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중기 금강산에 살았던 푸른털 괴수 (16세기) 설화 야담 지괴류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에는 이런 기이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우야담>

한유(韓愈)의 시에 “습지 기슭에 푸른 깃털이 떨어져 있네.”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비취 새의 날개가 아니라 어산(魚山, 중국에 있는 산)속에 살고 있는 기이한 짐승의 털을 말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심산거악(深山巨岳)이 많다. 깊은 산속에 사는 승려들은 푸른 털이 높은 나무 위에 걸려 있는 것을 많이 보는데, 그 털은 길이도 몇 자가 된다고 했다. 이것은 커다란 짐승이 등이 가려워 나무에 대고 어깨와 등을 비비면서 갈기랑 수염이 붙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유몽인이 금강산에 살고 있는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초봄에 새싹이 돋을 때 진흙에 푸른 풀이 묻은 발자국이 생겨 있는데, 그 크기가 우리나라의 포백척(布帛尺)으로 계산해서 한자 반을 넘었습니다. 지름은 길이가 비슷한데 앞뒤가 약간 뾰족한 모양이었습니다. 그 짐승의 털 빛깔은 푸르고 길이는 말 꼬리만 하며 굵기는 가는 새끼줄 같습니다. 짐승들이 이빨로 나무껍질을 벗겨낼 때 그 털이 빠져 나무허리 위에 걸쳐있게 되는데, 키가 큰 사람이 발돋움하여 도끼자루로 그것을 끌어당기려고 해도 높아서 닿지가 않았습니다. 산 속에서 살며 늙어간 중도 그 형체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 그것이 어떤 짐승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정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 금강산 푸른털의 괴수라니... 문맥을 보면 원래 조선의 산들에 푸른털의 짐승들이 있었는데, 이중 금강산의 한 승려에게 직접 그가 목격한 괴수의 생김새를 듣게 됩니다. 그에 따르면 이 짐승의 발자국은 포백척으로 한자 반. 포백척은 46.703센티미터이니 발자국길이만 약 70cm가 넘는 셈입니다. 꼬리 역시 말꼬리만큼 길지만, 굵기는 새끼줄처럼 가는 징그러운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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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담이 여기서 그쳐도 흥미롭겠습니다.

런데, 이와 ‘교차검증'이 가능한 기이한 이야기가 한 점 더 있습니다. 바로 아래의 이야기.

 

임하필기 봉래비서(蓬萊秘書)

금강산(金剛山)의 유래/고사 중

 

금강산 속에 어떤 사람이 솔잎만 먹으면서 살고 있었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솔잎을 먹은 끝에 몸이 가벼워 공중으로 오가고 온몸에는 푸른 털이 났다. 승려가 땔나무를 하고 나물을 캘 때 흔히 만나보게 된다고 한다.


금강산에는 또 이상한 짐승이 있는데 / 此山有異獸

호랑이도 아니고 시랑이도 아닌 것이 / 非虎非豺狼

우람한 몸집은 산처럼 커다랗고 / 雄形大如山

성난 눈초리는 거울처럼 빛난다오 / 怒眸若鏡光

수시로 큰 나무에다 몸을 문지르면 / 有時磨大木

그 푸른 털은 백 척 높이에 걸린다네 / 翠毛掛百尺

발자국은 수레바퀴처럼 넓어 / 足迹廣如輪

진정 범상한 짐승 종류가 아니리 / 諒非凡獸匹

그대는 어찌 이 짐승을 보지 않고 / 君胡不見此

두려움에 떨듯이 피해 가려 하는고 / 避去如畏怯

금강산 속에는 이 시에서 소개하는 것과 같은 어떤 짐승이 있다 한다.

 

흥미롭게도 장소도 금강산에 푸른 털의 괴수, 또한 큰 나무위에 털을 남기는 것하며 무엇보다 '금강산의 승려들이 목격'한다는 것까지 일치하는 기록이지요. 또한 원래는 이 괴수가 사람이었는데 오랜 세월 솔잎을 먹다가 몸이 가벼워지고 이런 괴수가 된다는 이야기.


이유원(李裕元,1814∼1888년)의 [임하필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위의 [임하필기]의 작가인 유몽인(柳夢寅, 1559~1623년)과는 시대차가 납니다만, 이 챕터의 제목은 “금상산의 유래와 ‘고사’”로 즉 금강산지역에 내려오는 당시로서도 ‘오래된 이야기’를 수록한 것이므로 이 지역의 오래된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여기서 그치느냐..... 놀랍게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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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빼도박도 못하게 임하필기와 정확히 동시대인 16세기후반에 또 다른 푸른 털 기록이 있습니다. 바로 허균(許筠 1569~ 1618년)의 [성소부부고]에 등장하는 소설인 [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의 중간에 등장하는  ‘푸른털화’되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중간발췌:

나는 상락(上洛 상주(尙州)의 옛 이름)의 큰 성씨(姓氏)의 후손으로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증손자였네. 송(宋) 나라 희령(2년(1069,고려 문종23)에 태어났네. 열네 살에나병[風癩]에 걸려부모가 거두어 주지를 않고 숲속에 버렸네. 밤에 호랑이가 안아다가 석실(石室)에 놓아 주고는눈에 불을 켜고 두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그 곁에 있는 나를 끝내 해치려 하지 않더군. 통증이 한창극도에 달하여 호랑이의 어금니에 물려 속히 죽지 못하는 것만이 한스럽더군.


초라(草羅)라는 풀이 벼랑의 구멍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잎이 넓고 뿌리가 크더군. 시험삼아 씻어서 먹었더니 뱃속이 조금 채워졌네. 그걸 먹으며 몇 개월이 지나자 부스럼이 줄어지고 점점 혼자서 일어섰었네. 그리하여 많이 캐다가 끼니마다그걸 먹었었네. 산 중턱의 것을 거의 전부를 캐 먹으며 몇백 일을 지내자 부스럼이 다 벗겨지고 온몸에 푸른 털이 돋아나기에 기뻐하며 실컷 먹었더니 또 1백 일이 지나자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 산의 정상에 올라가지더군. 이미 나병은나았으나 옛날의 마을을 판별하지 못하여 길에 나와서도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네.


뜻밖에 중 한 사람이 산봉우리 아래로 지나가고 있어그곳으로 찾아가 길을 막으며 묻기를 ‘이곳은 어떤 산입니까?’ 했더니 중이 ‘이건 태백산(太白山)이요, 지역은진주부(眞珠府)의 소속입니다.’ 하더군. 그래서 근방에 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중은 ‘서쪽 봉우리에 절이 있으나 길이 단절되어 쉽게 올라갈수 없을 것이오.’ 하였네. 나는 곧 날아서 그 암자에 이르렀더니 선방(禪房)은 낮에도 문이 닫히고 사람이라곤 없더군. 손으로 곁 채의 문을 열고 들어가 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가보았더니, 늙고 병든 중 한 사람이 굵은 베옷을 두르고탁자에 기대어 숨차하며 거의 죽어가는 모습이었네.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간밤의 꿈에 노인이 말하기를 「우리 스승님 비결서(祕訣書)를 전할 사람이 지금 오고 있다.」고 하더니, 그대의 얼굴을 보니 진정 그 사람이군.’ 하면서, 일어나 보자기를 풀어 한 뭉치의 책을 꺼내서 주었네. 그리고는 ‘이걸 만 번 읽으면 그의미를 저절로 알 것이니 노력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게나.’ 하였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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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이 남궁선생의 실제모델이 남궁두(南宮斗) (1526∼?년)이라는 실존인물로 정확히 유몽인(柳夢寅, 1559년~1623년)과 동시대의 인물이란 점입니다. 앞의 이야기에선 '솔잎'을 여기선 '초라'라는 정체불명의 풀을 먹고 푸른털이 나고 몸이 가벼워져 깊은 산을 넘나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똑같지요.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태백산’에 머물렀던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 임하필기의 이야기가 금강산이긴 하지만, 이 두 산은 ‘태백산맥’으로 이어져있지요. 아무튼 16세기의 금강산 괴수로 소개하면 매우 좋을 녀석같습니다.




덧글

  • 람룡藍龍 2020/06/03 09:24 #

    크립티드인 중국의 블루 타이거를 연상시키네요. 흥미롭습니다
  • 역사관심 2020/06/04 06:22 #

    오 중국에 그런 녀석이 있었군요. ㅎㅎㅎ
  • 제비실 2020/06/08 21:37 #

    제시된 조선시대의 푸른털 괴수 그림의 작성 연도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저 푸른털 괴수 그림이 언제 작성된 것인지요
  • 역사관심 2020/06/09 01:02 #

    저도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 해치인건 확실한데 그림의 확실한 출처정보는 찾기가 힘드네요...
  • 소심한 돌고래 2020/08/17 10:33 #

    생각해보면 산에 얽힌 재미있는 전설이나 설화가 참 많군요. 금정산, 계룡산, 백두산, 관악산, 두류산, 한라산, 금강산...한반도는 특히 산이 많다보니 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특색을 잘 살려서 언젠가 금강산 괴수도 2차 창작물에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 역사관심 2020/08/17 12:54 #

    그렇죠... 지금도 깜깜한 밤에 산에 가면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그 옛날엔 상상도 안갑니다 ㅎㅎ. 금강산 괴수는 그 산의 유명세에 더해 더 알려질 만한 녀석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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