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엔 얼음을 먹고, 겨울엔 비단깔개를 깔고 화로를 켠 고려귀족층 여름, 겨울방 모습 역사전통마

첫 사진은 2008년 고려왕실을 묘사한 영화 "쌍화점"에서 묘사한 고려궁실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고려시대의 귀족층이 지내던 주거공간을 묘사한 예가 거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이 시대의 묘사를 보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온돌이 아닌 방에서 지내던 고려시대. 귀족층은 어떤 방에서 지냈을까요? 당시 문학작품에는 양탄자, 장막등 화려한 방한기구를 갖추고, 화로불을 쬐는 귀족들의 모습이 잘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조선후기처럼 이불깔개가 아니라 침대(침상)가 있었지요.

한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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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을 먹고지내는 여름

첫 기록은 이규보(李奎報, 1169~ 1241년)의 [동문선]에 실린 사계절을 묘사한 '사시사(四時詞)'에 나오는 여름편과 겨울편입니다. 

동문선 칠언절구(七言絶句) 
사시사(四時詞)

여름

은마늘(은(銀))으로 마늘모양으로 만든 것인데 주렴을 거는 갈퀴) 주렴을 드리워 한낮이 긴데 / 銀蒜垂簾白日長
오사모를 반쯤 젖히면 산뜻한 바람이 시원하다 / 烏紗半岸洒風涼
푸른 통에 술을 따라 마셔도 오히려 더웁다고 / 碧筒傳酒猶嫌熱
반 위의 얼음을 두드려 깨어 옥장을 먹는다 / 敲破盤氷嚼玉漿

여름편을 보면 '은갈퀴'를 사용한 '주렴'이 있을정도로 화려한 장식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쟁반위의 얼음'을 깨먹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당시, 귀족층이 여름에 얼음을 사용했음도 알 수 있지요.

주렴은 최근 (2016) 함덕전에 다시 복구한 이런 발을 말합니다. 즉, 고려대의 여름 귀족층은 이런 발을 쳐놓고 시원하게 지냈습니다.
얼음도 귀족층에겐 매년 지급했습니다. 다음은 [고려사] 1049년의 기록입니다.

1049년 무자(戊子)
7월 29일(양)

고위 관리들에게 얼음을 나누어 주다
무자 제서를 내리기를, 해마다 6월부터 입추(立秋)까지 얼음을 나누되 치사(致仕)한 보신(輔臣)에게는 3일에 1차씩 주고, 복야(僕射)․상서(尙書)․경(卿)․감(監)․대장군(大將軍) 이상에는 7일에 1차씩 주어 이것을 영구한 제도로 삼으라.”라고 하였다.

최고 권력자였던 최이 (최우(崔瑀, 1166~1249년)의 경우 산더미같은 얼음을 쌓아놓고 즐겼습니다.

고종(高宗) 32년(1244년) 4월 8일, 
최이가 연등회를 개최하여 채붕(彩棚)을 설치하고 기악(伎樂)과 각종 놀이를 벌이게 하여 밤새도록 즐기니, 수도의 사녀(士女)가 구경하는데 담을 세워 놓은 듯하였다.

5월, 최이가 종실의 사공(司空) 이상 및 재추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채붕을 산처럼 높게 치고 비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친 후, 그 가운데에 그네를 매달아놓고 수놓은 비단과 화려한 조화로 장식하였다. 큰 화분 4개를 설치하여 그 안에 산봉우리처럼 얼음을 담았으며, 화분에다 은테를 두르고 나전으로 장식하였다. 큰 항아리 4개에는 이름난 꽃 10여 종류를 꽂아서, 보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기악과 온갖 놀이가 벌어지자, 팔방상(八坊廂) 공인(工人) 1,350여 명이 모두 옷을 차려입고 정원으로 들어와서 음악을 연주하니, 각종 악기와 노랫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최이는 팔방상들에게 각기 백금(白金) 3근씩을 주었으며, 또 영관(伶官)들과 양부(兩部)의 기녀(伎女) 및 재인(才人)들에게 금과 비단을 주었는데, 그 비용이 엄청났다.

이뿐만이 아니지요. 대표적 성리학자였던 이색(李穡, 1328 ~ 1396년) 역시 여름에는 얼음을 탄 꿀물을 즐겼습니다.

목은시고 제9권 / 시(詩) 
얼음을 반사(頒賜)하는 데에 회포가 있어 짓다. 부분발췌:

전각은 조용하고 덥지도 않은데 / 殿閣靜無暑 
얼음 깬 물에 꿀을 타서 마시어라 / 蜜漿調碎氷
지경이 깊으니 인적은 적적하고 / 境深人寂寂
바람이 부니 나무는 층층이로다 / 風動樹層層
얼굴에 비추면 냉기가 쏘아대고 / 照面冷相射
목에 삼키면 머물 틈도 없이 넘어갔지 / 入喉流不凝
다만 이젠 꿈속 같은 일이거니와 / 只今如夢裡
후한 은총에 작은 재능이 부끄럽네 / 厚渥媿微能

蜜漿調碎氷 꿀즙(꿀음료)을 부순 얼음으로 조절하다

얼음을 즐긴 귀족층은 로마나 중국만의 유산이 아닙니다.

얼음을 탄 꿀음료를 마시는 이색선생이라..... 그간의 엄숙한 성리학자이미지보다 더 생생한 생활속의 고려인으로서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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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깔개에 숯불 화로, 겨울방

다음으로 겨울편을 보지요. 

겨울

우수수 바람 불고 갑자기 눈이 날리는데 / 浙瀝風輕雪驟飄 
왕손은 퉁소 불기를 꺼려하지 않네 / 王孫不憚捻鸞簫
비단 깔개 덥다고 오히려 접어 겹으로 깔라 하니 / 綺筵熏暖猶敎摺
굳이 화로의 수탄(짐승으로 만든 숯)을 더 피울 필요 없다 / 不用剛添獸炭燒

이 장면을 보면 눈이 내리는데, 비단깔개를 겹으로 깔니, 숯을 태우는 화로까지 피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방안이 덥다는 묘사를 생생히 볼 수 있습니다. 고려후기 무장인 진온(陳溫, 연대미상, 12세기말~13세기초)의 사시가에도 이런 묘사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구슬장막 상아 상의 별당 안에서 / 玉帳牙床別院中
한가히 읊조리며 마음대로 꽃떨기를 돌다가 / 閑吟隨意繞花叢
갑자기 살구나무 가지 끝의 꾀꼬리 소리 듣고 / 忽聞杏杪鶯兒囀
손으로 금환을 던져 떨어지는 꽃을 보네 / 手放金丸看落紅

여름

금반의 붉은 실에 얼음봉우리가 솟았는데 / 金盤紅縷聳氷峯
화각은 우거진 나무 그늘에 싸였다 / 畫閣陰陰樹影籠
반쯤 젖힌 오사모로 옥베개 의지하여 / 半岸烏紗欹玉枕
고운 손을 번갈아 시켜 맑은 바람을 부채질하네 / 互敎纖手扇淸風

겨울

수 놓은 장막은 깊고 그림담요는 겹겹인데 / 繡幕深深畫毯重
용을 그린 화로에 봉 모양의 숯불은 붉은 꽃을 피우네 / 龍爐鳳炭發春紅
술이 얼근하자 난사 향기는 사람 얼굴을 훈훈하게 하나니 / 酒酣蘭麝熏人面
금창을 열어젖혀 눈바람을 쏘이노라 / 掛起金窓向雪風

봄 여름에는 '장막 (주렴)'을 치고 지내고, 얼음을 먹고, 겨울에는 그림이 그려진 담요를 겹으로 깔고, 화로에 숯을 피우고 지냅니다. 고려시대 화로 묘사를 보면 용을 그렸네, 짐승을 그렸네 하는 묘사가 있는데 이 역시 전하는 유물을 보면 정확히 일치하지요. 다음은 국보 145호인 청동귀면화로와 개인소장인 청동제귀면차화로로 둘 다 고려시대의 화로입니다.

귀족들은 나무바닥 방에 비단깔개를 깔고, 이런 화로에 숯을 넣어 난방을 하며 겨울을 지낸것입니다.
국보 145호 청동 귀면 화로 (고려시대)
청동제귀면차화로(고려시대,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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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까지도

이런 난방모습은 온돌이 전면적으로 방마다 구비되기 시작한 18세기이전 조선시대에도 보입니다. 다음은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1439~1504년)이 묘사한 자신의 겨울방 모습.

허백당보집 
섣달 초아흐렛날 큰눈이 내리다〔臘月初九日大雪〕

아침부터 저녁 먹을 때가 되도록 / 從朝至薄暮
그치지 않을 듯이 펑펑 내리니 / 密密勢彌久
어지러이 날리는 건 운무와 같고 / 紛披似雲霧
수북하게 쌓인 모습 언덕 같구나 / 聚聳成培塿
틈새로 날아들다 다시 흩어져 / 投隙聚還散
종아리가 묻히도록 수북해지니 / 沒脛深更厚

산천은 끝이 없는 흰 비단 물결 / 山川莽縞素
세계는 온 천지가 옥구슬인 듯 / 世界皆瓊玖
누구던가 산음에서 내려와서는 / 誰人山陰下
배를 타고 은거하는 벗을 찾은 이 / 乘舟訪幽友
걸어가며 〈초은시〉를 흥얼거리니 / 行吟招隱詩

흥취가 한량없이 이어졌었지 / 興盡更多趣
누구의 집이던가 금곡원에서 / 誰家金谷園
손님을 물리치고 문 걸었으니 / 麾客牢閉牖
비단 방석 위에는 기녀들 앉고 / 綺席列歌姬
화로에는 아황주(鵝黃酒)가 데워졌었지 / 獸炭熾鵝酒

綺席 비단자리, 獸炭 (수탄), 즉 수탄으로 때는 화로. 15세기말의 지도층 방안 묘사 역시 그대로입니다. 오늘 자료는 사실 예전에 소개한 [교차기록-17세기초 온돌방 유행의 정확한 추정시기, 그리고 고려시대 난방 모습- 방안의 난로(화로)] 포스팅의 후속글에 가깝습니다. 이런 기록에 관심이 있으시면 훨씬 후대인 17세기초기록까지 등장하는 링크글을 읽어보시면 될 것입니다.

[쌍화점]의 저 모습은 꽤 잘 고증된 장면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고려시대, 그리고 조선전기의 귀족층, 양반층의 주거공간묘사에 이러한 '새로운(역설적)' 모습이 종종 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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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아 한국인의 뇌리에서 사라진 문화양식, 그중에서도 건축에 대해 관심이 있다보니 자연스레 오늘의 주제에도 관심이 가게 되다보니 꽤 읽을 만한 양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쪽 관련 자료도 한번 모아볼 때가 되었네요.








덧글

  • 냥이 2019/08/18 21:46 #

    글을 보며 상상해보니 중국 가정집 실내하고 비슷한 가구구성이네요.
  • 역사관심 2019/08/19 00:15 #

    그렇죠. 사실 저걸 중국같네 일본같네라고 하면서 복원안하는 이상한 이데올로기성 문화계행태가 일부 있는데, 한국문화계의 큰 착오이자 문제라 생각합니다. 결국 저 당시 일본이고 동남아고 중국화가 아니라 '현대화'에 가까운 개념으로 다들 따라하려고 (못해서 안달) 하던 방식이고, 결국 화려하고 발전된 우리문화가 된 것인데, 그건 다 쳐내고 임란이후의 소박하고 담백한 우리문화만이 한국문화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지요. 밸런스를 갖춰야 하는 시점이라 봅니다.^^

    http://luckcrow.egloos.com/2629589
  • windxellos 2019/08/18 22:18 #

    1244년이면 몽골의 침입이 장기 휴지기에 들어갔던 시기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본토 쪽 상황이
    썩 좋지는 않았던 걸로 아는데, 정작 강화도에 도망간 군인정권 수뇌부들은 저러고들 놀았으니
    영 씁쓸하네요.
  • 역사관심 2019/08/19 00:17 #

    맞습니다. 결국 망한 국가는 다 이유가 있다는... 그리고 역설적으로 말씀하신 부분은 이런 문화적 이슈와 맞닿아있다는 생각입니다. http://luckcrow.egloos.com/2586612
  • 동두철액 2019/08/19 18:51 #

    일본 시대극에서 화로로 겨울을 나는 모습을 자주봤는데 이 또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일 수 있겠네요. 이런것도 잘 고증하면 조상의 새로운 문화를 엿볼 수 있을거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9/08/19 23:39 #

    사실 저 당시 거의 모든 국가가 그런 식으로 겨울을 낫죠- 중국, 일본, 한국 그리고 아마도 동남아도... 저런 모습 역시 매체에서 자주 보여주면 좋겠어요.
  • 이글루스 알리미 2019/09/04 08:04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09월 04일 줌(http://zum.com) 메인의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zum 메인 페이지 > 뉴스 하단의 컬처탭에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역사관심 2019/09/04 08:50 #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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