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말 인면 뱀요괴과 장한웅 (장산인전(張山人傳)중) 설화 야담 지괴류

허균(許筠, 1569~ 1618년)의 [성소부부고]에는 이런 장산인전(張山人傳)이라는 신기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장산인"이라는 도교적 인물의 일대기를 그린 것인데, 오늘은 이 이야기의 중반부에 등장하는 인면의 뱀요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산인전(張山人傳)중 일부

장산인의 이름은 한웅(漢雄)이며 그 내력을 알지 못한다. 그의 아버지는 전에 상륙(商陸, 약재의 이름)을 먹고 귀신을 부릴 수 있게 되었다. 장산인도 아버지가 남겨준 두 권의 책을 수만 번 숙독하여 또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학질을 낫게도 할 수 있었다.

그는 18년을 산에 머물다가 서울로 돌아와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다. 나이는 육십이었으나 용모는 젊은이 같았다. 이웃에 비워둔 집이 있었는데 흉측하여 살 수가 없자 그 집 주인이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청하였다. 밤에 그 집에 가 보니 과연 두 명의 귀신이 나타났는데, 무릎 꿇고 말하기를 “저희는 문 귀신과 부엌 귀신입니다. 요사스러운 뱀이 집을 차지하고 간사한 짓을 하니 제발 그것을 죽여 주십시오”하면서 뜰 가운데의 큰 홰나무 밑둥을 가리켰다. 

장산인이 주술로 물을 뿜어내자 조금 뒤에 사람 얼굴을 한 큰 뱀이 번쩍이는 눈빛으로 꿈틀거리며 나오다가 절반도 못나와 죽고 말았다. 산인이 그것을 태워 버리게 하자 다시는 귀신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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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부분만 보아도 느껴지지만 장산인 한웅과 그 아버지는 도교인들입니다. 아버지가 '상륙'을 먹고 귀신을 부릴 줄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 약재는 체내의 수분을 제거하는 데 뛰어나며 열기 또한 제거해 주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상륙(商陸)


첫머리에 나오는 아버지가 물려준 두 권의 책은 [옥추경(玉樞經)]과 [운화현추(運化玄樞)]인데, 이 책들은 모두 실제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선 [옥추경]은 도경(道經)의 경전중 하나로 명대의 지괴류서적인 전등신화(剪燈新話)에 “평일에 옥추경을 외울 수 있었다.” 하는 구절이 나오지요. 

그리고 [운화현추]의 경우 고전번역원에서는 "도술(道術)을 터득하는 책 이름인 듯하나 미상이다."라고만 되어 있는데, 필자는 [동의보감]에도 이 저서명이 등장함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벽곡과 복이" 챕터의 레퍼런스중 하나로 이 저서명이 등장합니다 (이것이 우연히 동명이서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도가적 구절인 다른 챕터인 "양생의 금기"라는 부분에서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도가서적으로 추정되며 가능성은 높아진다 사료됩니다).

장산인은 조선후기까지도 유명했던 도인으로 추정되는데 그 근거로 18세기의 이덕무(李德懋 1741~ 1793년)가 저술한 [청장관전서]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원전인 [해동이적]은 효종대의 인물인 홍만종(洪萬宗, 1643~1725년)의 저서로 장산인전을 저술한 허균(許筠, 1569~ 1618년)의 바로 다음대 인물임을 감안하면 장산인(장한웅)은 확실히 실제인물임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해동이적은 당대까지의 고유의 선파 인물과 수련도교와 관련 있는 단학파 대표인들을 소개한 것으로 보아 장한웅은 유명한 도술인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장주(長洲) 홍만종(洪萬宗)이 우리나라의 영이(靈異)한사적을 모아《해동이적》이라 이름하였는데, 무릇 38인이다. 단군(檀君)ㆍ혁거세(赫居世)ㆍ동명왕(東明王)ㆍ사선(四仙)ㆍ옥보고(玉寶高)ㆍ김겸효(金謙孝)와 소하(蘇嘏)의 이선(二仙), 대세(大世)ㆍ구칠(仇漆)ㆍ감시(旵始)ㆍ김가기(金可記)ㆍ최치원(崔致遠)ㆍ강감찬(姜邯贊)ㆍ권진인(權眞人)ㆍ김시습(金時習)ㆍ홍유손(洪裕孫)ㆍ정붕(鄭鵬)ㆍ정수곤(丁壽崑)ㆍ정희량(鄭希良)ㆍ남추(南趎)ㆍ지리선인(智異仙人)ㆍ서경덕(徐敬德)ㆍ정염(鄭*)ㆍ전우치(田禹治)ㆍ윤군평(尹君平)ㆍ한라선인(漢挐仙人)ㆍ남사고(南師古)ㆍ박지화(朴枝華)ㆍ이지함(李之菡)ㆍ한계노승(寒溪老僧)ㆍ유형진(柳亨進)ㆍ장한웅(張漢雄)ㆍ남해선인(南海仙人)ㆍ장생(蔣生)ㆍ곽재우(郭再祐)인데,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이 서문을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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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인공인 이 장산인(장한웅)은 이런 뛰어난 도술가로 그가 '흥인문(동대문)'밖에 살고 있었는데 이웃집에 있던 두 귀신 (수호신입니다- 문귀신(수문신)과 부엌귀신(조왕신)- 네 그 신과함께에도 나오는...)이 호소를 합니다. 자기집의 홰나무에 사는 귀신이 있는데 처치할 수가 없으니 힘을 빌려달라고. 이를 들은 장한웅은 바로 찾아가 홰나무밑에 살던 사람 얼굴을 가진 뱀요괴를 태워죽입니다.

그런데 이 '홰나무', 예전에도 많이 봤지요. 그중 꽤나 흥미로운 접점을 가진 기담을 오래전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다음입니다.

 

청파극담

파성군(坡城君)의 집이 흥인문(興仁門 동대문) 안에있었는데, 집 앞에 큰 홰나무가 있었다. 남편모씨가 밤에 사청(射廳) 앞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보니 수를 알 수 없는 많은 무사(武士)들이 사청 위에서 궁술을 겨루다간, 다시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혹은 격구(擊毬)도 하고혹은 말을 타고 활을 쏘기도 하니, 사청(射廳) 앞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는 모씨를 무례하다 하여 묶어놓고 구타를 했다. 애걸하였지만 듣지 않으니,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장부(丈夫)가 흔연히 여러 사람들 속에서 나와 여러 사람들에게 노하여, “이 분은 나의 주인이신데, 어찌 이토록 괴롭히느냐.”고 말하면서, 결박을 풀어주고 잘 부축하여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문 안으로 들어와서 뒤를 돌아보니, 그 장부는 홰나무 밑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마도 사청 앞에 나타난 무사들은 모두 귀신이었으며, 붙들고 집으로보내준 장부도 역시 홰나무에 의탁하여 화신(化身)한 귀신이었는가 한다 (이 허다한 武士[무사]들은 鬼衆[귀중]이요, 一 [일]장부는 槐樹[괴수]의 정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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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의 문인인 청파(靑坡) 이륙(李陸,1438~1498년)이 엮은 야담집인 청파극담에 나오는 이야기로, 흥인문(동대문) 안쪽에 살던 '파성군'이란 자의 집 앞에 홰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밤길을 걷던 중관청앞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집단이 궁술을 겨루고 격구도 하면서 길을 막고 있더란 겁니다 (15세기...이때만 해도 고려대처럼 격구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글 초입에 나오는 파성군이라는 것은 지위로 이름이 아닙니다.

 

이렇듯 보통 홰나무의 신은 집주인을 지키는 또다른 수호신에 가깝습니다만, 오늘소개한 인면 뱀요괴는 특이하게도 반대인 악귀의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뱀요괴를 처치한 주인공인 '장한웅'은 최후까지도 신비로운 모습으로 죽어갑니다. 

 

분류 오주연문장전산고경사편 2 - 도장류 1 / 도장총설(道藏總說) 

도교(道敎)의 선서(仙書)와 도경(道經)에 대한변증설 부(附) 도가 잡용(道家雜用)

총설(總說)

신선골(神仙骨) 

 

《명사(明史)》에 “예부(禮部)에서 말하기를 ‘대서양(大西洋) 사람 이마두(利瑪竇마테오리치)가 갖고 온 것이라 하며 또 신선골이 있다 하는데 이미 신선이라고 칭한다면 스스로 하늘로 날아 올라갈 수 있습니다. 어찌 뼈가 있겠습니까?’ 했다.” 하였다. 이는 당 나라 때의 불골(佛骨 석가여래의 사리(舍利))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해동이적(海東異蹟)》에 “장한웅(張漢雄)이 수련하여 도(道)를 얻었었는데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소요산(逍遙山)에 들어갔다가 적에게 잡혀 작살(斫殺)되자 흰 기름과 같은 피가 나왔다. 다비(茶毗화장(火葬))하였더니 삼주야(三晝夜) 동안 서광(瑞光)이 하늘에 비치었다. 사리(舍利) 72알을 얻었는데 크기가 감실(芡實)만하고 색깔이 감벽색(紺碧色)이었다. 이것을 탑 속에 보관해 두었다.” 하였다. 도가에도 사리가 있다면 이것은 신선골이라 하는가 보다.

 

이규경李圭景(1788∼1863년)의 백과사전저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에 [해동이적]에 나오는 그의 최후가 실려 있는데, 바로 임진왜란때 현재 경기도 동두천에 있는 소요산(逍遙山)에서 왜군에게 찔려죽습니다.그때 그의 몸에서 '흰 피'가 나왔다고 되어있지요. 마치 6세기 신라의 이차돈처럼 말입니다. 

소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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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필자가 이런 류의이야기를 수년에 걸쳐 찾고 소개하면서 느끼는 가장 명확한 감상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대입니다. 즉, 이런 도가적이야기, 신비로움을 간직한 기담은 대부분 17세기초가 마지막입니다. 이 시대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수많은 요괴와 기이한 인물들이 등장하고 자취를 감춥니다. 

 

주지하시다시피 17세기, 즉 임진왜란 직후의 이 시대는 조선전기와 후기를 나누는 기준점이 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건축, 의복등의 하드웨어와 철학, 종교등의 소프트웨어가 필자가 항시 이야기하는 '반半 개국'수준으로 바뀌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오늘 소개한 이 '장한웅'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임란 이후 400년이 지난 (그리고 성리학적'전통문화'에 익숙한) 우리가 받아들이는 느낌과 17세기초까지의 우리 선조들이 받아들이던 느낌은 분명 달랐으리라 짐작하고 있습니다.

 

장한웅의 임진왜란때의 사망모습은 마치 그 시대까지 고고히 흘러가던 우리 도교의 최후를 보는 듯한 안타까움이 개인적으로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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