축적 표현과 불교적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다. 난간은 건축적 표현으로 문양은 2층과 3층 탑신석 아래 부분에 새겨져 있는데 기단석의 난간문양을 뒤집은 형태가 2, 3층 탑신의 난간문양과 같다. 탑에서 난간 형태를 사용한 것은 불국사 다보탑(국보 제20호)에서부터보이기 시작하며, ‘卍’자 무늬살이 있는 난간으로 송림사오층전탑내유물(보물 제325호)의 기단 주위에 돌린 난간과 기축명 아미타여래제불보살입상(己丑銘阿彌陀如來諸佛菩薩像) 등을 들 수 있다. 서연수는 그의 논문에서 이러한 난간 무늬살이 같은 계통으로 9세기 이후 부도에서 나타나는 난간의 표현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탑에서 완전한 난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는 백장암석탑이 유일함을 언급하고 있다.
우선 이 탑의 소재하고 있는 실상사는 9세기초인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현재의 자리인 남원시에 발길을 멈추고 창건한 대사찰입니다. 위의 연구결과를 보면 백장암석탑은 9세기의 난간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완벽한 모습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석탑임을 알 수 있지요.
그럼 난간의 모습을 한번 더 가까이 봅시다.


이 문양을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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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사 목탑의 난간
황룡사 9층목탑이 원래 건설된 시기는 7세기인 645년입니다. 하지만, 고려 4대왕 광종(光宗, 925~ 975년)이 21세가 되던 945년 벼락으로 목탑이 소멸해 버리지요. 이후 60여년이 지난 1012년이 되어서야 다시 재건을 시작하여 9년만인 1021년에 완성했고, 그 후 1035년과 1095년에 보수공사 3년(1012)에 고려전기 별궁중 하나였던 경주의 조유궁(朝遊宮)을 헐어서 9층탑을 수리를 했지요. 즉, 황룡사 구층목탑은 7세기~11세기에 걸쳐 몇차례 재건을 반복한 나말여초의 대건축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저 실상사 백장암석탑은 9세기의 건축물로 황룡사 9층목탑의 시기의 한가운데의 것입니다. 시기가 맞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팩트가 있습니다. 바로 실상사 대목탑의 존재입니다.

실상사 대목탑 추정도 (9층목탑)
서두의 실상사시리즈글에서 이미 상세히 다룬 바 있는 실상사 9층목탑은 정방형으로 각각 7칸인 이 대목탑은 유명한 황룡사 9층목탑보다도 가로 0.11미터, 세로 0.93미터가 더 큰 23.08미터 X 23.20 미터의 거대한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실상사 대목탑터
무엇보다 황룡사 9층목탑은 실상사 대목탑이 세워질 무렵 함께 존재했습니다. 실상사 목탑이 12세기초반 (아마도 1127년 중건때)에 만들어졌다면, 황룡사 목탑이 몽골의 3차침입때 전소되니 (1235년), 약 100년간 공존한 셈입니다. 실상사 삼층석탑이 7세기, 황룡사 9층목탑의 재건시기는 11세기말. 그리고 실상사 대목탑이 12세기초로 거의 같은 시기입니다. 즉, 이 두 대목탑보다 앞선 시기에 만들어진 그리고 하나의 대목탑과 '같은 사찰'에 존재하는 석탑에 명확하게 '탑의 난간'의 패턴이 새겨져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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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단서, 법륭사 금당 난간
그런데 바다건너 일본에 또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바로 유명한 7세기말로 건립시기가 추정되는 법륭사 금당의 난간형식이 그것입니다. 이 사진이 법륭사 금당의 난간입니다.

법륭사 금당난간형태 (7세기말 건립추정)
자 한번 비교해 보지요. 다음은 실상사 백장암 석탑에 새겨진 난간의 모든 형태입니다.





그리고 그중 한국의 백장암석탑이 존재하는 실상사에는 그 후 고려초에 대목탑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 건립시기는 황룡사가 전소되고 재건되던 시기와 같은 11세기말. 물론, 4세기라는 긴 시기의 차이가 있지만 위치의 중요성과 또한 황룡사 목탑의 경우 재건이 아닌 원래 건립시기는 역시 7세기로 백장암석탑과 같은 시기입니다. 즉 여러모로 이 석탑에 새겨진 난간은 당대 통일신라~고려초의 탑의 난간형식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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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그리고 기쁘게도 이 난간의 모습은 작년에 재건된 경주의 고대목교인 월정교의 난간에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경주 월정교 난간
이 월정교의 난간을 보시면 법륭사금당의 그것과 같음을 알 수 있지요.

법륭사 금당 난간
한국의 복원전문가들과 3D프로젝트에도 연구결과가 반영된 좋은 예 같습니다. 글 맨앞에 올려드린 황룡사 목탑의 디지털 작업중 가장 최근이며 가장 마음에 드는 (색감등) 지교버젼의 난간도 바로 이 백장사 패턴을 적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실상사 백장암 석탑에 새겨진 각층의 모든 패턴입니다.

앞으로 황룡사 연구에 이러한 각 부분의 연구성과가 차곡차곡 적용되길 기대합니다.
덧글
그런 관련으로 인상깊었던 책은 까치글방에서 나온 "세계7대 불가사의" 였습니다. 피라미드를 제외한 나머지 6가지 관련해서 당대의 많은 기록들을 모으고 거기서 공통점을 뽑아내서 '이랬을 것이다'를 유추해 놓는 각각 다른 저자가 그런 부분들을 정리해 놓고 최신 연구결과를 보여주는 책이라서 맘에 들었었어요. 물론 지금은 고고학적으로 더 진행되서 또 다른 결과들이 추가되었겠죠. 그래도 1980년대까지 알고 있고 '남아있지 않은 상상의 유적'이었는데 진행된 고고학적 발굴 및 기록비교로 '불가사의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구성은 참 맘에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http://www.yes24.com/24/goods/3255717
이런 제목은 좀 날림같은 느낌이 있어서 찾아보지도않았는데 꽤 충실한가봅니다. 서점갈 때 기억해두려고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906
새로 지은 절 본관 말고 발굴중인 유적지가 크긴 크더군요
목탑지 외 전번에도 소개하셨던 유명한 워터 테마 정원 유적도 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입니다. http://trich.or.kr/
젊은 대표들이 이끄는 회사라 앞으로 혁신적인 행보가 기대됩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918025004
이렇게 흥미로운 정보를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옛날의 건축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