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池옆의 팔각의 99칸 빌딩, 신비한 종덕사(宗德寺)사진 한국의 사라진 건축

종덕사는 6년전 글인 [백두산 설화- 天池 종덕사 설화 그리고 기원]에서 다루고 잊고 지냈는데, 블로그 이웃이신 우용곡님께서 새로운 일제시대 사진을 발굴, 감사하게도 알려주셔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이 특이한 건축물은 10년전인 2009년 백두산천지 종덕사의 오랜 사진에 대한 짧은 기사로 접한 적이 있지요. 다음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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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잡지, 백두산천지 종덕사 옛사진 공개
2009.09.23

북한의 월간화보 ‘조선’이 1906년 백두산 천지 호반에 세워졌던 사찰인 종덕사의 옛 사진을 공개했다.

이 화보는 9월호에서 “종덕사의 건물들은 모두 나무로 지었는데 방이 무려 99칸이나 됐다”며 “제일 가운데에 내당이 있고 그 둘레로 8칸, 16칸, 32칸, 즉 2배씩 늘어나게 3중 8각형식으로 배치된 방들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잡지는 이 사찰의 건립 배경에 대해 “일제의 침략책동이 악랄해지고 나라와 민족의 생존이 우려되자 조선 사람들은 백두산 천지호반에 종덕사 절간을 건설하고 천출위인이 출현하게 해줄 것을 옥황상제에게 기도 드리곤 했다”며 “남에게 은덕이 될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종덕이라는 말을 붙여 종덕사라고 지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종덕사는 그러나 “해방 전 조선 민족의 넋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방해 책동으로 보존관리를 하지 못해 점차 파괴되고 지금은 절간 건물자리만 있다”고 화보는 덧붙였다./연합
원문링크- https://bit.ly/2XbT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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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보를 보면 나무 건물로 방이 99칸인데, 가운데 내당이 있고, 팔각형의 방이 8, 16, 32칸으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배수의 칸수죠. 즉, 팔각 건물안에 56칸의 수많은 방이 존재하게 됩니다.

이 구조를 상상만 했지 제대로 눈으로 볼 길이 없었는데, 다음의 며칠전 국내옥션에 나온 일제시대 사진첩에 나오는 종덕사의 설계도와 사진덕에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보니 이미 팔리고 사라졌군요. 다시한번 우용곡님께 감사드립니다).

우선 천지의 사진.

아쉬운 점은 정확한 년도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래, 아주 중요한 실측도입니다. 가운데 내당이 있고, 역시 기록대로 세 줄의 팔각괘 형태의 칸이 늘어서 있는데, 가운데는 한 면이 1칸, 두번째는 2칸, 그리고 세번째는 4칸으로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총 8, 16, 32칸). 척 봐도 매우 '상징성이 강한' 건축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옥황상제에게 기도하는 건물이었다고 되어 있어, 도교와 관련있는 건축물일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사진으로 실제 전경이 보이는 사진입니다. 하얗게 보이는 건물입니다.
정말로 물가에 위치해 있는데 (범람하면 그대로 잠길 판), 정말 특이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 천지의 북쪽 물줄기 바로 입구지요.
마지막으로 확대한 사진입니다. 국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사찰(? 혹은 도교신전)임을 단박에 알 수 있지요. 저런 팔각형태의 구조는 고구려의 팔각목탑들 흔적에서밖에 본 일이 없는 듯 합니다 (지난달 계성리사지에서 국내최초로 '육각형 형태의 법당'이 나오긴 했습니다만).
윗글에서 소개한 종덕사에 대한 설화 중 일부를 보면 그 내부구조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습니다. 1979년 2월에 구술자 "박삼룡"이 말한 내용으로, 수집지점은 안도현 영경향이라고 되어 있군요.

백두산 종덕사

종덕사의 옛터는 천활봉기슭의 평평한 바위 위에 있다. 절의 모양이 8각형으로 되었다하여 이 절을 8괘묘라고도 불렀다. 종덕사의 면적은 200평방미터 남짓하고 벽은 세겹으로 되었었다. 안에는 여덟 개의 방석돌이 놓여 있었고 복판에는 두 개의 목괘가 세워져 있었다. 북쪽켠에는 침실이  따로 있었는데 침실에다는 온돌을 놓았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종덕사에는 문이 도합 99개였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문을 낸데는 이런 원인이 있다고들 한다. 백두산이라는 백(白)자는 백이라는 백(百)자에서 건너 금(一)을 던진 것으로서 백에서 하나를 던지면 아흔아홉이 되는 것이다. 이  아흔아홉이라는 수자는 백두산에 있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의 합과 같다고 한다. 이  아흔아홉을 상징하는 백(白)자는 흰 백자이므로 이것은 또한 사시장철 흰 눈이 쌓여있는 백두산의 풍모를 나타낸다고들 한다. 이러한 연고로 하여 백두산 종덕사의  문을 아흔아홉 개를 내었다고 한다.  (주: 사실여부를 떠나 일단 이 설화에 나오는 원 종덕사는 일제시대에 팔괘묘로 지은 종덕사의 규모는 아닌 듯 합니다. 글앞부분의 99칸설이 99문과 혼동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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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내용을 보면, 여덟개의 방석돌 (넓은 돌)이 있었고, 가운데 내당에는 두개의 목괘 (뭔가 도교적인 물건)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는군요. 북쪽 칸에는 온돌침실들이 있었다고...

종덕사는 아직 연구가 거의 진행된 바 없는 미스터리한 사찰입니다. 누가 언제 세웠고 유래는 어떻게 되는지 아무것도 확인된 것이 없지요. 이런 사진과 설계도를 보니 더욱더 상상력이 발동되는 매력있는 건축물같습니다.



덧글

  • 無碍子 2019/11/13 16:59 #

    얼핏 보기에는 중국 땅 같아 보이는데 거기가 한국 땅이긴 한 겁니까?
  • 역사관심 2019/11/13 20:55 #

    천활봉 부근이므로 현재는 중국같습니다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확실한건 당시 조선인들이 세운 조선사찰이란 것이 더 중요한 점이라 생각합니다.
  • 김대중협정 개정 2019/11/13 20:56 #

    성스러운 분화구호에 인공의 건축물을 세웠다는 게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군요. 20여년 전에 저 건물을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무산된 걸로 압니다. 그리고 천지의 물은 송화강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송화강 유역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는 곳이죠.
  • 역사관심 2019/11/13 20:59 #

    그렇게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팔각형태의 배수구조 건축물이자 상징성을 가진 건축이란 점에서 흥미롭군요.
  • 응가 2019/11/14 14:33 #

    송화강으로 빠져나가는 달문쪽이라면 지금 중국쪽으로 생각이 됩니다. 대신 분단이전 한국이 주장하던 백두산 천지의 국경선을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로도 해석이 가능할것같습니다.
  • 역사관심 2019/11/15 02:52 #

    네, 지금 중국쪽인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은 저도 얼핏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 제비실 2019/11/14 21:36 #

    종덕사의 층수 높이에 관한 자료 내용은 없나요 사진을 보니까 팔각형과 회랑형을 포함한 건물이 단층형으로 낮게 나오는 것 같은데 말이지요 저런 단층형 건물에 99칸 방이 있을수가 있을지는 미지수이지요 혹 종덕사 지하에 건물 구조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종덕사의 건물 사진을 보면 건물 수가 3동이나 나오는 것 같아서 3채씩의 단층형 건물에 99칸이 있을지를 오리무중이겠지요
  • 역사관심 2019/11/15 02:52 #

    층수에 관한 자료는 없네요. 다만, 99칸이란건 중앙건물외에 회랑형 사각건물을 모두 포함하는 사찰전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 한라온 2020/06/14 20:55 #

    흠...달문이라면 현재는 중국 영토인데......
    저런 곳에 건물을 세웠다니 굉장히 흥미로워지는군요.
    경치 하나는 일품이었을 듯합니다. 바로 앞에 비룡폭포(장백폭포)와 권곡, 장엄한 장백계곡이 펼쳐지고 뒤로는 천지가 놓여 있으니 영락없이 도교의 성지로서는 안성맞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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