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조선 선비의 사고방식의 일면- 福有五等 (복의 5 단계) 역사

우리는 조선 선비하면 떠오르는 관념들이 있습니다. '청렴', '돈에 얽매이지 않는다', '선행', '(똥)고집' 이런 류의 개념들이지요.

조선 후기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쓴 [청성잡기]에는 흥미로운 글이 하나 있습니다.

청성잡기 
성언(醒言) 참된 복

복에는 다섯 가지 등급이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1. 선을 많이 행하고서 부귀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최상이고, 
2. 부귀가 좀 부족한 경우가 그 다음이며, 
3. 선도 많이 행하고 부귀도 많이 누리는 경우가 또 다음이고, 
4. 선은 별로 행하지 않고서 부귀만 많이 누리는 경우가 그 다음이며, 
5. 선을 전혀 행하지 않고 부귀만 많이 누리는 경우가 최하이다.

세 번째는 이미 화의 조짐이 보이니, 음기(陰氣)가 밑에서 처음 생겨나는 건괘(乾卦 )가 구괘(姤卦 )로 변하는 형상이다. 네 번째는 이미 음기가 왕성해진 비괘(否卦 )에 해당하며, 다섯 번째는 양기(陽氣)가 이미 다 깎여 나간 박괘(剝卦 )의 위험한 상태로 목숨이나 건지면 다행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완벽한 복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항상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이다.

최상의 복은 나라로 말하면 주(周)나라 왕업의 기초를 놓은 고공단보(古公亶父) 같은 경우이고, 가문으로 말하면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로 일컬어지는 송대(宋代) 제일의 문장가 집안을 일으킨 노천(老泉) 소순(蘇洵)과 같은 이에 해당하니, 본인은 궁색하지만 후대는 번창하여 커다란 복록의 기반이 되었다. 허나 당시에는 곤궁하고 또 도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세상의 누가 이것을 상등의 복으로 치겠는가.

조선선비들에게 완벽한 이상적인 삶이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보여주는 글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와 얼마나 다른 세계관을 추구했던 집단이었는지도 보입니다. 우리같으면 3번이 최고겠지요 (그리고 아마도 4번 그 다음이 2>=5 정도... 최악이 1번). 그리고, 당대 상업이 융성했던 다른 국가들과 얼마나 동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 일면을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그러나 세상에서 완벽한 복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항상 네번째와 다섯번째이다"라고 하는 글귀에서 선비들과 관계없이 대중들에겐 역시 '돈이 최고 (선행따윈 관계없어)'란 개념 또한 일반적이었다는 것이 보이지요.

꽤나 흥미로운 글인지라 나눕니다.

덧글

  • 도연초 2020/11/17 13:44 #

    하지만 현실은 이상적인 삶을 지킨 사람이 없으니 더더욱 이상적으로 바라보았을 지도 모릅니다

    결국 선비도 인간이라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라...
  • 역사관심 2020/11/18 00:29 #

    동감입니다! 저 글귀의 [세상]에 그런 선비들이 아주 많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합니다.
  • 존다리안 2020/11/17 15:08 #

    정작 선비 본인들은 서원에서 세금걷고 땅투기하며 여말 승려들과 똑같은 짓을 했었고 노비제에 의존했지요.
  • 역사관심 2020/11/18 00:25 #

    그렇죠, 일부 진짜 선비들만 저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 무명병사 2020/11/17 15:39 #

    사람사는 건 언제나... 뭐, 이상은 이상이고 현실은 현실이죠. 첩살림을 꾸린 건 확실ㅎ...
  • 역사관심 2020/11/18 00:26 #

    무명병사님, 동감입니다.
  • 천하귀남 2020/11/17 15:52 #

    말이야 저럴지 모르지만 선비들 남아있는 일기 등을 보면 금전 문제로 고생하거나 돈벌기위해 이리저리 움직인 기록도 많으니 경제적 어려움은 참 쉽지 않습니다.

    안빈낙도’ 하리라 말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도리어 안빈이 안 되네.
    마누라 바가지에 그만 문장도 꺾어지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꽃과 나무 확연히 쓸쓸해 보이고, 시 짓고 글 읽는 것도 쓸데없는 짓.
    부잣집 울타리 아랜 보리가 쌓였다지만, 시골 사람 보기에 눈요기일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에도 이런 것이 있더군요.

    어느 나라나 선비든 무사든 관리를 구성하는 계층 특히 대다수를 구성하는 하급관리층이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오래가는 꼴을 못 보는 듯합니다.
  • 역사관심 2020/11/18 00:26 #

    동감동감입니다. 경제력이란 것이 정신을 포함하는 모든 것의 기본이란 M선생의 말씀은 진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이 이데올로기화되면 안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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