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미이라 고찰 (2)- 사진발견 역사

예전에 이런 글을 쓴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 핵심부분을 발췌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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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원(李裕元, 1814~1888년)의 [임하필기]에는 이런 기이한 구절이 등장합니다.

임하필기
춘명일사(春明逸史)
여진(女眞)의 옛 무덤

북청부(北靑府) 지역에 오래된 옛 무덤이 하나 있는데, 매우 커다랗게 생겨 사람들이 다들 이상하게 여겼다.을 사람이 스스로 자기 선조(先祖)의 무덤이라고 하더니 어느 날 다른 산으로 이장(移葬)하였다. 

이에 고을 사람들이 앞 다투어 가서 그것을 보니, 무덤 안에 시신(屍身)이 있었는데 그 복색(服色)이 호족(胡族)의 차림새였다. 일곱 겹의 상의(上衣)가 혹은 청색(靑色)이고 혹은 흑색(黑色)이었으며, 염주(念珠)가 걸려 있고 얼굴에는 수염(鬚髥)이 많았는데 꼭 살아 있는 모습 같았다. 체구(體軀)가 매우 장대한 걸 보니 틀림없이 여진 때의 사람으로 500년이 못 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완전(完全)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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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함경도에 있는 북청부에 알수 없는 고분이 하나 있는데, 이를 이장하려고 파보니 그 안에 미이라가 된 장대한 체구의 남자가 있더라는 것. 그런데, 그 복장을 보니 여진족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단서가 있다면 '일곱 겹의 상의'라든가 '목에 건 염주'같은 것이지만, 필자의 능력부족으로 이 단서에서 뭔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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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들을 더 흥미롭게 보시려면 위의 링크글을 꼭 한번 읽어보시고 오시면 합니다. 여진족의 무덤들과 미이라가 발굴된 조선시대 기록인데, 함경도 북청군과 부령지역에서 나온 기록들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유리건판]을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이 [임하필기]에 등장하는 여진족의 무덤위치인 "함경남도"에서 발견된 미이라 사진입니다.

머리카락이 모두 보존되어 있으며, 갈비뼈밑 살집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로테스크하게 아래 사진에서는 의자에 기대서 세워두었는데 마치 나무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무덤 안에 시신(屍身)이 있었는데 그 복색(服色)이 호족(胡族)의 차림새였다. 일곱 겹의 상의(上衣)가 혹은 청색(靑色)이고 혹은 흑색(黑色)이었으며, 염주(念珠)가 걸려 있고 얼굴에는 수염(鬚髥)이 많았는데 꼭 살아 있는 모습 같았다" 라고 [임하필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함께 찍혀 있는 아래 의복류가 만약 청색/흑색이라면 매우 의미있는 사료가 될 듯 합니다. 또한 조선시대의 저 기록에서는 이 의복들을 모두 입은 채로 보존된 미이라였는데, 일제시대의 이 사진들은 의복을 벗긴 것인지, 따로 발견된 것인지 확인할 수는 없군요.

미이라가 발견된 함경도 고분에서 함께 찍힌 의복사진 (임하필기 기록처럼 '여러 겹'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윗 링크글에서 이런 정보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原文图片편을 보면 이런 또다른 흥미로운 기록이 나옵니다.

함경도(咸鏡道)
부령도호부(富寧都護府)
부거현성(富居縣城) 둘레가 2천 7백 31척이다. 
○ 현의 서쪽 산에는 옛 무덤이 만여 개가 있고 모두 석곽(石槨)인데, 어느 시기의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기록만으로 이 무덤의 주인들이 누구인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같은 함경도의 부령이라는 곳에 주인과 시대를 알 수 없는 무덤떼가 무려 만여기가 모여 있다는 기록은 놀라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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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흥미롭게도 유리건판자료에 이 비슷한 함경도의 석곽무덤들이 찍혀 있습니다.

함경남도 함흥 오로리산 고분들

아래 사진을 보면 분명 석곽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함경남도 함흠-오로리-밭가운데-고분

사진의 함흥과 임하필기에서 나온 여진족 미이라가 발견된 북청군은 고작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의 지척입니다.

과연 저 사진들이 [임하필기]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과 맞닿아 있을까요? 흥미롭습니다.


핑백

  • 까마구둥지 : 함경도의 여진족 미이라 고찰 2020-10-01 08:10:10 #

    ... 가 되어 있는 한국과 달리 정체성과 국가적 스케일이 커질 것이라는 느낌이 (그리곤 외려 옛날이 더 컸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사족2: 후속글함경도의 미이라 고찰 (2)- 사진발견. ... more

덧글

  • 도연초 2020/10/02 20:18 #

    사진에 다이쇼 9년 연호가 적힌 걸 보니 1920년에 촬영된 사진이군요.

    만약 이들이 현대에 발굴되었으면 유전자 연구자료로 쓰였을텐데...
  • 역사관심 2020/10/03 04:01 #

    도연초님, 정확한 연도정보 감사드립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혹시 저쪽에서 보존하고 있을지도...(꽤나 의심스럽지만).
  • 도연초 2020/10/03 08:04 #

    사진 3개를 보아하니 글자가 거울에 비춘 듯이 반대로 나온데다 휘갈겨 써서 알아보기 힘드네요. 다이쇼 9년도 라는 다섯 글자만 정자로 써서 그나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함흥의 사진은 연도가 아니라 제19호 같네요

    그런데 미라도 나름 보존하는 데 품이 많이 간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을 보면(알프스에서 발견된 외치와 이집트의 미라 등등은 보존을 위해 생각보다 까다로운 관리를 받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가지고 있더라도 관리가 제대로 되어서 DNA가 그나마 잘 보존되어 있을지 의문이군요. 만약 오오타니 콜렉션처럼 한국에 남아있다 해도 625가 터져서 문화재 상당수가 전쟁으로 사라졌음을 감안하면 이것도 참...
  • 역사관심 2020/10/04 05:10 #

    다이쇼 9년이란 정보를 찾아내신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디든 보관하고 있으면 정말 귀중한 자료일텐데..... 사진상으로만 남아있는 문화재가 너무 많네요...
  • 남중생 2020/10/02 21:05 #

    발끝으로 서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키가 정말 크긴 하네요.
    조선시대 사람이 봤으면 장대하다고 느낄법 합니다.
  • 역사관심 2020/10/03 04:02 #

    남중생님 잘 계시죠? 그러고보니 꽤 커보이네요...정말.
  • 남중생 2020/10/03 12:32 #

    네네, 잘 지냅니다!
    요즘은 네이버 역개루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카페에 마침 역사관심 님의 함경도 미이라 1편 글이 전재되어 올라온 것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ㅎㅎ
  • 역사관심 2020/10/03 13:31 #

    아 그러셨군요. ㅎㅎ 역개루에서 올려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참피사냥꾼 2020/10/04 11:59 #

    함경도 한지역에 만여기면 옥저나 고구려시대 아닐까요
  • 역사관심 2020/10/05 06:12 #

    그럴수도 있겠네요. 옛문헌에서 이미 옛무덤이라 나오니...
  • 멍청한 가마우지 2020/10/04 17:38 #

    처음 사진은 뒷모습 같군요. 양갈래로 머리를 땋아 짧고 뭉툭하게 묶어놓은 걸로 보여지네요.
  • 역사관심 2020/10/05 06:13 #

    그로테스크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뒷모습같습니다. 등도 가만히 보니 등뼈같고...
  • 초과회복 2020/10/28 00:26 #

    아마 https://1.gall-img.com/hygall/files/attach/images/82/513/943/144/185b08479e96b494224cab3335cc4369.jpg 이 복장을 말하는 것 같네요.
  • 역사관심 2020/10/29 04:19 #

    아 사진을 보고 싶은데 링크복사가 안되네요. 혹시 https를 http로 바꿔주실수 없으실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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