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익이 거울에서 본 귀신 (그리고 한국사상 초창기 유리거울의 시대상) 설화 야담 지괴류

성호 이익(李瀷, 1681~1764년) 선생은 어느 날 거울에서 귀신을 보게 됩니다.

다음은 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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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사설 제4권 / 만물문(萬物門) 中 망량(罔兩)

[장자(莊子)]에, 망량이 그림자[影]에게 묻는 말이 있는데, 그 주에, “망량이란 것은 그림자 옆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운이다.” 하였다. 
내가 일찍이 햇빛에서 징험해 보니, 두 물건에 그림자가 있어 그 두 그림자가 점점 가까워져서 서로 맞닿기 전에 희미하게 보이는 기운이 먼저 모이게 되는바, 그림자 외에 희미한 기운이 분명히 있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예전에 유리 거울을 벽에 걸어 놓고 얼굴을 비쳐 보았더니, 그림자가 먼저 거울 속에 나타났다. 좌우로 살펴보니, 그림자 외에 또 보이는 얼굴이 있었는데, 그는 귀와 눈이 먼저 나타난 그림자보다 훨씬 더 컸으니, 몽수(蒙叟)의 말이 과연 틀림이 없었다.
莊子有㒺兩問影之語註謂㒺兩是影旁蒙矓氣甞驗之日中兩物有影推兩影漸近未及相接先有蒙矓氣来合始知影外分明有微氣在也又甞以琉璃鏡向壁照顔先有影當中左右尋索則影外又有面在其耳目之大比前影甚大蒙叟之言果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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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았더니 자신의 얼굴(그림자)외에 귀와 눈이 본인 얼굴보다 더 큰 귀신이 좌우에 보였다는 것이지요. 이 부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만 제 지식으로는 좀 힘드네요;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 글에서 그는 "유리 거울"이란 단어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원문이 이렇죠
琉璃鏡 (유리 유,  유리 리, 거울 경)

즉, 이 때 그가 본 거울은 요즘 우리가 보는 거울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란 것이지요. 그럼 실제로 이 당시 (즉 1700년대초중반)에 조선에 유리거울이 있었을까요?

넷상의 정보를 보면 "1766년" 중국을 방문한 한 역관이 러시아 무역상들에게 유리거울을 구입해 조선에 퍼지게 되었다는 설이 꽤 퍼져 있더군요. 그런데 성호 이익선생의 사망년도는 2년전인 1764년. 이 글이 씌여진 시점은 그로부터도 더 전대인 1700년대 초였을 겁니다. 이 기록을 보면 18세기초엽에도 생각보다 알음알음으로 지식층에는 중국에서 유리거울이 전파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저서가 있으니 최근에 나온 (2016)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 안경, 망원경, 자명종으로 살펴보는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입니다. 여기 보면 정확히 언제 '유리거울'이 조선에 수입되는지 더 자세한 정보가 나오지요. 다음입니다.


그럼 성호선생이 본 이 거울은 북경출신일까요? 그보다는 '일본수입품'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여기보면 성호이익이 '일본의 유리거울'에 대한 고평가를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지요. 따라서 위의 '기담' 역시 성호선생이 이런 평가를 할 수 있게 된 '구체적인 경험담'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조선에 처음 유리거울이 들어왔을 당시 인기는 대단해서 양반들 사이에서 뇌물로 쓰일 정도가 됩니다. 어쩌면 저 '기담'은 조선시대 후기가 되서야 청동경이 아닌 '선명한 자신의 모습을 최초로 볼 수 있게 된' '유리거울'의 위력을 보여주는 미시사적으로 중요한 초창기 기록이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즉 고대문헌인 [장자]에 나오는 망량귀신에 대한 설에 대한 18세기당대로서는 신문물인 '유리거울'을 통한 나름의 과학적 검증기록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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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사실 이익선생은 귀신설이란 이론을 설파할 정도로 유불선 중 도교적 관심도 많았던 분이었습니다. 그가 설명한 "귀신의 성격"을 볼까요?

귀라는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각이 있고, 사람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지 할수 있다. 또한 귀는 본래 기氣이기 때문에 어디 든지 들어갈수가 있다. 목석도 통과할수 있으며 신출귀몰하고 변화무쌍해서 물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개인적인 계획을 알아낼수 있다. 귀신은 사람을 현혹하는데 흥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곧잘 상상도 못할 일을 벌여 사람을 속이는 수가 많다.

당唐 영창永昌 송宋의 경원중慶元中.山移산이에게 이상한 일이생겼는데 이것도 역시귀의 소행이었다. 생각건대 모든 만물의 이동은 반드시 기氣의 흐름에 달려있다. 산도 대기大氣가 아니면움직일 수가 없다.귀신만이 이 일을 해낼 수 있다. 귀력鬼力도 대소가 있고 인력의 유한함과는 다르다 귀의 형形이 백척 산과 같은 자가 있어 혼자서 산을 능히 움직일 수가 있다. 귀는 때때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을 해낼 수가 있다.


이런 분이기에 자신이 처음으로 경험한 투명하고 선명한 '유리' 거울에서 귀신을 보신 게 아닐까 하는...


 


덧글

  • 남중생 2020/01/09 21:22 #

    흥미롭네요. 유리거울이라는 신기술이 등장함에 따라, 반드시 과학적인 사고만 증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귀신론도 발전하는 것이겠지요.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홍대용이 악라사관의 특산물로 유리거울과 함께 언급하는 "쥐가죽"은 아마 맘모스 가죽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ㅎㅎ (http://dylanzhai.egloos.com/3403006)
  • 역사관심 2020/01/11 08:06 #

    동감입니다. 오랜만에 적륜님 글도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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