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거대한 성랑(城廊)기록과 생김새 추정 한국의 사라진 거대건축

'성랑'에 대해서 얼마전 글을 올린 바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김새를 볼 수 있는 사진이나 구조물은 전혀 찾을 수 없었지요.


오늘은 대강이나마 그 생김새를 유추할 수 있는 다른 고려사 성랑 기록을 '낭무'라는 개념과 엮어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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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1225년을 보면 4개의 궁전 전각이 불이 나서 엄청난 화재가 '낭무'에 발생한 기록이 나옵니다.

1225년 10월 20일(음) 정미(丁未) , 
궁궐의 전각에 불이 나다
정미 저상전(儲祥殿)·봉원전(奉元殿)·목친전(睦親殿)·함원전(舍元殿)의 4개 전각에 불이 나서 궁궐의 낭무(廊廡) 137간이 타버렸다.

(블로그이웃이신 Windxello님의 제보) 禁城이란 단어에 '궁궐'이란 뜻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丁未 儲祥·奉元·睦親·舍元四殿, 災, 延燒禁城廊廡一百三十七閒.

延燒禁城廊廡一百三十七閒
연달아 불이 나서 궁성낭무 137칸이 불탔다.

그리고, 무려 137칸이나 불이 번진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궁성낭무'이긴 하지만 '城廊廡'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있지요. 이 표현이 이것으로 끝이라면 '성벽과 낭무'라는 개념에 대한 추정은 할 필요가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성낭무'라는 단어가 확실하게 독립적으로 쓰인 표현이 이보다 8년전인 1217년 기록에 나옵니다. 

1217년 1월 6일(음) 갑신(甲申) , 
성랑이 불타다
四年正月甲申 城廊廡災.
〈고종〉 4년(1217) 정월 갑신 성의 낭무(廊廡)에 불이 났다.

城廊廡災.
'성낭무'(성랑무)가 불탔다.

자, '낭무'를 '성'과 연관시킨 기록입니다.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지만 '성랑(城廊)'으로 검색하면 중국측 이미지도 별게 없습니다. 그런데, '낭무(廊廡)'로 검색하면 이런 이미지가 나옵니다.

午门雁翅楼- 墩台两翼各有庑13间,俗称“雁翅楼”;庑两端建有重檐攒尖顶的方亭。

이건 오문안시루(午门雁翅楼)라는 베이징에 있는 고궁박물관에 있는 건물입니다. 여기 '廊'(즉 복도건물)이 있고, 이 건물은 성벽위에 있습니다. 즉 '성랑'이라 불러도 무방하지요. 

고려조 문헌에 매우 자주 나오는 '성랑'은 이 정도로 정교한 건축은 당연히 아니었을테고, 물론 수비용으로 막 지은 긴 복도건물이었겠지만, 성벽위에 이런 식의 장랑식 건조물이 있었을 가능성이 매우 커 보입니다. 위에 '137칸이 연달아 불이났다'라는 1225년 고려사 기록을 보면 이런 긴 복도식 목조건축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지요.

저번 기록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직 이런 식의 대형건축구조물은 아직 복원물로도, 영화매체로도, 그림조차도 아직 한번도 한국역사에서 제대로 다루어진 바가 없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그런데 2014년 '추성산성'에서 '낭무'가 발굴된 적이 있지요.

증평 추성산성서 ‘낭무(廊廡)’ 흔적 발견…국내 최초 (2014)

지난 1월 국가지정문화제로 지정된 충북 증평의 추성산성에서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토성 내 ‘낭무(廊廡)’ 흔적이 발견됐다. 낭무는 군 초소로 사용된 시설을 말한다. 고려사절요는 ‘낭옥(廊屋)’, 고려사에는 ‘나각(羅閣)’으로 기술돼 있다.

(재)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강경숙)은 추성산성 일대를 5차 발굴 조사한 결과 “주거지 4기, 고려시대 (추정) 북문지 1기, 온돌 건물지 3동, 목주열(木柱列) 2기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16일 밝혔다.

조사단은 “온돌 건물지 3동은 ‘낭무(廊廡)’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토성(土城)에서 낭무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책 시설로 추정되는 목주열도 성벽 토루와 남벽에서 발견됐다.

조사단은 “토루 상면에 설치된 목주열 또한 목책시설로 추정된다”며 “이 또한 지금까지 조사된 사례가 없다”고 발표했다. 조사단은 이번 발굴을 토대로 추성산성의 북성은 한성백제에 처음 쌓아 고려시대에 개축(改築)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 현장은 17일 오전 11시 일반에 공개된다.

지방에 있는 토성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추성산성(杻城山城)은 삼국시대 금강유역에서 산에 쌓은 토성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적이란 점에서 문화재적 의미가 크다. 중략.

이 기사에서 보면 낭무를 '낭옥' '나각'으로 기술되었다고 (" 고려사절요는 ‘낭옥(廊屋)’, 고려사에는 ‘나각(羅閣)’으로 기술돼 있다.") 하고 있어 낭무나 랑에 대한 개념이 구체적으로 구별되지 않고 대강 묶어버리는 행태를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시설이 성벽위에 붙어서 지어졌다면 '성랑'의 일부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만약 성내에 그냥 단독건축이라면 '낭옥'에 가까울 것입니다.

추성산성 낭무 유구

고려대 문헌에 매우 자주 나오는 이 '성랑'들은 이런 화려한 궁중 건축물은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길이와 성벽에 바짝붙은 기본형태는 이런 식의 성벽건조물이 아니었을까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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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9/08/26 04:35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8/28 06:0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9/09/01 00:4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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