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는 착하다는 편견을 깨주는 기담- 가파도 이태보와 불도깨비 설화 야담 지괴류

기담편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도깨비에 대한 선입견중 하나가 무조건 '순박하고 사람에게 짖굳긴 하지만 착하고 씨름을 좋아한다'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씨름을 좋아하는 도깨비는 착하다는 편견을 깨주는 이야기를 한 편 소개합니다. 다음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의 가파도라는 섬에서 도깨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기담.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가파도

이태보 기담

가파도 상동에 사는 이태보는 밤낚시를 매우 좋아했다. 평상시처럼 밤낚시를 나간 어느날이었다.

앞에 어떤 사람이 등불을 들고 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태보에게 “당신이 가파도에서 기운이 가장 세다니 나와 씨름을 한 판 해보자”고 했다. 두 사람은 바닷가 모래밭에서 씨름을 했는데, 이태보가 그를 넘어뜨리면 빙긋 웃고는 다시 일어나서 덤벼들기를 여러 번 반복하였다. 

차츰 이태보는 기력을 잃고 쓰러져 기절해 버렸다. 새벽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함께 씨름했던 사람은 없고 등불만 있다가 이것이 갑자기 20여 개로 분산되며 폭발하였다. 그 소리에 이태보는 귀가 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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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어떤 설화집이나 대중서적에도 소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토문화전자대전] 보고서에 따르면 "1974년 8월 23~26일까지 3박 4일 동안 가파리 학술조사 때 김창복(金昌福)[남, 47세]에게서 채록하여 「남제주군 대정읍 가파리 학술조사보고서」에 「이태보와 등불든 귀신」과 '강남귀신 이야기'로 수록하고 있다."

즉, 1974년에 가파도에 살던 김창복씨라는 분에게서 채록한 기담으로 이 가파리 보고서에는 이 이태보 등불도깨비와 강남귀신 이야기 두가지를 싣고 있습니다 (강남귀신 이야기는 후에 소개). 가파도는 제주도의 서남쪽에 위치한 작은 섬입니다.

이 섬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흥미로운 것은 이 도깨비설화는 우리가 흔히 아는 '씨름걸어오는' 도깨비의 전형적인 이야기패턴을 전반부에 보여주지만, 후반부가 굉장히 과격하다는 점입니다. 

"새벽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함께 씨름했던 사람은 없고 등불만 있다가 이것이 갑자기 20여 개로 분산되며 폭발하였다. 그 소리에 이태보는 귀가 멀고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런 결말은 보통 잘 없지요. 등불을 들고 가던 도깨비가 씨름을 걸어와서 밤새 기진맥진하다가, 마지막에 등불이 폭발, 주인공이 귀가 멀고 '반신불수'가 됩니다. 

이 이야기는 2015년의 [제주학 연구]에도 실렸습니다.

제주도 전설지 현지조사 및 자원화 방안 연구
좌혜경·현길언 (2015) 제주학연구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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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칙한 도깨비

우리에겐 '도깨비는 순박'하다 (아니 해야한다)라는 편견아닌 편견이 자리잡은 듯 합니다. 수많은 아동용 서적을 통해 이 이미지는 굳어졌지요. 하지만, 도깨비를 묘사한 우리 선조들의 글은 이렇게 단면적인 면만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한 이태보기담의 잔인한 불도깨비처럼, 조선시대에도 도깨비는 어떨때는 신비롭고 의롭지만, 어떨 때는 흉칙하고 무서운 존재로 파악되고 있었지요. 예를 들어 아래의 조선전기 (16세기) 두 글을 보면 그러합니다.

소재집 제1권
시(詩)
소식을 두고 짓다 3수. 병오년(1546, 명종1) 
정월이다.〔賦蘇軾 三首 丙午正月〕

문장과 기절이 모두 우뚝하고 중후하여 / 文章氣節摠非輕
온 천하에 화려하게 큰 명성 독차지했네 / 四海煌煌擅大名
피 토하고 죽은 친구를 지하에서 만났다면 / 地下相逢嘔血友
무슨 말을 가지고 종횡으로 논변했을까 / 却將何說辯縱橫

한세상에 할 말이 있었던 이는 왕개보요 / 一世有辭王介甫
지하에서 웃고 있을 사람은 숙손통이로다 / 九原含笑叔孫通
다만 태위군중의 호령을 끌어다가 / 只提大尉軍中令
진갱으로 몰아들여 만국이 텅 비어 버렸네 / 驅入秦坑萬國空

악행 짓는 건 예부터 천만 가지로 많지만 / 爲惡由來千萬枝
인인의 천토는 본디 사가 없는 것이니 / 仁人天討本無私
만일 백세 후에 똑같이 옥사를 다스린다면 / 若從百載同聽獄
누가 먼저 도깨비 재해를 막아야 했을까 / 誰是先堪禦魅魑

이 글은 노수신(盧守愼, 1515~ 1590년)의 시로 조선시대까지 도깨비는 한글이 없거나 혹은 한문으로 써야하는 경우 '魅魑'(매이)나 '魅' (이매)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그러면, 이매나 매이등의 성격 역시 도깨비가 됩니다. 이 글을 보면 '爲惡' 악행을 행하는 것이라는 구절뒤에 '魅魑 (매이)'를 막는다고 되어 있어 악과 매이를 연관시키고 있지요. 

비슷한 시기의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장유(張維, 1587~1638년)의 글입니다.

계곡선생집 제1권
 사(詞) 부(賦) 17수(首)
삼인검부(三寅劍賦) 병서

내가 우연히 삼인(三寅)의 단검을 얻었는데, 삼인이라 함은 대체로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에 그 검이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그런데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는 삼인검은 상서롭지 못한 것들을 물리쳐 준다고 하기에 내가 그 검을 사랑하여 허리에 차고는 부를 지어 기리는 바이다.

나의 이 보검 / 我有寶劍
삼인에 만들어졌도다 / 成於三寅
길이는 한 자 채 못 되지만 / 長未滿尺
맑은 빛 눈이 부시도다 / 晶光燁然

대저 인은 세 개의 양이 모여 / 夫寅者三陽之會
사계절 중 첫 번째요 / 四氣之元
성질이 강명하여 / 陽剛而明
으뜸으로 대우받고 / 元首而尊
만물이 비롯되니 / 物所資始
인이 바로 그 덕이라 / 其德則仁

십이지(十二支) 중에서는 / 十二之屬
호랑이에 해당되니 / 寔爲虎焉
그 용맹 그 위엄 / 奮其威猛
백수의 왕이 되어 / 百獸所君
여우나 들개 따윈 / 孽狐野犴
한 입에 박살나네 / 糜之一齦

해와 달과 날이 모두 / 維歲月日
이 인과 결부되어 / 萃干兹辰
칼이 그 정기 듬뿍 받고 / 劍鍾其精
신통력 지녔으니 / 而全其神

칼을 한 번 쓰면 사마가 물러가고 / 故其爲用也攝魔驅邪
요망한 기운 삽시간에 없어지며 / 揮霍妖昏
장난치는 도깨비들 / 魑魅獝狂
감히 접근 못하도다 / 莫敢近旃

상하 사방 뻗치는 칼빛 / 亦可光芒六合
몸 지켜 간사함 물리치고 / 衛身攘姦
요망한 자의 허리와 머리 / 妖要亂領
삼대 자르듯 베어 버리니 / 翦若芟菅
잘 간수해서 제때에 쓰면 / 善藏時用
앞에 완악한 자 나오지 못하리라 / 前無堅頑

그러니 이 물건을 도인이 쓰게 되면 / 然則是器也道人御之則
금강저(金剛杵)진무의 검과 정양 동빈의 뇌후의 탄환되고 / 爲金剛之寶眞武之仗旌陽洞賓腦後之丸
충신이 청해 쓰면 / 忠臣請之則
상방 참마검이 되어 간신의 간담 서늘케 하고 / 爲尙方之斬馬而佞孽膽寒

열사가 분기(奮起)하면 / 烈士奮之則
차비(佽飛)처럼 교룡 잡고 장강의 물결 잠재우리니 / 爲荊飛之擒蛟而長江戢瀾
차라리 용연마냥 흙 속에 묻혀 / 寧爲土中之龍淵
자색 기운 별자리에 내쏠지언정 / 衝紫氣於星躔
무딘 검과 예봉을 서로 다투며 / 不願與鉛刀爭鋒
세상의 인정 받으려고 안달하지 않으리라 / 覬俗子之見珍

이에 원양승사창정검이라 이름하고 / 遂號之曰元陽勝邪蒼精之劍
아침저녁으로 차고 다니며 한 번도 몸에서 떼지를 않는도다 / 朝夕服之未嘗離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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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장유선생이 '삼인검'이라는 보검을 얻게된 감흥에 지은 시입니다. 삼인검의 강력함을 보여주는 글인데, 중간에 이런 부분이 있지요.

칼을 한 번 쓰면 사마가 물러가고 / 故其爲用也攝魔驅邪
요망한 기운 삽시간에 없어지며 / 揮霍妖昏
장난치는 도깨비들 / 魑魅獝狂
감히 접근 못하도다 / 莫敢近旃

이 해석은 '고전번역원'측의 것으로 필자의 견해로는 역시 20세기식 필터링 (도깨비에 대한)이 들어간 해석으로 보입니다.

魑魅獝狂 - 이 구절을 '장난치는 도깨비들' 이라고 해석했지요. 그러나 원문을 해석하면 전혀 다릅니다.

魑魅 이매 (도깨비)
獝 미칠 휼 정신홀릴 휼
狂 미칠 광 사나울 광

즉, 정신을 미치게 하고 사납게 하는 도깨비 혹은 그러한 도깨비라는 것이 직역입니다. '장난치는' 이란 구절은 어디에도 없지요. 오늘 소개한 이태보 기담 역시 이렇게 '사납고 사람을 해치는' 류의 도깨비에 들어갈 녀석입니다.

도깨비라는 녀석은 도깨비처럼 변화무쌍한 여러종류가 있어 '이렇다'라고 틀을 씌우기에는 너무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라 사료됩니다.



덧글

  • 존다리안 2019/03/23 12:02 #

    자폭 도깨비?
  • 역사관심 2019/03/23 12:06 #

    20조각으로!!
  • 이선생 2019/03/23 13:33 #

    오호! 이건또 진귀한 자료군요!
    하긴 과거에 도깨비란 여러 이상한 존재들을 통칭하는 말인데 덮어놓고 착하고 순박하다는 건 포유류는 전부 선하다는 것과 다른 것이 없는 말이긴 하죠...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이 좀 깨졌으면 좋을건데....
  • 역사관심 2019/03/24 03:14 #

    그러게 말입니다. 자꾸 알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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