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의 끝자락에 보는 생생한 18세기말 정월대보름 모습 역사전통마

윤기(尹愭, 1741~1826년)가 상세히 묘사한 18세기의 정월입니다.

추석과 묘한 접점이 느껴지는 신비한 당시 정월 대보름날의 정취를 함께 느껴보시라고 올립니다 (조상들은 설날보다 이 날에 더 축제가 많았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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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자집 시고 제3책 
정월 대보름 고사46운 〔又記東俗 四十六韻〕 또 우리나라 풍속을 기록하였다.

새해에 열닷새가 되면 / 新歲遒旬五
아름다운 명절 대보름 / 佳辰標上元
한당의 고사는 멀어지고 / 漢唐遺事遠
형초의 옛풍속 성행했네 / 荊楚舊風繁

소동파 범성대가 많이 읊었고 / 蘇范恣吟賞
채군모 왕우옥은 은총 넘쳤네 / 蔡王詑寵恩

고장이 달라 고유 민속 많으니 / 殊方多俚俗
우리나라 풍속은 중국과 달라라 / 東國異中原
대보름엔 등불놀이 하지 않고 / 不用張燈戱
오직 달구경 소리 요란하구나 / 惟聞翫月喧 (주: 당시에도 중국과 다른 우리 명절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볼 수 있는 귀한 구절)

도성의 다리를 두루 밟느라 / 踏橋卄四遍
거리 가득 인파들 분주하네 / 塡巷萬羣奔

야금 풀어 나졸들 입을 닫고 / 放夜金吾啞
조정에서는 윤음 온화하구나 / 臨朝玉旨溫

어린아이에서 늙은이까지 / 垂髫仍戴白
말을 타거나 가마를 타며 / 驅馬或乘軒
곳곳에 둘러앉아 풍악 잡히고 / 處處笙歌匝
사람마다 즐겁게 웃고 떠드네 / 人人笑語爰

은파는 삼보의 백성들에게 끼치고 / 波分三輔屬
우레는 오군의 군문에 울리네 / 雷動五軍門
맑은 강 기슭으로 다투어 달려가고 / 競向淸流岸
푸른 버들 거리를 뒤질세라 헤집고 다니네 / 爭穿綠柳村

규장각은 예원에서 으뜸이요 / 奎章高藝苑
장용영은 병영에서 으뜸이라 / 壯勇首戎垣 (주: 이 구절에서 이 시가 최소 1785년 이후에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장용영은 정조가 1785년 만든 호위군대이지요. 또한 당시 이 군대를 일반이 어떻게 인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화려하게 새 옷으로 차려입고 / 闘靡新衣飾
성대하게 창과 깃발 세웠어라 / 誇殷列戟旛 (주: 마치 요즘 국군의 날처럼 특별한 날 무력시위한 듯.)
장용영



아쟁은 애절하고 피리는 급하여 / 絲哀兼管急
바람처럼 모이고 구름처럼 뭉쳤어라 / 風驟更雲屯

미녀의 목에 간드러지는 노랫가락 곱고 / 曲愛嬌喉囀
비단 소매 펄럭이는 춤이 아름다워라 / 舞憐繡袖飜

칠보 반합 열어 음식을 집고 / 揀羞開寶盒
금 술통 부어 술을 데우네 / 煖酒瀉金樽
19세기 조선찬합


부호가 앞에서 수레를 멈추고 / 富戶停輪鞅
푸줏간 앞에서 구운 고기 주문하네 / 屠門喚炙燔 (주: 역시 고기가 일상이던 18세기조선- 참고글 [18세기 소고기는 일상의 반찬 (부제: 살벌한 고기소비)])

어찌 모두 시문 짓는 모임이랴 / 豈皆文字飮
단지 권세가들의 술자리라네 / 直以勢威尊
성세의 풍류가 아름답고 / 盛世風流美
태평시대 기상이 있어라 / 升平氣象存

여염에선 무슨 놀이 즐기나 / 里閭何所事
민간 풍속도 말함직 하지 / 俗尙又堪論

저녁달을 보고 풍흉을 점치고 / 厚薄徵宵月
아침 해를 보고 날씨를 점치지 / 陰晴卜曉暾
아이들 서로 부르며 더위를 팔고 / 迭呼兒賣暑
맹수 대비해 머슴들 울타리 손질하지 / 豫備僕修藩

부럼을 깨무니 밤에서 소리나고 / 嚼腫栗生響
귀밝이술로는 맑은 청주 마시네 / 治聾酒不渾

대나무장대 세워 낟가릿대 만들고 / 竪竿象積築
과일나무 시집보내어 많이 열리게 하네 / 嫁樹指豐蕃
낟가릿대


윷가락 세 번 던져 점괘를 보고 / 擲柶三看繇
개야 올빼미야 부르며 쌍륙을 하네 / 呼盧衆賭梟
쌍륙놀이 (18세기 동시대, 신윤복)
 
할아버지는 며느리 손자와 함께 앉아 / 老翁偕婦孺
닭과 돼지 잡아 맛난 요리 즐기네 / 妙饌殺雞豚 (주: 고기 고기...)

새벽에 우물물 길어 용알을 뜨고 / 汲井攘龍卵
개 목줄 만들어 앉혀놓고 걸어주네 / 環繩施狗蹲 (주: 목줄이 있는 개, 있었습니다. 이미 조선전기에도...)


참고그림 (이암(李巖, 1499 ~ ?)의 모견도 (16세기초)


종이 버선 만들어 처마에 끼우고 / 簷挑裁紙襪
옷과 두건 벗어 길에 버린다 / 路棄脫衣幡

긴 빗자루로 집 안을 소제하고 / 屋宇勤長箒
목화솜으로 묵은 뿌리 감싸주네 / 木綿被宿根

대추와 과일 섞어 약밥을 찌고 / 飯蒸抣棗果
나물 제수를 사당에 올리네 / 廟薦間蘋蘩

고기만두 전골은 새로 끓이고 / 餶飿新需爛
무나물 고사리 미리 장만하지 / 葑薇舊蓄煩

물고기 먹이려 각종을 던지고 / 飼魚沈角粽
고치 켜며 누에 농사 축원하네 / 抽繭祝蠶盆

송편을 자주 집어먹으니 종들은 배부르고 / 奴飽頻持斧 (주: 송편은 필수, 모양도 도끼모양으로 지금과 흡사)
저녁밥 주지 않으니 강아지는 굶주리네 / 猧飢不除飧 (아니 왜 안줘...물고기도 주면서..)

하늘에서 달이 막 돋으면 / 天方吐素魄
사람들은 황혼을 기다리지 / 人盡待黃昏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농사 점치고 / 指點談禾麥
정성스레 자손 번창케 해달라 빌지 / 虔誠願子孫

달 먼저 보려고 성가퀴에 오르고 / 先觀登睥睨 (주: 성가퀴에 오르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동산에 올라 늘어서서 절하네 / 羅拜陟山園
횃불 들고 둥글게 늘어서고 / 炬火紛環列
제웅은 마구 끌며 부순다 / 芻人任曳掀 (주: 아래 그림이 제웅. 관련 포스팅은 여기로..[제웅, 초용(草俑)․초우(草偶), 그리고 신라의 짚단병사들])
불쌍한 조선시대 제웅녀석들 (打芻戱)...

종이연에 실 매어 바람 타고 띄우고 / 紙鳶風引線
죽마를 만들어 형과 아우 함께 타네 / 竹馬弟携昆 (주: 조선 아이들 죽마)

액을 피하는 방법 유난히 많고 / 度厄偏多術
복을 받는 방법도 매우 자세하지 / 迎祥細有言
옛 풍속 헤아릴 수 없이 많으니 / 古風難屈指
전래의 풍습을 누가 기원 알겠나 / 流習孰探源

다행히 전쟁 없는 성세 만나 / 幸値邊塵靜
도타운 교화를 함께 누리네 / 俱欣聖化敦

세상의 유행을 뉘 다시 금하랴 / 奔趨誰復禁
자취도 없건만 두루 전파되었네 / 傳播遍無痕

속절없이 검을 퉁기는 객만이 / 有客空彈鋏
조롱에 갇힌 새인양 가련해라 / 如禽未出樊
오직 병에 시름시름 시달리고 / 涔涔惟疾病
천지는 마냥 드넓기만 하여라 / 納納自乾坤

풍속 채집하노라니 온통 가슴이 아파 / 採俗渾傷感
시를 짓느라고 삼켰다가 뱉었다가 하네 / 裁詩半吐呑
단지 명절에 가름하고자 / 聊思酬令節 (주: 이런 구절을 보면 분명 지금과 달리 정월대보름은 설날의 연장선)
즐거운 일만 적어보노라 / 好事庶相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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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즐거운 일이 더 많은 가을-겨울이 되시길...



덧글

  • 냥이 2019/09/17 16:51 #

    푸줏간에 구운 고기 주문 했다는 구문이 있는거 보면 저 당시에도 반찬가게 같은게 있었나 보군요. 과일나무 시집 보낸다는거는 접붙이기 아니면 인공수분 같은데...
  • 無碍子 2019/09/15 09:24 #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는 나무의 갈라진부분(요즘말로 Y존)에 길쭉하고 맨들맨들한 돌을 끼워넣는걸 말합니다. 시집을 보내야 자식을 많이낳는다고 생각해 과일이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 풍습이었죠.
  • 냥이 2019/09/15 11:04 #

    설명대로 생각해보니 그대로 적었다간 어느 집단에서 들고 일어날지도...
  • 역사관심 2019/09/17 01:18 #

    네, 고기가게가 있었습니다.

    정조 17년 계축(1793년) 9월 11일(신축)

    通衢列肆之間 내왕하는 사거리마다 사(肆)을 벌여놓고 판매하는데
    販鬻爲事有肉如坻 그 고기의 양이 강가의 넓은 모래벌판같다.
  • 응가 2019/09/16 18:03 #

    혹시 설날이 아니고 정월대보름 풍습 아닌가요....? 초하루는 그믐달이라서 달이 뜨지 않을텐데 풍습도 대보름 풍습과 겹치는게 많고 중국에서도 대보름을 원소절이라 해서 등을 다는 풍습이 있다고 하던데요
  • 역사관심 2019/09/17 01:19 #

    헉, 제목에 떡하니 있는데;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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