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출몰한 두번째 도롱이 귀신 기담 설화 야담 지괴류

한국의 "도롱이 귀신"은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독각귀'의 외양묘사에서 나옵니다.

바로 이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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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 이유(李濡)는 인후(仁厚)한 인품을 가졌다. 옥당(玉堂) 시절에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종묘 옆 순라곡(巡邏谷)을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도롱이 입고 삿갓을 쓴 외다리 귀매가 껑충껑충 뛰면서 달려오더니 관리에게, “가마가 지나가는 것을 못 보았느냐?” 하고 물었다. 관리가 못 보았다고 하니 독각귀(獨脚鬼)는 바쁜 듯이 달려갔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삿갓과 도롱이 차림이 특이할 것은 없었으나, 그 사람의 눈은 이글이글 타는 횃불과 같았고, 다리는 하나뿐인데도 바람처럼 내달렸다.
이 공이 생각하니 조금 전 제생동(濟生洞) 입구에서 한 가마를 보았기 때문에, 급히 말을 돌려 그 귀매를 쫓아 제생동으로 행했다. 

독각귀가 들어가는 집에 가니, 이 집은 이 공의 이성 삼종(異姓三從)에게 친척 뻘 되는 집으로, 이 공의 이성 삼종 자부가 병이 들어 여러 달 앓다가 거의 죽게 되어, 오늘 환자가 가마를 타고 이 친척집으로 피접(避接)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병을 일으킨 이 독각 귀신을 피해 온 것인데, 찾아서 따라온 것이었다. 

이 공이 사정을 얘기하고 환자가 있는 방에 들어가니, 그 귀매가 환자 베개 옆에 앉아 있다가 이 공이 노려보니 문밖으로 나가 뜰에 서 있었다. 다시 이 공이 나와 역시 노려보니 귀매는 지붕으로 올라갔고, 또한 이 공이 쳐다보니 공중으로 날아갔다. 이러고 나니 환자는 병이 깨끗이 나아 이 공이 돌아왔다. 

이 공이 가고 나니 환자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공이 또 와서 많은 종이쪽지를 만들어 이 공이 자기 서명을 해 사방에 빈틈없이 붙여 놓으니, 부인의 병은 완전히 나았다.

-청구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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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유(李濡)는 17세기 사람입니다. 이분은 1645년에 태어나 1721년에 사망합니다. 여기 등장하는 외다리 귀신인 독각귀는 역신(疫神)의 풍모를 풍깁니다. 이유가 집요한 역귀를 따라가서 자신의 친척을 구하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이 기담에서의 이유는 아직 홍문관(옥당)의 하급관리 시절이었지만, 훗날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여기 나오는 독각귀의 외양은 이러합니다.
"도롱이 입고 삿갓을 쓴 외다리 귀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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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도롱이 귀신

그런데 이보다 조금 앞선 시기 비슷한 외양과 성격을 가진 요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권벽과 그의 친구

권벽이 어렸을 때 친구의 집안사람들이 모두 병에 전염되어 위독하단 말을 듣고 가려고 하자 사람들이, 한 몸 돌보지 않고 열병 걸린 사람에게 전염되어서 온 집안사람들에게 옮으면 어쩌냐며 만류하였다. 권벽은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모두 운명에 있다며 친구가 위태로워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구하지 않겠느냐며 약을 가져가 구해 보겠다고 하였다. 

그 집에 가니 종들이 서로 베고 죽어 있었다. 친구는 권벽의 손을 잡고 흐느껴 울었다. 친구와 함께 자다가 권벽이 깨어보니 친구가 몰래 딴 데로 도망가 버렸다. 권벽이 집에 가고자 했지만 밤이 깊어 시신들을 지나 외청으로 나가 앉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다. 

때에 가랑비가 막 멈추고 달빛이 희미한데, 문득 귀신 둘이 도롱이를 거꾸로 입고 담을 넘어서 곧장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가 도망갔다고 하였다. 

외청으로 나와서 찾다가 권벽이 있는 것을 보고는 한 귀신이 그를 도망간 친구로 알자 다른 귀신이 그 사람은 권 정승이며 범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귀신들은 다시 담장을 넘어 달아났는데, 권벽이 옷을 걷고 쫓아가니 마을 구석 어귀에 이르러 한 귀신이 ‘그 사람이 여깄네’하고는 문을 넘어 들어가자 잠시 후 곡성이 있었다.

고흥 유씨는 권벽이 미혹됨이 없이 하늘을 믿고 능히 남을 구하니 그의 복록이 멀리 미쳐 마침내 삼공의 벼슬에 올랐으니 이 또한 마땅하지 않은가! 그 친구는 권벽이 구해주려는 은혜를 돌보지 않고 친구를 팔아서 자기가 대신 살고자 몸을 숨겨 도망했다. 그 마음이 비할 데 없이 허망하니 마땅히 신이 그를 죽인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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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현재 [한국문화컨텟츠닷컴]에서 제공되고 있는 문화원형시리즈에 수록된 글로 아쉽게도 원전정보가 없습니다. 필자가 아무리 찾아보아도 원문을 제공하는 출처정보를 알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만약 아시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주인공의 이름이 명확하게 나와 있어 이 기담의 시대를 알 수 있습니다. 권벽(權擘, 1520∼1593년)은 조선중기 실록편찬등의 일에 활발하게 참여한 문신입니다. 

이 이야기의 플롯은 아주 신기하게도 약 100년후인 청구야담의 저 독각귀이야기와 매우 흡사합니다. 즉 이 귀신들은 '역귀'(병을 옮기는 귀신)로 독각귀이야기와 똑같이 (하지만 이번에는 두 마리) 도롱이를 입고 담을 넘어 병을 피하고자 도망한 권벽의 친구를 결국 쫓아가 집으로 들어가고 그후 곡성이 납니다.

권벽(權擘, 1520∼1593년)
이유(李濡, 1645~ 1721년)

원전저서도 다를 것이고, 시대는 100여년 차이가 나지만, '도롱이를 입은 귀신'이 '사람을 쫓아가 집에서 곡성이 난다'라는 플롯은 완벽히 같습니다. 그리고 두 이야기 모두 실존인물의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도롱이'와 '삿갓'이라는 의복의 특징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이 두가지는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입는 것들이지요. 삿갓의 경우 신분을 감추는 용도도 추가. 따라서, 이런 우중충한 날씨와 계절(가을-겨울등)에 초상치르는 일이 잦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런 역귀들이 묘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해봅니다.

이런 모습의 삿갓을 쓰고 도롱이를 입은 무시무시한 귀매는 이제는 여러 컨텐츠로 쓰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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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삿갓귀신의 경우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저 두 분보다도 100년전 사람인 성현(1439 - 1504년)이 경험한 초대형 삿갓귀신.




덧글

  • 딱정벌레 2019/09/30 09:45 #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올려주시는 글들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9/10/01 02:08 #

    힘이 나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딱정벌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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