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년 조선인의 회뜨는 그림 음식전통마

회문화는 동아시아에서 오래 되었고, 특히 한국이 일본보다도 더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아직 꽤 되실 겁니다. 예전에 이런 포스팅도 한 바 있습니다.


기록상으로는 중국이 기원전 7세기 [시경]으로 가장 먼저고, 한국은 오늘 소개하는 12세기말에서 13세기초 고려시대기록, 그리고 일본은 1399년의 [영록가기]가 최초의 기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회가 그리 발달하지 않았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회가 굉장히 많이 소비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오랜 회문화를 가진 한국이지만, '회화'로 남아있는 회 뜨는 그림은 필자의 경험으로는 아직 확인한 적이 없습니다. 김홍도 그림이나 신윤복이나 어느 화백도 회 그림을 그린 사람은 없지요.

그래서 오늘 소개하는 그림은 조선시대 일상화 (그것도 조선중기) 꽤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다음은 [동국신속삼강행실]에 나오는 글과 삽화입니다.

朴辰剖氷
錄事朴辰寧海府人家貧躬耕以養其父隆冬病臥欲食膾辰剖氷入水捕魚作膾以進及父歿以粥奠朝夕居廬三年 莊憲大王朝賞職
1617년(광해군 9)

녹 박진은 녕부 사이니 집비 가난야 몸소 받 가라 치더니 그 아비 셩 겨 병여 누어 회 먹고져 거 진이 어을 고 믈의 드러 고기 자바 회 라  나오다 믿 아비 주그매 쥭으로  됴셕 졔 야 시묘 삼년 다 장헌대왕됴의 샹직시니라

1617년의 글로 한문과 한글이 병기되어 있는데, 현대어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박진부빙 - 박진이 얼음을 깨다
녹사 박진은 영해부 사람이다. 집이 가난하여 몸소 밭을 갈아 아비를 모셨다. 그 아비가 한 겨울에 병이 들어 누워서 회를 먹고 싶다 하거늘 진이 얼음을 깨고 물에 들어가서 고기를 잡아 회를 만들어 드렸다. 이어 아비가 돌아가매 죽으로써 조석 제사를 모시고 시묘 삼 년을 하였다. 장헌대왕 때 상으로 벼슬을 내렸다.

즉, 겨울에 회를 먹고 싶다는 아비를 위해 아들인 박진이라는 사람이 얼음을 깨서 민물고기를 잡아 회를 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삽화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東國新續三綱行實圖(1617년)의 회치는 조선인

작은 소반에 큼지막한 생선을 올려놓고 팔을 걷어부치고 소도(작은 칼)로 회를 치려하는 모습입니다. 이는 17세기초의 그림으로 특히 한국의 식문화 역사분야에서 주목할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

참고로 회를 그린 것은 아니지만, 생선요리를 나누어 먹는 그림은 있습니다. 바로 김득신의  江上會飮 (강상회음)입니다.
18세기 江上會飮


덧글

  • rumic71 2020/12/07 09:30 #

    일본이 후발주자인데도 엄청나게 발전한 것은 역시 불로 요리하는 걸 꺼리는 성정 때문일까요.
  • 포스21 2020/12/07 18:29 #

    일본은 에도시대에 육식을 금지했지 않나요? 그래서 물고기 요리가 발달할게 아닌가? 싶습니다.
  • 역사관심 2020/12/08 07:35 #

    일본의 회문화는 그다지 잘 몰라서 답변하기가 힘드네요. 단백질을 공급하려면 역시 육식인데, 육식이 금지이니 (포스21님 말씀처럼) 반비례로 발전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 함부르거 2020/12/07 10:37 #

    주로 민물고기를 회쳐 먹었던 걸로 보이는데, 발전하지 못한 건 기생충 문제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역사관심 2020/12/08 07:36 #

    기생충은 큰 문제였죠. 다만, 회= 기생충...사망으로 조선시대에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보다 선비층에서 많이 먹었던 것 같아요.
  • 2020/12/07 10:38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0/12/07 15:03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도연초 2020/12/07 11:11 #

    조선초의 문관 홍일동(대식가이자 주당으로 유명했습니다)의 식사량에 대한 기록인 필원잡기를 보면 “그는 일찍이 진관사(津寬寺)로 놀러갔을 때 떡 한 그릇, 국수 세 사발, 밥 세 그릇, 두부국 아홉 그릇을 먹었고 산 밑에 이르러 또 삶은 닭 두 마리, 생선국 세 그릇, 어회 한 쟁반, 술 40여 잔을 비워더니 세조가 듣고 장하게 여겼다. 그러나 보통 때에는 밥을 먹지 않고 쌀가루와 독한 술을 먹을 뿐이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 역사관심 2020/12/08 07:37 #

    대식가 세상인 조선에서도 대식가로 유명했으니 그 양이;;; 재미있는 기록 감사합니다. "세조가 듣고 '징'하게 여겼다'라고 쓰신 줄;;
  • 도연초 2020/12/09 10:21 #

    사실 민물고기회가 가장 유행했던 것은 송나라였고 그게 반영되어서인지 수호지에서도 강주로 유배된 송강이 민물고기회를 대접받다 복통으로 앓아눕는(...) 걸로 나와 있지요. 아마도 기생충으로 인한 질환일지도?(사실 삼국지에서도 광릉태수 진등이 화타에게 비린 생선을 많이 먹어서 뱃속에 벌레가 생겼으니 이번엔 괜찮지만 또 이런 일이 일어나면 손 쓸수 없이 죽는다고 경고를 한 장면이 있고요. 아무래도 이 비린 생선이 정황상 민물고기 회를 가리키는 듯.)
  • 역사관심 2020/12/09 13:35 #

    그렇죠. 송대에 그렇게 인기였던 회가 왜 중국사에서 사라진건지 확실한 답이 없죠.
  • 천하귀남 2020/12/07 13:59 #

    국내에서 드물게 나온 학봉장군 부부의 미이라(1400년대) 에서도 간디스토마가 나왔고 치료제로 보이는 꽃가루도 위장에서 나왔다고 돼있는데 그야말로 죽음과 바꾸는 맛 아닌가 합니다.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미라에서 기생충나오는 것이 흔하니 거의 기본으로 하는 검사더군요.
    지금도 기생충 위험 높은 종류 회뜨는 문제로 말썽이긴 하더군요.
  • 역사관심 2020/12/08 07:38 #

    저도 기억합니다 그 정보. 역시 민물고기는 위험천만이죠... 아마 숱하게 사망사건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 소시민 제이 2020/12/07 16:18 #

    그리고 사채 못 갚는 녀석도 회를 치.....
    (조선시대 검계 이야기..)

    민물고기는 확실히 간디스토마 같은 위험이 도사리니....

    일본의 유명한 예술가인 로산진 도 간디스토마로 가셨는데 민물고기 회를 드셔서....

    그래서 아이누 들은 연어회를 먹을때 잡은 연어를 얼렸다가 먹었다고 하더군요.
    루이베 라고 하던가요?

    혹시 이북 쪽에도 겨울에는 저리 먹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봅니다.
  • 역사관심 2020/12/08 07:39 #

    민물고기 회는 정말 조심하는 것이 정답... 본문의 첫 부분에 나오는 얼려먹는 회 링크글과 비슷한 식문화네요, 루이베.
  • SAGA 2020/12/08 00:43 #

    조선시대와 회는 뭔가 조금 낯선 조합이군요. 이런 기록도 전부 다 있다는 것에 뭐든지 기록해 남기는 조선의 무시무시함을 느낄 수 있네요... 역시 기록의 나라...
  • 역사관심 2020/12/08 07:40 #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찾아보면 선비들이 회 엄청 즐겼던 기록이 많습니다. 본문 링크글 들어가시면 조금이라도 맛을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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