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정의 유화부인 동상에 대한 발언 (고려도경 기록 교차비교) 역사

[필원잡기]라는 아주 오래된 책에는 특이한 기록이 한 점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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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원잡기(筆苑雜記)

金富軾入宋 詣祐神館 見一堂設女仙像 館伴王黼曰 此貴國之神 公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
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 抵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長在仙桃山 此其像也
今考之 新羅高句麗百濟之初 無此帝女事 但東明之出 有柳花事 恐中國誤認有此說也

김부식이 송나라에 갔다가 우신관의 어떤  당(堂)에 여자 신선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반(館伴) 왕보(王黼)가 “이는 당신나라의 신(神)인데 공들은 아시오?” 하고 이어 말하였다.

“옛날에  황제의 딸이 있었는데, 남편 없이 아이를 배어서 사람들에게 의심을 받았다. 이에 바다를 건너가 진한(辰韓)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해동의 첫 임금이 되고, 그녀는 땅의 신선이 되어 선도산(仙桃山 )에서 영생(永生 )하는데, 이것이 그녀의 상이다.”

지금 상고하건대, 신라ㆍ고구려ㆍ백제의 시초에는 이런 황제의 딸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고, 다만 동명왕(東明王)의 출생에 유화(柳花)의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중국에서 잘못 알고 이런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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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을 가지고 2017년 한 신문기사(매일경제)는 이 일화에 나오는 여신상이 혹시 박혁거세의 출생의 비밀을 풀어주는 것이나의 여부를 다루기도 했습니다. 기사링크 

이 기록이 실린 筆苑雜記 (필원잡기)는 조선초기의 문신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의 저작입니다. 이 책은 1400년대 후반, 조선초 민간에서 떠돌던 민담, 설화, 야사, 고사, 기타 역사서에는 없는 여러 사적(事蹟)등을 집대성한 것이지요. 

필자는 이 기록이 '서거정의 당대 기록 그자체'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생각합니다. 즉, 서거정 시대 당대의 '중국'과 '고려-조선'의 고구려및 삼국에 대한 '정체성'인식이라는 주제입니다. 이 주제는 필자가 블로그를 통해 몇번 다른 일맥상통하는 기록들을 통해 소개한 바 있지요.

이 기록은 '고려의 김부식이 송나라에 가서', 그곳의 송나라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김부식의 송나라 방문은 1126년의 일입니다. 이때 그 곳의 관반, 즉 사신을 접대하는 사람인 왕보(王黼,1079~1126년)가 김부식에게 다음의 말을 하지요.

"이 우신관의 한 건물에 여자 신선상이 하나 있는데, 이 신은 '귀국 (즉 고려)'의 신입니다. 아십니까? (見一堂設女仙像 館伴王黼曰 此貴國之神 公等知之乎)". 그런데 그 내용 (즉, 진한(辰韓- 후일 신라의 기초)에 황제의 딸인 이 여자가 가서 왕이 될 아들을 낳았다)을 듣고 이런 이야기는 고구려, 백제, 신라 어느 당대 사서에도 없으므로 저자인 서거정이 아마도 고구려의 '유화부인'을 모신 상이 아닌가 추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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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부인 (정종미, 2004년)
 
기록의 중요성

본 기록을 뜯어보면 꽤 고찰할 부분이 나옵니다. 

우선 김부식(金富軾, 1075~ 1151년)이란 고려인에게 이 말을 전한 송나라인 왕보(王黼,1079~1126년)는 당시 북송에서 지금으로 치면 국무총리까지 올라간 인텔리였습니다. 일개 민간인이 아닌 이 정도의 인물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지요. 특히 "貴國之神" 귀국의 신이라고 하는 부분은 의미 깊습니다. 즉, 송대에 적어도 고려의 기원격인 삼국시대를 이국의 역사로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지방정권이라는 이미지는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교차비교할 흥미로운 당대 기록이 하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소개한 바 있는데 12세기초 [고려도경]의 기록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이 고려도경은 서긍(徐兢, 1091~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해서 남긴 기록입니다. 이런 대비가 이루어지겠지요.

서긍(徐兢, 1091~ 1153년)이 1123년 북송에서 고려에 방문.
김부식(金富軾, 1075~ 1151년)이 1126년 고려에서 북송에 방문.

즉, 거의 동시대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서긍은 1123년 고려를 방문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신호좌우친위군도 구문 금포에 도금한 띠를 띠며 금화 대모(錦化大帽 금화로 장식한 큰 모자)를 썼는데, 붉은 띠를 더하여 턱 아래에 맨 것이 갓끈[紘纓] 등속과 같다. 그 만듦새는 매우 높아 바라보기에 우뚝하다. 옛날 제(齊) 나라 영녕(永寧) 연간 (주: 즉, 301년 ~ 302년) 에 고려 사신 (주: 고구려사신)이 왔을 때 궁고(窮袴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거풍(拒風)을 썼었다.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이를 희롱하여 말하기를, '의복이 맞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다. 머리에 쓴 것은 무슨 물건이오?' 하니, 대답하기를 '이는 옛날 고깔[弁]의 유상(遺像)이오.' 하였다. 지금 높은 모자의 제도를 보니, 그 거풍의 풍속은 아직도 그런가보다. 

이 부분은 아주 예전 포스팅 (고려도경- 고려로 이어지는 고구려풍속, 고깔)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즉, 서긍이 말하길 "4세기경 옛 고려 (즉, 고구려) 사신이 제나라에 방문했는데 당시 높은 모자를 써서 특이했는데 (高麗使至。服窮袴,冠拒風), '지금 (즉 고려)'도 그런 모자를 쓰는 걸 보니 고구려를 이은 나라답다 (今觀高帽之制。其拒風之俗。今猶然也。)"라는 문맥을 명확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북송인인 서긍은 고려를 방문해, '고구려의 문화를 이어 고려도 이러하다'라고 하고 했고, 똑같은 당대에 북송을 방문한 김부식을 보고 역시 북송인인 왕보 또한, '진한에 간 여신은 고려의 신'이라고 하고 있지요. 이는 아마도 ' 사소(娑蘇)부인', 즉, 선도산신모(仙桃山神母) 설화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대략적인 내용은 "원래는 중국 황실의 딸로,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배워 해동(海東)에 와서 머물렀는데 오랫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아버지가 솔개의 발에 편지를 부쳐 보내 이르기를, 솔개가 머무는 곳에 집을 지으라고 하였다. 이에 솔개를 놓아 보내자 선도산으로 날아가 멈추므로 그 곳에 집을 짓고 살아 지선(地仙)이 되었다. 오랫동안 이 산에 웅거하면서 나라를 지켰는데 이상하고 신령스러운 일이 많았다. 그녀가 처음 진한(辰韓)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으니 반드시 혁거세(赫居世)와 알영(閼英)을 낳았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남중생님 정보덕에 추가했습니다). 이 설화의 원전은 김부식이 직접 쓴 [삼국사기]입니다. 따라서 '실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지요- 야담이 아닙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에피소드를 듣고 옮긴 서거정의 태도입니다. 이렇게 말하지요.

今考之 新羅高句麗百濟之初 無此帝女事 但東明之出 有柳花事 恐中國誤認有此說也
지금 상고하건대, 신라ㆍ고구려ㆍ백제의 시초에는 이런 황제의 딸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고, 다만 동명왕(東明王)의 출생에 유화(柳花)의 일이 있었는데, 아마도 중국(즉 송나라)에서 잘못 알고 이런 말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한다.

무슨 뜻이냐 하면 진한에 가서 아들을 낳았다는 중국황제의 딸은 기록에 없는데, 이런 말을 11세기초 왕보가 한 것을 보면 '고구려 초대왕인 동명왕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착각하고 이렇게 말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참고로 전설에 의하면 수신(水神)인 하백(河伯)의 장녀인 유화는 동생 위화(葦花), 훤화(萱花)와 함께 압록강가에서 놀다가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를 만나 크기가 닷되들이만한 알을 낳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주몽이 나왔다는 전설이 바로 고구려의 주몽전설이지요. 

참고로 부여의 동명왕설화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화부인(柳花事)'이라는 명확한 이름은 부여전설의 '서하하백녀(西河河伯女)'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고구려의 동명왕을 뜻한다 사료됩니다.

이 말은 즉, 서거정 (1400년대)의 시대에도 이렇게 쉽게 추정할 수 있을만큼 11세기의 고려인들과 북송인들에게 '고구려'는 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정체성이 확실한 선조국가로 후손인 파악하고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니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부인을 모신 여자신선상이 당대 북송의 우신관이라는 건물에 모셔져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왕보도 그걸 진한으로 착각했을 것이라고 서거정이 추정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참고로 고구려에서는 계속해서 제사때마다 주몽(동명왕)과 어머니인 유화부인에 대한 제사를 국가적으로 지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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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바로 다음시대인 1200년대 원대의 고구려에 대한 정체성 역시 송대와 마찬가지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길. 



덧글

  • 남중생 2019/04/28 03:18 #

    송나라에는 중국 뿐 아니라 세계각국의 신을 모셔놓은 만신전(pantheon)이 있었다는 언급을 읽은 기억이 나네요. 다시 찾아보겠습니다. 송나라였는지 중국 다른 왕조였는지...

    유화부인이라는 추측은 김부식 개인의 생각이고, 저기서 언급된 여신은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 성모인 것으로 보입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8641&cid=46620&categoryId=46620

    한편으로, 신라의 신화는 잘 모르고 고구려 동명왕 신화를 더 익숙히 떠올렸다는데에서 김부식의 역사관 등을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9/04/28 04:24 #

    아 이런 정보가 있었군요. 저는 모르던 것인데, 감사합니다. 맞는 것 같습니다. 남중생님의 정보덕에 글을 업데이트 할 수 있겠습니다! 말씀대로 김부식당대의 역사관자체측면에서 중요한 에피소드 같습니다.
  • 남중생 2019/04/28 16:53 #

    아아, 김부식이 아니라 서거정이군요!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 역사관심 2019/04/29 23:15 #

    ㅎㅎ 감사합니다.
  • 얼음칼 2019/04/28 03:32 #

    제가 늘 궁금했던 게 서정주의 시 사소단장에 나오는 사소의 스토리인데, 이 내용이 시와 좀 비슷한 듯 하니, 혹시 이 이야기 주인공이 사소는 아닐까요?
    사소 스토리의 출전과 구체적인 내용도 알려주실 수 있으면 부탁 드리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9/04/28 04:47 #

    사소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잘 몰랐는데 위의 댓글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사소부인에 대한 이야기는 다름아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있었습니다.

    삼국유사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 신모가 중국에서 해동으로 와서 지신이 되다

    신모는 본래 중국 황실의 딸이다. 이름은 사소(娑蘇)이고 일찍이 신선의 술법을 얻어 해동에 와서 오래 머물고 돌아가지 않았다. 아버지 황제가 솔개의 발에 묶어 서신을 보냈다. “솔개를 따라가서 멈춘 곳을 집으로 삼아라.” 사소가 서신을 받고 솔개를 놓아주니 날아서 이 산에 이르러 멈췄다. 드디어 와서 살고 지선(地仙)이 되었다. 따라서 산 이름을 서연산(西鳶山)이라 이름하였다. 신모는 오래 이 산에 살면서 나라를 지켰는데 신령한 이적이 매우 많아서 국가가 생긴 이래로 항상 삼사(三祀)의 하나가 되었고 서열도 여러 망(望) 제사의 위에 있었다.

    제54대 경명왕(景明王)이 매사냥을 좋아하여 일찍이 이 산에 올라 매를 놓았으나 잃어버렸다. 신모에게 기도하여 말하기를 “만약 매를 찾으면 마땅히 작호를 봉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잠시 뒤 매가 날아와서 책상 위에 멈추었다. 이로 인하여 대왕으로 책봉하였다.
    그 처음 진한에 와서 성자(聖子)를 낳아 동국의 첫 임금이 되었으니 대개 혁거세와 알영 이성(二聖)이 나온 바이다. 그러므로 계룡(雞龍)·계림(雞林)·백마(白馬) 등으로 일컬으니 계(雞)는 서쪽에 속하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여러 천선(天仙)으로 하여금 비단을 짜게 하여 비색(緋色)으로 물들여 조복(朝服)을 만들어 그 남편에게 주니 국인들이 이로 인하여 신이한 영험을 알았다.
  • 제비실 2019/04/29 21:11 #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유화부인으로 추측하지만 그러나 김부식은 서거정과 달리 유화부인으로 보지 않았고 우신관의 선녀 신의 정체에 대한 왕보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하였지요

    왕보가 고려의 신이라고 소개한 우신관의 선녀가 진한으로 가서 성모가 되었다는
    지역인 선도산은 신라의 수도 경주 서쪽에 위치한 산을 말하는 것으로

    김부식이 우신관의 선녀가 진한 선도산의 성모라는 설을 수용하고
    동명왕의 생모 유화부인으로 보지 않은건
    경주가 본거지인 신라 왕실의 후예라는 자신의 출신 정체성에 입각한
    기본적인 역사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여겨지지요

    삼국유사는 구체적으로 선도산 성모가 낳은 동국의 초대 임금을 신라 1대왕 혁거세로
    추측하지만 김부식은 그와 다르게 어느 임금이라고 특정짓지 않았고 고대 정체불명의 제왕의 딸이라는 중국 학자의 의견과 같이하여 그렇게 보았던 것이죠

    삼국사기 12권 신라본기 경순왕 9년(935년)

    사론: " 신라의 박씨와 석씨는 모두 알에서 태어났으며, 김씨는 금궤에 들어 있다가 하늘로부터 하강하였거나 혹은 금수레를 타고 왔다고 하니, 이는 더욱 괴이하여 믿을 수 없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이것이 대대로 전해 내려와 사실로 알려져 있다. 정화 연간에 우리 나라에서 상서 이 자량을 송 나라에 보내 조공할 때, 신 부식은 글 쓰는 임무를 맡아 보좌로 가게 되었다. 우리가 우신관에 이르렀을 때 마루 한 편에 선녀의 화상을 걸어 놓은 것을 보았다. 숙소에서 접대를 맡은 학사 왕 보가 "이는 귀국의 신인데 공들은 이를 아는가?"라 하고, 이어서 말하기를 "옛날에 어떤 제왕의 딸이 있었는데, 남편없이 잉태하자 남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었다. 그녀는 곧 바다를 건너 진한으로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 사람이 해동의 첫임금이 되었고, 제왕의 딸은 땅의 신선이 되어, 영원히 선도산에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그녀의 화상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또한 송 나라 사신 왕 양이 지은 동신성모제문에 "어진 사람을 낳아 나라를 창건하였다"는 구절이 있는 것을 보고, 이 동방의 신이 곧 선도산의 신성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선녀의 아들이 언제 왕 노릇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고, 이제 다만 이러한 전설이 생긴 시초를 고찰해 본 것이다"

    서거정은 유화부인으로 추측하지만 김부식은 정체불명의 제왕의 딸이라고
    북송 학자와 같이 인식하였지요
  • 역사관심 2019/04/29 23:18 #

    넵,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삼국사기 이야기를 조금 했구요. 김부식부분은 다만 '귀국의 신'이라고 하는 표현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한 것이고, 유화부인에 대한 인식의 촛점은 서거정의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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