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 인물이 노유(奴儒)일까? (김홍도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 역사전통마

아직까지 드라마나 영화에 쓰인적이 없는 꽤나 매력적인 인물이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의 [경세유표]에 하나 등장합니다. 예전부터 갈무리 해둔 내용인데, 그 회화적 단서를 찾지 못해 오늘까지 미뤄둔 포스팅이었습니다.

경세유표
춘관 수제(春官修制)/ 과거지규(科擧之規)

한(漢)ㆍ위(魏)ㆍ당(唐)ㆍ송(宋)에서 아래로 명ㆍ청에 미치도록 그 선거법이 비록 같지는 않았으나, 대략 선발한 다음에 천거가 있고 천거가 있은 다음에 시험이 있었던 것은 그렇지 않았던 때가 없었는데, 오직 우리나라의 법만은 천거하지 않고 시험보여 오늘에 와서는 천 가지 병통과 백 가지 폐단이 모두 여기에 연유해서 일어나고 있으니, 이 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비록 장량(張良)ㆍ진평(陳平) 같은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그 폐단을 구해내지 못할 것이다.

문장에 능숙한 자를 거벽이라 이르고, 글씨에 능숙한 자를 사수(寫手)라 이르며, 자리ㆍ우산ㆍ쟁개비(銚銼) 따위 기구를 나르는 자를 수종(隨從)이라 이르며, 수종 중에 천한 자를 노유(奴儒)라 이르며, 노유 중에 선봉이 된 자를 선접(先接)이라 이르는데, 붉은 빛 짧은 저고리에 고양이 귀 같은 검은 건(巾 : 儒巾)을 쓰고서, 혹은 어깨에 대나무창을 메기도 하고 혹은 쇠몽둥이를 손에 들기도 하며 혹은 짚자리를 가지기도 하고 혹은 평상(平床)을 들기도 하여 노한 눈알이 겉으로 불거지고 주먹을 어지럽게 옆으로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면서 먼저 오르는데, 뛰면서 앞을 다투어 현제판(懸題板- 과거 때 글제를 내거는 널빤지) 밑으로 달려들고 있으니, 만약 중국 사람이 와서 이런 꼴을 본다면 장차 우리를 어떤 사람들이라 이르겠는가?

隨從之賤者。謂之奴儒。奴儒之爲先鋒者。謂之先接。於是赤色短襦之上著貓耳皀巾。或肩荷竹槍。或手執鐵椓。或執藁苫。或擧平牀。怒目外突。悖拳旁揮。吶喊先登。踴躍爭頭。以走懸題板下。若使中國之人來見此擧。將謂我何如人哉。


굵은 체에 나오는 인물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奴儒' 노유

종 노, 선비 유 즉 종선비라는 뜻이지요. 노유는 奴先輩 (노선배)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하는데 이 단어는 고문헌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18세기말 당시 치열했던 과거시험장에는 '팀'으로 움직이는 과거시험팀이 있었는데, 거벽, 사수, 수종, 노유등으로 구성 그중에서도 노유는 '무력'을 행사하는 인물로 노유중 '선봉 (무슨 전쟁...)'에 서는 인물이 '선접'이라고 따로 불리울 정도로 여러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외양입니다. 

"붉은 빛 짧은 저고리에 고양이 귀 같은 검은 건(儒巾)을 쓰고서, 혹은 어깨에 대나무창(竹槍)을 메기도 하고 혹은 쇠몽둥이(鐵椓)를 손에 들기도 하며 혹은 짚자리(執藁苫)를 가지기도 하고 혹은 평상(平床)을 들기도 하여 노한 눈알이 겉으로 불거지고 주먹을 어지럽게 옆으로 휘두르고 고함을 지르면서 먼저 오르는데"

붉은 저고리에 고양위 귀같은 검은 건, 그리고 죽창이나 쇠몽둥이 혹은 집자리, 평상등으로 사람을 위협하고 자리를 빼앗는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지요.

쇠몽둥이, 즉 鐵椓의 당대 청나라 鐵椓 모양입니다. 이런 걸로 사람을... 살벌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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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유와 선접에 대한 이야기는 [경세유표]의 다른 권에 또 등장합니다.

향시 요언(鄕試堯言)

경시(京試)에서 생기는 폐단은 지금은 우선 생략하고(科制에 대해서는 별도 저술이 있음), 향시에서 생기는 폐단을 시험삼아 말하겠다. 향시란 바로 하나의 전장이다. 무릇 응시(應試)하고자 하는 자가 글을 사고 글씨를 사는 것을 지금에는 큰 문제로 삼지 않는다.

장사(壯士)를 모집하고 무뢰한(無賴漢)을 모아서 선접군(先接軍)이라 부르는데, 나무를 베어서 창을 만들고 대[竹]를 깎아서 긴 창을 만들며, 우산대 끝에 쇠를 씌우고, 발사(茇舍)의 서까래 끝을 칼처럼 뾰족하게 하고서, 거적자리를 지고 새끼를 허리에 동이며, 등을 들고, 깃발을 드는데, 부릅뜬 눈이 방울처럼 불거지고 거친 주먹은 돌이 날 듯한다. 머리에는 검은 종이로 만든 건(巾)을 쓰고, 몸에는 붉은 천으로 기운 저고리를 입어, 형용은 강도와 다름없는데 칭호는 문서 없는 노유(奴儒)라 한다. 나는 듯 장옥에 달려들면 형세가 풍우 같아 경관(京官)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겁을 먹고, 금관(禁官)은 머리를 감싸고 숨을 곳을 찾는다. 당당한 예의지국에서 이런 사람을 가리켜, 이것이 바로 나라에서 어진이를 조정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라고 이르니 또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정약용의 [목민심서](1818)에도 또 등장할만큼 그 폐해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목민심서중

소위 과유(科儒)란 자가 항우패공(項羽沛公)이란 제목으로 20운(韻)을 달아서 풍진팔년(風塵八年)의 글귀를 지으면 문득 재사(才士)라 칭하게 되고, 그 나머지는 송판필진도(松板筆陣圖)를 익혀 자칭 진체(陣體)라 하며 저 재사라는 자와 솜씨를 바꿈질 하니, 이를 사수(寫手)라 하는데 이들은 상(上)으로 치는 자들이다.

그 나머지들은 모두 주먹을 휘두르며 눈을 부릅뜨고 거적자리를 지고 일산을 받치며 나무를 베어서 기둥을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서 창을 만드는데, 이들을 이름하여 선접군(先接軍)이라 하고 혹은 수종(隨從), 혹은 노유(奴儒)라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과장(科場)은 난장판이 되어 서로 짓밟아서 죽이기도 한다. 왕왕 과시에 합격한 자가 이런 무리들 가운데서 나오고 있다. 부잣집 자식들은 글자 한 자 배우지도 않고서 글과 글씨를 사서 뇌물을 바쳐 합격되는 자가 태반을 차지한다. 국가에서 사람을 쓰는 길이 오직 이 길 뿐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은 이 '노유'라는 인물이 그림으로 남아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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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속 노유 奴儒 (?)

우선 아래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중 꽤 최근에 미국에서 발견된 [공원춘효도]라는 것입니다. 김홍도(金弘道, 1745년 ~ 1806년)는 정확히 정약용(丁若鏞, 1762~1836년)과 동시대의 인물입니다. 따라서 과거시험장을 그린 그림에 노유가 나와 있을 가능성이 꽤 높지요.

하지만 붉은 적고리와 무언가 위협할 만한 것을 들고 있는 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일을 마치고 무기를 손에서 놓고 쉬고 있다면 오른쪽 하단의 인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어디선가 이 그림에 노유가 있다고 쓴 기사도 본 일이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기가 현재로썬 힘듭니다.

김홍도 공원춘효도


다만, 공원춘효도는 노유가 누구인가보다 더 중요한 단서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보이는데, 이는 이 '우산 밑의 몇명'이 과거시험 셋트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목민심서]로 다시 돌아가 볼까요.

그 나머지들은 모두 주먹을 휘두르며 눈을 부릅뜨고 거적자리를 지고 일산을 받치며 나무를 베어서 기둥을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서 창을 만드는데, 이들을 이름하여 선접군(先接軍)이라 하고 혹은 수종(隨從), 혹은 노유(奴儒)라 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과장(科場)은 난장판이 되어 서로 짓밟아서 죽이기도 한다.

'거적자리를 지고 일산(양산)을 받치며'. 즉 저 큰 양산밑의 인물들은 선비와 과유, 수종, 사수, 그리고 선접군등으로 이루어진 한 '팀'일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즉 공원춘효도의 하나의 양산마다 한 팀이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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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저 그림이 아닙니다. 보다 더 그 생김새가 노유에 근접한 인물을 발견해서 나눕니다. 아래 회화 역시 김홍도의 작품으로 [평생도]라는 대작의 일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김홍도 평생도 중

그런데 행렬의 선두에 '붉은 옷'을 걸치고 '검은 갓'을 쓴 인물이 보입니다. 더군다나 이 인물은 등에 '짚자리'비슷한 물건을 메고 있습니다. 다시 정약용이 묘사한 노유부분을 보지요.

"붉은 빛 짧은 저고리에 고양이 귀 같은 검은 건(儒巾)을 쓰고서, 혹은 어깨에 대나무창(竹槍)을 메기도 하고 혹은 쇠몽둥이(鐵椓)를 손에 들기도 하며 혹은 짚자리(執藁苫)를 가지기도 하고 혹은 평상(平床)을 들기도..."

"거적자리를 지고 새끼를 허리에 동이며..."
평생도에 나오는 奴儒 (?)

짧은 저고리란 건 몸통길이가 아닌 팔 부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의 옷차림과 더 비슷해 보이지요.무엇보다 고양이 귀처럼 튀어나온 검은 건...필자의 눈에는 양쪽이 튀어나온 儒巾처럼 보입니다. 또한 '거적자리를 지고 새끼로 동인다'는 것 역시 명확히 보이지요.

참고로 보통의 유건(儒巾)은 이런 모습. 저 인물이 쓴 것이 노유의 것이라면 고양이귀처럼 튀어나왔다고 묘사할 만 하겠지요.
일반적인 유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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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저 인물이 구체적인 노유를 묘사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다만, 정약용의 문헌기록과 동시대의 화가(김홍도)가 그린 그림이자, 그 묘사가 가장 흡사한 회화속 인물인지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사족으로 이 '노유'라는 인물들은 이 당시 (18세기말-19세기초)에만 극성인게 아니었습니다. (모두 찾아보진 못했지만) 멀리는 17세기말~18세기초의 [因謁聖節目講定陳所懷箚](1702년)에 왕이 성균관에 謁聖할 때 시험에 참여한 사람이 너무 많고 수종(隨從)도 운집하여 혼잡을 야기시키므로, 初試를 먼저 4~5개 소로 나누어 실시하는 것이 좋은 방책이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수종'이 바로 위에 나오는 과거팀의 구성원중 하나이죠.

가까이는 고종대인 1874년 [승정원일기], 이듬해인 1875년 [각사등록]에도 이 폐단은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고종 11년 갑술(1874) 4월 5일(정축) 맑음
과장을 선접하기 위해 무뢰배를 대동한 자들은 체포하여 도적을 치죄하는 법으로 다스리라는 전교

“근래 과거 시험장에서 일어난 분란은 오로지 기강이 해이한 데에 원인이 있었다. 선비들의 습속이 괴상해진 것은, 지금 생각해 볼 때 차라리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대저 선비들로서 과거에 응시하는 자는 대다수 대대로 벼슬한 가문의 후예들이다. 그 선조의 가업을 계승, 급제하여 임금을 섬기려고 하면서, 매번 과거 시험을 당하면 선접(先接)을 목적으로 무뢰배들을 모아 시험장 안에 먼저 들어가기 위하여 다툼을 벌이고 있으며, 심지어는 시험장에서 행패를 부려 남을 상해하는 등, 많은 선비들을 모아 나라의 인재를 뽑는 자리를 불한당들이 행패를 부리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이른바 사대부의 후예라는 자가 그런 무리들과 한 패거리가 되면서도 전혀 부끄러워할 줄을 모르면서 분수와 기강을 범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는데도, 그들의 부형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면서 금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과연 선조의 가업을 계승하여 임금을 섬기는 도리일 것이며, 나라의 막중한 시험이 이런 몹쓸 무리들로 인하여 이런 난장판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말이 여기에 미치니 나도 모르게 한심한 생각이 든다. 중략"

강원감영관첩(江原監營關牒)
고종(高宗) 12년(1875)

그리고 또 선접(先接)하려고 다투는 폐단에 대해 연석(筵席)의 말씀이 누누이 신엄(申嚴)하였다. 대체로 잡류(雜類)가 분란을 일으킴을 깊이 통촉하시고 이어 과장(科場)에서 정숙할 것을 신칙하셨으니, 먼저 입문(入門)하는 초기부터 수종(隨從)이 난입(攔入)하는 것을 특별히 더 엄히 방지한 뒤에야 선접하려고 다투며 야료를 부리는 버릇을 금지할 수 있다.


김홍도는 '풍자'의 대가였습니다. 완전한 필자의 사견입니다만, 그는 이 평생도의 과거급제부분에서도 붉은 옷의 눈에 확 띄는 '노유'를 앞장세움으로서 당시 과거에 대한 풍자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덧글

  • 인디라이터 2019/03/06 12:18 #

    지금 거벽 소재로 영화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던데, 그럼 자연스레 노유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
  • 역사관심 2019/03/07 23:36 #

    반드시 나오겠네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소재로 좋아보여서 언젠가 쓰이겠구나라고 짐작만..)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 남중생 2019/03/06 22:57 #

    정말 고양이귀 같이 생긴 모자군요... 네코미미~~!!
  • 역사관심 2019/03/07 23:36 #

    남중생님 눈에도 그렇게 보이신다니 제 눈이 이상한건 아닌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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