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도깨비불(鬼火)을 뭐라고 불렀을까? (그리고 상세한 정의) 설화 야담 지괴류

한밤중에 깜깜한 숲속에서 저런 불을 본다면...(고려시대 동문선중 "林暗燐熒熒")

흔히 한국에서는 이 불을 '도깨비불'이라고 합니다. 

나무위키 항목을 보면 이 도깨불에 관한 우리나라측 문헌기록은 하나도 없고 거의 일본쪽의 '여우불'등으로 해설을 해두었더군요. 그만큼 도깨비불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보통은 죽은 이의 뼈에서 나오는 인(燐)의 작용으로 푸른 빛이 난다고 하지요. 도깨비 불은 한자로는 보통 '혼불魂火', '귀화鬼火', 또는 '인' (인자체가 도깨비 불 인이죠)이라고 합니다. 보통은 '조선시대'에 한정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 불은 고대부터 주욱 이어져 오는 존재였습니다. 예를 들어 삼국과 고려시대의 문헌을 다룬 [동문선]에도 이런 구절이 등장합니다.

동문선
빈 골짝에 산울림이 윙윙 울리고谷虛谹歷歷
어두운 숲엔 도깨비불 깜빡거리네 / 林暗燐熒熒

이 시의 배경은 극성(棘城)이라는 황해도 황주(黃州)에 있는 지명으로 '극성진(棘城鎭)'이라는 요새가 있던 곳입니다 (약 13킬로나 되는 거성이죠). 고려말기 고려군과 홍건적의 전투때 섬멸을 당한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따라서, 이 곳의 들판에는 백골이 나뒹굴고 날이 흐리면 귀신들이 나왔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이곳에서 전염병이 나돌아서 이 지역민들이 수없이 죽었다고... 이 통에 단(厲壇)을 만들어 매년 봄가을로 제(祭)를 지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 곳에 어두워지면 숲속에 도깨비불이 나왔다는 구절이지요.

林暗燐熒熒 여기서는 도깨비라는 뜻외에 사람의 뼈에선 나온다는 '인'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쓰였습니다 '燐'. 즉, 전투로 사망한 자들의 시체에서 나오는 빛이라는 개념이 이미 잡혀있습니다.

15세기 조선초기의 문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년)의 [사가집(四佳集)]에서도 이런 구절이 등장하죠.

사가집
영웅은 오랫동안 요새에 의지했으련만 / 英雄久倚襟喉勢
전쟁 끝에 오랑캐 비린내는 아직 풍기네 / 戰伐猶餘虎豹腥
들판엔 사람의 백골을 수습 못 해 나뒹굴고 / 野蔓不收人骨白
깊은 숲엔 도깨비불이 수시로 나타나누나 / 深林時見鬼燈靑

역시 전쟁중 사망한 시체무덤에서 나오는 빛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특이하게도 "鬼燈靑" 즉, 귀신의 등불이 푸르다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보다 약간 뒤인 16세기 인물인 배용길(裴龍吉, 1556~ 1609년)의 [금역당집(琴易堂集)]에도 신기한 도깨비불 체험담이 실려 있습니다.

금역당집
병에 걸려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집안일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중지촌(中旨村)에 있을 때도 저보가 이르자, 내게 읽게 하여 들었다. 북쪽에서 도깨비불이 괴이하게 나타나자, 공은 오히려 손으로 취하여 살펴보았으니, 바로 죽기 하루 전 밤이었다. 

이 글은 배용길이 역시 같은 시대인물인 배삼익 (裵三益, 1534∼1588년)의 사망후 지은 추모문중 나오는 부분입니다.1588년(선조21)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크게 흉년이 들자 구황(救荒)에 힘쓰다 병을 얻고도 관내 순시를 강행중에 객사한 분으로 도깨비불을 손으로 만져본 다음날 돌아가신 것입니다.

有北方鬼火之異 북쪽에서 도깨비불이 괴이하게 나타나자

'귀화(鬼火)'라고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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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에 대한 상세한 묘사

이규경(李圭景, 1788년~?)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여러 문헌에서 취합한 바를 가지고 본인이 정의한 영혼불(도깨비불, 靈魂火)에 대한 정의가 자세하게 실려 있습니다.

天地篇 / 地理類 (천지편, 지리류)
靈魂火。영혼불

頭團匾。머리가 둥글고 납작하며,
其尾如杓子而長。그 꼬리는 마치 국자자루같이 길게 이어진다.
色靑白帶微赤。색깔은 푸르고 희며 희미하며,
徐飛行。천천히 비행한다.

墮破失光。낙하하며 파괴되면 빛이 사라진다.
如煮爛麩餠。(그러면) 삶아서 문드러진 밀병과 같아진다.
其墮處小黑蟲多有之。그 떨어진 곳에는 수많은 검고 작은 벌레들이 끓는다.

或有自身知魂出去者曰。혹 자신의 혼의 행방을 아는 자가 말하되
物出於耳中。귀 가운데에서 무언가가 나온다고 한다.
而不日其人死。그 사람이 죽은 날은 아니고,
或過旬餘。어떤 경우 재앙은 열흘 남짓 간다.

凡死者皆非魂出也。대체로 죽은자 모두가 혼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畿內一歲中死人。한 해중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경계가)
不知其幾萬。몇 만인지 모른다.
人魂火飛者。불타는 사람의 혼불은 날아다닌다.

十箇年中。열개의 해(연도)중에
惟見一兩度耳。
我東湖南羅州望雲島牧場民家。내가 동호남의 나주쪽의 (??) 민가의 마당을 바라보니
近有人死前魂火飛出之怪云。사람이 죽어 있는 앞에 바로 앞에 혼불이 나와서 날고 있어 괴이하더라.
晉惠羊后身出火。

바로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지요. 같은 저서의 다른 부분에도 다시 등장하는데 일본문헌인 [화한삼재도회]등을 인용해서 다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후반부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영혼화(靈魂火)가 있는데,《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에 이르기를 “영혼화는, 머리는 납작하고 그 꼬리는 마치 표자(杓子 술 같은 것을 뜨는 국자 비슷한 것)와 같이 생겼는데 길다. 색깔은 청백색(靑白色)에 얕은 적색(赤色)을 띠었는데, 서서히 비행(飛行)하다가 땅에 추락하면 부서져서 빛을 잃고 마치 익혀 놓은 부병(麩餠 밀기울떡)처럼 되어버리며, 그것이 추락한 곳에는 작은 흑충(黑蟲)이 많이 있다. 우연히 자신의 혼(魂)이 나간 것을 아는 자가 있어 ‘무슨 물건이 나의 귓속에서 빠져나갔다.’ 하였을 경우, 그 사람은 며칠 못 가서 죽는데, 혹은 10여 일을 넘기기도 한다.”하였다. 

하지만 무릇 죽는 자가 혼이 나간 것이 아니다. 기내(畿內)에는 1년 동안에도 죽는 사람이 몇 만 명이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의 혼화(魂火)가 비행(飛行)하는 경우는 10년 동안에 오직 한두 번 정도를 볼 뿐이다. 전번에 듣건대, 나주(羅州)의 목장(牧場)에 있는 망운(望雲)이라는 촌민(村民)에게서 영혼화(靈魂火)가 나와 그 크기는 마치 지금의 술잔과 같았는데, 그 사람은 얼마 안 되어 죽었다고 하였으니, 혹 이런 이치가 있기도 하나보다.

그렇다면 인화(人火)의 혹렬(酷烈 대단히 격렬함)함이 다른 불보다 심하다. 사람의 한 몸뚱이는 모두가 물과 불이 취집(聚集)된 것이다. 그러므로 도가(道家)에서는 수승화강(水升火降 수기(水氣)를 보(補)하고 화기(火氣)를 강하(降下)시킴)을 극공(極工)으로 삼고, 의가(醫家)에서는 자음강화(滋陰降火 수승화강(水升火降)과 같은 뜻)를 지요(至要)로 삼는데, 음욕(婬慾)은 비유하자면 섶나무[薪]이니, 섶나무를 끌어다가 불을 치열하게 할 경우 곧 그 몸뚱이가 불에 탈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무릇 여색(女色)으로 인하여 죽은 자는 모두가 안으로 그 장부(臟腑)를 불태운 것인데, 또는 마치 소주(燒酒)를 과음(過飮)하여 입과 코로 푸른 연기를 내뿜으며 죽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마지막 문단은 도깨비불보다는 마치 인체자연발화현상을 설명하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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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 퇴치법?

아마도 도깨비불 기담중 가장 액션이 강한 이야기가 바로 [용재총화]편일 것입니다.

용재총화
○ 나의 외숙 안 부윤(安府尹 안향(安珦)의 후예)이 젊어서 파리한 말을 타고 어린 종 한 명을 데리고 서원(瑞原) 별장으로 가다가 별장에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는데 날이 어두워지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라곤 없더니, 동쪽으로 현성(縣城) 쪽을 바라보니 횃불이 비치고 떠들썩하여 유렵(遊獵)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기세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좌우를 삥 두른 것이 5리나 되는데, 빈틈없이 모두 도깨비불이었다. 

공이 진퇴유곡(進退維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직 말을 채찍질하여 앞으로 7, 8리를 나아가니 도깨비불이 모두 흩어졌다. 하늘은 흐려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는데, 길은 더욱 험해졌으나 마음속으로 귀신이 도망간 것을 기뻐하여 공포심이 진정되었다. 다시 한 고개를 넘어 산기슭을 돌아 내려가는데 앞서 보던 도깨비불이 겹겹이 앞길을 막았다. 공은 계책도 없이 칼을 뽑아 크게 소리치며 돌입하니, 그 불이 일시에 모두 흩어져서 우거진 풀숲으로 들어가면서 손바닥을 치며 크게 웃었다. 

공은 별장에 도착하여서도 마음이 초조하여 창에 의지한 채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비복들은 솔불을 켜놓고 앉아서 길쌈을 하고 있었다. 공은 불빛이 켜졌다 꺼졌다 함을 보고 큰 소리로, “이 귀신이 또 왔구나.” 하며 칼을 들고 치니, 좌우에 있던 그릇들이 모두 깨지고 비복은 겨우 위험을 면하였다.

鬼火也 모두 도깨비불이었다 (여기서도 '鬼火'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성현(成俔, 1499∼1504년)의 [용재총화]는 16세기초 조선초의 기록인데, 그의 외숙부인 안부윤이란 사람이 도깨비불과 싸움을 하는 장면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지요. 도깨비불이 가만히 떠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굉장히 활발히 움직이는 녀석임을 잘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이런 액션은 훨씬 후대인 19세기에도 나옵니다.

향산집(響山集)
임오년(1822년)에 선친이 단양(丹陽)에 유배되자, 새로 지은 집에 먼저 들어가 사는 것이 마음에 편치 않아 누차 지시를 받든 뒤에야 거주하였다. 집 뒤에 즐비한 무덤에서 날이 흐리면 도깨비불이 날아다녔는데, 공이 몽둥이를 들고 큰소리로 호통을 치면 사라졌다.

조선후기 이휘준 (李彙濬, 1806∼1867년)) 이 겪은 일로 300년전 안부윤이 칼을 뽑아든 것처럼, 몽둥이를 들고 '크게 소리치자' 사라집니다. 어쩌면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 도깨비불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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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 조상들은 '도깨비불'을 뭐라고 발음했을까?

이전에 야차와 도깨비에 대해 소개하면서 짧게 소개한 부분입니다만, 1748년 간행된 [동문유해]에 매우 중요한 기록이 등장합니다. 위의 붉은 색부분중 왼쪽을 보면 흥미롭게도 '귀화鬼火'를 당시 뭐라고 발음했는지가 명확하게 나오는데...

"독갑이 불' 즉, 도깨비불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귀화'라든가 '귀신불'이라든가 '혼불'이라고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과 똑같이 도깨비불입니다.

1748년 동문유해 중 

필자가 파악하는 바로는 아직 이 [동문유해]의 '도깨비불' 기록을 살펴본 연구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 너무 앞서 나가는 것일수도 있지만, '야차' 라든가 '귀'라는 존재를 모두 '도깨비'로 불렀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조사해 볼 귀한 기록이라 사료됩니다. 



덧글

  • JOSH 2019/05/15 20:54 #

    > 중국문헌인 [화한삼재도회]등을 인용해서

    라고 되어있는데,
    삼재도회라면 몰라도
    화한삼재도회는 일본책이니 잘못 된 거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9/05/16 02:45 #

    앗 혼동했네요! 감사합니다.
  • 게렉터 2019/05/16 18:14 #

    자료 소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20세기 초까지 자료만 보고 “도깨비불”이란 말이 오래 쓰였을거라고 짐작했는데 18세기 기록이 이렇게 있었네요!
  • 역사관심 2019/05/16 23:27 #

    저 역시 처음 발견하고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조상들께 더 친근감도 들구요 ㅎㅎ
  • 쿠사누스 2019/05/29 22:18 #

    당나라 시인 이하李賀의 신현곡神絃曲의 마지막 싯구가 떠오르네요.

    百年老효成木魅 백년묵은 올빼미는 나무 도깨비가 되어
    笑聲碧火巢中起 웃음소리와 함께 파란 귀화가 둥지에서 일어나네
  • 역사관심 2019/05/30 03:26 #

    오 나무귀신과 도깨비불의 기록~! 신기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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