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명확한 조선전기 2층 주택의 그림 발견 (그리고 '다락'의 뜻) 한국의 사라진 건축

2017년 번역이 완료되어 DB로 공개된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자체는 2015년 경북대 교수이신 이상규박사님이 펴낸 것입니다. 이 저서에 대한 설명을 우선 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는 광해군 9년(1617)에 왕명으로 홍문관 부제학 이성(李惺) 등이 편찬하여, 찬집청(撰集廳)에서 주관하고, 지방 5도(전 국가적 사업이었음)에 분산해서, 판각하여 간행하였다. 이 책은 전라도 6책, 경상도 4책, 충청도 4책, 황해도 3책, 평안도 1책을 각각 분담하여, 목판본으로 1617년에 완성되었다. 

곧 이 책의 원고는 1615년에 편찬이 되었으나 이를 판각하여 1617년에 그 간행이 완성된 셈이다. 이 책은 조선 초기에 간행되었던 『삼강행실도』와 『속삼강행실도』의 속편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정의 대상자의 폭을 대량으로 확대하여, 간행한 것이다. 특히 임란과 호란의 양란을 지나 민속이 지극히 피폐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의 효행과 열녀, 충신을 가려내어, 그들의 행실을 그림과 함께 언해하여 보급하기 위해서, 이 책의 간행이 추진된 것이다. 특히 사대부층 뿐만 아니라, 중인·양인을 비롯한 노비 층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그 대상자를 선택하였다. 조선조 광해군 대에 이 책을 간행하게 된 배경은 임진왜란 이후에 흐트러진 사회 기강을 바로 잡는 한편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효자·충신·열녀 등의 정표(旌表) 사실을 수록 반포하여 민심을 격려하려는 데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상규

즉, 유근(柳根, 1549~1627)이 광해군 때 편찬한 것으로 1615년 광해군이 편찬을 시작하여 2년후에 완성한 책으로 임진왜란 직후 피폐한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전국의 유교적 모범사례 (효행, 열녀, 충신등)를 모아서 편찬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 고건축에 관심이 있는 필자가 발견한 아주 귀중하고 흥미로운 정보가 실려 있습니다. 다음은 [유씨구부 柳氏救夫], 즉 유씨부인이 남편을 구하다라는 제목의 챕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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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氏救夫
柳氏龍仁縣人 忠義衛李士訥之妻也 有火賊突入其家將害 士訥沉醉不覺 柳氏以身翼蔽扶擁上樓得免 柳氏爲賊所害 今上朝㫌門

원문이 이렇고 한글(언문)으로 해석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원문 그대로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 이 글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씨구부 - 유씨가 지아비를 구하다
유씨는 용인현 사람이니, 충의위 이사눌(李士訥)의 아내다. 화적이 있어 그 집에 돌입하여(뛰어들어) 장차 사눌을 해하려하거늘, 사눌이 침취(沉醉)하여 깨지 못하더니, 유씨 몸으로 가려서 붙들어 다락에 올려 면함을 얻고, 유씨는 도적에 해를 받은 바가 되었다. 지금 조정에서 정문을 세웠다.

즉, 유씨는 경기도 용인군에 사는 이사눌이란 자의 아내인데, 불도적 (즉 화적)이 뛰어들어 남편을 죽이려 했는데, 그는 술이 취해 깊게 잠이 들어 깨질 못했고, 아내인 유씨가 남편을 '다락'(즉 2층)에 올려서 살리고, 대신 화적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 필자가 생각하는 아주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죠.

유씨 몸으로 가려서 붙들어 다락에 올려 면함을 얻고,

원래 '다락'은 2층이상의 중층건물의 윗층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다락집'은 '2층집'이고 북한에서는 현재도 그 의미로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이 '다락'기록, 특히 조선 중기 이전의 문헌기록을 주목해왔고, 글 행간에서 현재 우리가 아는 그 다락방 (즉 부엌에 딸린 작은 공간)이 아닌 제대로 된 2층의 의미를 파악하려 수년간 노력한 바 있습니다.


삽화의 존재

그런데 말입니다. 놀랍게도 [동국신속삼강행실도]의 "열녀편"에는 해당삽화가 꼬박꼬박 해당 글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이 유씨부인 편에도 '삽화'가 실려 있습니다. 즉, 화적(불도적)이 집에 들어오는 장면과 유씨부인이 남편을 다락에 올리고 대신 죽임을 당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당대의 삽화로 그려져 있는 것이지요.

이 그림과 이야기의 배경은 '조선 전기'입니다. 왜냐하면 이 삽화가 실린 이 책이 1610년대에 편찬되었고, 무엇보다 여기 등장하는 남편 이사눌의 직위가 '충의위'이기 때문이지요. 충의위(忠義衛)는 1418년 만들어진 직위로 조선전기 중앙군으로서 오위(五衛)의 충좌위(忠佐衛)에 소속되었던 양반 특수 병종(兵種)입니다.

그리고 이 '이사눌'이란 사람의 기록이 [연려실기록]에 나옵니다. 바로 다음의 기록.

○ 29년 병신에 정시에서 합격한 이사눌(李士訥)의 겉봉에 쓴 것이 격식에 맞지 않았으므로 특명으로 이름을 삭제하게 하였다.

이 기록은 '선조 29년', 즉 병신년인 1596년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이사눌은 조선전기의 인물이며 이 이야기의 시대배경이 임란 직전/직후임을 알 수 있겠지요.

그럼, '다락'은 현재 우리의 인식에 있는 그 하꼬방(일식명칭)에 가까운 부엌에 딸린 작은 방이나 된장단지등을 보관하는 작은 수납공간일까요?

아래 그림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유씨부인이 엎드려 있고 (유씨라는 글자가 보이지요), 화적은 말 그대로 불을 들고 손에는 낫을 들고 있지요. 그런데 남편이 있는 공간을 보시기 바랍니다. 완벽한 2층입니다. 즉, 이 그림은 1600년대초 임진왜란 진전/직후 당대에 그려진 그것도 '조선사회'를 그린 삽화중 필자가 만난 궁궐과 사찰그림을 제외한 가장 명확한 '중층 가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락'이란 단어 (그것도 당시 한글)가 명확히 어떤 건축구조를 의미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아주 귀중한 사료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1500년대후반에서 1600년도 초반, '다락'이란 의미는 제대로 된 2층을 뜻하고 있음을, 혹은 최소 이런 형태를 포함하는 의미를 가진 단어였음을, 그리고 당대 조선가옥에 명확히 중층 가옥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가장 명확한 그리고 (아직까지 찾아낸) 유이한 그림과 글입니다 (*한가지 더 있는 그림은 이 그림- 링크글).

조금 자세히 보시면 2층에 명확히 창문과 벽체도 있으며, 또한 아래층에는 올라가는 계단도 보입니다.

초간종택 별당(醴泉權氏 草澗宗宅 別堂)에 남아 있는 계단 형태가 떠오르는 구조이기도 하지요.
경상북도 예천군 초간종택 별당


한국학의 시각 문제점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입맛이 쓴 정보를 만났습니다. 바로 아래의 해석이지요.

다라긔 : 다락에. 다락+의. 15세기 ‘다락’형이 현대어로 그대로 이어졌다. 전통 가옥에서 천장 바로 밑에 만든 좁고 낮은 공간을 다락이라 부른다. 뒤에 ‘방’이 붙어 ‘다락방’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이 해석정보는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가 제공되고 있는 DB에 실려 있는 주석입니다. 즉, 21세기 현대한국인이 해석한 것이지요. 뭐라고 되어 있지요? "전통가옥의 천장바로 밑 좁고 낮은 공간을 다락이라 한다"고 조선후기 (훅은 말기)식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협의의 정의를 그대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락' 단어가 나온 페이지는 아시다시피 그 바로 옆에 삽화가 실려 있지요. 이 (그것도 당대에 그려진) '그림'을 눈으로 보면서도 다락을 이런 식으로 해석을 달아 놓는 것이 바로 현재 한국학의 큰 문제점이라고 수차례 이야기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연복사 5층 목탑 (당대 기록에 명확히 60미터 이상으로 정보가 적혀 있는)의 주석에도 '이것은 과장된 기록으로 보인다'라고 그 누구도 아닌 현대 한국인들이 주석을 다는 맥락과 일맥상통하는 큰 문제라 생각합니다.

이 중층집 회화자료는 2020년 11월 26일 현재까지 (필자가 파악하는 한) 학계 어디에서도 언급된 적이 없는 사료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 개인적인 상상속의 조선전기 중층집의 그림이 그대로 그려져 있어서, 그리고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무척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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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Fedaykin 2020/11/27 14:22 #

    다락이 간의 공간이 아니라 명확한 2층 형태였군요 호오. 樓가 여러의미로 해석 될수 있다곤 생각했는데 다락 자체가 저런 의미였다니...일제시대에 와서 의미가 변한거였을까요. 신기하네요.
  • 역사관심 2020/11/28 14:04 #

    다락이란 의미는 조선전기까지는 여러 의미로 쓰인 것 같습니다만, 확실한 것은 명확히 2층이상의 공간을 말한 것인 듯 합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2층건축이 점차 사라지면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수납공간의 의미만 살아남은 듯 하네요.
  • 냥이 2020/11/27 20:51 #

    저것을 보고 알 수 있는 또 다른것 - 범죄조직이 검계 말고 또 다른 조직이 있었다.
  • 역사관심 2020/11/28 14:05 #

    조직적이었는지 일반적인 도둑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잘 보시면 낫같은 무기가 통일화 되어 있어 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화적'이 실제로 불을 지르며 다니는 강도였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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