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차는 외국에서 온 차일까요? 음식전통마

유자차(柚子茶)는 우리가 흔히 여름이고 가을이고 마시는 차입니다. 하지만, 그 유래를 아는 이는 드뭅니다. 사실 유자의 이국적인 생김새나 열대과일같은 느낌의 새콤달달한 맛 때문에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전래차로 착각하기가 쉽지요.

그럼 유자차는 많은 다른 차종처럼 외래전래 차일까요?

정답은 이것이야말로 한국고유의 전통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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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의 문헌기록은 최소 700년 이상

유자의 원산지는 중국의 양쯔강 상류입니다. 사실 한반도에서 유자가 언제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구전으로는 신라 문성왕 2년(840년)에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돌아올때 유자를 가져오다 풍랑을 만나 남해에 안착하면서, 도포 자락 속에 있던 유자가 깨져 씨앗이 전파되었다는 카더라 정보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자는 최소 700년 이상 우리 조상들이 즐겨오신 전통과일입니다. 그 최초의 기록은 무려 조선 극초기인 태종대입니다.

태조 1년 임신(1392) 10월 12일(경신)
부세의 경감과, 검소한 생활을 강조한 공부 상정 도감의 상서문

신 등이 삼가 예전 전적(田籍)을 상고하여 토지의 물산(物産)을 분변하여, 공부의 등급을 마련해서 전의 액수를 적당히 감하여 일정한 법으로 정하고, 그 철따라 나는 물건[時物]으로써 일정한 공부가 될 수 없는 것은 일정한 공부의 외에 열록(列錄)하고, 이를 명칭하여 별공(別貢)이라 했으니, 귤(橘)과 유자(柚子)의 유와 같은 것이 이것입니다.如橘柚之類是已

1392년 태종실록을 보면 이미 '귤과 유자' (橘柚)를 구별하고 있으며 '수입품'이 아니라 나라에 재배해서 바치는 진상품 목록으로 이야기하고 있지요. 세종대에는 제주 뿐 아니라 강화도에도 유자를 심어야 한다고 상소가 올라가고 그대로 시행합니다.

세종 10년 무신(1428) 12월 9일(병술)
국가의 수용에 감당할 과목 심기를 상림원에서 건의하다
상림원(上林園)에서 계하기를,
"......또 강화부(江華府)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 있어 수기(水氣)가 모인 곳으로 초목의 성장이 다른 곳보다 나은 편이오니, 청하옵건대 감자(柑子)ㆍ유자(柚子)ㆍ석류(石榴)ㆍ모과(木瓜) 등의 각종 과목을 재배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또한 17세기 인조대에는 제주도에서 유자를 제때 올리지 않아서 썩어버렸다고 질타하는 장면이 승정원일기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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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유자차는?

유자나무는 이렇게 오래되었다 치고, 오늘의 주인공인 '유자차'는 그럼 언제 최초로 보일까요? 

유중임 (柳重臨 , 1705~1771년)이 편찬한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에는 당대 즐겨 마시는 각종 '차'를 제조하는 방법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중 '유자차'가 등장합니다.

증보산림경제 (增補山林經濟)중:
다탕류(茶湯諸品)
기국차(杞菊茶法)
구기차(枸杞茶法)
온조탕(溫棗湯法)
수지탕(水芝湯法)
행락탕(杏酪湯法)
봉수탕(鳳髓湯法)
청천백석차(淸泉白石茶)
매화차(梅花茶法)
국화차(菊花茶法)
유자차(柚子茶法)
포도차(葡萄茶法)
산사차(山査茶法)
강죽차(薑竹茶法)
강귤차(薑橘茶法)
당귀차(當歸茶法)
순채차(蓴茶法)
형개차(荊芥茶法)
차조기차(紫蘇茶法)
녹두차(菉豆茶法)
매실차(梅子茶法)

현대 한국 '차 마켓'에서 쌍두마차인 '매실차'도 이미 보이네요 (매실차는 18세기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도 발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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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유자차'를 마시는 장면은 아직 못찾았습니다만, '유자'를 즐기는 우리 조상의 모습은 두 가지 케이스에서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그중 매우 흥미로운 장면이 이익(李瀷, 1681〜1783년)은 [성호전집(星湖全集)]에 나옵니다.

성호전집 제5권 / 시(詩) 
홍사량이 당유자를 보내 준 것에 사례하다〔謝洪士良寄唐柚子〕

신선 사는 영주산에 오색구름이 깃들고 / 瀛洲仙子五雲棲
들쭉날쭉 기수 가지엔 열매가 늘어졌네 / 琪樹參差結子低
땅이 기른 노란 유자 주렁주렁 달렸는데 / 土養眞黃交錯落
가득 담긴 영액이 유리그릇에 어리누나 / 椀盛靈液暎玻瓈

참으로 상쾌한 풍미는 마음을 사로잡고 / 十分爽味關情得
천리에 이름난 향기는 두 손 가득 잡아끄네 / 千里名香滿握携
벗이 보낸 청리첩이 참으로 고마워라 / 多謝故人靑李帖
유자를 함께 싸서 손수 봉해 보냈구려 / 厥苞相伴手封題

동시대인인 홍유한(洪儒漢, 1726~1785년)으로, 그가 보낸 유자선물을 받고 감격에 차 시를 지은 것인데... 흥미로운 구절이 등장하니 다음의 부분입니다.

椀盛靈液暎玻瓈 가득 담긴 영액이 유리그릇에 어리누나

즉, 유리그릇에 유자'액'(즙)이 담긴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유자액은 '유자차'를 만드는 원료이지요. 따라서 어쩌면 이 기록은 유자차를 요즘처럼 즐긴 기록일 가능성도 있다고 보입니다.
다음으로는 훨씬 전대의 인물인 16세기 후기 이응희 (李應禧, 1579∼1651년)의 [옥담사집]에 나오는 유자의 모습입니다.

옥담사집 
두환이 유자 두 개를 보내준 데 답례로 부치다[答寄斗煥來送柚子二箇]

네 하인이 창 앞에 이르러 / 爾僕窓前到
꼭꼭 여민 물건을 바치기에 / 堅糊物有呈
펼쳐 보니 두 개의 유자라 / 開看兩箇柚
멀리 부쳐 보낸 정성을 알았네 / 知得遠封誠

형상과 색깔은 노란 금덩이요 / 形色黃金塊
향기롭고 달기는 흰 꿀일세 / 薰甘白蜜精
속을 갈라서 다 먹고 나니 / 刳中餤旣盡
묵은 병이 나은 듯하구나 / 偏覺舊痾平

유자를 선물받아 갈라 먹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보면 유자를 요즘처럼 흔하게 먹은 것은 절대 아니고, 귀한 선물로 한때 별미로 즐기셨던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유자차"도 최소 300년~400년 된 우리의 진짜배기 '전통차'임을 알고 즐기면 더 좋지 않을까 싶어 나눕니다 (자매품 매실차도...).



덧글

  • 냥이 2020/07/29 16:06 #

    제주도에서 유자를 키웠고(지금은 제주에 흔적도 없는데...) 포도차도 있있었다라니...

    P.S-전통음식 알리기 좋은 곳은 한국-외국을 다니는 항공기내에서 항공사잡지나 AVOD, 조그만 메뉴판+간식으로 알리기인데...
  • 역사관심 2020/07/30 06:09 #

    이런 기록들을 잘 활용해서 말씀대로 항공사 잡지등에도 실으면 좋겠네요.
  • 無碍子 2020/07/31 18:18 #

    유자차를 마신 사람의 실명과 함께 유자차를 먹은 장소가 특정된 기록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영조시대 쯤에 조선에서 유리그릇에 유자차를 담아 먹었다는 기록은 신뢰할 필요가 없습니다.
  • shaind 2020/09/25 00:02 #

    성호전집이라고 써 있고, 이익의 문집은 당연히 이익이 살던 시대 또는 그 직후에 수집된 게 맞죠.

    그리고 영조시대면 사람들이 안경을 쓰고 다니고, 서양 천리경과 서양 유리거울이 청나라에서 들어오던 시대이기 때문에 유리 그릇이 등장해도 이상할 건 없습니다. 조선이 유리를 만들 기술이 없다는 말이 조선에 유리그릇이 없다는 근거는 안 되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려(玻瓈)는 반드시 유리라고 해석할 필요는 없습니다. 수정도 파려라고 하니까요. 그리고 수정은 영조대에도 이미 안경재료로 널리 채굴된 물건입니다.
  • 無碍子 2020/09/25 19:10 #

    시적인 표현이죠.

    직접 소리를 들어보고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라거나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라는 글을 쓰지는 않을거로 봅니다.
    유리그릇도 마찬가지로 봅니다. 해서 그 그릇을 사용한 사람이 특정되었는가를 말한 것입니다.
  • 제비실 2020/08/04 19:00 #

    유자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역시 있네요 그리고 대추차도 조선시대에 존재했을 것 같은데 대추가 조선시대에 일반적인 열매로 많이 사용된 것을 보면 대추차도 존재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기록이 없어서 단정하기가 불가능하겠지만
  • 역사관심 2020/08/05 07:43 #

    딱 한가지 기록이 있더군요.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실린 기록입니다.
    大棗茶(대추차)食。 亦用此柿茶食例。
  • BigTrain 2020/08/05 13:41 #

    '새댁 요코짱의 한국살이'라는 책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유자차를 보냈더니 "이걸 어떻게 먹는 거지???" 고민을 거듭하다 "알았다! 유자잼이야!"라고 판단하고 빵에다 발라먹더라는 이야기가 실려있었습니다.

    최소한 일본에서 온 물건은 아니라는 걸 그걸 보고 알았죠.
  • 역사관심 2020/08/06 01:23 #

    ㅎㅎㅎ 맞아요 저도 그 편 봤었습니다^^
  • 응가 2020/08/13 20:57 #

    저때 당시 유자가 어마어마하게 귀한 과일이라서 지금의 유자청과는 8쪽을 내서 달리 속을 꺼내서 씨를 제거해 썰어다가 그 귀한 설탕과 밤채, 대추채, 석류알, 석이채, 배채 등등 비싼 식재료를 넣어 꿀에 재운 어마어마하게 귀한 음청류였습니다.(여덟명이 모이지 않으면 유자청을 꺼내지 않았다고 해요.)
    의궤를 보면 금잔,은잔은 물론이고 마노잔, 백옥잔 같은 게 나오는데, 귀한 음식이다 보니 그런데다 담아서 즐기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의외로 일본에서는 유자가 많이 나지만 한국/조선처럼 즐기지는 않았던 모양이더라고요.
  • 역사관심 2020/08/14 04:19 #

    저 시들만 봐도 응가님 말씀 그대로였던 것 같습니다. 마노잔에 담긴 유자... 요즘처럼 흔한 시대와 달리 더 귀한 맛이 났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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