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초 울타리 얼굴요괴 설화 야담 지괴류

17세기초 문헌인 이현일(李玄逸, 1627~ 1704년)의 [갈암집]에는 흥미로운 요괴가 등장합니다. 바로 '얼굴귀신'입니다.

갈암집(葛庵集) 
묘갈(墓碣)
통정대부(通政大夫) 행 대구 부사(行大丘府使) 야계(倻溪) 송공(宋公) 묘갈명

公天性彊毅正直。少年時嘗從師受業。逮暮而歸。聞村家叢棘間。
有呼喚公小字。若相戲者。就視之。有鬼魅面大與籬齊。公不爲動。
進前欲歐之。其形漸消散盡。公徐行至家。了無惶怖色。其膽大有氣魄如此。

공은 천성이 강의(剛毅)하고 정직(正直)하였다. 소년 시절에 스승에게 가서 수업하고 저물녘에 돌아오는데 촌가(村家)의 가시덤불에서 마치 장난이라도 치듯이 공의 소자(小字)를 부르는 자가 있기에 가서 보니 얼굴 크기가 울타리만 한 도깨비(鬼魅)가 있었다. 

공이 놀라지 않고 앞으로 다가가서 때리려 하자 그 모습이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공은 천천히 걸어서 집에 당도하였으나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으니, 대담하고 기백이 있는 것이 이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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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나오는 주인공은 송희규 (宋希奎, 1494∼1558년)이라는 분으로 이 글이 쓰여진 17세기보다 훨씬 전인 15세기말~16세기초의 인물입니다. 이야기를 보면 소년시절의 이야기이니 그가 7~8세 시절이었을테고, 그럼 1500~1501년경의 조선전기의 에피소드임을 알 수 있지요.

이 짧은 이야기는 꽤나 그로테스크한데 그가 스승에게 수업을 듣고 어스름할때 돌아오는데 집의 가시덤불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어 가서 보니 얼굴이 그 덤불만큼이나 큰 요괴가 있었다는 것. 소년시절에도 담대한 성정의 그가 가서 때리려하자 모습이 점점 사라졌다는 괴이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현대한국에서 필터해서 뽑아내는 조선식 동화의 충이니 효니 하는 교훈이고가 뭐고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에 매우 매력을 느낍니다).

그럼 이 일은 어디 지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까요? [연려실기술]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송희규는, 자는 천장(天章)이며,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이요, 본관은 야로(冶爐)(합천(陜川)에 붙은 고을)이다." 

여기나오는 야로(冶爐)는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에 속해 있는 지명인데 현재 경남 합천군 야로면(冶爐面) 구정동(九汀洞) 부근으로 짐작됩니다. 대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하지만 본관은 야로지만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바로 위의 '성주'입니다.


위의 이야기에는 "소년 시절에 스승에게 가서 수업하고 저물녘에 돌아오는데 촌가(村家)의 가시덤불에"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럼 이 스승은 누구였을까요? 이 이야기는 실은 [연려실기술] (원전: 16세기초의 유분록)에 한번 더 등장합니다. 그런데 기록이 좀 다르고 상세하지요. 아래입니다.

연려실기술
○ 공은 어릴 적부터 재주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 일찍이 좌랑 도형(都衡)에게 글을 배울 적에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오고는 하였다. 하루는 캄캄하여서야 집으로 돌아오는데 별안간 소나무 숲에서 어떤 노파가 나타나더니 꼭 과거부터 공을 아는 사람처럼 공의 이름을 불렀다. 

장난치는 것처럼 앞으로 다가서는데 얼굴이 점차로 커지더니 나중에는 울타리에 가득히 찼다. 이것은 귀신이었는데 공이 재빨리 몸을 앞으로 내달리면서 그 귀신을 치려 하자, 그 형체는 차차 사라지고 오직 얼굴만이 울타리에 걸렸을 뿐이었다. 《유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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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보면 도형(都衡,1480~1547년)이라는 인물이 나오죠. 그가 바로 어린 송희규의 스승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갈암집]기록과 달리 노파가 부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노파얼굴이 점차 커지다가 몸은 사라지고 얼굴만이 울타리에 걸렸다고 되어 있지요. 

이 버젼과 거의 흡사한 것이 16세기 문신인 권별(權鼈 1589~1671년)의 [해동잡록]에 전합니다.
 
해동잡록 海東雜錄
첨중추부사 송희규(宋希奎)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였다. 일찍이 한 선진(先進)의 집을 드나들며 학업을 닦았다. 

하루는 날이 어두워 어느 인가에 투숙하려고 대문을 향해 나아가며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탱자나무 숲 속에서 한 노파가 공(公)의 어릴 적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이 꼭 장난치는 것 같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얼굴이 울타리에 가득 찰 만큼 매우 커다란 것이 진실로 귀신이 괴이함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지경에 빠진 것이므로 벌떡 일어나 곧장 앞으로 달려가며 손을 내저으니 그 모양이 점점 사라져갔다. 

물러서서 다시 돌아보니 울타리 위에 머리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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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흡사한데 여기에서는 '집에 가는 길'이 아니라 '어느 인가에 투숙하려고 가는데'로 다른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위의 두 버젼에서는 '가시덤불' 과 '울타리'로만 되어 있는 것이 여기서는 '탱자나무 숲'이 나오고 있지요.

하지만 세 버젼의 공통점은 요괴의 생김새입니다. 즉, '누군가/노파'가 '송희규'의 이름을 불러 가보니, 울타리에 얼굴이 걸려 있는데 점차 커지다가, 다가가서 해하려하자 나머지 몸체는 사라지고 얼굴만 걸려 있게 된 기이한 모습은 공통입니다.

송희규선생의 어린 시절 자택은 사라졌지만 같은 성주에 그가 성인이 된 1561년, 돌아와 짓고 산 저택이 지금도 남아 전합니다. 예전에 건축물로 짧게 소개한 조선전기형 저택인 성주 백세각이 그것입니다 (역시 전기저택입니다. 2층구조가 보이지요).
야로 송희규의 자택, 16세기중엽 백세각

이 이야기는 오래전에 한번 다룬 바가 있지만, 오늘은 문헌기록 한 점을 더 발견했기에 좀 더 정리해서 소개했습니다.



덧글

  • 최강로봇 도라에몽 2019/01/19 16:43 #

    조선시대 민담은 뭔가 재밌고 희귀한 기록들이 많은거 같아요, 잘 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9/01/20 12:31 #

    네 발굴할 녀석들이 꽤 있죠 ㅎㅎ
  • 존다리안 2019/01/19 23:24 #

    겁쟁이 요괴군요.
  • 역사관심 2019/01/20 12:32 #

    게임캐릭으로 딱 일듯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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