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일의 출입국관리직원 말이 과장되 보이시죠? (92년의 한국의 문화경직성) 음악

필자가 작년부터 갈무리해둔 묵혀둔 글과 주제가 '양준일'이라는 임자를 만나 마무리를 지을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이미 핫했지만 지난 주 슈가맨 시즌 3 2화에 드디어 그 모습을 보이면서 완전히 열풍조짐을 보이고 있는 92년의 댄스가수 양준일이라는 가수가 있지요. 

그가 당시 한국의 대중음악계의 경직된 분위기를 슈가맨에서 말한 것이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어쓴다고 바른 언어생활에 반한다고 방송정지, 이상한 댄스한다고 돌을 던지던 대학로 분위기등. 

그런데 사실 1992년이란 해는 그래도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터닝포인트의 깃발격인 뮤지션이 탄생한 해였죠. 아마 모르면 몰라도 양준일은 한 두해만 더 후에 데뷔했으면 많이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90~92년 (그러니까 난 알아요 이전)의 가요계는 무언가 더 경직된 사회분위기였던 80년대와는 구분짓는 무브먼트가 꿈틀댔음에도 (신승훈, 이승환, 윤상등의 데뷔) 아직 발라드 위주였고 80년대와는 정서적으로 연결이 가능한 시대였습니다.

1991년 8월에 데뷔했으니 본격적인 활동시기는 바로 1992년이었죠. 이 92년이란 시대, 흔히 신세대가 이미 발견된 해로 보는 이 해, 한국의 대중음악계의 경직성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바로 아래 내용이 필자가 작년 옛날 신문을 뒤지다 발견하고 묵혀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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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에 종종 기사로 반추되는 90년대 문화부흥기의 모습

2013년 [‘신인류’가 꽃피운 90년대 대중음악 르네상스] 라는 기사에서는 90년대 대중음악계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습니다.

동아기획과 하나음악으로 대표되던 ‘언더그라운드’의 적자들인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조규찬. 이들은 80년대 말 들국화, 어떤날, 유재하가 이룩해낸 유산을 이어받아 제도권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했다. 신해철, 공일오비(015B), 전람회처럼 가수이면서 음악감독이었던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100만장 가수’였던 신승훈, 김건모, 이승환, 그리고 새로운 세대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서태지와 아이들(사진)과 듀스가 공히 아이돌 스타이기 이전에 스스로의 음악에 전권을 갖는 ‘작가’였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90년대는 가요계를 장악한 아이돌 댄스 음악의 위세 속에서도 이런 작가군의 음악이 동시대의 모든 대중에게 부담 없이 받아들여져 장르적 균형을 이룬 사실상 유일한 시기였다.

한편 유재하의 등장에 자극을 받은 고전음악 작곡과 출신들의 가요계 대거 유입은 대중가요의 미학을 근본적으로 바꾼 계기가 됐다. 신재홍, 김형석, 유희열 등은 클래식과 재즈에서 익힌 세련된 화성 운용과 작곡법을 앞세워 선배들이 미처 성취하지 못했던 현대적 한국 팝을 만들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시에 서태지, 윤상, 공일오비 등 이른바 ‘신세대’ 뮤지션들이 정통적인 작곡법에서 벗어나 컴퓨터를 활용한 전자음악에 탐닉하며 표현 지경을 넓히기도 했다. 흔히 ‘뽕끼’를 극복했다고 평가받는 90년대식 한국 팝은 외국 음악만 듣고 자란 이들에게도 즉각적 공감을 얻어냈고, 촌스럽다고만 생각되던 가요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게 만든 계기가 됐다.

최근 이 드라마를 통해 90년대 음악을 새롭게 알게 된 지금의 10대와 20대 청취자들이 그 시절 노래들에서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년 전 곡을 리메이크한 성시경의 ‘너에게’(서태지와 아이들), 하이니의 ‘가질 수 없는 너’(뱅크), 김예림의 ‘행복한 나를’(에코)의 성공은 90년대 음악이 가진 ‘현대성’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90년대 음악의 모든 순간이 늘 아름답기만 했다고는 말할 순 없다. 세련미에 대한 경쟁적 추종 속에 민중가요는 위축됐고 포크와 헤비메탈의 설 자리도 좁아졌다. 댄스 위주의 가요계를 우려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촌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응사>의 캐릭터들처럼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아직은 남아 있던 90년대의 음악들, 무엇보다 지금 대중들에게도 매력적으로 전달되는 그 시절 가요의 세련된 감수성과 정서적 ‘호환성’은 당시 음악들이 단순한 복고를 넘어 현재화된 대중음악으로 앞으로도 꾸준히 호출되리라 기대하게 만드는 이유다. <응사>가 소환해낸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 그 새로운 물결의 작은 역사는 이렇게 뜻밖의 방식으로 새롭게 쓰여지는 중이다. 
김영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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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 김영대선생은 90년대 가요계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모두 사실이에요.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마지막 굵은 체 문장 말이지요 "댄스위주의 가요계를 우려하는 기성세대의 목소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부분, 단연코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려하는 목소리가 별로 없었냐구요?

아니요, '댄스위주의 가요계'를 우려하는 정도가 아닌 훨씬 더한 경직성을 가진 것이 신세대보다 윗세대분들의 당대 고정관념수준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럼 바로 양준일의 활동년도인 1992년에 쓰여진 아래 기사를 봐주세요.

예나 지금이나 어찌나 청소년들을 귀히 여기는지...

이 기사는 1992년 5월 28일 경향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제목이 뭐라구요? 네, "대중가요 노랫말 지나치게 감상적"이란 겁니다. 잘못 들으신게 아네요. "지나치게 선정적"이 아닙니다. 

지나치게 감상적

이란 겁니다.

내용을 보기 쉽게 아래버젼으로 실었습니다. 한번 읽어 볼까요?
이 기사에서 "까고 있는 가수들"은 당대 댄스가수조차 아닌 발라드 가수들 (신승훈, 박정운, 이범학, 변진섭, 강수지)등입니다. 그들의 가사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당시 청소년들 (그러니까 X-세대)에게 "공허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막연한 감정에 머물게"하니까 안 좋다는 것입니다 (뭔 *소리인지...)

그러면서 차가운 현실을 노래한 김민기식의 포크송이나 동심을 강조한 한돌(누군지 모르지만)등이 수준을 지켰다고 말하는군요. 마지막으로 92년 현재의 가요계는 당시 신세대라 불리던 10대취향으로 흐르면서 수준이 낮아진 것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할 말이 없는 수준이죠. 바로 이런 기사가 공공연히 한달에 몇차례씩 실리던 것이 90년대초까지의 우리 한국사회의 문화계였습니다. 상상이상이에요. 예전에 소개한 다음 만화계에 관한 글과 같이 보시면 더 절절히 와닿을 겁니다.


홍콩과 일본등의 자유분방한 앞서가던 대중문화계의 최전성기인 80년대 바로 이웃이면서도 비교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경직된 분위기를 90년대 소위 X-세대라 불리던 당시 주역들이 깨부수고, 90년대말 K-pop의 태동과 함께 21세기 들어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문화의 생산국이 된 것은 기적적이라 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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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아마 요즘 세대분들은 양준일이 겪은 에피소드인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난 너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 내가 있는 한 넌 결코 비자연장을 할 수 없다"라고 한 말이 과장되었거나, 혹은 기억왜곡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의 기억은 절대로 그 기억 그대로였다고 생각합니다.

<양준일 편을 못보신 분들을 위해>



덧글

  • 타마 2019/12/13 10:03 #

    음악이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이란 말도 가끔 봤는데...
    실상은 전혀 허락하지 않았던 거군요 ㅎㅎ
    한국 예능계 문화가 세계화 되었으니 망정이지, 고만고만 했더라면 만만하다고 여전히 저런 짓을 했을 겁니다. (요즘 게임 문화 탄압하는 것을 보면, 게임문화는 아직 만만한 것 같습니다. 만화같은 경우도 웹툰이나 살아남았지 도서쪽은 거의 씨를 말려버렸고...)
  • 역사관심 2019/12/18 10:29 #

    허락이라... 80년대에는 더 했습니다. 90년대에는 정말 많이 좋아졌죠 -_-;
    성리학 영향인것인지 확실치는 않지만 대중문화 깔고 보는 나쁜 습관...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 로그온티어 2019/12/13 11:55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나치게 감상적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명문이군요.
  • 역사관심 2019/12/18 10:29 #

    눈을 의심...
  • 존다리안 2019/12/13 12:10 #

    저러니 근래 한국 문화가 어딘지 모르게 진짜 “공허
    ”한 면이 있는 거지요. ㅜㅜ 감상을 빼면 문화에 뭐가 남는데....ㅜㅜ
  • 역사관심 2019/12/18 10:30 #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 글 쓴 분은 어떤 음악을 들으시는 건지...온통 민중가요, 포크만 들으실듯.
  • 도연초 2019/12/13 12:17 #

    정작 판소리(경기민요)를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이박사가 저런 정서의 가장 큰 피해자가 아닐까 싶네요.(정작 이박사 본인은 일본에서 대박침)
  • 역사관심 2019/12/18 10:30 #

    위에서도 썼는데 대중문화 한수 깔고 보는 습관, 사회적으로 빨리 버릴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12/13 12:35 #

    한돌은 터, 개똥벌레 등 당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민중가요 성격의 노래를 만드신 분이긴 합니다. 소향이 부르고 평창올림픽에서 쓰여 화제가 됐던 홀로아리랑도 만드셨고요.
  • 역사관심 2019/12/18 10:31 #

    아 그렇군요. 저는 그 세대가 아닌지라 모르던 분인데 정보 감사드립니다.
  • 꾀죄죄한 하프물범 2019/12/19 20:51 #

    그나저나 김민기씨를 탄압했던 독재정권이 대중가요를 검열하던 논리를 체화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를 높이 평가하는 게 참 웃프네요..
  • 역사관심 2019/12/19 23:57 #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그런 일은 세상 곳곳에서 (특히 시장논리로) 일어나긴 합니다만... 씁쓸할 뿐이죠.
  • 데스나이트 2019/12/13 14:25 #

    도대체 음악과 만화 같은 것이 아니면 도대체 뭘로 인생의 순간순간을 즐기라고 한 걸까요? 음악은 멸공의 횃불이라도 듣고 심심할 땐 타짜처럼 화투 치면서 손모가지 날ㄹ...아니 너무 거칠어졌군요.이런 문화계에 대한 탄압이 21세기에 와서 웹툰에도 시도되었던 걸 봐서 이제 대중성, 상업성이 인정되었을 뿐 전혀 변함없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많이 사라졌어도 아직 개발할 수 있는 컨텐츠는 무한한데 왜 그걸 못 없애서 안달인지들 어후...그리고 저 기사는 어이없네요. 음악이 감성이 빠지면 뭐가 되나요. 민요도 감정 실어서 부르는데.
  • 역사관심 2019/12/18 10:31 #

    본인들이 허락한 도락만 즐기라는 거죠... 참으로 답답한 시대였다 생각합니다.
  • 홍차도둑 2019/12/13 14:59 #

    만화에 대한 인식이라...

    이번 도쿄 올림픽 축구 공인구가 "츠바사" 입니다.

    그거 연관되서 만화와 엮은 대한민국의 언론기사는 아직까지 못봤습니다
  • 역사관심 2019/12/18 10:50 #

    관심이 없으니까요. 또 유치하게 볼 뿐...
  • 제비실 2019/12/13 19:41 #

    음악을 폭넓게 체험하지 못한 보수적인 문화주의자들은 이런 폐쇄적인 시각으로 음악의 다양성을 인정못하고 정서에 안좋다 퇴폐적이다 이런 자극적인 폄하 용어들로 원색 비난하는 것이지요 이런 보수적 평론가들이 지배하는 문화 담론으로 인해 한국은 90년대까지만 해도 문화 후진국으로 갈수밖에 없었지요 양준일 사건때도 그렇고 공정하게 일해야할 출입국 직원이 그런 막말에 가까운 인신 공격적 언사를 교양 없이 하고 정신적 충격을 버젖이 안기는 불친절하고 자격 미달에 가까운 행태를 보면 그 당시 한국사회는 천박 그 자체라고 강하게 얘기할수밖에 없네요
  • 제비실 2019/12/13 19:46 #

    유신 시절에 대표적인 문화적 억압 사례들인 미니스커트나 장발 같은 패션 헤어 스타일은 퇴폐적이다라고 폄하하여 단속 금지를 촉발사킨 억압적인 문화시스템이 90년대까지 이어져서 양준일은 이런 기형적인 폐쇄적인 문화시스템의 피해자였죠

    유신시절에도 가요를 심의하는 문화 때문에 가사가 맘에 들지 않으면 금지곡으로 정하는등
    폐쇄적인 문화 통제는 현재까지 이어져서 한류에 큰 독으로 작용할수가 있죠
  • 역사관심 2019/12/18 10:51 #

    그나마 서태지시대이후 사회분위기도 매년 놀랍게 풀려나가면서 케이팝 시대가 되긴 했네요. 하지만, 아직도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시선이 있는지라... 빨리 없애면 합니다.
  • 쿠사누스 2019/12/14 06:47 #

    '꼴통(꼰대) 총량의 법칙'이라고 제가 발견(?)한 법칙이 있는데, 어느 시대나 꼴통이 일정비율씩 존재하게 마련이고, 다만 그 꼴통들이 권력을 잡느냐, 아니면 못잡느냐에 따라서 각 시대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전체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꼴통들이 권력을 잡는 순간이 조선시대부터 서서히 많아진다 싶더니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말 다양한 꼴통들의 전성시대인 것같습니다.
    찬란한 성리학 꼴통들의 뒤를 이어 일제 군국파시즘 유신 꼴통들부터 시작해서 개신교 꼴통들, 뉴라이트 꼴통들, 586 주사파 꼴통들, 게다가 최근에는 급진적 페미니즘 꼴통까지 다양하게 꼴통들의 백화제방, 백화쟁명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으니, 그 덕분에 시민들과 창작자들은 표현의 자유와 행복추구의 자유를 거진 뭐 이슬람 국가의 국민들과 비슷할 정도로 누리고(?) 있는 것같습니다.

    양준일 씨의 92년이나 며칠 후의 2020년이나 문화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이 거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것이 슬프고, 한국의 좌파와 우파 모두 국가주의와 보수주의를 강력하게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도 참 슬픕니다.
    돌아가신 마광수 교수를 90년대 초반(양준일과 거의 동일한 시대에) 당시 혹독하게 비판하였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박노해 시인였다는 점에서, 또 그 박노해 시인을 정경심 교수가 코스프레하듯이 인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거의 패기있는 청년들이 실은 알고보니 오늘의 또 하나의 꼰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 서글픔을 느끼네요.
  • 역사관심 2019/12/18 10:52 #

    총량의 법칙이라 ㅎㅎㅎ 21세기하고도 10년이 지났는데 슬픈 이야기입니다. 점점 나아져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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