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천리인(千里人) 설화 야담 지괴류

이규경(李圭景, 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이런 이야기가 전합니다.

《후한서(後漢書)》에, “고구려(高句麗)에서는 절할 때에는 한 다리를 꿇고 걸을 적에는 모두 달음질친다.” 하였다. 남연(南燕) 모용초(慕容超) 때 고구려에서 천리인(千里人) 10명을 바쳤는데, 천리인이란 하루에 1천 리를 갈 수 있는 자를 말한다. 

원문은 이러합니다.
즉, 고구려인들의 '달리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이란 챕터의 일부이지요. 그런데 단순히 '잘 달리는 능력'보다 '천리인(千里人)'이라는 특별한 그룹에 대한 언급이 눈에 띕니다. 

남연이란 나라의 '모용초'란 사람에게 고구려에서 10명의 천리인을 보냈다는 내용이지요. 모용초가 누구길래 저런 사람들을 보냈다는 것일까요? 모용 초(慕容 超, 385~ 410년)는, 서기 405~ 410년의 6년간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의 남연(南燕)의 2대이자 마지막황제였던 자입니다. 그닥 정치를 잘 한 인물은 아니고 26세에 국망의 길을 걷게 된 사람이지요.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이 때 보낸 '천리인' 10명이 '곧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자들이다'라는 해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천리인들에 대한 원래 원전에는 이 설명은 없지요. 이규경이 참조한 문헌은 지북우담[池北偶談] 21권입니다. [지북우담]이라는 책은 왕사정(1634~1711년)이라는 청대 초의 관리가 쓴 저서인데, 사실은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짤막한 내용만 있습니다.

池北偶談
千里人

南燕慕容超時, 남연(南燕)의 모용초의 시대에
高句驪獻千里人十人。고구려에서 천리인 10명을 보냈다.

그래서 실은 천리인이라는 자들의 성격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규경선생의 해석처럼 하루에 천리를 가는 자들인지, 천리를 볼 수 있는 자들인지.

이렇게 짧은 기록만 남아있기에 더 이상의 해석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생각하는데, 관련논문들을 보면 '천리인'이 무슨 광개토대왕시절의 전령 시스템이나 관리인들이라든가 하는 대담한 추정을 하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양의 정보로 그런 추정은 무리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흥미로운 존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앞으로 더 상세한 문헌기록이 발견되면 좋겠군요.



덧글

  • 2019/09/10 09:22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9/10 09:4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0 13:40 #

    사람이 하루에 천리를 가기는 힘들거 같습니다.
    천리마를 대단한 것으로 치는 사례에서 보듯 말이 천리를 가는 것도 엄청난 일이죠.
    아래 기록과 연결하여 보부상같은 짐꾼으로 설명하면 어떨까요?

     0289 삼국지
    동옥저는 나라가 작고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句麗)에 신속케 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서 대인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하여 맥(貊)·포목·생선·소금·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나르게 하고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http://qindex.info/i.php?f=2605#850
  • 역사관심 2019/09/12 02:53 #

    네, 당연히 비유겠지요. 현재 저 짤막한 정보로는 많은 추정이 가능할 듯 싶습니다. 말씀하신 부분도 포함해서 말이지요 (천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2 16:54 #

    이조의 역노비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겠네요.
    http://qindex.info/i.php?f=6978
    역노비에는 급주노비와 전운노비가 있었는데, 각각 정보전달과 물자운송의 일을 했었죠.
    어느 것이든 유쾌한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9/09/12 23:14 #

    천리인은 아마도 노비계급보다는 높은 지위의 기능인들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말씀대로 운송을 맡은 직책이었다면 물론 무지막지한 고생길이었을 것 같습니다..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3 05:32 #

    이씨조선의 사례만 놓고 본다면 걷거나 뛰어서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는 높지 않았습니다. 급주노비나 사노비는 물론 노비였고 보장사는 가난한 아전이나 일반인이 돌아가며 했다고 해요. 고대에는 어땠는지 아직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지만 일 자체가 힘든 거라 이조와 큰 차이가 없었을 듯합니다.그리고 외국에 바쳐지는 사람은 노비, 장인 그리고 기생처럼 대체로 신분이 낮죠.
  • 제비실 2019/09/17 13:28 #

    고구려는 전쟁 국가라 운송 정보 산업이 필수적으로 중요해질수밖에 없기 때문에 운송이나정보 분야에 종사하는 계층이 안중요할수가 없어서 그 지위가 낮다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지요 조선의 경우와 비교될수 없는게 조선은 평화 기간이 많았던 문치형 유교 국가인데 반해 고구려는 영토확장을 목적으로 전쟁이 많았던 팽창형 전쟁 국가라 고구려와 조선은 대내외적인 국가적 환경이 달랐기에 문치형 유교 성격의 조선의 신분 기준을 고구려에다 적용하기가 어렵지요

    천리인이 고구려내에서 최고 상류층에 들기가 어렵더라도 최소한 중간 계층쯤은 유력한 법이지요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7 20:44 #

    외국에 보내지는 사람의 처지를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습니다.

    0646 신당서(1060)
    장(藏)이 사자를 보내어 방물을 올리고 또 사죄를 하였다. 두 미녀를 바치자, 태종은 돌려 보내라고 조명을 내리고, 사자에게, “미색이란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친척을 떠나와서 마음 아파하는 것이 불쌍하여 내가 취하지 않겠다.” 고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6978#7025

    고국에서의 인간관계를 모두 끊어버리는 일이기 때문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을 보내기 힘들죠.
  • 제비실 2019/09/17 21:51 #

    여말선초에 원 명에 보내졌던 공녀들은 상류층 출신들이 다수였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기황후는 고려 무신집권기에 성장한 명문가였던 행주기씨 가문 출신이고 영락제의 후궁 한비는 명문가인 청주한씨 였을 정도로 외국에 무조건 비상류층들만 가는게 아니지요

    그리고 신당서의 당태종에 보낸 고구려의 미녀 헌상 기록은 당시 당태종 이세민 같은 당나라 권력층이 고구려 원정의 참패로 인한 국가 위신의 추락을 모면하거나 책임에서 회피하기 위해 고구려와의 접촉 사실을 과장 발표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으므로 비상류층의 외국행 독점 사실의 적절한 사례로 인용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지요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7 23:05 #

    또 다른 예가 있습니다.

    0631 구당서(945)
    김진평이 사신을 보내어 여악공 두 사람을 바쳤는데, 모두 머리가 새까만 미인들이었다. 태종이 사신에게, “짐이 들으니 성색을 즐기는 것은 덕을 좋아함만 같지 못하다고 한다. 그리고 산천으로 가로 막혀 있으니, 고향을 그리워 할 것도 알 수 있다. ... 짐은 그들이 멀리 떠나 와서 반드시 친척을 그리워할 것을 불쌍히 여긴다. 마땅히 사자의 편에 보내어 제 집으로 돌려 보내도록 하라.” 하였다. 
    http://qindex.info/i.php?f=6978#7027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8 04:05 #

    볼모나 결혼은 물론 왕족이나 귀족을 보냈습니다.
    http://qindex.info/i.php?f=2053
    그러나 장인이나 노비 그리고 악공은 천한 신분이었고 천리인도 이 부류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 제비실 2019/09/19 09:19 #

    신 구당서의 당에 보내진 고구려 신라의 미녀 기록들만으로 고구려 천리인의 천민신분설의 근거로 활용하기가 어려운게 첫째로 신 구당서의 미녀 헌상 기록내용에서 그들의 출신 신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과 둘째로 이들의 출신 신분을 정확하게 잘 아는 발신 당사자의 기록이 아니었다는 점 셋째로 대외적인 국가 위신을 강조하려는 목적에서 타국의 자국과의 외교적 위치를 낮추어서 서술하려는 정치적 성격이라는 점

    이 세 가지 문제 때문에 신 구당서의 미녀 기록이 천리인의 천민 신분설의 근거로
    활용되는게 결격함이 심하지요

    그리고 장인 노비 악공의 선례를 가지고 천리인의 신분을 규정짓는건 확대추측이지요

    신분 대상은 시대마다 변하기 마련이라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평민 신분층을 가리키던 백정 용어가 조선시대에 와서 천민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변질된 사례를 보면

    악공 장인에 대한 특정 국가와 특정 시대의 천민 신분적 기준이 고구려시대에 있었다고
    규정되기가 어렵고
    또한 천리인과 비슷하게 여겨지는 조선시대의 보부상도 법적으로 양인이었을 정도로
    무조건 천리인이 천민집단으로 단정될수가 없는 법이지요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9 17:29 #

    신분이 높았다면 아래와 같이 언급했겠지요.

    신당서(1060)
    현종 개원(713~741) 연간에 두 명의 여자를 바쳤는데, 현종은, “여자들은 모두 왕의 고모요 자매이다. 생소한 풍속에 부모·친척과 떼어 놓는 것이니, 짐은 차마 머물게 하지 못하겠노라.” 하고, 많은 물품을 주어 돌려 보냈다.  
    http://qindex.info/i.php?f=2053

    성색이나 미색이란 용도는 천한 신분이 아니었겠습니까?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9 17:55 #

    외국에 보내지는 사람을 볼모나 결혼과 같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보내지는 사람과 장인, 노비, 미녀 그리고 악공과 같은 기능을 제공하기 위해 보내지는 사람으로 분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전자는 당연히 신분이 높아야 하겠지만 후자는 대체로 천한 신분이 아니었겠습니까? 천리인의 신분이 어떠했는지는 기록에 없지만 이와 같은 경향에 의하면 천한 신분이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죠.
  • JR14 2019/09/10 18:36 #

    남연의 모용초라니 모 소설에 나오는 모용 씨 일가가 떠오르네요.
  • 역사관심 2019/09/12 02:53 #

    오, 어떤 소설인가요.
  • 제비실 2019/09/11 20:05 #

    고구려가 남연 모용초에게 보낸 천리인 외에 십육국춘추에서는 천리를 가고 달리는 천리마라는 말을 천리인과 함께 보낼 정도면 천리인이라는 집단은 고구려내에서 운송 경제와 밀접한 일을 집단으로 추정되지 않을까 생각되지요 외국이었던 남연에게 이런 집단을 보낼 정도라면 남연에 경제 군사적인 교역목적때문에 보내지 않았을까 유력시되지요

    그 이외의 가능성은 모용초에게 천리마를 보냈다는 십육국춘추의 기록처럼 남연에 보낸 교역 선물인
    천리마 사육 운용 기술에 밀접한 연관성을 있는게 천리인 집단의 성격이지 않을까 생각되지요
    남연에게 보낸 천리마의 사육 기술을 전수할 목적으로 간게 아닌지
  • 역사관심 2019/09/12 02:54 #

    네, 현재로썬 그 가설에 가장 (일부학계에서도) 무게를 두는 것 같습니다. 뭔가 추가정보가 나와주면 그 정체가 더 명확해 질 것 같아요.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2 14:37 #

    십육국춘추에서 해당 기록을 찾을 수가 없네요.
    판본에 따라 다른 건지...
    https://zh.m.wikisource.org/wiki/%E5%8D%81%E5%85%AD%E5%9C%8B%E6%98%A5%E7%A7%8B/%E5%8D%B713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3 17:20 #

    찾았습니다.

    0408 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522)
    高句驪復遣使至獻千里人十人千里馬一疋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 
    http://qindex.info/i.php?f=6978#6984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3 22:54 #

    천리인과 천리마가 묶음으로 제공된 것으로 보아 천리인은 천리마와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말 한 마리를 운용하는데 열 명이나 필요할 거 같진 않으니, 천리마를 운용하는 인력과 직접 걷거나 뛰어서 정보를 전달하는 인력을 합쳐서 천리인이라 하지 않았을까 싶군요. 이조의 역참에도 기발과 보발이 있었다는데 그것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 위에 짐꾼이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십육국춘추의 기록으로 짐꾼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아 보입니다.
  • 김대중협정 개정 2019/09/14 17:12 #

    다시 정정합니다.
    천리마만 제공한 사례가 있어 천리인과 천리마는 묶이지 않네요.

    0406 십육국춘추(522)
    고구려가 사신을 파견하여 천리마와 생웅피, 장니를 바치니, 모용초가 몹시 기뻐하면서 물소와 앵무새로 보답하였다.  
    http://qindex.info/i.php?f=6978#6996

    따라서 천리인의 정체에 대해 천리마 운용자의 가능성을 빼야 하겠습니다.
  • 역사관심 2019/09/14 22:38 #

    상세한 정보 감사합니다.
  • 제비실 2019/09/13 13:27 #


    t십육국춘추의 관련 기록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이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국편위 사이트에서 한국고대사료 집성 중국편이라는 분야에 들어가시면 원문을 찾을수 있을 것입니다

    http://db.history.go.kr/item/level.do?setId=22&itemId=ko&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position=17&levelId=ko_045_1250_0010
  • 역사관심 2019/09/13 23:07 #

    감사합니다~.
  • 책사풍후미나모토 2019/09/15 07:06 #

    천리마행군의 기원이 이렇게 유서깊을수가.
  • 역사관심 2019/09/19 10:21 #

    그럴수도 ㅎㅎ
  • 역사관심 2019/09/19 10:21 #

    그럴수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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