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테리! 수원궁궐도 (水原宮闕圖, 1796년 (추정)) 한국의 사라진 건축

고려대학교 박물관에는 흥미로운 그림이 한 점 있습니다. 바로 다음의 작품입니다.

수원궁궐도 (고려대박물관, 1796~1800년) 345×207. 水原宮闕圖 


현재 이 작품에 대한 가장 상세한 설명을 일단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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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수원궁궐도 水原宮闕圖>라는 제목으로 전해오는 건물도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과연 어느 지역의 건물을 그린 것인지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있게 결론짓지 못하고 있다. 화면 어디에도 단서가 될만한 묵서가 없고, 화성(華城)의 모습은 『화성성역의궤 華城城役儀軌』와 『원행을묘정리의궤 園幸乙卯整理儀軌』의 그림과 기록을 통해 그 규모나 형세가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그림과는 너무 동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건물의 구조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건물간의 연결이 합리적이지 못하고 중간 중간에 단절되는 등 이 그림은 한 장소의 건축물을 그대로 옮겨 그린 것이 아니라 작은 건물군 여러 개를 적당하게 조합하였음이 드러난다. 이것이 하나의 궁궐이나 행궁(行宮) 건축이라면 분명히 중심이 되는 전殿(혹은 당堂)이 존재하고 그에 부수되는 건물들이 전통적인 궁궐배치법에 의해 체계적으로 세워져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 몇몇 건물과 장식은 매우 중국적인 냄새가 짙어 `실제로 조선에 존재하였던 건물일까`하는 의구심도 든다. 더구나 지나치게 담과 행각이 많은 건물 구성도 현실감을 떨어뜨린다. 19세기에는 궁궐의 전체 모습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전개한 궁궐도나 관아도(官衙圖)가 큰 규모로 제작되었다. 따라서 이 그림은 당시<동궐도東闕圖>나 <서궐도안西闕圖案>이 그려지던 시대 배경 아래 누군가가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하나의 장대한 건물도를 시도 해본 것이 아닐까 한다.

평행사선구도를 사용하여 부감된 건물은 윤곽선에 담채하는 방식으로 묘사되었고 배경의 산은 부드러운 피마준과 점묘로 처리되었는데 수지법은 이의양(李義養)(1760-?)과 관계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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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명은 한양대 동아시아 건축역사 연구실의 것으로 지금부터 14년전인 2006년에 작성된 글입니다. 논문은 아니고 그냥 게시판에 올라온 짤막한 글이지요. 하지만, 그 전후로도 어떤 연구자나 전문가도 이 회화작품에 대해 심층깊은 분석을 한 바 없습니다. 즉, 그냥 18세기에 누군가 낙서처럼 한 그림으로 치부해 버리는 느낌이지요.

하지만 필자는 이 그림이 꽤나 흥미롭습니다. 우선 촘촘히 연결된 행랑구조가 그것입니다.
보시다시피 이 궁궐도에 나오는 행랑들은 거의 전부 연결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수준이지요.
이 모습은 (예전에 소개한) 마치 현재 미국에 보관중인 조선전기인 1576년, 바로 평안도 영변 약산 동대(藥山 東臺)의 경관을 표현한 [선전료우중회관서도(宣傳僚友重會關西圖)]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건축군과 흡사한 묘사이지요. 아래 그림입니다.
선전료우중회관서도(宣傳僚友重會關西圖, 1576)

참고로 이 선전료우중회관서도가 발견된 해는 2009년, 즉 위의 수원궁궐도를 설명한 2005년 한양대 연구실측 글보다 더 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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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중층건물의 묘사

이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한양대측에서는 중국풍이라고 간단히 말하고 넘어간 건축양식입니다. 필자의 졸견으로는 그저 그렇게 치부할 양식은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층건물을 묘사한 부분은 꽤나 흥미로운데 현대 2층한옥의 양식처럼 보이는 건축물들이 보입니다.

아래 나오는 건물은 마치 석어당 같죠.
아래 건축물은 화질때문에 확실치는 않지만 마치 십자각같은 느낌입니다. 

오래전 다룬 고려시대의 대건축물 [한국의 사라진 대건축물(9)- 최우의 십자각과 최충헌의 십자각]이 어쩌면 저런 형식의 건축물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아래는 또다른 2층건물들로 이들 역시 조선초기 지어져서 현재까지 이어지는 "오대산사고"와 비슷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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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조선건축가의 인식?

개인적으로 이 [수원궁궐도]에 나오는 이층건축물이 흥미로운 까닭은 이것입니다. 

이 그림을 그린 이가 '상상도'로 완전히 그렸다하더라도 이 그림들은 '조선인'이 자신의 인식적 한계/경험 속에서 그린 건축이란 것이지요. 중국풍이 부분적으로 섞여있을지언정 이미 많은 풍속화나 진경화가 판치던 19세기에 그린 그림이라면 그저 중국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지금처럼 관심을 뚝 끊어버릴 부분은 아닌것이 아닐까 하는 점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아래의 중요한 (필자가 보기에) 부분입니다.  거대한 2층저택 혹은 2층누각으로 보이는 건축물입니다.
좀 더 깨끗한 화질로 확대해서 보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 그림... 어디선가 꽤 낯이 익습니다. 언젠가 CG로 본적이....

황룡사 중금당

네, 바로 21세기 들어서 보여주고 있는 경주 대사찰 황룡사의 고대 중금당(가장 큰 건축물)입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닮아있지요. 비록 1층은 수원궁궐도쪽은 뚫려있지만, 그 외의 부분 (건축의 색감까지도)은 정말 빼닮았습니다.

그럼 아래 그래픽을 만든 분이 저 수원궁궐도를 참고해서 황룡사 중금당을 구현한 것일까요? 필자는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원궁궐도라는 작품자체가 그다지 알려진 것도, 그리고 현재까지는 어떤 특별한 관심조차 (일부에게도) 받은 적이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황룡사 중금당 그래픽을 만든 분은 당시 건축물에 대한 연구자료와 당대 이웃국들의 건축을 참조해서 구현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저 19세기의 상상도로 추정되는 수원궁궐도에 나오는 저 중층건축물들은 저 한양대의 짤막한 '중국풍'에 그치는 것이 아닌, 어쩌면 1800년대 조선인의 인식적 구조속에 자리한 '한국식 중층건축물'들에 대한 묘사는 아닐까요?

워낙에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어 이 정도밖에 파고들 수 없어 아쉽지만, 추후 더 보충할 것이 있다면 해보고 싶은 주제입니다.


덧글

  • 응가 2020/04/15 13:51 #

    수원궁궐이라해서 정말 수원행궁인줄 알았습니다.
    마지막 전각은 돌기둥위에다 중층일지 이층일지 모르겠지만 소실전 경회루같은 느낌이 듭니다. 중층건물 2동이 나란히 있는 곳은 용마루위에 무언가 올린듯 한데 더 궁금하네요.
    한성부를 제외한 경기도에도 총 12곳의 행궁이 있었다니 그중 한곳일까요? 행궁이라기 보다는 딱 봐도 거의 한양의 궁궐만큼이나 규모와 전각이 복잡해 보이네요...
    대신 실제 궁궐이 중심이 되는 전각이 있는데 이 그림에서는 중심이 되는 전각이 어떤 전각인지 참 애매하기도 하고 규모가 작은건물들만 있는다는 점에서 상상화로 봐야된다는 의견도 있는것 같네요.
    선전료우중회관서도 에서 등장하는 건물군은 왠지 영변행궁이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 봅니다.

    사족으로 동궐도나 이런 대형건축군이 그려진 큰 그림은 좀 상세한 사진이 인터넷상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 역사관심 2020/04/16 08:00 #

    응가님, 건강하시죠.
    말씀대로 온갖 상상을 다 하게 만드는 그림인데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없어 아쉽습니다. 상상화라 할지라도 건축이 그려진 회화, 특히 중층건축이 이렇게 그려져 있는 조선회화는 거의 없는데 부분적으로라도 건질게 있다면 건지려는 노력이 좀 있으면 좋겠네요...

    예전에도 연변행궁설을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 응가 2020/04/16 20:32 #

    창덕궁, 덕수궁 대화재만 발생하지 않았어도 오래된 중층건물들이 여럿있었을텐데 말이죠.
    소실전 덕수궁 중화전과 석어당, 창덕궁 징광루만 있었어도 얼마나 조선건축을, 나아가 한국건축물을 풍부하게 해 주었겠습니까. 이 미스테리한 수원궁궐도를 이해하는데도 적지않은 도움을 주었을테고요.(하지만 이렇게 적다보니 경복궁엔 왜 중층이나 각 층에 기와를 올린 2층이상의 건물이 없는지 궁금하네요.)

    그나저나 선전료우중회관서도에서도 자세히 보니 어느정도 중심이 되는 전각이 어떤 전각인지 구분이 되네요.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4/15 21:03 #

    제 생각에는 실존하였던 수원행궁일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그 이유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수원행궁이 이 그림속 행궁일 가능성이 있을것으로 보이고 현종실록부터 숙종실록까지의 기록상에는 정조 이전에 존재하였던 수원행궁에 대하여 어느정도 위치를 추정할수 있는 글이 나옵니다.
    그 글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현종개수실록 13권, 현종 6년 4월 19일 을해 1번째기사 1665년 청 강희(康熙) 4년
    -----
    수원 행궁에서 병조 판서 등을 인견하고 진을 칠 곳에 대해 의논하다
    ----
    상이 수원 행궁에 있었다. 병조 판서 홍중보, 어영 대장 유혁연, 총융사 구인기를 인견하고 상이 묻기를,
    "앞으로 가다가 어느 곳에 진을 칠 만한가?"
    하니, 중보가 아뢰기를,

    * "여기서 10리쯤 떨어진 곳에 산성(山城)이 있고 산성을 지나면 평야가 나오는데 도로가 조금 넓기는 합니다마는 좌우에 모두 백성의 전답이 있습니다." *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들로 하여금 길에 열을 지어 서게 하되, 곡식을 밟지 않게 하라."
    하였다. 장선징이 아뢰기를,
    "어제는 대신들이 하교를 듣고 외작문(外作門) 밖으로 나가 있었는데 대신들이 밖에 나가 있는 것이 미안할 뿐만 아니라 또 병부(兵符)를 지니고 있으니 멀리 있어서는 안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비록 늦은 밤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상의할 일이 있을 터이니 그들을 내작문(內作門) 밖에 들어와 있도록 하라."
    하였다.

    여기서 나오는 행궁의 모습에는 임시행궁과는 다른,건물들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는모습과 산성이 있고 외작문,내작문이 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선전료우중회관서도]에서 나오는 건물들은 영변행궁으로 보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와 광해군이 분조를 한 곳이니 추후에 역사관광지가 되어도 좋을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알려지지 않은 행궁들이 많다보니 하나하나 찾아보며 발굴하거나 연구해보는것도 좋을것같습니다!


  • 역사관심 2020/04/16 08:02 #

    나름 건축에 관심이 있는 편인데 이런 기록은 전혀 몰랐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당시 수원행궁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기록이 있으면 좋겠네요...
  • 제비실 2020/04/16 13:24 #

    한국의 건축사학계는 고건축물을 인용하는 사고 관점이 너무 협소하고 폐쇄적이어서 수원 궁궐도 같은 자료에 나온 궁궐 그림이 조선풍이지 못하고 중국풍이고 실제 궁궐 의궤와 다르다고 하여 조선 당대에 실존하지 않은 건축 상상화로 치부하는 것을 보면 이들 학자들은 폐쇄적인 국수주의적 문화관에 지나치게 매몰된게 아닌지 문제이지요 특히 조선후기 건축 양식을 전통적인 한옥의 전체 모습이라는 기존의 한옥 시각이 여기에 배로 추가되어

    조선풍이 아니라서 조선 당대에 실존하지 않은 건물로 단정하는 것도
    다양성이 실종된 학문적 빈곤성을 낳게 하지요

    문화사는 다양성에 기반하여 연구해야 하는데 수원 궁궐도를 상상화로
    치부하는 학자들은 이런 다양한 문화 사고관을 제대로 갖춘 것인지 의심될수밖에 없지요

    아무리 중국풍이라고 조선사람들이 그런 양식에 모방하여 건물을 지을 가능성을
    왜 한국 건축학자들은 육하원칙적 비판 검증없이 단편적인 선입견으로
    그 실존 가능성을 부정하려고 하는지 문제이지요

    비유적으로 얘기하면 한국 도깨비는 뿔이 없고 뿔이 있는 도깨비 이미지는
    일제가 만든 것이다라는 팔 자르기적 행태와 유사하지요
    수원 궁궐도에 대한 평가 의미를 보면 말이지요
  • 응가 2020/04/16 20:23 #

    하지만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치 태평성시도를 보고 이게 그 당시 조선의 번화한 모습이라 할 수 있는지? 와 같은 부분이죠.
    수원궁궐도가 물론 그 화풍이 동궐도, 서궐도와 유사하긴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동궐도, 서궐도에서는 어떤 건축물이 중심이 되며 외조와 내조가 구분이 뚜렷합니다.
    하지만 수원궁궐도는 보시면 알겠지만 그냥 몇개의 대형건축물만 그려져있을 뿐 그 외는 단편적인 구조의 행각만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떤 건축물이 중심이 되는 전각이되는지 파악이 가능하신가요?
    더군다나 더욱 의심이 되는것은 중심전각이 없다 치더라도 궐 내,외를 구분하는 담조차 애매하게 그려져 있으며 드나드는 정문도 없습니다.
    화성행궁, 남한산성행궁, 풍경궁에는 높게 지은 정문이 있고 하다못해 운현궁과 옛 안동별궁도 솟을대문은 있습니다.

    물론 흥미로운 그림인것은 분명하거니와 실존가능성이 0%라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렇게 믿고싶다고 믿어버리면 무슨의미가 있겠습니까. 조선풍이 아니라서 상상화다, 이 말은 동감합니다. 조선풍이란게 어떤것인지 원.....그렇게 치면 금강산 장안사는 중국풍이려나 봅니다.
  • 역사관심 2020/04/17 13:51 #

    두 분 모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모두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조심스럽되 열린자세가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4/18 15:39 #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 이 그림을 그린 분은 궁궐을 실재로 보았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로는 그림에 중간 하단부와 오른쪽 상단부(작은 산 아래) 에 ''취병''이 보이는데 '취병'은 관리가 까다롭고 매우 사치스러운 담중 하나이기 때문에 왕실에서만 썼던 담입니다.
    즉 이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실재 궁궐을 갔다왔고 동궐도와 비슷한 양식의 그림을 그릴 줄 알것이라는 추정을 해봅니다.

    아마 실존하였다면 화성행궁조차 설치하지 못한 ''취병''을 설치한 유일한 행궁이겠지요.

  • 역사관심 2020/04/19 02:52 #

    좋은 단서입니다. 말씀대로 당시라면 일반인은 궁궐내부는 가보지도 못했을 시대인데, 취병이 있다면 말씀대로 직접 눈으로 궁궐을 본 사람이란 추정이 가능하겠습니다. 이런 세부적인 연구가 정말 아쉽네요. 감사합니다.
  • 응가 2020/04/19 13:13 #

    사실 취병은 사대부가에서도 설치하였습니다...임원경제지와 산림경제에서도 취병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설명한 바 있고 시각적 자료로는 옥호정에도 취병이 설치되어 있으며( 옥호정도: https://www.museum.go.kr/relic_image/PS01001001/jng000/2019/0926105017223/700/jng009355-000-90000.jpg)
    김홍도 행려풍속도에서도 후원에 취병을 설치한 그림이 있습니다.(김홍도 행려풍속도: https://i.pinimg.com/originals/25/cf/48/25cf4854959f8613f67c5f5bb1bab823.jpg)
    하지만 역시 궁궐까진 아니더라도 이 그림을 그렸던 인물이 사대부의 후원까지 드나들었던 위치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4/19 13:59 #

    오! 응가님 덕분에 새로운 정보를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 역사관심 2020/04/20 02:34 #

    오 그렇군요. 저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더러운 이누이트 2021/02/06 21:56 #

    황룡사 중금당이 저렇게 복원설계된 이유는, 기단 밖에 주초가 한바퀴 둘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주초들은 직경이 기단 위의 주초들보다 월등히 작았기에, 이에 대한 해석을 저렇게 한 것 입니다. 사실 삼국시대 혹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지에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목구조를 대입하면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문화재연구소에서 중국 남부지방 소수민족 전통건축 구조에 대해서 수년간 현장 조사를 한 것이기도 하고요.
  • 역사관심 2021/02/11 05:22 #

    그렇군요. 확실히 동아시아 3국의 중세이전 건축은 서로 교차비교연구가 절실한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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