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현대기술로 중수되어 있는 중국의 3大누각과 일본오사카성 (동서양 철학차이) 한국의 사라진 건축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도시 할슈탈트의 1899년과 2017년 사진입니다. 

할슈탈트 (오스트리아, 1899년)

할슈탈트 (오스트리아, 2017년)

보시다시피 마치 시간을 정지한 것 같은 모습이지요. 무려 118년이 지났어도 말입니다. 감탄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이 유네스코 중심의 건축문화재 보존의 이상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1964년에 제정된 [기념물과 사적지의 보존,복원를 위한 국제헌장], 즉 일명 베니스 헌장만 보아도 이런 철학은 명확하지요.

제 4 조

기념물은 영구적으로 유지 관리된다는 점이 기념물 보존에 있어 근본이 된다.

제 5 조
기념물의 보존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에 의해서 항상 추진되다. 그러한 사용이 바람직하나 이것이 건물의 설계나 장식에 변화를 가져와서는 안 된다. 이러한 제한 내에서 (건물)기능의 변화에 의한 수정이 고려되어야하고 허락될 수 있다.

제 8 조
기념물의 일부인 조각, 회화, 장식은 이들의 제거만이 유일한 보존의 방법이 될 때에 한하여 기념물로부터 제거 될 수 있다.

제 10 조
전통의 수법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된 경우, 기념물의 보강은 현대수법을 이용해도 되나, 이의 효능이 과학적 자료에 의해 나타나고 경험에 의해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
=======

20세기초반이후 우리를 포함한 모든 국가(동아시아)는 서양식 근대화를 이상형으로 삼고 모든 것을 거의 필터링없이 따라갔습니다. 거의 맹목적이었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비단 눈에 보이는 하드웨어뿐 아니라 사고방식을 좌우하는 사상과 철학까지 모든 것을 서양식으로 뒤쫓았지요. 물론, 이 길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며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었습니다.

그리고 건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래 동아시아의 기본재료였던 나무 대신 변형을 허용치 않는 석조(콘크리트)중심의 건물로 급속도로 바뀌어 갔고, 70년대이후 초가-기와집은 자취를 감춥니다. 이것은 '선(善)'이었고, 이 과정에서 1945년 세워진 세계의 전통문화를 다루는 유네스코 헌장 (ICOMOS 포함) 역시 당연히 따라야 할 '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맹점이 하나 있습니다. 

길게 잡아 100여년을 서구식으로 바꾸고 살아온 현재의 한국인들 (및 동아시아국가의 구성원들-인도등 제외)보다 근 20배라는 어마하게 긴 약 2,000년을 살아온 동아시아의 선조들의 사고방식과 삶을 40~60년대 당시 이 '서구식 헌장들'은 조금도 고려하고 있지 않은채 선언되었다는 것입니다. 앞서 보여드린 유네스코 헌장중 전통 건축물을 대상으로 내려진 1964년의 베니스헌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헌장들은 철저히 서구사회의 전통건축물 (유럽건축물)을 유일한 대상이자 목적으로 삼은 것들입니다.

20세기가 되기 이전, 이 두 세계의 건축가들은 거의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근 1700년이상을 살아왔고, 각자의 철학과 환경과 상황에 맞는 자신들만의 건축물들을 자유롭게 만들고 지내왔습니다. 만약 이 두 세계가 공통점이 많았다면 별로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에 있습니다.
=======

유럽철학과 동아시아철학의 차이

우선 건축에서 '건축철학'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재료'입니다. 이 재료문제가 거의 80% 이상 아니 90%의 지분을 가져간다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왜냐하면 그 재료의 차이가 건축의 모든 것인 '시간'과 '형태'의 차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유럽건축은 '석조'입니다. 벽돌을 비롯 구하기 쉬웠던 석회암기반의 이집트 거석문화가 그리스로 이어지면서 지금도 세계 1위 산출량을 자랑하는 대리석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이집트- 그리스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건축의 가장 중요한 점은 크고 거대한 신전등 종교적 건축물들에 있었습니다. 변치 않는 신전들이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 고대 그리스 철학중 가장 근본인 플라톤철학에서 보이는 '변치않는 세계(이데아)'가 후대로 이어졌다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서양세계에서 '변하는 세계'는 근본적인 세계가 아니었고 변하는 '현상'을 중요하게 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이 되어서 입니다. '변형'과 '잡종'은 '선(善)'이 아니었고, '영원'과 '본질'이 선(善)이었지요. 서양철학의 근본은 이러한 본질주의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에 가장 잘 들어맞는 건축재료가 당시에는 '석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은 예전에도 지금도 환대받는 것입니다.
19세기중엽, 어떻게 보면 현재 베니스헌장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영향을 준 1849년 존 러스킨이 쓴 [건축의 일곱 등불]을 보아도 이러한 철학은 명확합니다. 이 책을 쓴 동기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이 파괴되거나 무시되고, 내가 사랑할 수 없는 건축물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였고, "진정한 건축의 색은 자연석의 색이며 다양한 자연의 색으로 얻지 못할 조화는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지요- 이는 전형적인 서구인의 플라톤적 사고(본질주의)이며 석조건축기반적 사고입니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비단 공공건축 (궁궐, 성, 신전)뿐만이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지요.

오직 한 세대를 버티기 위한 집을 짓는 것은 그 사람의 악덕을 표시하는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중략. 정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았다면 그들의 집은 신전과 같은 것이다. 각자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집을 짓고 짧은 자기 인생만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은 그의 부모에 대해 감사하지 않으며 본능적인 애정이 없는 것을 뜻한다. 


그럼 동아시아는 어땠을까요? 

왜 동아시아에서는 석조가 아닌 목조중심의 건축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근거는 부족합니다. 다만, 동아시아 건축 (동남아건축 역시)의 기원격인 중국건축에 그 근거를 추정할 수 있는 점이 있지요. 중국은 현재도 대리석 세계 2위의 생산국입니다. 하지만, 대리석을 건축에 쓴 경우는 전무합니다. 이는 단순히 '석재를 구하기 쉽고 어려운' 것이 아닌 '사상'의 차이가 컸을 것을 추정케 하지요.

우선 동아시아 철학는 유교-불교-도교입니다. 이 세 종교가 서양종교와 가장 다른 점은 불교를 제외해도 '현세'를 '내세'보다 더 중시하고 있었다는 점이지요. 모두 '현재의 인간세상을 어떻게 잘 사는가'에 몰두한 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교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인들의 실제 생활에 더 큰 영향력이 있는 도교의 경우, '저 세상의 모습'이 '현세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냥 현세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일 정도로 현세가 중요성을 갖습니다. 그리고 노장철학은 '변형' '잡종'을 근본적 자연원리로 삼는(그래서 현대성이 매우 큰) 철학입니다. 이는 삶의 터전인 '건축'에도 적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내가 지금 사는 집이 편하고 안락하면 좋은 것이지, 이 집을 영원히 보존해서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건축사상을 잘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16세기 명대의 이름난 건축가였던 계성(計成, 1582~?)은 저서 [원치(園治)]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위 러스킨의 주장과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1,000년 지속하는 집을 지을 수도 있다. 그러나 100년후에 누가 살게 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화를 이룬 한정한 집에, (현세대를 위해) 이를 감싸는 즐겁고 안락한 장소를 만들면 충분하다."

이는 김동욱 교수의 설명하신 것처럼 건축에 대한 당대 동아시아인들의 인식구조를 보여줍니다. 즉 '천년가는 건물을 못 짓는게 아니라 지을 필요성을 전혀 못느끼고' 있지요. 이러한 건축철학은 고대부터 근세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예컨대, 중국의 왕조들은 대부분 왕조가 바뀌면 모두 이전 건물을 때려부수고 새로 짓는 전통이 있었고, 이는 삼국-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왕조들도 마찬가지, 그리고 일본의 역대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이전 궁전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요. 김동욱 교수의 설명으로는 중국 역대왕조중 궁전을 새로 짓지 않은 왕조는 금방 망해버린 수왕조를 이은 당나라와, 명나라를 이은 이민족의 국가 청나라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는 정치적인 점에서도 살펴볼 차이가 한가지 있습니다. 즉, 이미 고대부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에 가까웠던 동아시아와 성주들이 다스리는 봉건영주제의 유럽의 차이입니다. 같은 '왕조'라는 단어를 붙인다고 해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그것은 비슷한 점보다는 차이점이 아마도 더 클 것입니다. 각 '나라'보다 '각 지역의 가문'들의 동맹과 연합이 더 우선시되었던 절대왕정 이전의 유럽역사에서 석조건축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은 중요하지도, 그리고 성주들이 노력을 가할 대상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해 '천명으로 왕조가 바뀌는 것이라는 명분을 중시하던 동아시아에서 도성의 주요건축들은 새로운 시대의 상징'으로 중요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4세기 경복궁 축조 직후 정도전은 이런 말을 합니다. "신이 살펴보건대, 궁궐이란 것은 임금이 정사하는 곳이요, 사방에서 우러러보는 곳입니다. 신민(臣民)들이 다 조성(造成)한 바이므로,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성을 보이게 하고, 그 명칭을 아름답게 하여 보고 감동되게 하여야 합니다."

드라마 정도전 중 경복궁 건설직후 

종합해서 요약하자면 이러합니다. 요즘의 우리 감각으로는 당연히 '선'으로 보이는 아래의 변치않는 장면들을 우리의 선조들은 '이게 왜 선이야?'라는 질문으로 받아쳤을 것 같다는 것.
물론 유럽이라고해서 먹고살기 바쁜 일반시민들이 이런 모습을 지향할만큼 의식이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당연히 중요한 것은 당시 종교나 정치지도층, 그리고 건축가들의 철학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비교해도 동아시아의 지도층에게 이러한 모습은  '추구하지도 본받을 필요도 없던' 것이었던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동아시아적 가치는 이제 거의 서구적인 그것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 비해 이러한 '차이'가 직접적으로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전통문화계"에게 이 문제는 생각보다 큽니다. 왜냐하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남아있는 혹은 앞으로 복원해야 할' 대상인 건축들이 당시 그러한 건축물들이 세워지던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그리고 전혀 관계도 없던 서구철학기반의 정책들과 어울려야 하는 이슈가 필연적으로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

1994년 나라문서

그래서 아시아 건축에 적합한 요구가 일본에서 90년대중반 일어납니다. 유명한 [나라 문서]가 선언되지요 (실은 유네스코 조항이라면 신주단지모시듯 할 것이 아니라 건축문화재가 가장 모자라고 사라진 한국에서 이런 고민이 먼저 일어났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이 나라문서는 일본문화청, 나라시의 초청에 의해 1994년 11월 나라에서 열린 "세계유산협약과 관련된 진정성에 관한 회의"에 참가한 45명에 의해 작성된 것인데, 이는 목조건축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건축을 위한 [베니스 헌장]의 일부를 유연하게 한 것으로 한참 모자라기는 하지만, 지역기반 철학을 존중하는 시작점이라는 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조항이 추가된 것입니다.

7. 모든 문화와 사회는 그들의 유산을 형성하는 유형적이고 무형적인 표현의 독특한 형태와 수단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이들은 존중되어야 한다.

11. 관련된 정보의 근원에 대한 신뢰성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에 부여된 가치에 대한 판단은 문화마다 다를 수 있고, 심지어 같은 문화 속에서도 다를 수 있다. 그러므로 정해진 기준으로 가치와 진정성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모든 문화에 대한 존중은 그것이 속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유산을 고려하고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

부록 1. (H. Stovel에 의한 추가 제안사항)
1. 특정 기념물과 유적지의 진정성을 정의하거나 결정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문화와 유산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기계적인 공식이나 표준화된 과정을 적용하는 것을 피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요구한다.

2. 문화와 유산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진정성을 결정하려는 노력은 각자의 고유한 특성과 요구에 적합한 분석과정과 도구를 발전시키는 문화를 장려하는 접근법을 요구한다. 그러한 접근법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여러 측면을 가질 수 있다.
  • 진정성의 평가는 학제간의 협력과 모든 가능한 전문가와 지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것을 포괄하려는 노력.
  • 개별 기념물과 유적지에 부여된 가치는 진정으로 한 문화를 대표하고 그 문화에 대한 관심의 다양성을 표현하려는 노력.
  • 앞으로의 관리와 관찰을 위한 실무지침으로 사용하기 위해 기념물과 유적지에 대한 진정성의 특별한 성격을 명확히 기록하려는 노력.
  • 변화하는 가치와 환경에 맞추어 진정성 평가를 새롭게 하려는 노력.

물론 나라문서가 아무렇게나 입맛에 맞게 복원을 해도 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그보다는 각 문화권의 고유한 특성을 (예를 들면 목조건축의 취약성을 고려)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학제적인 협력을 통해 (무엇보다)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하나하나 근거아래 복원하는 과정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90년대중반이후 특히 21세기가 되면서 서양건축학자나 철학자들의 동서양의 건축철학과 변형에 대한 심도높은 (대부분 동아시아건축의 변형과 문화를 존중해야한다는 기조) 논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전통건축계의 경우 아직도 [베니스 헌장]의 석조건축 중심 & 유럽 철학식 관점을 비교적 가장 엄격하게 들이대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원로학자들에게 (사견입니다) 아주 강하게 나타나곤 합니다. 어찌보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처절한 건축파괴를 경험한 국가로서 그 누구보다 나라선언식의 유연함을 갖추고 우리문화권 자체의 시스템을 확립, 이를 유네스코와 협의아래 발전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한 국가임에도 말입니다.

아직도 언론인터뷰를 통해 접하는 전통건축쪽 노교수님들의 관점은 이러합니다; "나라문서를 함부로 적용해선 결코 안된다". 그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 대안이 '복원절대 불가' & '원형유지'는 아닙니다. 이건 그저 베니스 헌장의 철두철미한 수호자임을 자랑하는 것 외에 아무런 대안이 아니지요. 

말씀드렸듯 우리 전통건축문화는 엄연히 '동아시아 건축문화'에 속해있습니다. 유럽이 아닙니다. 그럼, 다른 주축 구성원인 중국와 일본은 어떨까요? 
=======


중국 대표 3대 누각과 일본 금각사

중국에는 대표적인 3대 거대 누각이 있습니다. 모두 지금도 현존하는데 모두 재건되거나 복원된 것들입니다. 

황학루
우선 황학루(黄鹤楼)입니다. 이 거대건축물은 삼국시대 오나라 손권이 수군을 지휘하기 위해 223년 처음 쌓은 것으로, 1,800여년 동안 전쟁과 화재로 10여 차례 손실과 복구를 거듭, 지금의 누각은 1985년에 중건한 것입니다.   후베이성 우한 시의 양쯔강 강변에 있는 유명한 역사적 누각으로 악양루, 등왕각과 함께 중국 "강남 삼대명원"의 하나로 손꼽히는 건축물입니다.
그런데 2015년에 이 건축물을 중수하는 일이 생깁니다. 당시 중국의 건축관계자의 설명은 이들의 건축철학을 보여줍니다.

1985년에 지어진 황학루는 복잡한 주요 건물로 유리 타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그 30-50 년 정상 수명을 유지했지만 일년 내내 인해 온도와 습도등의 여러 자연요인으로 30년이 되지 않아서 유리 타일등은 북풍에 매우 취약했지요. 중략. 전문가가 반복적으로 증명하고, 마지막으로는 "타일 표면과 반대 능선 끝 (꼬리 치기 활공) 모두 교체했습니다. 능선, 반대 능선, 능선 주위에 수직 능선, 키스, 동물과 다른 유리 구성 요소 만 손상된 부품을 교체하지 않는 지역적인 복구와 유리등을..." 

출처- 장강 일보
2015년 공사중인 황학루

그런데 이 황학루를 설명하는 이 기사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아무런 비판이나 문제없이 말이지요 "외양은 고대의 황학루이지만, 잦은 파괴와 중수로 인해 최근에 중수되어 현재는 내부에 엘리베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네, 마치 위에서 소개한 명대 건축가 "계성(計成, 1582~?)"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요한 것을 당대에 설치하고 씁니다. 무슨 문제라도? 라고 말이지요.

등왕각
두번째로 3대루중 가장 거대한 등왕각(騰王閣)입니다.
(사진출처- 링크)

등왕각은 당나라 653년(영휘 4년) 이원영에 의해서 지어졌습니다. 그는 등현(현재의 산둥성 등주시)에 봉토되었기 때문에 "등왕"으로 불렸고, 이로 인해 그가 지은 이 누각이 "등왕각"으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등왕각 역시 전란 등에 의해 수차례 전소됩니다. 청나라 동치 연간에 무려 28번째의 재건을 했지만 1929년에 군벌들 간의 전쟁으로 또다시 파괴되어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현재의 것은 1989년에 재건된 것으로 무려 29번째의 재건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을 봐주세요 (필자가 만든 것입니다).
명대-청대-현재 계속 재건된 등왕각

왼쪽부터 명대, 청대, 20세기의 등왕각의 변천사입니다. 보시다시피 건축의 모양새가 전혀 다르지요. 약간 변형이 아니라 그냥 다른 건축물입니다. 무엇보다 명대의 자세한 회화가 버젓이 있고, 청대의 회화가 너무나 선명함에도 그대로 지으려는 노력자체가 없었습니다. 재창조를 더 가치있게 보고 있기라도 한 듯 말이지요.

아마도 명대 이전 십수번의 재건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원형유지'의 가치라는 것 자체가 아예 없는 문화권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20세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양루
마지막으로 악양루(岳阳楼, 岳陽樓)는 중국 후난 성 웨양 시의 고적 웨양고성 서문의 북쪽에 위치한 누각으로, 아래 쪽으로는 둥팅 호가 보이며, 앞으로는 군산을 북쪽으로는 장강을 접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악양루

악양루는 삼국시대 동오의 명장 노숙이 군사적 목적으로 만든 누각입니다. 당시 오나라는 촉나라의 유비와 형주를 다투고 있었는데, 215년 노숙은 동정호의 파구(巴丘)에 주둔하며 수군을 훈련시키고, 파구성을 세우면서 열군루(閱軍樓)라는 망루를 지어 수군이 훈련하는 모습을 참관하는데 이것이 시초가 되지요.

716년 당나라 때 악주의 태수 장열(張說)이 이곳을 수리하여 다시 세우면서 악양루라고 이름을 고쳐짓고, 그때부터 문인재사들의 시를 읊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044년 송나라 때 등자경(藤子京)이 이곳 태수로 좌천되면서 퇴락해진 누각을 증수하게 되는데, 그때 범중엄을 초청하여 유명한 악양루기(岳陽樓記)를 짓게 됩니다. 

현재의 건물은 1880년 청나라 광서제 때 다시 중건한 것으로 누각의 높이는 20미터에 삼층 목조 건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 역시 현대적입니다. 중국에서 예전부터 시대별로 그 시대의 유형과 변형을 담아내는 것이 더 가치있는 것임을 보여준다는 것은 필자의 추정만이 아닙니다. 현재의 악양루의 1층에 가면 이러한 목조 미니어쳐들이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당대- 송대 등왕각을 모형으로 만들어 둔 건축전시물

당대 송대 원대 명대 청대등 시대별로 다른 모형을 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은 회화가 없어도 추정으로). '원형보존'보다도 '변형'을 가치있고 자연스럽다고 보는 흐름을 잘 볼 수 있는 현장이지요. 그리고 이는 서구근대화이전 어떤 시대라도 '목조건축 문화권'모두의 이야기였습니다.
========

일본의 금각사와 오사카성

흔히 우리가 일본의 오사카성을 폄훼하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오사카 성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더라, 그게 뭐냐? 장난하냐?" 네, 아마도 현재의 유네스코 강령(강령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영향력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는)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이런 시도를 했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입니다.

실외뿐 아니라 실내에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내부는 철근 콘크리트로 되어 있지요. 하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오사카성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중국의 황학루처럼 그 지역의 대표적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며, 세계적 관광지입니다.

1930년대 재건중인 오사카성 천수각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오사카성을 그린 그림은 이를 처음 세운 히데요시대의 회화가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변형에 변형을 거듭한 모습인 것입니다. 성의 색감도 기와도 재질도 모두 다릅니다. 뿐만 아니라 오사카 성의 성곽의 크기는 도요토미 시대의 4 분의 1 규모로 축소되었지만, 상징인 천수각은 그 높이도 총 바닥 면적도 도요토미 시대를 넘는 규모로 구축되었습니다.

히데요시대에 그려진 오사카성 회화 (大坂夏の陣図屏風, 1615년)


뿐만 아닙니다. 2000년대 들어 오스트리아 베르크 성에서 소장중이던 새롭게 발견된 오사카성 전경을 보면 천수각의 모습이 또 변형되어 있지요. 현재 연구중인데 소장자가 적어도 17세기후반에는 이 그림을 소유하게 된 것으로 파악, 최소 이 그림 역시 1600년대중반이전의 천수각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21세기에 발견된 오사카성도 중 천수각 모습 (규모가 훨씬 작아 보입니다. 색감도 또 다르지요)


이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금각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무로마치 막부 쇼군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미츠 (1358~1408년)가 14세기에 세운 건물입니다. 여러차례 재건을 거듭했지만, 1950년 정신이 이상한 승려의 방화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955년 재건되었지요. 그런데 이 모습이 전혀 다릅니다.


20세기초반의 금각사는 현재처럼 교토에서 가장 화려한 건축물이 아니었습니다. 금박도 없고 마치 동남아 죽루를 연상시키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가진 건축물이었지요.

1950년이전의 금각사



복원하면서 훨씬 화려하게 금칠을 두텁게 했으며 건물도 당시 (20세기중반) 현대식으로 더 직선이 강조됩니다 (2층은 없던 공간도 생깁니다). 전체적으로 수직적이고 미니멀리즘한 현대적 건축 요소가 섞이고 여러 세세한 부분도 더 화려함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형되었습니다.

현재의 금각사

하지만, 금각사의 이러한 모습은 교토의 자랑거리가 되었으며 현재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대표명소입니다. 
=======

마무리 

변하는 건축에 대한 새로운 철학흐름을 포착하고 있는 한국의 건축계 소장파 교수들이 계십니다. 예를 들어 2004년 연세대학교 교수이신 김성우교수는 [동서양 건축에서의 공간과 시간]에서 이런 주장을 합니다.

서양건축은 본질적으로 시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시간을 자신을 형성시키는 구조적 방법으로 취하려 하지 않는다. 시간상의 변화 자체를 건축적 가치로 노리는 일에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 


지금 우리는 형태와 공간의 문제를 건축에서의 핵심적 과제로서 받아들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건축과 학생들에서부터 건축가들 모두가 형태와 공간의 예술적 성취를 통한 자기표현을 건축적 이상으로 생각한다. 형태와 공간이 건축의 가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시간이 배제된 공간건축의 경우에서의 이야기이다. 거기에서는 형태와 공간 빼놓고는 자기표현의 방법이 없다. 우리는 동양의 건축이 서양에서와 같이 형태와 공간을 강조하거나 그들과 같은 방법으로 관심 갖지 않았던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동양의 눈으로 볼 때에는 서양의 공간중심적 경향이 편향적이고 한 쪽으로 치우친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그것을 유일하고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일상적이고도 자연스러운 시공간 경험에서 시간을 박탈하고 나면 공간 쪽으로 치우치고 공간적 현상을 강조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서양건축은 그러한 시공(時空) 불균형의 사례인 것이다.


신전이든 성당이든 왕궁이든 그 건축은 처음에 지어진 형태대로 영원히 존속되는 것이 지향된 가치이지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의 변화가 가치가 아니다. 그래서 서양건축의 보존에는 원형(原形)의 보존이 중요하고 원래적인 형태가 중요해진다. 이러한 경향역시 공간 중심적 건축의 특성이다. 현실적으로는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영원한 원형보존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되 그 불가능한 것을 염원해야하는 건축이 된다. 


그래서 서구세계의 건물의 보존에는 변화의 개념보다 원형의 개념이 중요하고 변화의 과정보다 본래의 형상이 중요해진다. 즉 “공간적 원형”만이 있고 “시간적과정”은 배제되는 것이다. 사람은 그 원형적 공간속에서 살되 그 삶이 불가피하게 시간적이라는사실은 무시되어야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다.


건축은 본래적으로 공간적 구성이라는 전제가 처음부터 깔려있고 그것이 전혀 의심되지 않는다. 이러한 건축은 시간이 배제되었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망각되어 있다.

===

20세기가 서구사회의 모든 가치를 '쫓는 것이 제1의 것이 되어야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이제 새로운 다양성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나마 우리 건축문화에 숨통을 틔워준 1994년 반포된 '나라문서'조차 깎아내리거나 견제하고, 유네스코의 60년대 만들어진 조항을 신주단지받들 듯 하는 한, 어떠한 새로운 흐름도, 우리문화권에 맞는 나라문서에서 더 발전된 우리문화권이 속한 세계에 잘 맞는 스탠다드의 창조도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동아시아, 아니 아시아전체를 살펴보아도 아마 가장 전통건축의 소실이 심했던 국가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맞는 질서와 과거를 최대한 재건하려는 모습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치 서구철학이 유일하고 불변한 '선'인듯 맹목적으로 유일한 가치로 삼는 일은 이제는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세기 중반이전의 우리"는 그런 가치를 '선'이나 '스탠더드'로 삼고 건축물들을 만든 적이 없습니다. 그런 건축물을 되살리는 데 있어, 어떤 스탠더드와 과정이 우리에게 적합하고 필요한지를 판단하고 우리문화권에 적합한 새로운 기준과 서구사회와의 협력에 주된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 이건 베니스강령에 맞다 아니다의 이분법으로 모든 시도와 프로젝트를 판가름하는 시각보다 훨씬 중요하고 필요한 21세기의 전통건축계의 작업이란 것이 필자의 일관된 졸견입니다.

=====
참고링크:
http://www.startour.pe.kr/local/china/china_infom_3%20tower.htm
http://hk.apple.nextmedia.com/realtime/china/20150103/53296200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ITsI&articleno=1396250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217606

덧글

  • 홍차도둑 2019/10/13 18:53 #

    글쎄요...
    그러기에는 파리의 '풍치지구'의 경우는 '외양은 건들면 안된다'는 부분이 있지만 속을 들어가보면 별별 현대식 기계들로 도배가 된지라...
  • 역사관심 2019/10/14 00:36 #

    좋은 지적이십니다. 네, 물론 그런 곳도 유럽에도 많지요. 다만, 전체적인 문화재에 대한 철학의 차이가 근세이전부터 이런 식으로 달랐던 것이 현재 유네스코의 조항들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것만은 사실같습니다. 따라서, 파리의 풍차들은 유네스코 문화재가 못되었지만, 내부역시 전통적인 모습을 가진 네덜란드의 Kinderdijk-Elshout 풍차들은 지정문화재가 되었지요. 또한 아마도 같은 이유로 황학루나 오사카성도 유네소크 지정문화재가 못되었을 것 같습니다.

    요는 '국내에서 유네스코문화재가 되느냐 못되느냐로 유적의 가치를 (즉 서구식으로 함몰되서) 전부 판단해버리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여전히 바뀐 황학루와 오사카성을 자부심있게 생각하고 수없이 가고 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해외에도 유명관광지가 되었으니까요. 유네스코의 조항에 안맞으니 복원말자식으로 마치 전가의 보도식으로 판단하는 국내학자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다른 식, 혹은 우리의 전통철학도 반영된 가치판단체계도 차분하게 살펴보고 세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네요.
  • 홍차도둑 2019/10/14 23:18 #

    ? 전 풍차에 대해서 이야기 한 적이 없는데요?
  • 역사관심 2019/10/15 00:14 #

    아 파리의 풍차지구라고 하셔서 파리에 있는 몽마르뜨 풍차등을 이야기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이야기라면 좀 더 정보를 주실 수 있을까요?
  • 홍차도둑 2019/10/15 00:25 #

    '풍치지구' 라고 썼습니다...머랄까...파리 시가지 중에 보면 겉모습은 절대로 변형 불가능한 거리들이 있거든요. 겉은 보기에 옛날 건물 그대로인데 속은 머 최신식 여러가지들이 다 들어차 있는 곳들이 많더라구요. 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겉은 그대로 냅두더라도 속은 현대식으로 바꾼 곳들이 많더군요
  • 홍차도둑 2019/10/15 00:25 #

    그걸 또 프랑스 정부에서도 OK했던 거.
  • 역사관심 2019/10/15 01:11 #

    눈에 치매가 온건지, 풍치를 풍차로 읽었네요 (아마도 제 머리에 몽마르뜨 풍차가 각인되어 있어서)...-_-; 풍치지구에 대해서도 유네스코 관련정보등 한번 알아봐야겠군요.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제비실 2019/10/14 18:46 #

    일본 오사카성의 회화 자료가 히데요시대에 그려진 것이라는데 그 회화 자료에 작성 연대에 관한 기록 내용이 있나요?

    그리고 현재의 오사카성과 고자료의 오사카성을 비교하면 현재의 오사카성은 벽면들이 하얀색인데 당시의 오사카성의 벽면들은 검은색으로 그려져 것을 고려하면 당대 오사카성의 외부 벽면들은 지금과는 달리 재질이 목재였을 것 같은데

    그리고 오사카성 지붕 배치도에서 고전 회화와 현재의 실물 사진을 비교해서 보면 현재
    오사카성의 하단 지붕중에 상위의 처마 지붕을 올라가서 덮는 것이 있는 반면
    고전 회화 자료에 그런 모양이 없는 점을 보면 후대 복원에서 복잡하게 표현한것 같지요
  • 역사관심 2019/10/15 03:25 #

    네, 그 그림은 1615년에 그려진 것으로 위에 다시 표기를 해 두었습니다. 벽면이 목재였는지는 확인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말씀대로 많은 변형이 있었던 것은 일본인들도 알고 있더군요.
  • 밥과술 2019/10/16 00:59 #

    재미있게 읽고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19/10/16 04:23 #

    감사합니다, 밥과 술님. 어떤 포스팅엔 댓글안달고 비로인으로 읽어도 항상 군침나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
  • 응가 2019/10/17 12:37 #

    한국에 오랜 풍치를 가진 지역이 얼마나 있을까요.(그나마 개성한옥들이 살아남은게 다행입니다;;) 유네스코에서 권고하는 사항이 복원보다는 유적의 보존에 중점을 두는지라 거대궁정건축이나 사찰의 경우에는 힘들다고 하더군요.
  • 역사관심 2019/10/20 00:23 #

    오랜만입니다 응가님, 동감입니다! 개성한옥들은 진짜 제대로 연구하면 좋을텐데.... 제 블로그에서만 이 이야기를 10년째 하고 있으니... 저쪽 정신나간 정권이 사라지지 않는한 그냥 요원한 일장춘몽같습니다.
  • 나인테일 2019/11/01 17:58 #

    유럽의 경직된 도시정책으로 시가지가 통째로 골동품이 되어버린 지역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이 유물을 위한 부속으로 존재하는 것인지 도시가 사람의 효용을 위한 도구로 존재하는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이긴 했습니다. 원형 그대로라는건 가능하지도 않고 때가 되면 오히려 사람의 삶을 억누르기만 할 뿐이라고 봅니다. 고작 수백년 만에 이 모양이 됐는데 앞으로 수천년을 아무 생각 없이 이대로만 외친다는건 어불성설이겠죠.결국 출구전략이 필요한데 그럴려면 누군가가 앞장서서 욕을 먹어야 하는 원리주의적인 분위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역사관심 2019/11/02 07:32 #

    감사합니다, 나인테일님. 유럽사람들의 철학이고, 또한 그들의 삶의 방식이니 거기에 뭐라고 할 마음은 사실 없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이 여건상 '꽤 그래도 가능한 곳'이기도 하고. 다만, 모든 것이 유로중심의 잣대로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가장 함몰되어) 그것만이 유일선인것처럼 생각하고 맞지도 않는 옷까지 억지로 끼워 맞추는 패러다임에서 이제는 벗어날 시점이라 생각하게 되네요...
  • 쿠사누스 2019/12/31 14:19 #

    까마구둥지님 글을 읽고나니까 20년마다 건물을 새로 짓는 식년천궁 의식을 하는 일본의 이세 신궁이 떠오르네요. 목조건축의 수명이 짧기 때문에 그런 의식으로 고착화된 게 아닌가싶기도 하고.....,아무튼 전통 복원이라는 것이 바나나와 망고 과일이 올라가는 오늘날의 제사상(?)처럼 국적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소재와 최첨단의 기술로 최대한의 여력을 동원해서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 됩니다.
  • 역사관심 2020/01/02 11:49 #

    우리에 비해서 중일은 훨씬 자체적으로 철학을 세우고 접근하고 있는 느낌이 강합니다. 유네스코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설득해가면서 잘 해나가고 있지요. 세상은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것인데 항상 갖혀있으면 도태되는게 자연의 섭리 같습니다...어느 분야건 사람이건...
  • 여리여리한 북극여우 2020/05/19 19:06 #

    오스트리아의 저곳은 타슈탈트가 아니고 할슈타트(Hallstatt)입니다~
  • 역사관심 2020/05/20 02:58 #

    윽, 그렇네요. 왜 이걸 타슈탈트라고 읽었지;; 감사합니다!
  • 한라온 2020/06/14 16:13 #

    석조와 목조의 차이도 어느 정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통건축의 대부분이 석조인 서양과는 달리 동아시아 전통건축은 절대다수가 목조이니까요. 그리고 목조는 석조보다 비교적 쉽게 변형되고 손상되어 주기적으로 보수관리를 해 주어야 하니......
    그러나 개인적으로 오사카성이나 황학루와 같이 엘레베이터를 설치하는 건 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변형의 경우는 당장 생각나는 예시가 없는데, 복원에 있어서는 경복궁 흥복전 정도가 적당하다고 봅니다.
  • 역사관심 2020/11/12 06:07 #

    뒤늦게 한라온 님의 댓글을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고견 감사드립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2019 대표이글루_음악

2018 대표이글루_history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2014 대표이글루

마우스오른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