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전기 경복궁내 침루(寢樓) 추가발견 (청연루의 1층 침실) 한국의 사라진 건축

현재 한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선전기까지 존재하던 이층이상의 침실, 침루기록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글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중요한 기록 그것도 경복궁(전기)에 존재하던 침루기록을 추가로 발견해서 나눕니다.

다음은 1545년, 인종실록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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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1년 을사(1545) 7월 1일(신유)
상이 청연루 아래 소침에서 훙서하다

묘시(卯時)에 상(上)이 청연루(淸讌樓) 아래 소침(小寢)에서 훙서(薨逝)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상은 자질이 순미(純美)하여 침착하고 온후(溫厚)하며 학문은 순정(純正)하고 효우(孝友)는 타고난 것이었다. 동궁(東宮)에 있을 때부터 늘 종일 바로 앉아 언동(言動)은 때에 맞게 하였으니 사람들이 그 한계를 헤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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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인종(仁宗, 1515~ 1545년)이 승하하시던 날의 기록으로 그가 경복궁의 '청연루'라는 누각의 아래에 위치한 '소침' 즉 작은 침실에서 돌아가셨다는 실록기록입니다.

청연루는 어떤 건물이었을까요? 조선전기로 추정되는 경복궁전도를 살펴보면 오른쪽 (동그라미)에 청연루가 보입니다. 이 곳은 현재 1888년에 재건된 자경전입니다. 

혼동하시면 안되는 것이 새로 들어선 이 자경전에 현재 '청연루'라는 동명의 다른 건물이 들어서 있습니다 (아래사진). 전형적인 조선후기 '루'로 아래가 뚫려있지요. 이 건물은 고종대에 자경전을 세우면서 다시 이름붙인 건물일 뿐, 인종이 승하하던 16세기 건축물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고종대 세워진 현재의 청연루 

현재는 보시다시피 아래가 뚫려있고 (흔히 보는 기둥구조), 따라서 물론 방은 없습니다. 그러나 위의 기록에서 보시다시피 임진왜란 전인 1545년까지만 해도, 청연루는 이런 형태가 아닌 위층과 아래층에 방이 있던 2층루였던 것입니다.

위층에 침실이 있는 경우가 더 많지만, 아래층에 방을 따로 또 만든 기록은 다른 문헌기록에서도 이미 소개한 바 있습니다. 우선 같은 인종실록의 기록입니다.

인종실록 2권, 인종 1년 6월 27일 무오 8번째사 
1545년 명 가정(嘉靖) 1545년 명 가정(嘉靖) 24년
영의정 윤인경 등이 들어가 상의 환후를 살피다

仁鏡等隨任而入, 上在樓下房, 房不爽快, 炎氣薰然。

윤인경 등이 윤임을 따라서 들어가니, 상이 다락 아래 방에 있는데 방은 상쾌하지 않고 더운 기운이 훈훈하였다. 상이 백립(百笠)·백포(白袍) 차림으로 베개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이 기록을 보면 '상', 즉 '인종'이 樓下房 (누하방, 즉 다락아래방)에 있는데 방이 덥고, 베개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즉, 2층건물의 1층부분에 방이 있는 구조가 됩니다. 이 기록이 승하시기기 고작 4일전의 기록이므로 아마도 '청연루'에 계속 머무신 것 같습니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더 전대인 고려시대의 기록이 있습니다. 고려말 문신인 권근(權近, 1352-1409년)의 [양촌집]의 흥미로운 기록이 있습니다. 다음입니다.

양촌선생문집
금교역루기(金郊驛樓記) 중 부분발췌

중앙에 당(堂)을 높이 세우고 좌우에 방[室]을 붙였으며, 바로 왼편 방 앞에 누각(樓閣) 세 칸을 세웠는데, 크고 높게 트였으나 사치스럽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았으며, 그 밑에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한서(寒署)에 쓰기 편리하게 하였다.

고려말 金郊驛이라는 역참(객사)에 누각을 세운 기록인데 흥미롭게도, 누의 1층에 '온돌방'을 만들어서 추울때 쓰도록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원문은 이러합니다.

下爲燠室

즉, 아래(층)은 따듯한 방(혹은 집)으로 만들었다라는 기록입니다. 이런 기록들을 종합적으로 유추하면 이런 형태의 '누' (객사건 저택이건)의 개념은 사방이 막힌 '건축'의 형태가 적어도 1, 2층중 한곳(혹은 양층 모두)에 구현되어 있다고 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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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다른 조선문헌에서 다룬 인종의 승하기록에도 이 '루 아래의 방'기록은 명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려실기술 
인종조 고사본말(仁宗朝故事本末) 
인종(仁宗)

인종 영정헌문의무장숙흠효 대왕(仁宗榮靖獻文懿武章肅欽孝大王)의, 휘는 호(峼)이며, 자는 천윤(天胤)이요, 중종의 원자이다. 장경왕후(章敬王后)가 정덕(正德) 10년 을해년(1515) 중종 10년 2월 25일 계축에 경복궁에서 낳았고, 경진년에 왕세자로 책봉했으며, 가정(嘉靖) 임오년(1522)에 관례를 행하여 입학하고, 갑진년(1544) 11월에 왕위에 올랐다가 을사년 7월 1일 신유에 경복궁 청련루(淸讌樓) 아래 소침(小寢)에서 승하하니 왕위에 있은 지 겨우 8개월이고 수(壽)는 31세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청연루(淸讌樓) 모두 교태전(交泰殿) 동쪽에 있으며, 인종이 아래 소침실에서 승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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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형태의 조선전기 건축을 어떤 식으로든 연구해서 구현하는 프로젝트가 하루빨리 진행되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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