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방식+재료가 없다고요? (황교익 불고기논란 관련 마지막 반론글) 음식전통마

17세기 이후 소고기왕국이었던 조선이야기를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불고기에 관련된 올해 황교익씨 논쟁에 몇 편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아마도, 최소 불고기관련해서는) 마지막 편일듯 합니다.

황교익씨는 불고기가 평안도사투리에서 온 말일것이라는 국어학자들의 의견을 반박하며 이렇게 설명한 바 있습니다.

"서울대 이기문 교수의 주장에 의하면 평양 넓게는 평안도 지역 방언이라고 한다. 사실 그게 불고기가 우리 언중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의 핵심이다. 이기문 교수가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평양에 대한 기억은 아주 어릴 때 가봤는지는 기록이 없는데 근데 평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건 맞다. 이기문 교수 주장은 어릴 때 어디서 들었다는 거다. 평안도 사투리로 들었다는 것, 그게 전부다. 문헌 자료가 아무것도 없다. 그건 학문적 가치가 없는 증언이다. 근거가 없다. 불고기라는 말이 우리 언중(言衆)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려면 그와 유사한 말도 만들어져야 한다. 떡을 불에 구워먹는 일이 많은데 그걸 불떡이라고 불러야 되고, 군만두는 불만두로, 군고구마도 불고구마로 부를 수 있었을 거다. 불로 조리되는 직화로 굽는 거에 ‘불-’ 단어를 붙이는 것도 존재해야 불고기라는 말은 언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고기라는 말은 굉장히 특이하다. ‘불+고기’ 이렇게 만들어진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황교익씨는 여기서 '군'이란 말과 '불'이란 말을 굳이 구분해가며 불고기라는 말은 군만두와 달리 어색하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는 이런 논지를 폅니다.

"불고기라는 이름이 등장한 시기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때의 일이다. 일본에 우리의 불고기와 조리법 및 그 음식명의 구조가 유사한 음식이 있다. 야키니쿠, 즉 불에 구운 고기, 소육燒肉이다. 불(燒)+고기(肉). 불고기는 소육燒肉의 한글 번역일 수 있다."

그런데 진짜 재미있는 것은 '야키니꾸'의 'やき(야키)'의 뜻입니다. 예를 들어 '장어구이'는 일본어로 '가바야키 (蒲燒き, かぼやき)입니다. 말 그대로 '군(구이)'이 됩니다. 또, やきがし(焼き菓子 또는 焼菓子야키가시)라는 말은 우리나라말로 '군과자'입니다. 황교익씨 말대로라면 이건 '불과자' 그리고 '불장어 (혹은 최소 장어불구이)'로 번역해야 하는것이지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말로 '군만두'에 해당하는 일본음식은 焼き餃子(혹은 焼餃子야키교자)입니다. 

다시 말해, やき라는 말의 일대일대응 한국어는 '불'이 아니라 '(불에) 구운'입니다즉, '야키니꾸 (焼き肉, 혹은 焼肉)'는 '불고기'가 아니라 '군고기'가 훨씬 적당한 번역어입니다. 어학적으로 처음부터 불고기라는 뜻이 될 수가 없습니다. 야키니쿠를 직역해서 불고기로 썼다는 말자체가 어불성설인 것입니다 (군고기면 모를까). 

즉, 정작 일본사람들에게 일본어로 야키니꾸는 '불고기'가 아닌 (군만두처럼) '군고기'의 뉘앙스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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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방식+재료가 없다?
황교익씨는 그의 페이스북에서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한국어에서의 음식명 짓기의 원칙은 ‘재료+조리법’이다. 떡+볶이, 제육+볶음, 감자+튀김 등 이는 목적어+동사로 문장을 만드는 알타이어계의 언어구조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불고기는 이런 한국어 언어구조에서 벗어난다. 불(조리법)+고기(재료)다. 물론 찜닭이나 볶음밥 등 ‘조리법+재료’으로 조어된 합성어도 있지만 이는 극히 일부이며, 변칙의 예일 뿐”

이에 대해 이미 몇몇 국어학자들의 반박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아래 김지형 교수는 조리법+재료의 조어방식이 황교익씨주장처럼 '극히 예외적'인 것인지 검토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논문 <불 관련 어휘의 어원 탐색>(2008)을 쓴 김지형 경희사이버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한국어에서 상당히 많은 음식명이 ‘재료+조리법’의 방식으로 조어된 것이 사실이지만, ‘조리법+재료’의 방식이 극히 예외적이라고 보는 것은 많은 음식명을 검토한 후에야 내릴 결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학자들도  등 ‘조리법+재료’로 조어된 합성어도 실제 우리 말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는 말을 공통적으로 덧붙였다.

오늘은 필자가 검토해본 사료를 바탕으로 이 '조리법+재료'방식이 황교익씨말처럼 극히 드문 것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과연 조선시대부터 우리에겐 '조리법+재료'의 합성어가 불고기밖에 없을까요? 


'비빔밥', '물만밥', '군만두', '삶은 계란'

황교익씨는 굳이 '불고기'와 '군고기'를 나누어서 있네없네를 따졌지만, 조선시대의 문헌에서는 두가지 표현이 모두 등장합니다. 이 부분은 조금 후에 살펴보지요. 일단 이 글의 주제인 조리법+재료가 토픽이니 이 부분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멀리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유명한 '비빔밥'이 있습니다. 당연히 '조리법(비빔)+ 재료(밥)'의 합성어. 그럼 이 단어는 현대한국어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시대부터 있던 오래된 단어입니다. 
다음은 16세기후반의 문인인 박동량(朴東亮, 1569~ 1635년)의 [기재잡기]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惟公命耳。遂以飯一盆。襍以魚菜。如俗所謂混沌飯。酒一角杯可容三壺者饋之。
곧 밥 한 대접에다가 생선과 채소를 섞어 세상에서 말하는 비빔밥과 같이 만들고 술 세 병들이나 되는 한 잔을 대접하니,
如俗所謂混沌飯。세상풍속이 말하는 비빔밥(혼동반)과 같이 만들어...

벌써 이 문헌에 '비빔밥'이라고 해석된 단어가 나옵니다. 원문을 볼까요?

混沌飯 섞을 혼, 엉길 돈, 밥 반

'혼돈반'이라고 쓰는데 '섞어서 엉긴 밥' 즉, '비빔밥'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확실히 '조리법+재료'지요.

그런데 이 혼돈반이라는 글자를 '비빔밥'으로 발음했음을 유추할 수 있는 기록이 있습니다. 1810년(순조 10) 중인 출신 장혼(張混)이 청소년의 학습을 위하여 지은 책인 [몽유편(蒙喩篇)] 상권에는 당시 어려운 한자음을 한글로 기록해 둔 여러 귀중한 정보가 있는데 이중 '혼돈반'을 '골동반'이라는 한자로 바꾸어 기록한 부분이 있습니다.

薏苡
율모
玉蜀黍
옥수슈
麨麪
미시
酒麴
누룩
鹽醢
米醋
酒糟
주여미
骨董飯
브뷔음
水和飯
물만밥

여기 보면 骨董飯 (브뷔음), 그리고 水和飯 (물만밥)이라고 한글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즉, 골동반(혼동반)을 이미 이당시에 '브뷔움(비빔(밥))'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수확반(水和飯)이라는 단어는 '물에 합친 밥' 즉 물만밥으로 표기하고 있지요.

즉, '조리방법+재료'의 두가지 예 (비빔+밥, 물에만 밥)가 그대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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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예로 가볼까요. 다음은 이전 포스팅에서 '소육'과 '진감장'부분이 소개된 13세기 몽골의 요리서인 [거가필용]에 나오는 "닭복음"부분으로 이 원문이 [산림경제]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려 있어 이미 조선에 널리 퍼진 요리임을 알 수 있지요. 

닭볶음[炒鷄]은, 깨끗이 장만한 닭 한 마리에 참기름 3냥을 넣고 볶아, 파채[蔥絲]ㆍ소금 반 냥을 넣어 7푼쯤 익힌 뒤 곱게 간 후추ㆍ천초(川椒)ㆍ회향(茴香)을 간장 한 수저에 타서 물을 큰 사발로 하나 붓고 솥에 넣어 익도록 끓인다. 좋은 술을 조금 치면 더욱 좋다.
-거가필용

그런데 이 '닭볶음'은 요즘 우리가 부르는 음식인 닭볶음탕, 닭갈비등에 기대서 의역한 것이고, 원문의 단어는 반대로 '볶은닭'입니다. 

炒鷄 (볶을 초+ 닭 계= 볶음닭)。

초계라고 되어 있어, 직역하면 닭볶음이 아니라 '볶음닭'이지요. 즉, 우리가 (황교익씨 제외) 요즘 불고기로 번역하는 '소육燒肉'과 완전히 같은 조어방식입니다.

즉, 또 다른 조리방식+ 재료의 조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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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만두'라는 단어까지 나옵니다. 볼까요?

다음은 신유한(申維翰, 1681-1752년)의 [해유록]에 나오는 부분입니다.

해유록(海游錄) 상 / 7월 
17일(무자)

은소반에 박치어 / 銀盤粕漬魚
백절에 군만두로 / 白折燒饅頭
7월 보름밤에 / 七月十五夜
낭군 따라 성묘가네 / 與郞上山丘

'백절에 군만두'라는 구절에 '소만두'라는 단어가 보이지요.

燒饅頭 불사를 소+ 만두

즉, 소육을 '불고기나 군고기'로 번역하듯 이 것은 '불만두 혹은 군만두'입니다. 또하나의 "조리방법+재료"의 단어예입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삶은 계란'도 나옵니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중
以金桐根煮雞卵 귀한 오동나무 뿌리로 삶은 계란

煮雞卵(삶을 자+계란) 삶은 계란

모두 황교익씨가 '극히 드물다는' 조리방법+재료의 근대이전 문헌의 단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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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고기 그리고 燒肉 (소육) & 炙肉 (군고기)

우선 조리방식+재료의 합성어는 황교익씨 주장과는 달리 이미 조선시대에 꽤 많았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시 주제인 불고기로 돌아와서 그의 다른 논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즉 '군고기'와 '불고기'에 대한 엄격한 그의 시각말이지요. 우선 [승정원일기]중 1639년 기록을 보겠습니다.

승정원일기
인조 17년 기묘(1639) 3월 26일(계미) 
早飯粥一器, 燒肉一器, 
조반(早飯)은 죽(粥) 1그릇, 소육(燒肉) 1그릇으로

아침은 죽 한그릇과 불고기 한접시로 먹는다는 뜻입니다. 황교익씨는 야키니쿠라고 발음하는 燒肉 (소육)이란 단어가 보이시지요. 여기서 황교익씨의 논리를 다시 짚어드리자면 "떡을 불에 구워먹는 일이 많은데 그걸 불떡이라고 불러야 되고, 군만두는 불만두로, 군고구마도 불고구마로 부를 수 있었을 거다. 불로 조리되는 직화로 굽는 거에 ‘불-’ 단어를 붙이는 것도 존재해야 불고기라는 말은 언중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불고기라는 말은 굉장히 특이하다. ‘불+고기’ 이렇게 만들어진 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즉, 무언가를 불에 구우면 이걸 '군+단어'로 다른 단어들은 쓰는데 '불'을 붙이는 건 불고기밖에 없어서 매우 희귀하다는 즉, 그러니까 야키니쿠(소육)에서 왔을 거란 뜻입니다. 왜 '군고기'라고 안하고 '불고기'라고 했냐 이것입니다. 우선 우리 선조들이 소육을 '불고기'로 발음했는지 혹은 '군고기'로 발음했는지는 현재 문헌정보부족으로 알 길이 없습니다. 이는 위의 예인 소만두(燒饅頭)가 '군만두'로 발음했는지 '불만두'로 발음했는지 알 길이 없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에 반해 골동반은 '비빔밥'으로 비슷하게 발음했음이 위의 기록으로 알 수 있지요).

우선, 서두에 언급했듯 솔직히 이걸 '군고기'로 번역해서 쓰든 '불고기'로 번역해서 쓰든 이 한자어가 현재 한국의 '불고기'가 되었을 가능성을 황교익씨처럼 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소육이라는 저 단어는 일본문헌에서보다 조선문헌에 훨씬 오래전부터 그리고 더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당연합니다. 일본은 육식이 19세기중엽이나 되서야 성행하게 되니까요).

그런데, 흥미롭게도 우리 선조들은 이 소육을 '군고기'와 '불고기' (혹은 다른 방식으로) 따로 따로 발음했을 가능성 역시 꽤 있습니다. 다음은 이익(李瀷, 1681~ 1763년)의 [성호전집]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성호전집 서의(書儀)
“膾 今紅生 炙 今炙肉 殽 今骨頭 軒 今白肉” 즉 회는 지금의 홍생이고 적은 지금의 적육이며, 효는 지금의 골육이고 헌은 지금의 백육이라는 뜻인데, 대개 회는 붉고 신선한 고기, 적은 불고기, 효는 뼈에 붙은 고기, 헌은 흰색의 고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燒肉 (소육- 불사를 소+고기 육)이 아니라 炙肉 (구울 적+ 고기 육)의 '적육'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명확하게 설명하지요. 

炙 今炙肉 적은 곧 적육이다.
현대한국말로 하면- "적은 곧 군고기다."

이 '적육'이란 단어가 '소육'과 다른 또 다른 개념어였음은 이 단어가 한번 나오는 것으로 그치지 않음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음을 볼까요?

성호전집 제48권 / 잡저(雜著) 
기일(期日) 하루 전에 재계하고, 음식을 갖춘다. 과일 4품과 서수(庶羞), 채소가 도합 10여 그릇이고, 구운 간〔炙肝〕이 1품이고, 구운 고기〔炙肉〕가 2품이며, 미식(米食), 면식(麪食), 밥, 국이 각각 한 그릇이다. 
前期一日。齋戒具饌。果四品庶羞蔬菜合十餘器。炙肝一品。炙肉二品。

성호전집의 다른 권에서도 '군고기'가 2품이라는 명확한 단어로서의 쓰임새가 나오며, 유장원 (柳長源, 1724~1796년)이 쓴 [상변통고]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상변통고
【案】爲亞獻酒炙肉設于其處故也
【동암안설】 아헌의 술과 적육(炙肉)을 그 자리에 진설하기 위한 까닭이다.

이 뿐이 아니지요. 황교익씨가 다른 글에서 조선시대에는 없다던 (근대에 들어왔다던) '석쇠'를 설명하는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도 '소육기'가 아니라 '적육기'로 표기되고 있지요.

오주연문장전산고
 ‘丳’은 고기를 굽는 석쇠[炙肉器]이다.
丳。炙肉器也。

역시 같은 문헌에 두번 나옵니다.
丳 【炙肉器。炙鐵。】。炙鐵 적쇠.

즉, 조선후기가 되면 '불고기(소육)'과 '군고기(적육)'을 다르게 분류하고, 조선어로도 달리 발음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느쪽이 불고기인지 군고기인지 혹은 다른 발음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누구말처럼 현재의 불고기와의 관련성을 배제할 만큼 그렇게나 중요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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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돼지고기(돼지불고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흥미로운 기록을 소개하고 마무리하지요. 다음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 1856년)선생의 [완당전집]에 나오는 구절.

완당전집
燒猪是金華舊味。
돼지 불고기는 바로 금화산(金華山)의 옛 맛이니, 장차 사중(舍仲)의 무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한번 먹을 것입니다.

한국고전번역원측에서는 '돼지 불고기'로 번역한 이 단어. 한번 살펴볼까요?

燒猪 불사를 소+ 돼지 저 (불돼지(고기)).

'소저'라는 이 단어는 돼지를 굽는다는 동사와 목적어로도 쓰이지만, '소저'자체가 불돼지로 쓰이기도 합니다. 위의 문장전체맥락을 보면 여기서는 분명 '합성어'로 기능하고 있지요. 즉 '불돼지고기'입니다.
燒肉 (소육)= 불(소)고기
燒猪 (소저)= 불돼지고기

한번만 나오면 김정희선생이 급조한 단어로 여길 수도 있겠지요. 허나 또 나옵니다. 

연려실기술
죽순[筍]
오늘에야 참으로 택룡을 먹게 되니 / 籜龍此日眞成喫
종당에는 돼지불고기와 분순을 보게 되리 / 會見燒猪噴筍來

[연려실기술]은 위의 김정희선생과 거의 동시대의 문인인 이긍익(李肯翊, 1736~ 1806년)의 저서입니다. 여기에 '돼지불고기'라는 낱말로 쓰인 분명한 예시가 등장하고 있지요. "돼지를 굽는 것"과 '분순'을 보게 되리라는 건 말도 안되니까요. 즉 "돼지불고기"와 "분순"으로 쓰인 분명한 예입니다.

즉, 조선시대에는 '돼지불고기'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는 소고기 불고기를 '불고기'로, 돼지 불고기를 '돼지불고기'로 부르고 있지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그런데 '군고기'로 직역될 수 있는 '적육'과 달리 군돼지고기로 해석될만한 '적저 炙'란 단어는 없었습니다. '적육'에서 '육'은 어디까지나 소고기였습니다. 이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역시 [연려실기술]에 등장합니다. 

연려실기술 제12권 / 선조조 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선조의 아름다운 덕행
언젠가 한번은 나인(內人)이 불고기 먹는 것을 보고

나인이 고기를 구워 먹는 것 (구식우육)을 보고... 원문은 이렇습니다.

즉, '소고기(우육)을 구워(구) 먹는(식)'이라는 구절. 炙肉 (적육)은 소고기였음을 유추해 볼 수 있지요.

여기서 炙 (구울 적)와 灸 (구울 구)자라는 획 하나차이의 거의 흡사한 글자가 쓰이는데 여기서는 혼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적(구)가 일반적으로 소고기를 뜻함은 또다른 문헌인 [산림경제]를 보면 거의 확신할 수 있습니다.

산림경제
"또 김연이 체포되던 날에 그의 집을 수색해보니, 소를 잡아 불고기를 만들어 놓은 것이 매우 많아서, 군졸에게 나누어 먹인 흔적이 현저했다고 합니다."
搜覓其家藏, 則屠牛作灸者甚多, 顯有犒饋之跡云。

牛作者甚多 소를 '구'로 만들어 놓은것이 매우 많아서

이것을 '불고기'로 번역해 놨지만, 이는 의역일뿐이고 정확히 말하면 '소를 잡아 '구'로 만들어 놓은 것이 매우 많아'라는 뜻입니다. 굳이 정확히 의역하자면 '소육'이 아니라 '구육(적육)'이니 '군고기'로 번역해야 옳겠지요.

마지막으로 소육과 적육은 앞서 소개한 13세기의 [거가필용]에서도 엄밀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燒肉。忌桑柴火。神隱 燒肉ㅣ。用簽子。揷於炭火上。蘸油鹽醬細料物。酒醋調薄糊。不住手勤翻燒。至熟剝去麪皮。
소육
대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올려 놓고 굽는다. 먼저 기름ㆍ소금ㆍ장ㆍ갖은양념에 고기를 담근다. 그리고 술ㆍ초을 얇게 발르고 묽은 풀을 슬쩍 발라 손을 재게 놀려 구워낸다. 그 후 고기에 입힌 밀가루풀을 벗긴다. 《거가필용》

灸肉。用芝麻花。爲末置肉上。則油不流。
적육
참깨꽃을 쓴다. 꽃가루로 만들어 고기 위에 뿌리면 기름이 흐르지 않는다.

현대한국어로 그냥 뭉뚱그려 '불고기'로 마구번역해서 그렇지 '불고기', '군고기'로 엄밀히 다르게 불렀을 가능성도 연구해 봐야한다 사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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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황교익씨는 서두의 그의 주장 뒤에 이런 말을 덧붙입니다. 

“그렇다. 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민족의 고유 음식에 집착할까. 조선시대에도 민족주의가 있었을까. 조선에 사는 백성들이 우리는 한 핏줄이란 의식을 갖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양반과 상놈으로 나눠진 신분제 사회에서 한 핏줄이란 의식을 만들 수는 없다. 민족은 근대 이후에 발생하는 개념이다. 한반도에서 민족의식이 생겨난 것은 일제강점기다. 왜 필요했을까. 독립국가를 위해서다."

20세기는 분명 민족국가의 시대였고 많은 병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1세기는 다민족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개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쪽이 '선'이고 '진리'인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고 민족에 기반한 국가개념이 있었는지, 아니면 유럽처럼 근대에 와서야 이렇게 바뀐 것인지에 대해 '우린 단일민족이었고 항상 그랬어'라고 하던 20세기초의 위험성만큼이나 민족개념은 (유럽처럼) 19세기에 와서야 만들어진 것이고 그전에는 우리도 유럽처럼 국가소속감이나 민족소속감이 없었어!라고 쉽게 말하는 것 역시 동전의 양면처럼 똑같은 위험성을 가진 발언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아니지만, 이 주제 역시 앞서 몇차례 발굴해 보고 있습니다.

관련글: 그러자 총독이 웃으면서 "틀렸다, 이 사람은 코레시안(Coresian)이다."라고 했습니다.

관련글: 표해록을 통해 본 15세기 조선인들의 고구려에 대한 정체성 인식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학분야에서 이런 식의 시대담론으로 어떤 개개의 문화적 개념이나 대상을 잘라내거나 뭉뚱그려 설명하는 시도를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색깔이나 모양이 확실한 안경을 쓰고 문화적 대상을 잘라보는 것이나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황교익씨의 불고기담론 역시 개인적으로는 단지 한 문화대상에 대한 이야기로 국한된 것이 아닌, 그가 주장하는 말미의 저 문단을 볼때 이러한 큰 문맥에서 나온 대담한(위험한) 발언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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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냥이 2019/01/18 14:27 #

    적육 만드는 요리법에 참깨꽃을 쓴다고 되어있는데 예전부터 참깨를 작물로 심어 사용했나보군요.
  • 역사관심 2019/01/19 12:19 #

    네, 참깨는 최소 고려시대문헌부터는 꽤 등장하고 있어 식용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진냥 2019/01/18 15:03 #

    어쩜 저리도 자신만의 설정(?)이 확고할까요...=ㅅ= 차라리 판타지 소설가를 했으면 대성했을지도 모르는데 어쩌다 음식 칼럼니스트를 해갖구선 전방위적으로 욕을 드시는지...
  • 역사관심 2019/01/19 12:20 #

    이상한 사명감에 불타고 계시는 느낌입니다...
  • 동두철액 2019/01/18 16:25 #

    민족의 형성에 대해서도 고대사와 근대사 전공자가 의견이 다르고 한국사와 서양사 전공자 의견이 다를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되는데 황교익씨는 근거도 부족한 불고기 야키니쿠설을 내세우면서 단정지으니 그 용기에 박수를 치고 싶군요.
  • 역사관심 2019/01/19 12:21 #

    위의 댓글과 동일한 소감입니다. 다 좋은데 '단정짓는 태도'는 학자라면 극구 피해야 할 최소한의 자세인데 학자는 아니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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