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만에서 목격된 바 있다는 고려금관들과 무관심 역사

벌써 십여년전 넷상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작은 화제가 되었던 글과 사진이 있었습니다. 바로 대만의 박물관에서 목격했다는 '화려한 고려금관들'이 그것입니다.

이미 그 커뮤니티는 사라졌고, 다만 이분의 블로그글은 아직 살아 있지요 (http://say32.egloos.com/m/63563) 이글루 유저신데, 이 2006년도 글외에는 글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소개가 나와 있습니다.

"2004년에 대만 출장을 갔다가 발견한 고려 금관이다. 직접 보면 화려하기가 이를데 없는데 완전 비전문가인 내가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의 명품으로 보였다.

거란이나 몽고족의 침입 때 중국에 약탈당한 것인지 어떤 연유인지 몰라도 머나먼 타향 살이를 하고 있는 이 금관을 보니 우리 역사가 참 고달펐구나 하는 생각에 서글프고 막상 한국에서는 이런 유물이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에 안타까웠다. 사실 역사책에서 고려에서 금관을 썼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깐.

아무튼 이 글은 prg21이라는 사이트에 올렸던 글에 사진만 추가하려 한 것인데 글 수정도 안돼고 사진 링크의 어려움 등 여러가지가 겹쳐서으로 결국 이렇게 블로그를 새로 만들어서 사진을 올리게 되었다....... 중략.

이관을 발견한 곳은 대만의 국립 중앙 박물관 격인 고궁 박물원에서다. 당시 전시 주제가 무슨 불상전이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어떤 개인이 소장품을 박물관 측에 기증한 특별전이었나 보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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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서 전시되었던 금관셋트

문제의 금관셋트는 다음의 세개. 대만궁중박물관측에서는 이 전시회에서 위의 것을 조선시대(완전히 오류인듯), 아래 두개를 고려금관으로 표기해서 전시했습니다.
일단 위의 금관은 제외하고 아래 두개를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사진은 위의 블로그출처). 가장 화려하고 큰 금관입니다. 클로즈업사진중 가장 깨끗한 사진을 보면 매우 세밀한 장식들이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불교적인 분위기도 나는군요.
전체모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금 다른 클로즈업사진입니다.
다음의 사진은 위 블로거가 찍은 당시 박물관에서 판매하던 도감입니다. 이 도록에서도 고려금관으로 분명히 소개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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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두번째 금관 (아래 오른쪽)을 보지요.
보시다시피 윗부분은 많이 훼손되었고 아래 부분만 남아있는 듯 보입니다. 왼쪽과 중앙에는 예쁜 붉은 색 보석도 박혀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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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우리에겐 고려시대의 금관은 단 한점도 없습니다. 신라시대-통일신라시대의 것들만 있을 뿐이지요. 금관전문가도 아니기에 개인적으로 이 금관들에 대한 진위여부를 사진만으로 파악할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필자가 그동안 보아온 그려의 유물들과 비교해 보려 합니다. 우선 왕이 쓴 관을 추정할 수 있는 '태조 왕건의 청동상(북한소재)'입니다. 왕건상은 대만의 금관들과 다른 통천관(通天冠)을 쓰고 있습니다. 비슷하지도 않지요. 

태조왕건 청동상

뿐만 아니라, 고려사, 고려도경등을 살펴보아도 금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합니다. 그럼 저 금관들이 고려의 것일 가능성은 제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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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유물 가능성

그런데 이 금관들은 어쩌면 불교쪽 물건일 가능성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왕실보다는 이쪽의 유물들에 좀 더 비슷해 보이는 유물들이 있기 때문인데요. 우선 삼국시대의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을 보겠습니다.
이 반가사유상의 머리에는 삼면보관(三面寶冠)이 있습니다. 초생달과 둥근 해를 얹어놓은 장식이 표현되어 있어 일명 '일월식삼산관사유상(日月飾三山冠思惟像)' 이라고도 합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일단 훼손된 금관의 기본적인 틀은 조금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금관의 원래 모습이 왼쪽의 큰 것과 흡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역시 불교문화재인 부석사의 조사당벽화(국보 19호)에서 보이는 금관류입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고려 우왕 3년(1377년)대의 작품으로 추정중입니다.
그런데 이 벽화들에서 보이는 '모자'부분이 꽤나 화려합니다. 어쩌면 신라대의 반가사유상의 그것보다도 같은 고려시대의 금관과 더 닯은 모습으로 필자의 눈에는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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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참고로 대만궁중박물관에서 2004년 개최한 이 전시회의 이름은 Peng-Kai Dong's donation 전시회. 팽카이동((彭楷棟)이란 인물은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1912년에 출생해서 15세인 1927년 일본으로 이주했습니다. 운동선수부터 시작해서 배우까지 한 그는 이후 일본의 사업가로 성장, 33세가 되던 1945년 많은 골동품과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일본의 배우시절 팽카이동

이 사람의 그 당시 행보는 확실히 찾을 수가 없습니다. 40년대라면 일제가 조선에서 여전히 유물들을 반출해오던 시기이죠. 또한 1904년(러일전쟁 직후)에서 1907년까지 개성, 강화도, 해주에서 (주로 고려청자를 반출하기 위한) 약탈당한 고려왕릉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 당시 유출된 유물중 하나일 가능성도 없다곤 할 수 없겠지요. 

저 사진이 넷상에서 공개된 지 어언 13년째. 금관의 모습이 생경하건 어떻건 비교할 대상조차 없는 현재의 우리 고려시대 문화재 현실에서는 사진으로 보기에 어떻든간에 타국의 공공기관에서 우리유물로 분류, 전시까지 한 이상, 학계에서 빨리 조사에 나서보아야 할 일이 아닐까 감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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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카이동관련 자료:
https://www.taiwannews.com.tw/en/news/833486


덧글

  • 응가 2019/05/09 14:52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황후가 쓰던 칠적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전래되는 유물이 없어서 뭐라 말을 못하겠군요...
    저 소장품도 개인소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19/05/11 00:28 #

    칠적관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찾아보니 정말 좀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네, 팽카이동이란 사람 소장품으로 알고 있는데, 기증품 전시회라고 되어 있어서 2004년당시 이미 박물관에 넘긴것인지는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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