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았다면 국보- 전설의 유점사 53佛 컬러사진 공개 역사


1919년 촬영사진

당시 글에서 이 조각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를 설명했지요. 아래 발췌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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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찰에 배치한 이 장엄한 불교조각의 기원은 유점사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바로 고려시대 민지(1248~1326년)라는 승려가 쓴 [금강산유점사사적기]에 씌여 있는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금강산유점사사적기
인도의 문수보살이 53불상을 쇠종 속에 넣고 배에 띄워 보냈는데, 그것이 월지국을 거쳐 900여 년 만인 남해왕 원년에야 금강산 동쪽 안창현 포구(현 강원 고성군 간성)에 표착했다. 53불이 금강산에 터를 잡고 절을 지으려 하자 아홉 마리의 용이 방해했다. 용은 천둥과 번개를 일으켜 큰 비를 내리게 했고, 53불은 느릅나무에 올라가 연못의 물을 끓게 하여 용을 내쫓았다. 결국 용들이 거처를 옮긴 곳은 구룡연(九龍淵)이 되었고, 느릅나무(楡)가 있던 터에 세워진 절은 유점사(楡岾寺)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 창건설화에 따라 '느릅나무'형상의 가지를 묘사하고 그 사이사이에 53구의 부처형상을 조각해 넣은 것이 이 장엄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1912년 이래 여러 차례 조사되었는데 당시 조사에 따르면 53개의 불상의 조성시기가 다른데, 가장 많은 것이 통일신라시대(남북국시대)의 것이고, 그 다음이 고려시대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통일신라대의 것들도 시차가 다른 양식이 보이는 통시적인 문화적 양식의 종합예술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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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통일신라시대의 목조조각...현존하고 있다면 당연히 국보에 들 작품으로, 이런 식의 미학을 보여주는 고대-중세 현전 목조문화재는 단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기에 다 타버린 이 작품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할 수 있다면 복원이라도 하면...하는 생각이 들곤 했지요. 그러나 남아있는 저 사진은 '흑백'인지라 그것도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어제~

고지식한 북극여우님"의 제보로 2020 올해 이번달 (9월), 컬러사진이 현전하며 소개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그 불교신문기사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 13년(서기 4년)에 창건됐다는 설화를 간직한 금강산 유점사를 대표하는 53불(佛)의 모습을 담은 칼라 사진이 공개됐다.

군산 동국사가 공개한 53불 칼라사진은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것으로, 본지가 지난 2009년 2월(2503호) 보도한 흑백사진과 달리 선명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의 위치나 좌대방석(천)의 모습도 다르다. 사진 왼쪽에는 일본어, 아래쪽에는 영어로 ‘조선 내금강 유점사 53불’이라는 제목과 함께 간단한 설명이 인쇄되어 있다.

고려시대 전중시사(殿中侍史)와 수정승(守政丞) 등을 지낸 민지(閔漬, 1248~1326)가 지은 기문(記文)에는 “부처님이 열반한 후 인도 사위성의 사람들이 금으로 53불상을 조성해 유연국토(有緣國土)에 갈 것을 발원하며 배워 태워 띄어 보냈는데, 월지국(月支國)을 거쳐 안창현(安昌縣, 강원도 고성)에 도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한 조각임이 여기서 보입니다. 확대해보면 그 정교함을 더 잘 알 수 있지요.
위 기사에 나오는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흑백사진은 1919년의 것입니다. 기사에는 컬러사진이 일제시대의 것으로만 되어 있어 더 뒤의 것인지 전의 것인지 알 길이 없군요. 1910년대에 찍힌 이 사진의 또 다른 버젼을 보면 이 조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습니다.
모쪼록 누군가 이 조각을 재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정말 직접 눈으로 보고 싶네요.


덧글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9/13 08:42 #

    사실 유점사의 건물들 자체가 대부분 신라시대 양식을 따랐다고 하니, 남아있었다면 건물들과 함께 금강산을 대표하는 사찰로 있었을것 같습니다.
  • 역사관심 2020/09/14 09:44 #

    항상 아쉬움 투성이입니다. 한국의 건축사...
  • Positive 2020/09/12 22:41 #

    와,대단하네요.
  • 역사관심 2020/09/14 09:44 #

    처음 봤을때 딱 이 감정이었습니다 ^^
  • 도연초 2020/09/13 11:33 #

    유점사에 저뿐만이 아니라 일제시대때 스리랑카인 스님이 방문해서 진신사리 한조각을 유점사 주지에게 준 적이 있어서 진신사리를 안치하는 몇 안되는 북한 사찰이기도 하지만... 진신사리라고 믿어지는 물건 대다수가 의심받는다는 걸 감안하면 저게 더 가치가 있겠네요;;
  • 역사관심 2020/09/14 09:45 #

    그런 사연이 또 있었군요. 지금도 있을런지;;
  • 응가 2020/09/16 21:33 #

    사진 하단에 보이는 백의관음상이 기록에 따르면 신라 법흥왕때 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는 불상입니다(실제로는 13세기 불상으로 보고있지만 세조 유점사를 원당으로 하고 시주를 했다고 전해집니다.)(https://lh3.googleusercontent.com/proxy/KhU_Pm9aSsXeaKDonCH6VX5jYSkycfivUnshKLsOu2kbiXPOwvoxE_jFWk5UbXSRsjiFSvy-VYKCI8Olqv2iNviTimwKndz_mZJh_3LotnSbYzLmcDZxvj8) 원래는 보타전에 있었지만 후에 능인전으로 옮겨왔다고 합니다.

    53불은 45도 각도에서도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https://www.museum.go.kr/dryplate/searchplate_view.do?relicnum=016574)

    비록 능인보전 자체는 조선후기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 불상 53개가 한꺼번에 보관이 되어있는걸 발견해서 일제강점기 가장 큰 발견중 하나로 손꼽혔다 합니다.

    어찌되었건 금강산의 사찰들은 하나하나 여말선초에서 조선시대 내내 조선불교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유물유적이 많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조선왕실, 원황실이 시주했었던 유물중에서 전후 수습된 것들이 원산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데, 남한의 불교유물과 비교가 안될정도로 화려합니다.(https://www.chf.or.kr/c2/sub2_2.jsp?thisPage=1&searchField=&searchText=&date1=201906&brdType=R&bbIdx=106871)


    석왕사는 북한이 콘크리트로 복원해서 말아먹었고 장안사, 유점사는 어찌되건 남한주도로 이뤄져야 합니다....
  • 역사관심 2020/09/21 12:27 #

    오 댓글을 주셨었군요! 어제 오늘 못봤네요. 시간 들여 찬찬히 보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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