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은 언제까지 존재했을까? 역사전통마

국립진주박물관에 보관중인 수군조련도 (19세기 추정)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음을 아시는 일이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인식속에 거북선은 '고정된 한 척의 하나의 모양새'로 고착되어 왔습니다. 바로 이런 모습이지요. 

그래서 어린시절 거북선을 그리면 100이면 100 이렇게 그립니다

이는 거북선이란 존재가 우리에게 유명하기도 하지만, 그에 비해 얼마나 그 시대(임진왜란)와 모습이 단순한 형태로 부각되어 왔나를 반증하는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연히도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거북선은 임진왜란때만 건조된 것이 아닌 조선초기 태종대부터 존재하던 (어쩌면 고려대부터) 약 500여년을 이어온 조선의 주력함중 하나였습니다. '당연히' 시대별로 여러 모델이 존재했을 것이고, 동시대에도 여러 모델이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히' 시대별로 1척이 아닌 수십척이 존재했습니다. 

당장 첫 그림인 19세기추정 [수군조련도]에만도 10여척이상의 거북선이 보이지요. 그보다 한세기전인 18세기 그림인 아래 [조선삼도수군조련전진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삼도수군조련전진도(1741-1800)에 소개된 여러 척의 거북선들

거북선의 여러 형태와 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예전에 다룬바가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링크글들을 클릭하시고 읽어주시길). 오늘은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의 그림들은 각각 1700년대중후반, 그리고 1800년대로 추정되는 것들입니다. 즉, 300-400년전 그림이 아니지요. 고작 150~200여년전입니다. 한 두척도 아니라, 저런 형태로 십수척에서 수십척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이 많은 거북선은 언제 다 사라진 걸까요? 즉, 대체 언제까지 존재했던 걸까요? 의외로 이 '마지막 기록'에 대한 관심은 학계나 위키백과등에서도 현저히 적어서, 정확한 정보를 찾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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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거북선들

첫 그림이 19세기의 것이라 했습니다. 즉 1800년대지요. 그럼 19세기 후반부의 문헌기록에는 흥미로운 정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운양집 ○승평관집(昇平館集) 
좌수영에 들르다〔過左水營〕

필마로 길 가다가 큰 바다에 임하여 / 匹馬行臨大海頭
표연히 홀로 진남루에 올랐네 / 飄然獨上鎭南樓
장군도 입구엔 차가운 조수에 비 내리고 / 將軍渡*寒潮雨
충무사 옆엔 고목에 가을이 들었네 / 忠武祠邊古木秋
성(城) 밖에 이 충무공(李忠武公)의 사당이 있다.

떠들썩한 어시장은 저녁 성곽으로 통하고 / 魚市喧譁通暮郭
적막한 거북선은 빈 언덕에 매어있네 / 龜船寂寞繫虛邱
충무공이 옛날 거북선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육지에 올려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忠武公舊用龜船。今置陸不用矣。

하늘에 닿은 드넓은 물 풍파는 고요한데 / 連天水闊風波靜
덧없는 인생 끝내 갈매기와 벗하게 했으면 / 終使浮生伴白鷗

匹馬行臨大海頭。飄然獨上鎭南樓。將軍渡*寒潮雨。忠武祠邊古木秋。城外有李忠武公祠 魚市喧譁通暮郭。龜船寂寞繫虛邱。忠武公舊用龜船。今置陸不用矣。 連天水闊風波靜。終使浮生伴白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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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윤식(金允植, 1835~ 1922년)의 [운양집(雲養集)]에 실린 것으로, 김윤식선생은 조선말기 문인으로 1880년 순천부사에 오른 사람입니다.

이 시는 그가 현재 전남 여수시 군자동에 있는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인 진남루(鎭南樓) 객사앞 문루인 망해대(望海臺)에 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은 1479년(성종 10) 이후 순천의 오동포(梧桐浦)- 즉, 현재의 여수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뒤에 소개할 거문도는 여수시 삼산면에 있었지요.

이 시에서 김윤식선생은 자신이 직접 목격한 거북선을 평소에 흔히 보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떠들썩한 어시장은 저녁 성곽으로 통하고 / 魚市喧譁通暮郭
적막한 거북선은 빈 언덕에 매어있네 / 龜船寂寞繫虛邱
충무공이 옛날 거북선을 사용했는데, 지금은 육지에 올려놓고 사용하지 않는다.
忠武公舊用龜船。今置陸不用矣。

시기를 따져보면 순천부사로 임명된 1880년이후가 되겠지요. 즉, 1880년이후 이 지역의 거북선은 활발한 운용을 이미 멈춘 후입니다. 하지만, 이는 이 여수지역에만 해당되는 일일 수 있는 것이 다른 기록을 보면 그렇지 않고, 활발히 운용을 하고 있습니다.

위의 기록보다 약 10년전인 1870년의 기록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
○고종(高宗) 7년(1870년) 

윤10월 12일 승정원 개탁
해상 방어의 중대한 업무는 무엇보다 사전에 잘 대비해야 하므로 만약 하나라도 훼손된 것이 있으면 그 즉시 수선하는 것이 본래 수신(帥臣)의 직책입니다. 신의 통제영 전선(戰船)을 일일이 살펴보니, 좌ㆍ우탐선(左右探船) 및 중군(中軍)의 전선은 모두 다 견실하여 다급한 일이 발생하였을 적에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전선(戰船), 좌ㆍ우별선(左右別船), 귀선(龜船) 등 도합 5척은 본판(本板)과 삼판(杉板)이 대부분 좀이 먹어서 바다에 나가 운항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배를 건조한 연월을 상고해 보니 부선(副船)과 우별선(右別船)은 병인년(丙寅年, 1866, 고종3) 10월에 건조하였고 좌별선(左別船)과 귀선은 같은 해 11월에 건조하였으며 1전선(戰船)은 정묘년(丁卯年, 1867, 고종4) 1월에 건조하였습니다.

[통제영계록]이란 조선후기 경상도고성현(固城縣)에 주둔하였던 삼도수군통제영에서 국왕에 보고한 문서, 그리고 중앙 관청 및 지방의 경상감사 등 각 기관 사이에 주고받은 문서를 기록한 책입니다. 1870년의 이 기록에는 "귀선을 포함한 5척의 함선이 나무가 썩어서 운용하기가 힘들다"라고 되어 있고, 귀선의 경우 1866년 11월에 건조한 것이라 분명히 밝히고 있지요. 즉, 19세기에도 여전히 계속 새로 만들고 보수하던 것이 거북선이라는 타입의 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문헌의 1882년 기록을 보면 (즉 김윤식이 여수에서 거북선을 목격하던 그 시기) 당대 통제영 거북선의 정확한 규모 역시 나옵니다.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
○고종(高宗) / 고종(高宗) 19년(1882년) 
정월 15일 승정원 개탁

본 통제영의 일전선(一戰船)ㆍ우별선(右別船)ㆍ귀선(龜船) 등 도합 3척이 아직 사용의 연한이 차지 않았으나 본판(本板 저판(底板). 배의 밑 부분)과 삼판(杉板 뱃전을 이루는 판)이 대부분 좀이 먹고 상하여 바다로 나가 운항하기 어렵게 되었으니, 막중한 사전의 대비를 하루라도 방치할 수 없습니다. 전선(戰船 조선 후기 수군의 대형 군선)이 사용의 연한 내에 썩어서 상하였을 경우에는 규정에 구애받지 말고 수시로 개조(改造 배를 새로 건조함)하는 사안에 대해 이미 계하 사목(啓下事目 임금이 재가하여 내린 규정이나 규칙)이 있으므로 위 3척의 전선 개조에 착수하였습니다. 이에 사용할 만한 옛날 재목을 새 재목에 첨입하여 이미 다 개조한 다음 배의 척수(尺數)를 성책(成冊)하여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으로 올려 보냅니다. 연유를 치계(馳啓)하오니 잘 아뢰어 주소서.
광서 정월 15일
상고(相考)하는 일. 본 통제영의 일전선ㆍ우별선ㆍ귀선 등 도합 3척을 개조한 뒤에 척수를 성책하고 정리하여 올려 보냅니다.
중략.

귀선(龜船)
본판(本板) 길이 67척
너비 13척
원래 높이 13척
뱃머리 너비 10척
배꼬리 너비 8척
상장(上粧) 길이 88척
너비 33척

본판의 길이만 67척, 즉 20.3미터나 되는 규모입니다. 또한 활동공간인 상장(上粧)의 경우 88척,  즉, 앞뒤 길이는 26.7미터이상급으로 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1882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정확한 규모가 있을 만큼 여전히 현역전투함입니다. 

또한 한 가지 유추해 볼수도 있는 것은 당시 통제영(경상도)쪽의 기록이 이러한 반면, 김윤식 선생이 본 것처럼 좌수영(전라도)쪽의 거북선은 이미 활동을 멈춘 상태라는 것도 연구해 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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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에서 영미해군에게 목격된 거북선

'사람에게 목격된' 거북선의 마지막 기록은 조선인이 아닌 영국해군이 묘사한 것입니다. 처음에 소개한 김윤식선생의 거북선 기록(여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거문도가 있습니다.

이 거문도를 1885년에서 1887년초까지 2년간 영국해군이 점령하지요. 다음은 영국군 묘지에 있는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 해군의 모습입니다.
당시 영국군은 거문도를 전략적 요충지로 파악하고 해밀턴섬이라는 이름까지 멋대로 붙이고 자세히 조사합니다.
당시 영국해군이 작성한 거문고지도

이 당시 영국해군이 거북선을 목격했다라는 카더라 통신이 현재도 우리에게 일부 전합니다. 필자가 그 공식적인 기록을 찾아보려 했지만 원기록을 찾는 일에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미국측 기록으로 다음은 [The passing of Korea]라는 책입니다. 저자는 Hulbert, Homer B. (Homer Bezaleel, 1863-1949년)으로 이 책의 발행년도는 1906년입니다.
이 책에는 매우 흥미로운 기록이 나오는데, 바로 다음의 구절입니다.
1884년 미국대사였던 'George Clayton Foulk'가 거북선의 잔해를 목격했다고 나오고 있지요. 아래 책의 다른 부분을 보면 포크가 '고성의 모래사장'에 누워있던 거북선의 뼈대(Ribs)를 본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같은 기록에 그 1년전인 1883년 영국해군이 한국을 탐험하면서 공식보고서에 이미 거북선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있다고 적고 있지요. 즉,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했던 당시의 기록보다 약 2년전이 됩니다.

A British naval expedition to Korea in 1883, for example, included an account of the curious vessel in its official report, which subsequently appeared in a Chicago newspaper. Ensign George Foulk of the U.S. Navy heard similar stories during his wide-ranging travels on the peninsula in 1884, and actually saw what locals claimed to be the ribs of a turtle ship lying in the sand at Kosong on the coast of Kyongsang Province. 

이 기록은 비단 이 저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당해 미국 시카고의 신문기사에도 조각기사로 등장했었다고 한 미국블로거가 말하고 있습니다 (링크글). 그 기사를 찾아보려 했지만, 신문명도 없는지라 실패했습니다.

결론적으로 1884년의 조지 클레이튼 포크가 본 거북선이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는 '목격담'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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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의 진짜 마지막 문헌기록

그럼 목격이 아닌 '기록'으로나마 등장하는 거북선의 진짜 마지막 기록은 언제일까요? 이로부터 5년후인 1889년이 마지막입니다.

통제영계록(統制營啓錄)
○고종(高宗) 26년(1889년) 
12월 초1일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 수군절도사 신 민경호(閔敬鎬)는 삼가 포폄(襃貶)의 일을 아룁니다. 금년 추ㆍ동등(秋冬等) 본영(本營) 전선장(戰船將)과 각 관(官)의 대장(代將) 및 산성(山城) 소속 친아병(親牙兵)과 중군(中軍)ㆍ천총(千摠)ㆍ파총(把摠)ㆍ초관(哨官) 등의 포폄 등제(襃貶等第)를 모두 마감 지어 다음에 기록하였습니다. 삼가 갖추어 계문(啓聞)합니다.
본영(本營)
부선장(副船將) 절충(折衝) 김시진(金時鎭) 상(上).
좌별선장(左別船將) 주부(主簿) 구헌조(具憲祖) 상.
우별선장(右別船將) 출신(出身) 김장훈(金璋勳) 상.
귀선장(龜船將) 부장(部將) 이상식(李尙式) 상.
좌탐선장(左探船將) 출신 정상봉(丁詳鳳) 상.
우탐선장(右探船將) 전 주부 박정원(朴廷源) 상.

1889년하고도 12월, 마치 1890년대까지는 넘어가지 못하는 듯 거북선의 마지막 기록이 '통제영계록'에 나옵니다. 엄밀히 말하면 귀선(거북선)기록이 아니라 거북선을 모는 '귀선장'기록으로 '이상식'이라는 사람이 '귀선장'으로 임명된 기록입니다.

이것을 끝으로 '귀선/거북선'의 공식적인 혹은 카더라통신은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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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이제까지 본 교차기록으로 최소한 1880년대중반까지는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마지막 '목격'은 1884년, 마지막 '기록'은 1889년.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정하고 없앤게 아니라면 대체 다 어디로 간거지?' 1889년이면 그렇게 먼 시대가 아닙니다. 100여년밖에 안된 시대이며, 사진들도 찍히기 시작한 '근대'입니다. 다 허물어졌다해도, 어떻게 거북선의 머리부분 한조각도 발견될 수가 없는 것일까요?
2017년 흑해에서 발굴된 고대그리스 배 (기원전 400년전)

하다못해 중세, 아니 피라밋시대의 유물도 발굴됩니다. 고작 100년밖에 안된 그것도 한두대가 아닌 조선의 주력함 중 하나로 운영되던 몇백년의 역사를 가진 전함이 이렇게 마치 '고대의 전설'처럼 취급되는 일도 매우 드물 것입니다. 

하루빨리 거북선이 발견되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사족:
그나저나 대체 이런 소리는 언제쯤 사라질지... 근 500년내내 존재한 거북선이 한척(즉 한 모델)이라구요? 대체 뭐라는...

"우리나라에는 약 10척의 거북선이 복원돼 있습니다. 하지만 복원된 거북선마다 구조가 모두 다릅니다. 실제 거북선은 1척인데 말이죠. 거북선 핵심은 '화약무기'입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무기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복원하다 보니 구조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대포를 쏠 수 없는 구조이며 일부는 물에 뜰 수도 없습니다. 화약무기를 기반으로 거북선을 복원할 수 있는 '복원 연구'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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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36310000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59189
http://www.theshogunshouse.com/2010/04/interview-with-samuel-hawley-author-of_27.html


덧글

  • 2019/06/01 20: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6/02 08: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NRPU 2019/06/01 20:46 #

    현대 한국인들에게 거북선은 그저 역사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ㅡㅡ
  • 역사관심 2019/06/02 08:21 #

    적으려고 했던 부분을 지적해주셨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콘이 되는 문화유산은 꽤나 드물고,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는 이미 거북선의 경우 그 지위를 획득했다고도 볼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 때문에 고정된 한 시대와 형태만이 소비되는 현상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 역성혁명 2019/06/02 08:47 #

    항상 문득 궁금했었던 거북선은 과연 얼마동안이나 조선해군에 등장하고 사라졌을까에 대한 생각을 잠깐합니다. 슬프네요. 다양하게 있다고는하는데, 원형은 커녕 나중에 건조된 것도 찾을 수 없다는게... 부디 “어차피 망한 나라 배 알아서 뭐하고 찾아서 뭐해요?” 따위의 댓글이 올라오지않기를 바랄뿐입니다.
  • 역사관심 2019/06/03 02:23 #

    기록을 보면 분명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오래된 전함인데, 마치 고대의 신비의 병기처럼 취급되야하는 현상황이 아쉽기만 합니다. 우려하신 그런 댓글은 올라오면 바로 del이지요 ^^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9/06/06 21:18 #

    삼국지토탈워에서 병사 하나 양성해도 유지비가 엄청 들어가죠.... 뭐 현실에서도 거북선 건조해놓으면 유지비가 막대하게 들어갈겁니다. 신식해군 편성하면서 다 땔감으로 쓴거 아닐지....
  • 역사관심 2019/06/13 23:20 #

    하긴 그렇죠. 땔감으로는 쓰이지 않았길 T.T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8/14 08:03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8월 14일 줌(http://zum.com) 메인의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컬처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9/08/14 08:15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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