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천 마리의 소 도축 (1676년 승정원 일기) 음식전통마

[18세기 소고기는 일상의 반찬 (부제: 살벌한 고기소비)]란 글을 2년전 이 맘쯤 쓴 적이 있습니다. 이 기록은 1770년대 즈음의 엄청난 조선의 소고기소비량에 대한 글이었지요.

그런데 이보다 약 100년전인 1676년 (아직 번역이 안된) 승정원 일기에서 이런 기록을 찾았습니다 (실은 조선의 생태학에 좋은 저서를 내신 김동진 박사의 글 중에 얼핏 지나가는 조각정보가 생각나서 다시 찾아본 것입니다). 김동진박사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숙종 때 ‘승정원일기’를 보면 ‘도성의 시전에서 각 고을의 시장, 거리의 가게까지 모두 합해 하루에 도축하는 것이 1000마리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기록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뒤져봤습니다.

다음은 승정원일기 1676년 1월 14일의 기록.

승정원일기 250책 (탈초본 13책) 숙종 2년 1월 14일 정유 11/11 기사 
1676년  康熙(淸/聖祖) 15년
대동법과 진휼의 便否 등을 논한 柳翼星의 상소와 이에 대한 비변사의 계목

발췌:
夫牛畜者, 農家之重寶也, 其所産, 亦不如鷄犬羊豕之繁殖, 故農民有之家, 十無二三, 加以近年以來, 連有牛疫, 故民間牛種甚貴, 農民之失業, 田野之不闢, 實由於此。朝家雖有禁屠之時, 立法未幾, 旋卽弛禁, 上自都市, 下至各邑, 閭里市肆, 婚姻宴集之處, 通計一日所殺, 不下千頭, 以玆牛價日踊, 生産日蹙, 此實農民之蝥賊, 而王政之所當憫也。今後申明禁屠之法, 犯者, 與殺人同罪, 一切不饒, 則農民之受賜, 國家之獲利, 必無過於此者矣。議者, 或以爲殺牛與殺人同罪, 則殊無貴人賤畜之意, 此則不然, 殺人者, 只殺一人, 其罪小, 殺牛而使民不得耕耘, 則飢死之人, 不止一人, 其罪也大, 殺一人以活千人, 此固仁者用法之意也。

아직 번역이 안된 기록인데, 이 중 김동진박사가 언급한 부분을 발췌하면 이렇습니다.

通計一日所殺, 하루에 도살하는 수를 계산하면
不下千頭,  1천 머리 (마리)아래가 아니다 (최소 1천마리이다).
以玆牛價日踊, 이에 소 가격이 뛰고
生産日蹙, 하루 생산량은 줄어드니...

http://sjw.history.go.kr/id/SJW-D02010140-01100

확실히 이런 기록이 등장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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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도 전시대인 이응희 (李應禧, 1579∼1651년)의 [옥담사집]에도 당시 조선인들이 얼마나 육류에 탐닉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기록이 나옵니다.

옥담사집
불고기[炙]

밥상에 음식이 널려 있지만 / 食前羅衆具
불고기보다 더 좋은 건 없어라 / 珍勝炙莫加
부잣집에선 가축 고기를 굽고 / 甲第燔蒭豢
농가에선 나물로 전을 굽는다 / 田廬用菜瓜

슬프고 서럽다는 건 공부의 시구요 / 悲辛工部句
돼지고기만 놓은 건 안영의 집일세 / 單設晏嬰家
입이 좋아함은 천하가 다 같은데 / 悅口同天下
이 늙은이는 유독 많이 좋아한다 / 衰翁嗜獨多

甲第이란 건 부잣집을 뜻합니다. 그리고 蒭豢은 소, 말, 양, 돼지, 개 등을 통틀어 (즉 육류전반) 일컫는 표현이지요.

두번째 문단의 "돼지고기만 놓은 건 안영의 집일세"란 표현은 안영(晏嬰, ? ~ 기원전 500년)이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齊)의 명재상이 매우 검소한지라 고기를 식탁에 거의 올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검약한 정신을 알지만 이응희 자신은 고기먹기를 못참겠다는 것을 돌려 표현한 것이지요.

이응희 선생은 또한 16~17세기초의 '탕'에 대해서도 쓰셨습니다.

탕(湯)

씹어먹는 고기맛 좋다지만 / 齒决雖云美
탕으로 끓여도 맛이 좋아라 / 湯煎味亦滋

염소와 돼지는 물론 매우 맛있고 / 羔豚元絶勝
물고기나 게도 또한 별미이지 / 魚蟹亦新奇
입맛 맞추려 소금으로 간 맞추고 / 適口調鹹淡
창자 채우려 떠서 배불리 먹는다 / 充腸酌飽飢

단지 은나라 왕 이름을 꺼려 / 只嫌殷帝號
먹을 때마다 천천히 떠서 먹노라 / 當食每遲遲

염소와 돼지라고 되어있지만 실은 '새끼양과 새끼돼지'란 글자로 이것으로 탕을 끓인 것이 맛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미 이 당시에도 '육식'에 대한 조선인들의 식성을 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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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윗 글과 소개한 링크글 (1770년대)보다 더 후대인 1818년의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을 봐도 어마어마한 도축량을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나옵니다.

목민심서 호전(戶典) 6조 / 제6조 권농(勸農)
농사는 소로 짓는 것이니 진실로 농사를 권장하려 한다면 마땅히 도살을 경계하고 목축을 권해야 할 것이다.

박제가(朴齊家)의 《북학의(北學議)》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중국의 풍속에서 소는 코를 뚫지 않는다. 오직 남방의 물소만은 성질이 사납기 때문에 코를 뚫는다. 간혹 우리나라 소로서 서북(西北) 지방에서 열리는 시장으로부터 〈중국에 팔려〉온 놈이 있는데, 우리나라 소는 콧마루가 낮아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소의 뿔이 울퉁불퉁하여 고르지 못하나 휘어서 말끔하게 할 수 있다. 털빛이 온통 푸른 소도 있다는데 보지는 못했다.
중국에서는 소를 항상 목욕시키고 손질해 주어서 우리나라 소가 죽을 때까지 씻지 않아 쇠똥이 몸뚱이에 말라붙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 당시(唐詩)에,
유벽거(油壁車) 가벼운데 금빛 송아지 살쪘네 / 油壁車輕金犢肥
라고 하였으니, 이는 소의 털빛이 윤택함을 말한 것이다.

또 중국에서는 소의 도살을 금한다. 북경 안에는 돼지고기 푸줏간이 72개소, 양고기 푸줏간이 70개소가 있어서 대체로 푸줏간마다 매일 돼지 300마리를 팔고 양의 숫자도 역시 마찬가지다. 고기를 이같이 많이 먹는데도 쇠고기 푸줏간은 오직 2개소뿐이었다. 길에서 푸줏간 사람을 만나서 자세히 물어 보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매일 잡는 소를 계산하면 500마리가 된다. 나라의 제향(祭享) 때나 호상(犒賞) 때에 잡는 것, 또는 반촌(泮村)과 서울 5부(五部) 안 24개소의 푸줏간에서 잡는 것, 게다가 전국 300여 고을마다 관에서 반드시 푸줏간을 열게 한다. 작은 고을에서는 날마다 소를 잡지는 않으나 큰 고을에서 겹쳐 잡는 것으로 상쇄되고, 또 서울과 지방에서는 혼례와 잔치ㆍ장례ㆍ향사(鄕射) 때 그리고 법을 어기고 밀도살하는 것을 대강 헤아려 보아도 그 수가 이미 500마리 정도가 된다.

중략.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나라에는 다른 축산이 없기 때문에 소의 도살을 금하면 결국 고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렇지 않다. 소의 도살을 금한 후에라야 백성들은 비로소 다른 축산에 힘을 써서 돼지와 양이 번식해질 것이다. 지금 돼지를 사가는 자가 등에 두 마리를 지고 가다가 서로 눌려 죽으면 부득이 잡아 파는 정도인데도 오히려 묵은 고기가 있다. 이는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쇠고기가 특히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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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을 보면 1676년의 하루 1000마리 기록에서 확 줄어든 500마리 (그래도 인구비례당 어마한 숫자)의 도축 통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울에만 24개의 제대로 된 푸줏간이 있었으며, 전국 300고을에 모든 고을마다 푸줏간이 있었다고 되어 있지요. 

이 기록들은 물론 모두 당시 극심한 도축량에 대한 걱정과 경고를 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결코 조선이 풍족한 사회였다는 것이 아니지요. 다만, 그럼에도 확실히 우리 선조들은 우리 생각보다 육식을 엄청 즐긴 것이 맞는 듯 합니다.



덧글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11/14 14:43 #

    예전에 조선시대 사람들이 어느정도로 도축을 하였는지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결국 보류하였던 주제인데, 이렇게 적혀있었군요..
    한때 조선시대 후기(18세기) 도축된 소의 추정통계가 1년에 200~500, 800마리 정도라고 하니, 하루에 1000마리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네요..
  • 역사관심 2020/11/16 05:29 #

    정말 상상초월입니다. 육식대국...
  • 無碍子 2020/11/14 16:19 #

    1676년의 대량도살은 식량난에 기인하는것일수도있습니다.

    1670년~76년은 유래없는 기근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도 건넌 사람들을 굶겨죽일정도였습니다.
    흉년의 피크에서 겨우 5년이지났으니 농업생산이 회복되기전이겠고요.

    먹을게 없으면먼저 소를 팔고 그다음으로 전답을 팔고 그리고는 처자식을 팔고 최후로는 자기도 팔려가겠지요.
    소를 대량으로 잡아먹기시작하는건 막장으로 진입하는 첫단계로 봅니다.
  • 역사관심 2020/11/16 05:30 #

    그럴수도 있겠네요. 이 부분도 관심있는 주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 無碍子 2020/11/16 18:38 #

    승정원일기는 임금님이 선정을 배풀어 백성들이 소고기 배불리먹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농우)를 다 잡아먹어 농사걱정을 하는것입니다.
  • 역사관심 2020/11/17 01:00 #

    알고 있습니다.
  • shaind 2020/11/17 16:11 #

    대량도살이 기근에 기인하는 것이라면, 도축 두수는 어떤 특정 시점에 피크를 찍은 뒤 급락하고, 저점에서 느리게 회복하는 수치가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근 시기에는 소가 도살되는 만큼 새로 태어날 리가 없고, 새로 송아지를 낳을 소들이 대량 도살되서 소 출산수는 더욱 급감할 것이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소가 많이 도살된다고 걱정하는 기사는 1676년에만 나오는 게 아니라 조선 말기까지 (최소한 철종 때까지는) 계속 지속적으로 등장합니다.

    또한 조선 후기 인구수는 몇몇 개별적인 기근 에피소드들을 제외하면 느린 증가세를 유지했기 때문에, 인구를 부양할 만큼의 농업생산력이 있었고, 그리고 그 농업생산력을 뒷받침할 소 사육두수도 유지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1676년이 소 도축 두수가 높은 해이긴 해도, 조선 후기에 있어 평균적으로는 높은 도축 두수가 높은 출산 두수와 평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런 높은 도축 두수가 스탈린 우크라이나 대기근 식의 막가파 대량 도축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 됩니다.
  • 역사관심 2020/11/18 00:24 #

    shained님> 고견과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 남중생 2020/11/14 18:27 #

    마지막 목민심서의 이야기는 돼지고기는 공급이 한정되어있음에도 워낙 수요가 적어서 '묵은 고기'가 생긴다는 것이고, 그만큼 소고기가 풍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굳이 다른 육류를 생산/소비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흥미롭습니다.
  • 역사관심 2020/11/16 05:36 #

    비슷한 시기에 냉면(테이크아웃)에도 돼지고기를 넣는 걸 보면 확실히 여기저기 소고기보다 싼 고기로 활용된듯 합니다. http://luckcrow.egloos.com/2624654

    이와 같은 맥락의 예가 승정원일기에도 나오지요.

    영조 4년 무신(1728) 7월 28일(정축) 비가 왔다 맑았다 함
    04-07-28[26] 지방관에 제수하여 노모를 봉양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청하는 승지 홍경보(洪景輔)의 상소

    "속담에 이르기를 ‘소를 잡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어버이 생전에 닭고기, 돼지고기로 봉양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비록 속되지만 족히 슬퍼할 만합니다."
  • 남중생 2020/11/16 13:34 #

    오... 돌아가신 부모님께 소고기로 제사를 올리는 것보다 살아계실 적에 돼지고기로 봉양하는 것이 낫다! 흥미로운 속담 기록이네요.
  • 역사관심 2020/11/16 21:59 #

    유교왕국다운 속담이죠 ㅎㅎ
  • 무식한 둘리 2021/05/06 08:46 #

    이러한 역사가 이 반도에서의 일이라는 망상은 이제 버려야 겠지요. 고려사와 왕조실록 연산군일기에 만리장성을 고려 평장사 유소가 만리에걸쳐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또 정조대왕은 나라의 물이 모두 有海東流라해서 동쪽으로 흘러간다 했지요. 조완구선생은 왜구에 쫓겨 이땅에 들어와 자갈밭을 일구고 살았다 하여 강제이주를 말했고, 홍기문 선생은 조선문전요령에서 1924년 나라의 자췌를 도국으로 옮겼다 라고 명확히 이야기 하고 있지요. 이 반도가 일만년 조선사터전이라는 간악한 일제의 꼬임에 빠져 반도조선에 악을 쓴다면 이 또한 패륜이겠지요. 현명하게 알아 들읍시다.
  • 역사관심 2021/05/06 12:05 #

    이 이론에는 관심이 없으니, 제 블로그에선 이런 글을 달지 않아주시면 합니다. 죄송합니다.
  • 무식한 둘리 2021/05/07 06:59 #

    이론이라뇨...선조들의 글에 나온걸 그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님도 선조분들이 멍청해서 헛소리했다고 무시하고 일본놈들이 써놓은 글만 인정하는 사람이군요..맘에 안들면 지우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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